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57
57
재회 (3)
“에단을 직접 만나겠다고?”
“예. 그에게 직접 부탁한 것도 있고 해서 확인차 그를 만나고자 했습니다.”
레바는 엘런의 말에 골치가 아팠다. 에단은 가문에서 비공식적으로 보호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를 만나게 해 주는 것은 가문에서 범죄자를 숨겨 주고 있는 것을 인정하는 꼴이 되었다.
“소가주님께서 어떤 걱정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사실은 제 부모님이 에단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레바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몇 년 전, 에단은 빈에 있는 가문 휘하의 단체를 통해 레바에게 연락을 했었다.
가주인 라르트뿐만 아니라 레바 또한 체들턴가와의 세력다툼에 한창이었다.
에니스에 있는 그를 돕기 위해 내줄 힘이 없었을 때, 그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그곳을 탈출했다고 했다.
‘그 대가로 누군가를 보호해야 한다면서 부탁을 했었는데 그것이 저 친구의 이야기였군.’
“알겠네. 나도 에단이 누군가의 부모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지. 그것이 바로 자네였군.”
“맞습니다.”
슥슥.
레바는 펜을 꺼내 종이에다가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는 무언가를 길게 써 내려갔다. 그러고는 도장을 꺼내 종이 밑에 찍었다.
“이걸 가지고 저택 뒤로 보이는 산으로 가 보게. 에단이 있는 곳은 그 누구의 출입도 금지된 곳이니 따로 안내를 붙여 주지는 못하겠군. 산에 가 보면 그 종이가 필요한 순간이 있을 걸세.”
그는 그 종이를 엘런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소가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이 허가증은 잘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문의 증표가 있는 자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그리고 종종 이렇게 찾아오게. 내 자리를 마련하지.”
레바는 엘런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실력이나 명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사람 자체가 풍기는 분위기가 남달랐다. 이렇게 친분을 유지하며 차차 자신의 세력으로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그때는 마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주 좋을 것 같군. 그럼 이제 가 보게나.”
레바의 배웅을 받으며 저택 밖으로 나온 엘런은 저택 뒤쪽에 있는 큰 산을 보았다.
그론리드가 사람들이 취미로 사냥을 하러 가거나 하인들이 나무나 약초를 구해 오는 산이었다.
출입이 잦은 산인 만큼 길이 잘 나 있어 편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다만 오가는 사람들은 엘런의 등장에 새로운 그론리드 가의 사람인 줄 알고 고개를 숙여 댔다.
‘여기에 에단이 숨어 있단 말인가?’
엘런은 이렇게 인적이 많은 산에 에단이 숨어 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건물이 하나 있었다. 사냥을 나온 그론리드가 사람들이 쉬어 가는 곳이었다.
‘여기서 꺾으라고 했지?’
엘런은 레바가 일러 준 대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곳은 전혀 길이 나 있지 않았다.
“후우.”
그 길을 보자 한숨부터 나왔다. 울창한 나무와 무릎까지 자란 풀들이 엘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눈에 띄지 않게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태우든 베어 버리든 하고 싶네.’
엘런은 앞길을 막는 나무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투덜거렸다. 한참을 걸었는데도 아직 건물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공작가의 산을 훼손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언제까지 가야 하는 거야?’
슬슬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등줄기부터 올라오는 오한이 느껴졌다.
쐐애액.
타앗.
그는 옆으로 몸을 던졌다.
급히 몸을 던진 탓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흙바닥을 굴렀다.
방금까지 그가 있던 자리에는 화살이 박혀 있었다.
“어떤 놈이…….”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연이어서 날아오는 화살 때문이었다.
‘실드’
우득.
이번에는 공격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실드 마법으로 화살을 막아 냈다.
“누군지는 모르겠…….”
쐐애액.
그는 더 이상 대화를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는 도저히 대화를 하려는 의도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대는 힘으로 제압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일단 제압한 후 눈앞에 허가증을 들이밀어 줘야겠군.’
‘실드, 디텍트.’
엘런은 날아오는 화살을 실드로 튕겨 버렸다.
실드에 부딪힌 화살이 부서졌다. 동시에 그는 디텍트 마법으로 상대의 위치를 파악했다.
‘거기냐? 바인드.’
마나로 된 속박의 끈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모습이 직접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디텍트 마법으로 그의 동작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는 작은 움직임조차 없었다.
‘잡았다.’
휘웅.
‘아니?’
바인드가 그를 잡기 바로 직전이었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사라져 버렸다.
파앙.
엘런의 뒤에서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격이었다.
‘배리어.’
츠츠츠.
콰앙.
먼지가 가라앉았다. 화살은 두 겹의 배리어 중 하나를 뚫어 버렸다.
두 겹의 배리어를 만들지 않았더라면 위험할 뻔했다.
오러가 둘린 화살이었다.
4서클의 배리어가 쉽게 깨진 것으로 보아 최소 상급 소드 익스퍼트급의 실력이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제대로 싸워 주지. 샤클.’
엘런은 5서클의 구속 마법을 사용했다.
“이런.”
엘런을 공격한 사내는 갑자기 발밑에 생긴 족쇄를 보고 급하게 뛰어올랐다. 그의 발이 땅에 닿자마자 다른 족쇄가 그를 노렸다.
‘디그.’
우지끈.
그가 점프하기 직전, 디디고 있던 나무가 무너졌다.
그러자 무게중심이 무너진 그의 몸이 넘어졌다.
철컥.
마침내 그의 발목에 족쇄가 채워졌다. 이내 그 족쇄는 형태를 변환하더니 사내의 전신을 구속해 버렸다.
“드디어 잡았네.”
엘런은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는 아등바등하지도 않았다. 그저 엘런을 노려보기만 할 뿐이었다.
