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58
58
마탑의 초대 (1)
“걱정시켜서 죄송해요.”
옆에 있던 시엔이 마리아의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왜 지금까지 연락이 없었어?”
“사정이 있었어요. 자칫 두 분도 위험해질 수 있어서 제가 에단 님께 부탁한 거예요.”
“그래, 이렇게 얼굴이라도 봤으니 됐다.”
엘런은 마리아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어엿한 마법사가 된 것 같구나?”
마리아는 엘런의 로브와 지팡이를 보았다. 마법사의 상징인 로브와 지팡이가 엘런의 몸에 걸쳐져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네. 아직은 이 모습이 낯설죠?”
“아니다. 엄마는 자랑스럽기만 한걸? 그러면 이제 완전히 돌아온 거야?”
엘런은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도 조금은 위험한 일을 할 예정이에요. 그동안은 이곳이 가장 안전할 거고요.”
두 명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찼다. 엘런이 늠름해졌다고는 하나 자신들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조심하거라.”
말을 잇지 못하는 마리아를 대신해 시엔이 말했다.
“에단 님, 오셨습니까?”
그때 사내가 수련을 마치고 온 에단을 보았다. 그는 바로 무릎을 꿇으며 예를 취했다.
“에단 님, 뭐 필요한 게 있습니까?”
마리아도 얼른 눈물을 훔치며 일어났다.
“아, 뭐 따로 필요한 것 없다.”
에단은 옷에 묻은 먼지를 대충 털어냈다. 그러다 마리아의 옆에 서 있는 엘런을 발견했다.
“이자는 누구지?”
“에단 그론리드님, 오랜만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에니스에서 뵀던 엘런입니다.”
“엘……런?”
그의 머릿속에 한 얼굴이 퍼뜩 떠올랐다. 자신을 사형의 위기에서 구해주고 탈옥 시켜 준 이의 얼굴이었다. 6여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전혀 알아보지 못했군. 그렇다면 그것이 완성된 것이냐?”
“그렇습니다.”
“호오, 드디어 되었구나. 이제 이 지긋지긋한 생활도 끝이겠군.
에단은 에니스에서 탈출하면서 재기를 꿈꿨다.
하지만 이미 흑마법사로 낙인찍힌 그였다. 게다가 탈옥이라는 죄까지 더해졌다. 사실상 그는 평생을 도망자의 인생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엘런이 하나의 제안을 했었다.
바로 지금 엘런이 사용하고 있는 위장 마법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 마법은 지금까지의 위장 마법과는 달리 얼굴을 바꾸지 않는 것이었다. 때문에 감지 마법에도 걸리지 않았다.
자신보다 월등히 높은 마법사는 돼야 이질감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엘런은 에단이 에니스에 있는 흑마법사와 그들의 조직에 지원을 늘리는 조건으로 그 마법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아직은 미완성의 마법이니 자신이 그것을 증명한 후 찾아가겠다는 조건도 내걸었다.
에단에게 있어서는 그 마법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조금 전 직접 그 효과를 체감했다.
“그래, 이제야 완성됐다고? 얼른 가르쳐다오.”
건물 안으로 자리를 옮긴 에단은 엘런을 재촉했다.
“지금까지 해 주신 지원에 감사드립니다. 이겁니다.”
스윽.
엘런은 프로뱅의 연구실에서 가지고 온 마법 서적을 건넸다.
“드디어 재기할 수 있겠구나. 이곳에 숨어서 지내는 것은 너무나도 힘들었다.”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에단 님의 실력보다 2서클 정도 위의 마법사는 주의하십시오. 그들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론리드가의 정적인 체들턴가 역시 마법사 명문가였다. 그들에게 들킨다면 좋은 먹잇감이 될 것이었다.
“알겠네. 결국 내 실력을 올리는 게 먼저인가? 뭐, 최소한의 자유를 얻은 것이니 그걸로 만족해야겠지.”
“앞으로도 에니스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만 믿게. 원래 그론리드가는 혈마법을 제외한 모든 학파를 지원했으니 힘들 것도 없네. 혹시 안에서 더 필요한 게 있다면 자네를 통해 연락하라고 하게.”
엘런은 에니스에 있는 비밀 통로를 통해 정기적으로 브레디와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에단 님 덕분에 일의 준비가 훨씬 수월해지는 것 같습니다.”
“내가 고마울 따름이지. 그럼 나가 보겠나? 오랜만에 부모를 만나 쌓인 게 많을 텐데 내가 너무 붙잡고 있었군.”
* * *
누군가 하늘에서 해리포드를 본다면 딱 두 가지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첫 번째는 프로드의 국왕이 있는 왕궁이었다. 왕궁은 멀리서 보기에도 거대했고 또 우아했다. 두 번째는 해리포드를 사이에 두고 왕궁을 마주 보고 있는 마탑이었다. 백색의 마탑은 마치 하늘을 뚫을 것 같이 치솟아 있었다.
프로드 왕국의 모든 마법사를 관리하는 마탑. 그곳 최상층에는 탑주의 방과 회의장이 있었다.
“그것은 마탑의 전통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그런 마법사를 가만히 둘 일인가? 스승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정당한 시험을 거쳐서 온 자가 아니라면 마탑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 회의장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무려 제국의 소드 마스터에게 승리했습니다. 그런 자에게 무슨 자질을 평가한단 말입니까?”
“허어, 마법사의 자질이 어디 전투력뿐인 줄 아는가?”
원탁에 둘러앉은 마법사들은 어떤 마법사에 대해서 논하고 있었다. 바로 이번 전쟁의 영웅인 엘런의 이야기였다.
“이번 전쟁에서 그는 치밀한 전술로 베르무트에게 승리했습니다. 마탑은 이런 인재를 몇 번이나 떨어뜨렸지요.”
