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64
64
체술의 달인 (3)
필립스는 프로드 왕국의 대표적인 기사 가문인 레이건가의 일원이었다.
명문 기사 집안인 만큼 레이건가에는 뛰어난 무예가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필립스는 특히 주목받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누구에게나 친절했으며 또 친근하게 다가갔다. 무예에 있어서는 어떤 위아래도 없이 동등하게 대우했다. 하지만 그의 특별한 점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흥미였다. 그는 비정상적일 만큼 무예에 대한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가 권왕의 칭호를 얻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이것 덕분이었다.
격투술부터 검술, 창술, 궁술 모두 섭렵한 그는 거기서 장점만 골라내어 자신만의 권법을 만들었다.
그래서 필립스 권법이라고 불리는 그것은 이름만 권법이었지 실제로는 종합 무술에 가까웠다.
또한 그는 권법 외에도 기사들이 사용하는 마나 연공법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그의 마나 연공법은 레이건가의 정통 연공법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그랬던 필립스 님의 명성이 추락하게 된 게 바로 이 연공법 때문이었지.’
필립스의 마나 연공법은 레이건가의 정통 연공법보다 앞섰음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정통 연공법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마나 연공 도중 폭주해 버린 것.’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연무장에서 마나를 연공하고 있던 그가 폭주해 버린 것이다.
이성을 잃은 그는 닥치는 대로 모든 것을 공격했다. 레이건가에서 폭주한 필립스를 막을 수 있는 자는 거의 없었다.
한참을 날뛴 끝에 그는 가주와 그를 비롯한 가문의 기사들에 의해 제압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참혹했다. 그의 손에 의해 저택의 반이 부서졌고 사상자가 수십 명이 넘었다.
‘그것이 필립스 연공법 때문이 아니라는 건 아직 모르고 계시겠지?’
그 폭주는 필립스와 경쟁하던 가문 사람의 계략이었다. 과도한 마나가 흐르게 되는 약물을 필립스에게 먹여 폭주를 유도한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밝혀질 일이니까.’
정신을 차린 필립스는 자신이 저지른 것에 대한 죄책감에 가문을 떠나 버렸다.
하지만 떠돌이 용병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의 눈 밑에 자리 잡은 짙은 그림자는 죄책감 때문에 이루지 못한 잠의 결과물이었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필립스는 처음 보는 꼬마 녀석이 마치 자신의 사정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떠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합니다. 단지 필립스님의 눈 밑에 드리운 짙은 혈색을 보고 추정했을 뿐입니다.”
엘런의 대답에 필립스는 무심코 손으로 눈가를 매만졌다. 푸석푸석한 피부가 느껴졌다.
“제가 필립스 님을 도울 수 있습니다.”
필립스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말을 아꼈다.
“좋아. 일단 내가 머무는 곳으로 가자.”
* * *
필립스의 방은 휑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렸다.
‘공간, 그 이상의 의미는 없는 건가?’
그를 따라 방으로 들어온 엘런은 텅 비어 있는 방을 보며 생각했다.
“이유는 말해 줄 수 없지만, 너의 말대로 제대로 잠을 잤던 게 아주 오래전이야.”
필립스는 침대에 걸터앉았다 .
“그걸 네가 고쳐 주겠다고?”
“그렇습니다.”
엘런이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필립스는 그의 태도가 의심스러웠다.
“혹시 슬립 마법을 걸 거라면 일찌감치 포기해라. 나 역시 마법보조사들과 심지어 마법사에게도 부탁해 봤으니까.”
“평범한 슬립 마법으로는 안 됐을 겁니다.”
엘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회귀하기 전 시대에는 의료 마법이 크게 유행했었다. 특히 마법보조사들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용병일 보다 의료일을 더 선호했다.
엘런은 던전 탐사 중 부상당한 이들을 위해 의료 마법을 배웠었다.
