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53
53
알현 (2)
왕과의 알현을 마치고 대전 밖으로 나오자 아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원수님, 어찌 그런 큰 선물을 왕께 부탁하셨습니까?”
“그래서 마음에 안 드느냐?”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너무 감사해서.”
엘런은 고개를 꾸벅했다. 아카드는 마치 귀여운 아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레미, 아니지 이젠 베리타티 경이라 불러 줘야 하나?”
“아닙니다. 마음대로 부르셔도 됩니다.”
“알겠다, 아무튼 가자꾸나. 내가 너를 안내하마.”
아카드는 왕궁 창고로 향했다. 엘런도 그의 뒤를 따랐다.
“아카드 님, 여긴 어쩐 일입니까?”
그들을 맞이한 건 창고 관리인이었다.
“전하께 허락 맡고 이 친구에게 물건 하나를 꺼내 주려고 왔네.”
“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왕궁 창고 관리자는 열쇠를 꺼냈다.
일반적인 모양의 열쇠와는 달리 화려한 장식에, 마법까지 걸려 있는 열쇠였다.
철컥.
열쇠 구멍에 열쇠가 들어갔다. 그러자 문에 그려진 마법진이 빛나기 시작했다.
‘저런 보호 마법은 누가 걸어 놓은 거야?’
마법진의 수식은 엘런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적어도 8서클의 마법사는 되어야 저것을 해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잘 작동하고 있구나.
‘저 마법진, 스승님께서 만든 겁니까?’
-그럴 리가. 저건 내가 궁정 마법사를 하기 전부터 있었지. 보호 마법 자체가 완벽에 가까워 따로 지키는 병사가 필요 없을 정도였지. 하지만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프로뱅의 말에 엘런은 다시 한 번 마법진을 들여다보았다. 처음 보는 수식들이었다.
‘정말 감조차 잡히지 않는 마법이야. 저런 건 누가 만드는 거지?’
덜컹.
엘런이 생각에 빠져 있을 때, 모든 보호 마법식이 해제된 왕궁 창고의 문이 열렸다. 아카드는 놀라고 있는 엘런을 보며 당당한 웃음을 지었다.
“들어가지.”
아카드가 먼저 발을 떼자 엘런도 정신을 차리고 움직였다.
“이곳은 프로드 왕가의 보물들이 있는 곳이다. 강력한 도난 방지 마법이 걸려 있으니 혹시나 다른 물건에 손을 댄다거나 하면 골치 아파질 거야.”
“알겠습니다.”
매우 엄격한 규칙으로 운영되는 창고였다.
출입 되는 인물도 제한적이었다. 심지어 관리인조차도 업무상이 아니면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뭐 그만큼 귀한 물건들이 많이 있다는 의미니까.’
“부디 원하는 물건이 있기를 바랍니다.”
덜컹.
엘런이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관리인은 곧바로 문을 닫아 버렸다. 하지만 창고 안은 라이트 마법이 곳곳에 있어 밝았다.
창고에는 정육면체의 유리가 줄지어 있었다. 물건들은 그 유리 안에 놓여 있었다. 엘런은 가장 가까이 있는 물건부터 보았다.
두 손으로 들기에도 벅차 보이는 커다란 검이 세워져 있었다. 엘런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는 그 검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수호자의 검?’
엘런이 의뢰인을 따라 경매장을 돌아다니던 시절 들어 본 적이 있던 것이었다.
신의 사자라 불리던 대륙제일검 베인이 사용하던 검이었다.
“호오? 그걸 알고 있느냐?”
엘런이 수호자의 검 앞에서 한참을 멈춰 있자 아카드가 다가왔다.
“수호자의 검 아닙니까? 정말 엄청난 것들이 있군요.”
“왕가의 보물들이 있는 곳이라니까. 그게 가지고 싶으냐?”
“아닙니다. 저는 마법사라 검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아카드는 아쉽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다. 그가 검사였다면 자신의 제자로 삼아 가르치고 싶었다.
