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56
56
재회 (2)
“그래서 지금은 위장 마법과 가명을 써서 활동 중인 거야.”
“그런 일이 있었군. 체들턴 그 녀석들, 원래부터 좋게는 안 봤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엘런은 킨버에게 에니스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모두 말해 주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킨버는 진심으로 분개했다.
“그 위장 마법이 들통 날 일은 없어? 나야 전혀 못 알아챘지만 다른 마법사들은 알아차릴 수도 있는 거 아니야?”
프로뱅의 연구실에서 배운 위장 마법은 매우 진보된 마법이었다.
하지만 그 마법도 한 서클 위의 마법사에게까지만 통하는 마법이었다.
그 이상의 차이가 나는 마법사라면 엘런의 원래 얼굴을 바로 인식할 수 있었다.
“괜찮아, 지금 내가 6서클 정도인데 내 마법을 알아차릴 수 있는 마법사는 프로드에 거의 없어.”
“6서클이라고? 보고받은 레미 베리타티 남작의 실력은 4서클 마스터였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성장한 거야?”
“실력을 숨기고 있었지. 지금은 6서클 유저 정도는 될 거다.”
킨버의 입은 벌어져서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원래부터 앞서가던 엘런이었지만, 이토록 차이가 날 줄은 몰랐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려고?”
“사업을 해야지.”
“사업?”
킨버의 반응을 본 엘런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내가 여기 찾아온 건 옛 친구를 보기 위함도 있지만, 사업 파트너를 찾기 위한 것도 있지.”
엘런의 말에 킨버의 눈빛도 변했다.
“그런 이야기라면 나도 마냥 옛 친구로서는 대할 수 없겠어.”
“성공한 상단에는 이유가 있군. 난 앞으로 세력을 키워 나갈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안정적이면서도 큰 자금줄이 필요하지.”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하지만 왜 우리 상단이지? 프로드의 신성과 거래하고 싶어 하는 상단은 많을 텐데?”
킨버의 분석은 정확했다.
왕국 주요 상단까지는 아니더라도 엘런과 연을 맺어 보려는 대형 상단의 수는 꽤 많았다.
굳이 엘런이 킨버 상단과 같이 중소 규모의 상단과 거래할 필요는 없었다.
“이 거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성이야. 난 물건을 사려는 게 아니거든. 투자를 하려는 것이지.”
보통 귀족들은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을 상단을 통해 구입한다.
상단은 거기서 생긴 차익을 가져가는 것이다. 귀족들이 구입하는 건 사치품인 경우가 많아서 남는 게 많았다. 그래서 상단은 어떻게든 고정 거래하는 귀족을 만들려고 했다.
물론 상단에 투자를 하는 귀족도 있었다. 하지만 킨버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투자라니. 우리 상단에 돈이라도 대주겠다는 거야? 그런 거라면 사양할게.”
킨버가 처음 상단을 차릴 때도 같은 제안을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자신의 획기적인 사업 구상이나 상로를 발견하고 그것에 투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면 싫다는 것이 이유였다.
“돈을 주겠다는 것도 아니야. 정보를 주려는 거지.”
“정보라면?”
“마정석을 채굴할 수 있는 곳을 알고 있어. 그 채굴장을 킨버 상단에서 운영해 주었으면 해.”
엘런의 말에 킨버의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 에니스를 말하는 거야?”
마정석을 캘 수 있는 광산은 에니스에만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곳은 왕실에서 직접 관리하는 곳이기 때문에 개인 사업자는 손을 댈 수 없었다.
“에니스라면 너에게 말을 꺼냈겠어? 어떻게 할래? 난 이 정보를 팔고 그에 대한 지분을 요구할 예정이야.”
킨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티팩트 사업보다도 남는 것이 마정석이었다.
‘이건 투자도 아니고 엘런이 우리 상단 전체를 고용하는 거야.’
하지만 동시에 상단을 획기적으로 성장시킬 기회이기도 했다.
“좋아, 어떤 조건을 원해?”
“수익의 반, 초기 비용은 많이 들겠지만 알다시피 마정석은 공급이 아주 제한적이야. 충분히 이득일 거야. 그리고 채굴장 건설에 내가 도움을 주지.”
“세라, 계약서 좀 만들어 와 줄래?”
킨버는 바로 계약서를 부탁했다. 그에게 있어 더할 것도 없이 좋은 조건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이렇게 정체를 밝혀도 되는 거냐? 너 지금 1급 탈옥수잖아.”
“말했잖아. 신뢰성이라고. 그리고 에니스에서도 탈출한 내가 어디서든 탈출 못 하겠어?”
“푸하하, 맞아. 너무 반가운 친구를 만나서 나도 모르게 짓궂은 장난을 쳤네. 아무튼, 잘해 보자. 파트너님.”
“나야말로 잘 부탁하지. 너희 사업이 잘돼야 나도 돈을 버는 거니까.”
* * *
엘런이 30대인 시절 프로드 왕국은 마정석 광산의 발견으로 떠들썩했다.
황무지와 돌산밖에 없던 제가든 지역에서 마정석 광산이 발견된 것이다.
마정석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하지만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떠돌이 상인이었기 때문에 왕국도 마정석 광산을 국가 소유로 할 수만은 없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제가든으로 몰렸다.
‘내가 관리하기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으니.’
킨버는 두 번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가 용병 활동을 할 때도 킨버를 통해 많은 물품을 구매했었다. 또한, 시장을 읽는 탁월한 안목이 있는 그였기에 광산을 맡겨 두면 분명 큰 수익을 가져다줄 것이었다.
‘자금줄 마련은 이걸로 충분하다.’
킨버와 계약을 마친 엘런은 해리포드의 서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해리포드 서쪽은 바로 그론리드 가문의 땅이었다.