이론에서만큼은 뛰어났던 그였다. 그는 웬만한 의료 마법 이론 역시 전부 익히는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덕분에 필립스 님께 체술을 배울 수 있었지.’
엘런은 과거 톤턴에 들렀을 때 필립스를 만났었다.
당시에 그는 지금보다 더 심각했다.
심각한 수면 부족에 시달리던 그는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나 많이 망가져 있었다.
그는 자신을 고쳐 줄 사람을 찾아다녔고 그러다가 엘런을 만났다.
‘그때는 정말 실험의 단계였지. 지금도 성공을 장담 못 할 마법…….’
의료 마법의 선구자였던 신의 아고즈가 고안한 수면 마법이 있었다.
요구 서클이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이론 자체가 복잡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가 거의 없는 마법이었다.
엘런은 필립스의 숙면을 위해 바로 그 마법을 사용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오랜만에 평안을 취할 수 있었던 필립스는 엘런에게 무척이나 고마워했다.
그 대가로 알려준 것이 바로 엘런이 배운 신체 강화술이었다. 톤턴에 머무는 기간이 끝나는 바람에 전부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보았다.
“그렇다면 너는 다른 마법이 있다는 거야?”
필립스의 눈에 기대감이 비쳤다.
“그렇습니다. 아마 필립스 님에게 효과가 있을 겁니다.”
“좋아. 잠만 푹 잘 수 있게 해 준다면 네가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줄게. 부탁한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엘런은 그가 얼마나 간절한지 잘 알고 있었다.
“준비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알겠어.”
엘런은 마나를 담을 수 있는 펜을 꺼내고는 필립스의 침대로 다가갔다.
슥슥.
그는 필립스의 침대 주위로 복잡한 마법진을 그려나갔다.
‘뭘 하려고 저렇게 복잡한 마법진을 그리는 거지?’
필립스는 마법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저렇게 복잡한 마법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엘런은 마법진을 모두 그리고는 두 손을 탁탁 털었다.
“다 그린 거야?”
“네. 이제 발동만 하면 됩니다. 침대에 누우시겠습니까?”
그의 침대 주위에는 푸른색을 띠는 글자와 그림이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푹신.
필립스는 침대에 누웠다.
그러자 왠지 모를 긴장감이 느껴졌다.
“시작하겠습니다.”
필립스가 고개를 끄덕거리는 것이 보였다.
‘슬럼버.’
원래는 마법진 외에도 더 긴 주문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 생에 얻은 능력으로 주문은 생략해 버렸다.
기이잉.
엘런의 마나에 반응한 마법진이 더욱 강한 푸른빛을 내뿜었다.
‘효과가 있는 건가?’
포근함이 느껴졌다. 알 수 없는 편안함이 자신의 가슴을 채웠다. 몸 전체가 노곤해지는 것 같았다.
“하아암.”
자기도 모르게 하품이 나왔다. 지금까지 쌓였던 피로감이 한 번에 몰려왔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막을 수 없었다. 아니, 막기 싫었다.
‘성공이다.’
필립스가 완전히 곯아떨어지는 것을 본 엘런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과거에 한 번 사용해 봤던 마법이었지만, 그 후로 사용해본 적이 없던 마법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이처럼 성공적이었다.
-이건 처음 보는 마법인데?
프로뱅이 엘런의 마법에 반응했다.
‘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거든요. 확신은 못 했는데 성공한 것 같군요.’
-보면 볼수록 대단한 녀석이군. 저런 마법진이면 나도 적용하는 데 오래 걸렸을 텐데 말이야.
프로뱅은 엘런을 보며 자신도 마도의 극한을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저런 게 있으면 나에게도 말해다오. 연구할 가치가 충분한 마법들이구나.
‘알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엘런은 다시 필립스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한없이 편해 보였다.
‘이걸로 거래는 성립입니다, 필립스 님.’
* * *
짹짹.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얼마나 잔 거지?’
필립스는 슬며시 눈을 떴다.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침대에 눕기 직전은 오후였는데.’
