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63
63
체술의 달인 (2)
끼익.
“가츠, 그놈은 처리하고 왔…… 어떻게 된 거야?”
문을 열고 들어가자 한 사내가 가츠를 반겼다. 하지만 곧 뒤에 있는 엘런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마스터에게 용건이 있다더군.”
가츠는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의 상황이 불가항력이었다는 의미였다.
사내는 가츠의 몸짓을 이해했다.
“안에 계신다.”
그는 몸을 옆으로 돌려세우며 말했다.
“알겠어.”
가츠는 엘런을 데리고 안쪽에 있는 문으로 갔다.
“들어와라.”
그가 손을 들어 노크하기도 전에 안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찾아온 손님도 함께 들여보내라.”
그는 마치 밖의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감각만큼은 대단하군.’
가츠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는 흑갈색의 머리를 짧게 자른 사내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서류를 보고 있느라 엘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일단 누에브 길드에 온 것을 환영하지. 여기 앉으시겠소?”
서류 몇 개를 정리한 후에야 그는 엘런에게 의자를 건넸다.
“그럼.”
엘런이 의자에 앉아 사내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난 누에브 정보 길드 마스터 아르빌이오. 원칙적으로는 미리 약속된 사람이 아니라면 만나지 않지만, 이렇게 내 부하가 인질로 잡혀 있으니 어쩔 수 없군.”
“무례하게 만남을 청한 것을 사과하겠소. 급한 일이 있는데 이곳 누에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서 그랬소.”
엘런은 고개를 약간 숙이며 말했다. 아르빌은 가츠를 한번 보고는 다시 엘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츠가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으니 다행이오. 그래, 어떤 정보를 원해서 이곳에 온 것이오?”
“일단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보내고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소?”
잠깐이었지만 아르빌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게 무슨 소리시오?”
“아르빌, 당신의 성격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면 곤란하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문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가 2명, 창문 밖에 2명이 있고 천장에도 3명, 총 7명. 아니지, 당장이라도 칼을 뽑아 들려고 하는 가츠까지 포함하면 8명이군.”
그 말에 가츠의 몸이 크게 움찔거렸다. 그의 시선이 아르빌을 향했다.
‘이제 어떡합니까?’
가츠의 눈빛에 아르빌은 고개를 저었다. 그 신호에 맞춰 방 주위에 있던 인기척이 모두 사라졌다.
“이거 미안하게 됐소.”
“괜찮소. 내가 저지른 것도 있으니.”
엘런은 경계의 눈빛을 거두었다.
“나는 파울로라는 자를 찾으러 왔소.”
아르빌은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파울로라……. 미안하지만 그건 들어줄 수 없을 것 같군.”
조금 전 여관 주인부터 아르빌의 반응까지 필립스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엘런은 여기서 필립스에 대한 정보를 더 캐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째서 그러는 것이오. 누에브 씩이나 되는 정보 길드에서 일개 용병단의 정보를 찾아 줄 수 없다니. 사례금이라면 여기 두둑하게 준비했소.”
엘런은 가츠에게 보여 주었던 돈주머니를 탁자에 올려놨다.
주머니의 크기를 본 아르빌은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돈이 문제가 아니오. 미안하게 됐소.”
툭.
탁자에 조금 전과 같은 크기의 돈주머니가 올라왔다.
“이거 곤란하군.”
“이게 하나 더 있소.”
그 말에 아르빌은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먼저 말해 줄 것이 있소. 무엇 때문에 파울로를 찾는지 모르겠지만, 그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얻지 못할 것이오.”
아르빌이 마침내 입을 열자 엘런의 표정이 밝아졌다.
“이곳 톤턴에서는 유명한 일인데, 파울로 그자는 그에 관한 정보를 흘린 정보 길드를 끝까지 찾아내 난장판을 만들어 버리지. 이미 몇 군데가 당했소. 본부는 아니고 지부이기는 했지만, 거기에는 넛트 길드도 있소.”
넛트 길드는 누에브 길드와 함께 톤턴의 정보를 양분하는 길드였다. 누에브가 소수 정예의 느낌이라면 넛트는 대규모로 수집한 정보를 모아 그것을 선별하는 식이었다.
‘그런 곳이 당했다니 필립스 님의 이야기에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겠군.’
엘런이 과거에 그를 만난 것도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그러니 그에 대한 정확한 위치 정보는 제공하지 않을 것이오. 물론 그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조차 불가능에 가깝지만 말이오.”
웬만한 실력이 아니고서는 필립스의 감각을 피해 그의 정보를 수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벤틀러에게 정보를 준 녀석은 어떻게 한 거지?’
그는 필립스에 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톤턴의 뒷골목을 양분하는 누에브의 요원들도 제대로 수집하지 못하는 것을 벤틀러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돌아가면 그 정보원을 찾아봐야겠군.’
엘런은 해리포드에 돌아가자마자 그를 찾을 생각이었다.
“그가 자주 목격되는 식당이 있소. 물의 노래라는 곳인데, 그곳에 머물다 보면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오. 정보 출처에 관한 비밀은 반드시 엄수해야 할 것이오.”
아르빌은 말하는 동시에 엘런이 올려놓은 돈주머니를 챙겼다.
“고맙소. 내 그곳에서 그를 만난다면 1개의 주머니를 마저 드리지.”
* * *
“오늘도 양고기 스튜인가?”
“네, 부탁할게요.”
턱.