“전투 마법사로서는 손색이 없지.”
“허어…….”
그 말에 자질이라는 이야기를 꺼낸 마법사는 말문이 막혔다.
“일선에서는 그를 하메론에 필적할 재능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회의장의 원탁에 앉을 수 있는 자는 6서클 이상의 고위 마법사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신의 재능이라 불리는 하메론도 있었다. 그의 이름이 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몰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메론과 필적하다니.”
“그건 너무 앞서간 것 같네.”
하메론은 프로드 왕국과 마탑의 자랑이었다.
압도적인 마나량과 극도로 단축한 주문. 가히 신이 내린 재능이라 불릴 만했다. 고작 갓 20대가 된 소년이 그와 비견된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하메론의 입이 열렸다.
“어쨌든 저희가 직접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좋든 싫든 이대로 무시하기에는 너무 커 버렸습니다.”
그의 말에 원탁에 있는 마법사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대련의 형식으로 가볍게 실력을 보고 결정은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말투는 부드럽고 상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동시에 왠지 모를 압박감이 느껴졌다.
“현재 마탑에 있는 마법사 중에서 그와 대련할 만한 마법사를 찾아 놓겠습니다.”
탑주가 손을 들어 하메론의 말을 제지했다.
“잠깐, 그는 제국과의 전쟁에서 소드 마스터를 이겼네. 그 수준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이곳에 있는 자들과 겨뤄야 하지 않겠나?”
마법사들의 시선이 서로를 향했다. 오히려 그들은 탑주의 제안이 반가웠다.
‘이번 기회에 그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기회다.’
‘마탑 소속도 아닌 마법사가 있다는 게 달갑지 않았는데 말이야.’
‘전하의 관심도 그 녀석에게만 쏠리고 있다. 이 기회에 마탑의 실력을 보여 드릴 수 있어.’
탑주는 마법사들의 표정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마법사들이 이런 반응을 보일 것을 예상하였다. 엘런의 등장으로 왕실에서는 마탑의 실효성에 대한 의심이 생겨났다.
‘그놈의 활약이 지속될수록 그 의구심은 더욱 커질 것이다.’
마탑의 위신을 세워 줄 만한 계기가 필요했다. 이 탑에 모여 있는 자들의 실력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줘야 했다.
‘공개된 자리에서 똑똑히 보여 주겠다. 누가 적합한 대련 상대일 것인가.’
대련 상대가 너무 유명한 마법사여서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으면서도 확실한 실력 차이를 보여 줄 이가 필요했다.
“티터미르, 이번 대련은 자네가 맡게.”
티터미르는 갓 6서클의 경지에 오른 마법사였다.
“알겠습니다.”
그도 대련 상대가 자신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역시 마탑이라는 정석적인 길이 아닌 변종이 달갑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확실하게 짓밟아 주겠다.’
그는 전의를 불태웠다. 이번 기회에 마탑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 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럼 이번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지. 나가는 대로 초대장을 준비해서 그에게 보내도록. 이상이네.”
탑주가 회의를 종결했다.
원탁에 앉아 있던 마법사들은 모두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오직 하메론만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탑주 양반이 재밌는 수를 쓰는군. 이거 흥미로워지겠어.’
* * *
-부모님을 만나서 그런지 한결 안정된 것 같구나.
‘이제 두 분도 산속이 아닌 저택에서 지낼 수 있다고 하니 더 안심됩니다.’
한편 엘런은 그론리드가에서 나와 그의 저택으로 가고 있었다. 가장 신경 쓰였던 부모님이었다.
‘이 나라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니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체들턴 가의 위협에서 안전할 수 있는 곳은 왕궁이나 그론리드 가문밖에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조금도 쉬지 못하는군.
‘하고 싶은 게 워낙 많아서 준비할 게 많네요.’
비록 단승이기는 하지만 귀족이 되었다. 당장 사용할 돈은 상인들의 선물로 채웠다.
정기적인 자금을 마련할 상단도 구했다. 서적을 넘겨 주며 에니스로 가는 지원도 확대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침묵의 로브 덕분에 6서클에 필적하게 되었다.
주문의 생략을 이용하면 훨씬 위의 상대와도 겨룰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체들턴가 전체와 겨루기는 부족했다.
‘더 강해져야 한다.’
그렇게 엘런이 혼자서 다짐을 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들렀다 갔군.
프로뱅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쩐지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마법사인가?’
자신이 쳐 놓은 경계 마법이 해제되어 있었다. 간단한 마법이라 좀도둑 정도가 아니라면 충분히 피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마법이 해제된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디텍트.’
그에게서 시작된 마나의 파동이 저택 전체를 훑었다.
‘별다른 이상 반응은 없다.’
엘런은 기분이 언짢았다.
주인이 없는 집에 들락날락한 것도 모자라 마법까지 해제시켰다. 누군지는 몰라도 이것은 명백한 도발이었다.
끼익.
‘이건?’
저택의 문을 열자 편지가 한 장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는 마나로 봉해져 있었다.
-마탑 놈들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그 편지는 마탑의 초대장이었다.
3일 후에 마탑에서 자신을 초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오만한 태도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 건가?’
형식은 초대장이었다. 하지만 이것의 내용은 통지서와 다를 게 없었다. 자신의 의지 따위는 고려하지 않는 태도였다.
편지를 건네주는 방법부터 내용까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존중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스승님, 침묵의 로브만 있으면 흑마법을 사용해도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까?’
-그렇지. 나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아마 요즘 것들은 절대 모를 것이다.
엘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무례함에 대한 분노와 더불어 과거의 열등감까지 함께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이번에 그 오만방자한 콧대를 납작하게 해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