해가 떠 있는 위치를 보니 정오는 지난 것 같았다. 하지만 정신은 오히려 또렷했다. 모든 감각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일어나셨습니까?”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필립스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엘런이 있었다.
필립스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그려졌다.
“얼마만의 숙면인지 모르겠군. 전부 네 덕이야.”
“필립스 님께서 편안히 주무셨다니 다행입니다.”
스윽.
필립스는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일어나 보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전보다 몸이 훨씬 가벼워진 상태였다.
“이제는 내가 대가를 치를 차례지? 내 권법을 배우고 싶다고?”
“예. 전투 마법사에게 체술은 필수적인 능력입니다. 그중에서도 필립스 님의 권법은 제가 본 것 중 가장 뛰어났습니다.”
필립스는 머쓱했는지 머리를 긁적였다. 중년의 나이였지만, 그의 분위기 때문인지 어색하지 않았다.
“그럼 가자고.”
“예.”
엘런은 필립스를 따라 건물 밖으로 나갔다.
필립스가 묵고 있는 방은 낡은 여관이었다.
그 뒤로는 커다란 산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은 아니었는지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았다.
필립스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산을 올랐다.
30분 정도를 올라가자 커다란 공터가 나왔다.
“이곳이 훈련하기에는 딱 좋은 곳이지.”
공터가 그렇게 넓지는 않았지만, 수련을 하기에는 적당한 크기였다.
“일단 기본기부터 볼까?”
필립스는 식당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분명 움직임이 좋았는데.’
“웬만하면 마법 쓰지 말고.”
츠팟.
필립스의 몸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급속기다.’
엘런은 마나를 순환시켜 빠른 속도로 몸을 틀었다.
파공성이 그의 귓가를 훑고 지나갔다.
엘런이 필립스의 주먹을 피한 것이다. 그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발목을 틀어 이동방향을 바꾸고는 왼쪽 주먹을 내질렀다.
팍.
엘런은 오른팔로 그의 공격을 막았다.
‘윽, 주먹이 무슨 돌이야?’
전기가 통한 것처럼 오른팔이 저렸다. 하지만 필립스는 조금의 시간도 주지 않았다.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이 보였다. 옆으로 움직여 피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엘런은 허리를 뒤로 젖혔다.
‘걸렸다.’
우웅.
필립스의 주먹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대신 그곳엔 팔꿈치가 보였다. 필립스는 엘런의 허벅지를 향해 팔꿈치를 내리꽂았다.
‘이런.’
몸을 뒤로 젖히느라 무게중심이 뒤쪽으로 쏠려 있었다. 훤히 드러난 허벅지를 방어할 만한 수단이 없었다.
‘정면승부다.’
엘런은 몸을 뒤로 더 젖혔다. 이미 뒤로 쏠렸던 무게중심 탓에 그의 몸 전체가 넘어지는 모습이 됐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릎을 세웠다.
빠아악.
필립스의 팔꿈치와 엘런의 무릎이 부딪혔다.
바닥을 나뒹굴고 있는 쪽은 엘런이었다.
“체술로는 몇 합도 겨루지 못하나 봅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기본기는 괜찮게 잡힌 것 같네. 특히 마지막에 발휘한 기지는 좋았어. 웬만한 격투가들도 당황하는 공격인데 말이야.”
필립스가 엘런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 정도면 됐고,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타악.
엘런은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섰다.
“마법사여서 그런가 마나를 움직이는 방법에 관해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같더군. 하지만 기본적인 격투술 자체가 많이 부족해.”
그도 그럴 것이 엘런은 마법보조사였다.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체술은 일종의 보조적인 것이다.
과거의 필립스도 그걸 알고 있었고 짧은 시간 안에 그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마나 순환을 통한 신체 강화만 알려 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시간이 넉넉했다.
“오늘부터 주먹지르기 1,000회 발차기 1,000회 시작이다. 기본기는 반복이니까 꾀부리려고 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