엘런은 창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워낙 넓은 탓에 그저 돌아보기만 해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게다가 귀한 물건이 너무나도 많아 시간은 더욱 지체되었다.
“자네 호기심이 정말 많군.”
아카드는 슬슬 지쳐 가고 있었다. 처음에야 그의 놀라는 반응이 좋았지만, 1시간째 이러고 있으니 지쳐 가는 것은 당연했다.
“이제 골랐는가?”
-저건?
아카드의 물음에 엘런이 대답하려는 순간 프로뱅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궁중 마법사로 있을 때부터 있던 건데 아직 있군. 왼쪽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로브야.
엘런은 프로뱅이 말한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검푸른 색의 로브가 걸려 있었다. 그 주변의 공기는 착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엘런은 그 로브 쪽으로 다가갔다. 아카드는 그런 엘런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에 관심이 생긴 것이냐? 마법사이니 당연히 로브에 눈길이 갈 만하지. 하지만 그 로브는 아직 사용법을 아무도 모르는 로브야. 듣기로는 클린 마법이나 보온 마법 같은 간단한 생활 마법만 걸려 있다더군.”
아카드도 생활 편의 마법밖에 없는 로브가 왜 왕궁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지 의문이었다. 일단 왕궁 창고에 있던 것이므로 함부로 버릴 수는 없어 이곳에 보관 중이었다.
-저놈 아무것도 모르고 그러는군. 하긴 요즘은 흑마법을 사용하는 녀석들이 없으니 모를 만도 하지.
‘뭔가 아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엘런은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프로뱅에게 말했다.
-저 로브는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을 크게 향상시키고 마법의 효율성을 극적으로 높여 마나 소모량도 감소시키지. 네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아티팩트의 향상 효과를 한참 상회할 것이다.
‘그렇습니까?’
엘런은 로브를 쳐다보았다. 차가우면서도 깊은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것 같았다.
-또, 저 로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사용자의 마나 기척을 지워 준다는 것이지.
‘마나 기척이라면?’
-웬만한 탐지 마법으로는 너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거야. 게다가 네가 흑마법을 사용할 때 나오는 검은 마나도 아마 보이지 않을 거야.
그 말에 엘런의 표정이 크게 밝아졌다.
프로뱅에게서 배운 흑마법적 수식을 사용하면 마법을 훨씬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마법을 쓸 때면 주위에 검은색 마나가 흩어졌다.
그것 때문에 그는 전투 중과같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만 사용했다.
그와중에도 간간이 사용하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저 로브가 있다면 얼마든지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좋겠군요. 하지만 왜 지금까지 이런 기능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죠?’
-그 로브는 흑마법의 마나로 작동해서 그럴 것이다. 지금은 흑마법을 사용하는 자가 없으니 모를 수밖에.
엘런은 그 말에 수긍했다.
왕궁 창고는 애초에 극소수의 인물들에게만 공개되었다. 그만큼 이 로브를 알고 있는 사람의 수는 적었을 것이다. 게다가 현재는 흑마법 자체가 금지되는 일이니 아무도 이 기능을 찾지 못할 만했다.
“전 이것을 고르겠습니다.”
“뭔가 알고 있는 것이 있느냐?”
“아닙니다. 무슨 기능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이 좋아서 골랐습니다.”
엘런의 말에 아카드의 표정은 더 아리송해졌다.
“감? 뭔지는 몰라도 녀석 이 로브에 대해 알고 있나 보군.”
엘런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뭐, 좋다. 어차피 사용법도 모르는 로브였으니. 잠시 비켜 서거라.”
엘런이 유리에서 멀어졌다. 아카드는 유리에 손끝을 대고는 자신의 마나를 주입했다.
츠츠츳.
어떤 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유리가 잘게 해체되었다. 녹아내린다기보다 잘게 쪼개지는 것 같았다.
유리가 모두 해체되자 아카드는 걸려 있던 로브를 꺼냈다.
“자, 이것이 전하께서 너에게 주는 선물이다. 앞으로도 프로드 왕국을 잘 부탁하지.”