‘그분들부터 만나 봬야지.’
그곳에는 엘런이 에니스에서 탈출시켜 준 에단 그론리드와 그가 보호해 주기로 한 엘런의 부모님이 있었다.
엘런이 부모님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사이 그는 그론리드 가문의 커다란 대문 앞에 도착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그론리드 가문의 경비는 눈썰미가 좋았다.
그는 엘런이 입고 있는 로브를 보고 그가 마법사임을 짐작했다.
“그론리드 가문에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네.”
“누군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경비의 정중한 태도에 엘런도 정중하게 답했다. 하지만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는 말하기 곤란했다.
가문에서 보호하고 있지만, 에단 그론리드는 엄연히 탈옥자의 신분이었다.
그를 만나러 왔다고 하면 분명 이곳에 없다는 답변을 들을 것이었다.
스윽.
대신 엘런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그는 품에서 작은 손수건을 하나 꺼내 경비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어떤 분께 받은 것이네. 이것을 보여 주면 될 것이라고 하더군.”
그 손수건은 에니스 탈출 때 에단에게 받은 것이다. 가문의 인장이 자수된 그 손수건을 가지고 있는 자는 가문의 귀빈으로 대우받을 수 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손수건을 본 경비는 황급히 문 안쪽에 있던 하인을 불렀다.
그 말을 들은 하인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한 명의 하인은 저택 쪽으로 달려가고 다른 한 명은 엘런 쪽으로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가문의 귀빈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론리드가의 하인 테이라고 합니다.”
“고맙군.”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테이는 깔끔한 동작으로 엘런을 저택으로 안내했다.
프로드 왕국 공작의 저택답게 그 규모는 어마어마했다. 이 왕국에서 왕궁 다음으로 큰 저택이었다.
‘체들턴 가와의 세력 싸움에서 밀렸다고 들었는데, 그래도 이 정도 규모는 유지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건가? 아니면 아직은 여력이 남아 있는 건가?’
그렇게 한참을 걷자 드디어 공작의 저택이 나왔다.
정원만큼이나 웅장한 저택이었다. 정문 앞에선 테이가 문을 열었다.
끼익.
기름칠이 잘되어 있었는지 문은 큰 소리를 내지 않고 쉽게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그론리드 가문의 저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문이 열리자마자 좌우로 도열해있던 하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엘런에게 인사했다. 너무나 성대한 환영에 엘런은 당황했다.
“이게…….”
“몇 년 만에 온 그론리드의 귀빈이라 식솔들이 많이 들뜬 것 같군. 하지만 손수건의 귀빈에게 이 정도 대우는 당연하지.”
약간은 높은 톤이었지만, 그렇다고 전혀 방정맞거나 하지는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테이는 그 목소리의 주인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 반응으로 엘런은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레미 베리타티가 프로드의 기둥을 뵙습니다.”
“하하하. 프로드의 기둥이라니 참, 듣기 좋은 말을 하는군.”
목소리의 주인은 잿빛의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사내였다. 그는 손짓으로 하인들을 흩어지게 하고는 말을 이어 갔다.
“아쉽게도 나는 아직 그 기둥은 아니네. 내 아버지가 기둥이라고 할 수 있겠지. 나는 라르트 그론리드 공작의 아들 레바 그론리드라네.”
“죄송합니다. 제가 눈썰미가 떨어져 미쳐 몰라 뵈었습니다.”
엘런의 사과에 그는 그저 호탕하게 웃을 뿐이었다.
“별일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나. 베리타티 경,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 이렇게 직접 만나게 되어 반갑군.”
“저의 이름까지 기억해 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프로드의 영웅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자리를 옮기지.”
레바는 엘런을 자신의 서재로 데려갔다.
전통이 있는 마법사 가문답게 서재는 마법 서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그론리드 가문이라서 그런지 다양한 분야의 마법 서적들이 있었다.
‘최상급 마법 서적들도 넘쳐나는군. 스승님의 연구실보다 좋은 서적들이 더 많은 것 같아.’
엘런은 버릇처럼 그의 서재에 있는 책 목록을 훑었다.
“자네도 마법사이니 눈이 갈 수밖에 없겠지? 보고 싶은 서적이 있나?”
“아닙니다. 그저 호기심이 동해 둘러보았을 뿐입니다.”
“그러지 말고 보고 싶은 걸 골라 보게나. 내 자네 고르는 것을 보고 그냥 줄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의 말에 엘런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그만큼 이곳에는 귀한 서적이 많았다. 하지만 무턱대고 그럴 수는 없었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보고 싶은 게 있다면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뭐, 알겠네. 그럼 그 손수건을 누구에게 받았는지 물어볼까?”
레바는 소파에 기대앉아 다리를 꼬았다. 사무적인 느낌보다는 편한 지인을 대할 때의 자세 같았다.
“에단 그론리드에게서 받았습니다.”
그 이름에 레바는 꼬았던 다리를 풀어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인 것 같았다.
“자네 지금 에단이라고 했나?”
그는 잘못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재차 물었다. 엘런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외의 인물이 자네의 입에서 나왔군. 어떻게 얻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에단 그론리드가 에니스에서 탈옥한 직후, 빈으로 가는 길에 저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때 에단 그론리드가 저에게 준 것입니다.”
소파에 앉아 엘런이 넘겨 준 손수건을 만지작거리던 레바가 드디어 몸을 일으켰다.
“되었다, 어쨌든, 가문의 증표를 들고 온 자는 어찌 되었든 가주급의 지위를 지닌 자가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 것이니. 자네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는 엘런을 향해 물었다.
“예. 저는 에단 그론리드를 직접 만나기 위해서 왔습니다.”
엘런은 질문에 지체 없이 대답했다. 그 말에 레바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