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52
52
알현 (1)
“프로드 국왕의 왕명을 전하겠습니다.”
로슈를 점령한 지 3주일이 지났을 때였다.
수도에서 전령이 왔다.
그는 수십 대의 짐마차와 프로드 왕실의 인장이 찍힌 칙서를 들고 왔다.
왕의 칙서를 읽을 때는 모든 간부가 모인 회의장에서 그것을 들고 온 전령이 낭독하게 된다.
“프로드의 어버이 알베르토 프로드가 제5군 마법 부대 2중대장이자 현 제5군 임시 지휘관인 레미에게 고한다.”
전령의 말에 엘런은 한쪽 무릎을 굽혔다.
“경의 용맹함은 천하를 호령하여 여기 왕실까지도 그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여러 전투에서 짐의 군대가 패배할 위기로부터 구해 냈다는 것도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전령은 왕의 칙서를 읽는 게 긴장되었는지 식은땀을 훔쳤다.
프로드에서 왕의 의미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특히, 제5군의 임시 지휘관으로서 로슈 점령 작전을 완승으로 이끈 것을 크게 치하하는 바이다. 이에 짐은 경의 임시 지휘권을 그대로 계승할 것을 명한다. 현 시간부로 제5군 원수는 레미임을 공표하는 바이다.”
짝짝짝짝.
전령이 칙서를 접자 주변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물론 모두가 엘런을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왕의 명령이었다.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프로드 왕국 내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함께 온 짐마차에는 왕께서 내리신 하사품이 들어 있습니다.”
전령이 엘런에게 칙서를 전달하며 말했다.
“고맙네.”
엘런은 그와 악수한 뒤 간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다들 고맙네. 이 정도면 초고속 승진이라고 볼 수 있겠군.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겠지?”
그러면서 엘런은 몇몇 귀족 출신 간부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말이야, 다들 보았지 않은가? 이 전쟁터에서 살아서 돌아가고 싶지 않나? 경들의 염원, 나보다 잘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걸세. 앞으로 잘 부탁하지.”
엘런의 연설에 간부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전쟁터에서 가장하고 싶은 것은 바로 집에 돌아가는 것이다. 엘런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로 그 부분을 건드린 것이다.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군. 이봐, 나에게 온 하사품 중에 술과 고기가 있는가?”
엘런이 전령을 보며 물었다.
“물론 있습니다. 부대원 전부가 다 먹을 수 있는 양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축하 연회가 빠질 수는 없지. 모든 병사에게 알려라. 오늘만큼은 코가 삐뚤어질 때까지 먹고 마시면 된다고.”
“예!”
전령은 곧바로 짐마차로 달려가 음식과 술을 꺼냈다.
그가 말한 대로 병사들 모두가 먹기에도 충분해 보이는 양이었다. 게다가 왕이 직접 하사한 것이라서 그런지 질이 아주 좋아 보였다.
“이게 얼마 만에 먹어 보는 고기와 술이야?”
자네트는 양손에 들고 있는 고기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체하겠습니다. 안 가져갈 테니 천천히 드십쇼. 레미 님이 왕께 받은 하사품이라고 합니다.”
캐릭이 켁켁거리고 있는 자네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마법부대원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병사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인간이라면 술과 고기 앞에서 긴장을 놓고 즐길 수밖에 없었다.
“역시 원수님은 다르다니까? 누가 왕께 받은 물건을 병사들을 위해 모두 풀겠어?”
“실력이며 인성이며 뭐 하나 빠지는 게 없군.”
“게다가 나이까지 어리지 않은가. 그야말로 앞날이 창창하신 분이야.”
“애초에 저분은 다른 이들과 궤를 달리하시는 분이라고. 저 나이에 원수를 단 사람이 있을까?”
부대원 전체가 그를 치켜세우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 지휘관도 자신이 받은 하사품을 병사들을 위한 파티에 쓴 적이 없었다.
“원수님, 어째 드시질 않는 것 같습니다?”
제트가 병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엘런에게 다가왔다.
“자네들이 마음껏 먹게. 나는 이미 많이 먹었네.”
그 모습에 제트는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했다. 자신의 밑으로 들어와 군기가 바짝 뜬 표정으로 믿음에 보답하겠노라고 말했던 엘런이었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이었는데 이제는 자신보다 더 높은 원수의 자리에 올라 있었다.
제트는 엘런의 옆에 걸터앉았다.
“이번에 연 파티 덕분에 병사들의 사기가 매우 올랐습니다.”
“그걸 노리고 한 것이지. 앞으로는 끝없는 전투의 연속일 것이야. 다들 긴장하고 따라와 주었으면 좋겠군.”
‘이분은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20대의 나이에 제5군 원수에 오른 소년이었다. 그의 야망이 가득 담긴 눈을 보며 제트는 그의 미래가 궁금했다.
* * *
그 후로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원래 제국은 국경 남쪽의 우세함을 바탕으로 프로드와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엘런에 의해 베르무트를 잃은 후, 그 균형이 깨져 버렸다.
제국은 엘런이 이끄는 제5군에 의해 국경 남쪽에서 연패를 기록했다.
그동안 국경 북쪽에서 프로드군이 진격했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 제국은 급기야 종전 협정을 요청했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
한 병사가 외쳤다.
그 말은 제5군 전체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전쟁이 시작되고 한 번도 집에 돌아간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었다. 종전 협정의 조건이며 그것이 왕국에 의미하는바 따위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게 금의환향이라는 건가? 내가 다 즐겁군.
‘왜 스승님께서 더 호들갑입니까? 궁정 마법사나 지내셨던 분이.’
엘런과 제5군은 해리포드의 대로를 지나고 있었다.