아카드는 로브를 엘런에게 주며 말했다. 엘런은 그 로브를 받았다. 그 기운이 유리 안에 있을 때보다 훨씬 강했다.
“감사합니다. 잘 사용하겠습니다.”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신다. 네가 어떤 보물을 고를지 궁금해하시더군. 내가 먼저 가 있을 테니 로브를 갈아입고 오너라.”
“예.”
아카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창고 밖으로 나갔다.
“원하시는 물건은 찾으셨습니까?”
문밖에서는 창고 관리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 그래. 침묵의 로브로 골랐으니 확인하게.”
“침묵의 로브라……. 알겠습니다.”
그도 엘런이 들고 있는 로브를 보며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관리인들 사이에서도 애물단지 취급을 받던 것을 처리해 줬으니 고맙기까지 했다.
“이 친구에게 의상실 하나를 빌려주게.”
“예.”
아카드가 말을 하자 곧바로 하인이 튀어나와 그를 수행했다.
엘런은 그들의 기척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보통 사람들이 봤다면 아카드가 허공에 말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모두 준비되면 불러 주십시오.”
엘런을 의상실까지 안내해 준 하인은 뒷걸음질로 빠져나갔다.
스륵.
엘런은 침묵의 로브를 펼쳤다. 그 로브에 풍기는 차분함은 주변의 마나를 고요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이름을 정말 잘 지었단 말이야?’
엘런은 침묵의 로브를 착용했다. 처음 입었을 때는 헐렁해서 흘러내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로브는 이내 엘런의 몸에 맞게 맞춰졌다.
두근두근.
로브를 입자 온몸에 마나가 느껴졌다. 혈관을 따라 흐르는 마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보이는 것 같았다.
-다른 점이 느껴지는 것 같으냐?
‘마나에 대해 예민해진 것 같습니다.’
-간단한 마법이라도 한 번 사용해 보아라.
엘런은 의상실의 창문을 열었다.
‘매직 미사일.’
그는 프로뱅에게서 배운 개량형 매직 미사일을 사용했다. 전투에서 보여 주었던 것은 흑마법적 요소가 빠진 개량형이었다.
완전한 형태의 매직 미사일을 사용하면 검은색의 매직 미사일이 날아갔을 것이다.
피융.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검은색이 아닌 푸른색의 매직 미사일이 날아갔다. 허공에 생긴 선명한 궤적은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스승님께 배웠을 때도 이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았는데?’
-증폭 효과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강력하구나. 이 정도면 6서클 정도의 위력은 되겠어.
‘이거 진짜 엄청난 물건입니다.’
아티팩트 하나가 한 서클을 넘어서는 증폭 효과를 발휘했다.
엘런은 이런 물건을 그저 생활 마법이 걸려 있는 로브 정도로 생각했다는 것에 웃음이 나왔다.
엘런은 매직 미사일이 날아간 경로를 보았다. 더 이상 주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도 이렇게 강력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는 검푸른 색의 로브를 만지작거렸다.
‘슬슬 나가 봐야겠군.’
로브의 실험을 마친 엘런은 의상실 밖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여전히 하인이 대기하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시니 그쪽으로 이동하시지요.”
호문클로스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갈하고 기계적이었다.
그 하인은 이내 발걸음을 멈췄다. 대전은 의상실과 그리 멀지 않았다.
“전하, 레미 베리타티 경이 도착했습니다.”
“들라 하여라.”
하인은 열리는 소리도 나지 않게 문을 열었다. 알베르토 프로드가 왕좌에 앉아 있었고 그 뒤에는 아카드가 서 있었다. 그는 엘런을 보더니 싱긋 웃어 보였다.
“오오, 짐이 준 선물을 경에게 만족스러운가?”
엘런이 입고 온 침묵의 로브를 보며 알베르토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전하의 은혜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래, 척 보기에도 아주 좋아 보이는군. 사실 내가 경을 부른 건 다른 이유가 있기도 하지.”
알베르토의 말에 엘런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들을 준비를 했다.
알베르토는 품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그 종이에는 프로드 왕실의 인장이 그려져 있었다.
“경에게 주는 내 마지막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