여관 주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양고기 스튜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오늘은 특별히 고기를 더 많이 넣었지.”
식당 주인이 자신의 가슴을 팡팡 치며 말했다.
“그렇다고 더 드릴 돈은 없어요.”
“푸하하, 속고만 살았어? 내가 좋아서 주는 거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엘런은 빙긋 웃으며 스튜를 한입 떠먹었다. 향긋함이 입가에 맴돌았다.
엘런은 식사를 하며 식당 내부를 빠르게 훑었다.
‘오늘도 허탕인가?’
그는 일주일이 넘게 매일 이곳에 방문하고 있었다. 이제는 주인이 그의 얼굴을 외울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는 끝이 없겠군.’
인제 그만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미 다른 도시로 떠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기다리는 것이 시간 낭비일 수 있다.
짤랑.
“주인장, 여기 빵과 수프로.”
그때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을 본 엘런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날 뻔했다.
‘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필립스였다.
필립스는 곧바로 의자에 앉았다. 식당 주인 역시 익숙하다는 듯 빵과 수프를 준비했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아, 뭐, 그렇게 됐어.”
그는 배가 고팠는지 음식이 나오자마자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어느 모로 보나 기사보다는 용병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필립스가 식사를 마쳤을 때쯤, 엘런이 그에게 다가갔다.
“저기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
필립스는 빵을 우물우물 씹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뭐지?”
입에 한가득 든 빵 때문에 발음이 뭉개졌다.
“잠시 저랑 이야기 좀 하시겠습니까?”
“아니. 난 남자에 별로 관심 없어.”
그리고 그의 시선은 곧바로 테이블로 내려갔다.
“필립스 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쿠당탕.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엘런의 몸이 공중에 붕 뜨더니 그대로 테이블에 처박혔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눈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
“너 뭐야?”
“캑캑!”
필립스는 거기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곧바로 엘런의 멱살을 잡아 버렸다.
그는 대답을 듣기도 전에 엘런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젠장.”
엘런은 온몸에 마나를 순환시켰다.
혈관을 타고 마나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타탁.
휘리릭.
엘런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필립스의 손을 비틀었다. 동시에 바닥을 박차면서 그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쿵.
목표를 잃은 필립스의 주먹은 그대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러자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이 파였다.
‘저기 맞았으면 코뼈 정도는 부서졌겠어.’
그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곧장 다음에 이어질 공격에 대비했다.
‘잠깐이나마 내 기술을 사용한 것 같은데?’
필립스 역시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공격을 피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엘런에게서 순간적으로 느껴진 자신의 기술 때문이었다.
“다짜고짜 공격부터 하시면 어떡합니까? 어어?”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기술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엘런은 몸을 비틀면서 고개를 숙였다.
후웅.
방금까지 그의 머리가 있던 곳으로 주먹이 지나갔다. 정통으로 맞았더라면 기절에 이를 수도 있는 공격이었다.
“이번엔 확실히 느꼈어. 분명 내 기술이 맞아. 너 진짜 뭐 하는 놈이야?”
필립스가 공격을 멈췄다.
하지만 이미 그의 주위는 초토화되었다.
사람들은 싸움이 시작된 순간부터 일찌감치 식당 밖으로 나가 있었다.
‘사일런스.’
엘런이 손가락을 튕기자 투명한 막이 그들 주위를 감쌌다.
“벤틀러에게서 조금 배웠습니다.”
“벤틀러?”
금방이라도 다시 공격할 것 같던 그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예. 당신의 제자인 그 벤틀러 말입니다.”
필립스는 잠시 추억을 회상하고 있는 듯 보였다. 그의 눈가에는 아련함과 함께 알 수 없는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 녀석 잘 지내고 있나 보군.”
“물론입니다. 그는 저에게 어떤 부탁을 하더군요. 스승을 만나고 싶다, 하지만 자신은 지금 임무를 수행 중이라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이렇게 온 것이죠. 그가 필립스 님을 몹시 뵙고 싶어 합니다.”
필립스는 벤틀러의 소식을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그 녀석 소식을 들으니 좋군. 하지만 난 녀석을 만날 수 없어.”
“어떤 사정이 있는지 묻지는 않겠습니다. 벤틀러도 아쉬워하겠지만 안부만 전해 주는 것으로 만족하겠죠.”
엘런의 말에 필립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끄덕임에는 짙은 아쉬움이 묻어나왔다.
“그러면 제가 필립스 님을 찾아온 다른 목적을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다른 목적이라니?”
필립스는 의심스러운 눈길로 엘런을 쳐다보았다.
“필립스 님의 기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엘런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필립스는 다소 엉뚱한 부탁에 당황했다.
“내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예. 정확히 말해 필립스 님의 권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네 행색을 보니까 마법사 같은데 어째서 권법을 배우려고 하는 거지? 이건 기사들조차도 잘 배우지 않는 건데?”
필립스는 자신의 기술이 마법사에게도 큰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마법사이긴 하지만, 체술을 게을리해서는 강해질 수 없습니다. 또한 필립스 님의 체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필립스는 크게 웃었다.
“내가 공들여서 만든 건데 당연하지. 하지만 난 이제 누군가를 가르치고 싶지도 않아. 아쉽지만 체술은 다른 사람을 알아봐.”
필립스는 휙 몸을 돌렸다.
“숙면을 취할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발걸음을 옮기려던 필립스가 멈췄다.
“단 하루라도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