‘머리나 눈 색깔을 보니 그론리드 가문의 사람은 아닌 것 같군. 그렇다면…….’
퍼억.
확신이 선 엘런은 주먹으로 그의 뒤통수를 쳤다. 꽤 충격이 컸는지 사내는 몸을 꿈틀거렸다.
“다짜고짜 사람을 공격하는 건 어디서 배운 거야?”
퍼억.
“크흑.”
꾹 다물고 있던 그의 입술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론리드 가문에 고용된 사람인 것 같으니 죽이진 않을 거야. 그래도 대가는 치러야지.”
퍼억. 퍼억.
“이곳은 출입금지 구역이다. 가주님과 소가주님을 제외한 그 누구도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그제야 사내는 입을 열었다. 경계심이 잔뜩 묻어 있는 목소리였다.
“알고 있어. 그래서 이걸 들고 왔다고. 공격하기 전에 말부터 들어 보는 게 순서 아닌가?”
엘런은 레바에게서 받은 허가증을 그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크흠, 미안하군.”
“미안하다라……. 그렇지.”
퍽, 퍽, 퍽.
“크헉.”
“딱 죽기 직전까지만 맞자.”
“임무를 실패한 순간부터 난 죽은 목숨과 다를 바가 없다.”
융통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 사내를 보며 엘런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하아. 그래, 아무튼 여기 허가증 있잖아.”
“그것은 내가 다시 한 번 사과하도록 하지.”
마음 같아서는 반쯤 죽여 놓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공작가에서 고용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에단이 있는 곳을 아는 자는 이 사내밖에 없었다.
“그래서 네가 지키고 있는 에단 그론리드 님은 어디서 만날 수 있지?”
그 말에 사내의 표정이 조금은 달라졌다. 하지만 이내 레바의 허가증을 떠올리고는 혼자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단 그론리드 님은 가주님의 명에 따라 내가 보호하고 있다. 소가주님의 허가증도 있으니 내가 직접 안내해 주겠다.”
스륵.
엘런은 그에게 걸린 샤클 마법을 해제시켰다. 온몸을 구속하고 있던 마법이 사라지자 그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이곳으로 오면 된다.”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움직였다.
‘상태가 정상은 아닌 것 같은데.’
엘런은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끼며 그를 따라갔다.
“그러고 보니, 너 아까 움직임이 좀 특이하던데 말이야?”
그의 뒤를 따라 걷던 엘런이 말했다.
처음 바인드 마법을 사용했을 때였다. 분명 그는 직전까지도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마법이 적중했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그가 사라졌다. 엘런은 그런 움직임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그건 나의 스승님께 배운 기술이다.”
“그거 급속기 아닌가?”
“네가 그것을 어떻게 아는 것이지?”
사내는 깜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엘런에게서 그 기술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
엘런은 그를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전에 누가 쓰는 걸 본 적이 있어서 말이야.”
사내가 갑자기 엘런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속도가 급속기를 사용한 것 같았다.
“스승님을 뵌 적이 있는가? 어디서 봤는가?”
그의 눈은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에게 제자가 있었던 것인가?’
엘런은 과거의 생에서 만난 용병을 떠올렸다. 자신에게 마법사용 체술을 가르쳐 준 이였다. 그가 한두 번 보여 준 기술이 바로 급속기였다.
‘체술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게 아쉬웠는데 잘됐어. 마침 이자도 스승을 찾고 싶어 하는 것 같고.’
“아쉽게도 그냥 지나가며 본 게 다여서 말이야.”
“그곳이 어디인가?”
엘런은 기억을 더듬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을 기억해 냈다.
“톤턴이었지.”
“고맙다. 이 은혜는 꼭 갚도록 하지.”
사내는 엘런의 두 손을 꼭 감싸 쥐었다.
‘이자가 스승에 대한 단서를 찾아주겠지.’
기술을 배울 때도 그자가 범상치 않은 사람임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훨씬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동안은 아무런 단서도 없어 그를 못 찾고 있었다.
제자라면 그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알겠으니까 빨리 그론리드 님에게 데려다주기나 해.”
“그건 걱정하지 마라. 이미 다 왔으니.”
그의 시선을 따라 엘런의 목이 움직였다.
그 시선의 끝에는 건물이 하나 있었다.
그들이 전투를 벌인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저곳에 부모님이…….’
엘런은 서둘러 그 건물로 향했다.
“지금은 에단 님께서 수련을 가셨으니, 조금만 기다려라.”
“괜찮아, 그분이 보고 싶은 게 아니거든.”
엘런은 거의 달리다시피 건물을 향해 갔다. 아카데미 입학 이후, 처음으로 보는 부모님이었다. 안부를 묻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이렇게 살아 있음을 보여 주고 싶었다.
“아.”
건물 앞에 있는 텃밭에 두 명의 모습이 보였다. 엘런의 부모였다.
“저기, 실례하겠습니다.”
엘런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텃밭에서 작물을 가꾸고 있던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시죠? 에단 님을 만나러 오셨나요? 그분은 지금 수련을 나가셔서 조금 기다리셔야 해요.”
쪼그려 앉아있던 마리아가 일어났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에단이 약속을 잘 지켜 주고 있는 것 같았다.
“제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저희가 감히 누군지 몰라뵈어 죄송합니다.”
시엔과 마리아가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자신들이 귀족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생각했다.
“아버지, 어머니, 저 엘런이에요.”
마리아와 시엔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와 동시에 앞에 있는 소년의 얼굴이 인식되었다. 혹시나 잘못되진 않았을까 항상 노심초사하던 그 아이의 얼굴이었다.
“엘런!”
마리아가 엘런을 꽉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