길거리에서는 개선가가 울리고 있었다. 길가에 서 있던 시민들은 박수를 치거나 꽃을 던져 주는 것으로 그들을 축하해 주었다. 제5군 병사들은 그들의 환대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언젯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냐?
‘그나저나 스승님도 왕궁은 오랜만이겠습니다?’
-세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오랜만이지.
엘런은 개선장군의 자격으로 왕궁에 초청을 받았다.
그로서는 두 번의 생을 통틀어 처음 가 보는 왕궁이었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그의 몸을 타고 흘렀다.
대로의 끝에는 척 보기에도 커다란 왕궁이 있었다. 엘런과 제5군이 문 앞에 서자 왕궁근위병이 다가왔다. 엘런의 부관이 왕실의 인장이 찍힌 종이를 그에게 내밀었다.
“개선장군 레미 님, 입궁하시면 됩니다. 자세한 것은 안쪽에 있는 하인이 안내해 줄 것입니다. 나머지 병력은 앞으로 있을 승전 축하 행사를 위해 지정된 위치에서 기다려 주시기 바랍니다.”
“반갑습니다, 레미 님. 전하를 뵙기 전에 먼저 의복부터 갈아입으시겠습니까?”
“그러지.”
엘런의 대답을 들은 하인은 그를 의복실로 안내했다.
“혹시 의복을 착용하시는 데 불편한 점이 있으시면…….”
하인은 평민 출신인 엘런이 궁중 예법을 모를 수 있으니 배려하는 차원에서 말했다.
하지만 엘런은 고개를 저었다.
“고맙지만, 나 혼자서 할 수 있네.”
마탑 시험에는 예법도 포함되어 있었다. 몇십 년간 시험을 준비한 그는 궁중 예법이라면 술술 꿰고 있을 정도였다.
덜컹.
“아.”
문을 열고 나온 엘런을 보고 하인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그의 옷차림은 완벽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고위 마법사들조차도 깜빡하는 로브 끝단의 모양까지도 예법에 딱 맞았다.
“제가 걱정할 것이 아니었군요. 그럼 가시겠습니까?”
하인은 다시 편안한 미소를 띠며 엘런을 안내했다.
하인의 안내를 받는 엘런은 겉으로만 보면 덤덤했다.
하지만 속은 정반대였다. 처음 걸어보는 왕실의 모습에 그의 기분은 들뜰 대로 떠 있었다. 벽면에 걸려 있는 장식이며, 지나다니는 사람까지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곳입니다.”
하인이 멈춰선 곳은 왕실의 문양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는 문이었다.
“전하, 개선장군 레미가 당도했습니다.”
“들라 하여라.”
문 안쪽에서 중후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인이 커다란 문을 열었다. 하인의 능숙함 덕분인지, 마법 덕분인지 문은 일절 소리도 내지 않고 열렸다.
문에서부터 열한 걸음을 내디딘 엘런은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그는 절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동작이었다.
“신 레미, 프로드의 어버이를 뵙습니다.”
“고개를 들라.”
그의 목소리는 대전을 울렸다. 목소리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기품이었다.
엘런은 고개를 들어 알베르토의 얼굴을 보았다.
백금발의 머리와 초록색 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뚜렷한 이목구비와 신비스러운 분위기 탓에 가히 그들을 엘프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내 일찍이 칙서를 통해 경을 만났지만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군.”
“성은이 망극합니다.”
“이번 전쟁 승리의 가장 큰 공은 경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래서 경에게 그에 합당한 보상을 주려 하네.”
“저는 프로드의 국민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엘런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알베르토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았다.
‘예법 교육이라고는 마법 아카데미에서 받은 게 다였을 텐데 말이야, 아주 능숙하군. 스승이라는 자가 가르쳐 준 것인가?’
아카드가 수도로 돌아왔을 때부터 알베르토는 엘런에 관해 관심을 가졌다. 그는 곧바로 엘런의 정보를 수집했다.
평범한 성적으로 아카데미를 졸업한 그는 마탑 시험에서 몇 번 떨어지고 보조사로서 생활했다. 그러다 스승을 만나 4서클의 경지를 이르렀다.
물론 그 정보는 엘런의 도움을 받아 에니스를 탈출한 에단 그론리드가 몇 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가짜 정보였다.
엘런은 훗날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이 나올 것이고, 그때를 위해 자신의 신분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경의 말이 마음에 쏙 드는군. 하지만 신하가 세운 공에 대해 그에 맞는 대우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알베르토는 아카드의 말을 떠올렸다. 그 그랜드 마스터는 20대 소년의 가능성을 과거의 자신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그보다 극찬이 또 있을까.
“레미, 나는 그대에게 단승 귀족의 자리를 주려 하네. 이제부터 그대의 성은 베리타티이네. 레미 베리타티 남작, 앞으로 짐의 충신이 되도록 하라.”
엘런의 눈빛이 빛났다. 머릿속으로 많은 생각이 오갔다. 생각지도 못한 보상이었다. 단승 귀족이니 영토나 세습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 사회인 프로드 왕국에서는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는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신 레미 베리타티, 프로드의 충신으로서 분골쇄신하겠나이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프로드 왕실도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크네. 그리고 이건 특별히 아카드 경이 부탁한 것인데, 경에게 왕궁 창고에서 선물을 하나 하사하라고 하더군.”
‘그 양반이 무슨 생각이지?’
엘런은 아카드의 모습을 떠올렸다.
도저히 속내를 알 수 없는 자였다.
하지만 왕궁 창고의 물건을 받는 것은 자신에게 매우 좋은 일이었다.
“아카드 경의 부탁을 내 거절할 수는 없지. 무엇이든 골라 보게나.”
“성은이 망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