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65
65
쫓고 쫓기다 (1)
파앙. 파앙.
경쾌한 파공성이 공터를 울렸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주먹은 재빨랐으며 동시에 힘이 실려 있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으로 보아 꽤 오랜 시간을 훈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한참을 공터에서 주먹을 휘두르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사내는 바로 엘런이었다.
“후우”
그는 다음 동작을 위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자 팔뚝의 근육에 힘이 들어가면서 부풀어 올랐다.
파밧.
그는 숨을 토해 내며 주먹을 내질렀다. 경쾌한 움직임 때문에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필립스가 그를 보고 있었다. 필립스의 눈빛에서 만족스러움이 보였다.
“잠시 쉬다가 하지그래?”
필립스의 목소리에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엘런의 동작이 멈췄다.
“오셨습니까?”
“그렇게 무리하다가는 몸 상한다?”
필립스는 엘런의 어깨에 손을 가져갔다.
누가 봐도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둘의 눈빛이 동시에 변했다.
후웅.
필립스의 팔꿈치가 엘런의 관자놀이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엘런은 필립스의 팔을 감아 그의 공격을 막았다.
“제법인데?”
“이곳에서 3개월하고도 반을 더 보냈습니다. 누구 덕분에 항상 긴장하고 있습니다.”
엘런이 수련을 시작한 지 세 달 반이 지났다. 처음에 그는 기본기를 닦는다는 명분으로 날마다 온몸에 쥐가 날 정도로 주먹과 발차기를 해야 했다.
어느 정도 기본기가 잡혔을 때쯤부터 본격적인 수련이 시작되었다.
체내에서 마나를 순환하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실전 감각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실전 감각은 역시 경험이지.’
그렇게 말한 필립스는 시도 때도 없이 엘런을 공격했다. 밥 먹을 때나 대화할 때, 심지어 잘 때조차도 필립스는 그를 기습했다.
“정말 많이 늘었어. 이제 슬슬 수도로 돌아가 봐야 할 때 아닌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엘런은 자신에게 4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시간이 거의 다 된 것이다.
“너랑 있는 동안 나름 즐거웠는데 아쉽네.”
“심심하면 저를 팰 수 있었으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하하하, 맞아, 그게 가장 큰 이유야.”
필립스는 양손으로 배를 잡고 웃었다. 엘런도 덩달아 웃었다.
팍.
“이제 뻔합니다.”
“그렇군.”
필립스는 엘런의 팔에 막혀 버린 자신의 주먹을 감싸 쥐었다.
“언제 출발할 거야?”
“내일 해가 뜨는 대로 바로 가겠습니다. 해리포드에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는 로미우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성격이라면 오매불망 자신을 기다리며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은근히 신경 쓰인단 말이야.’
* * *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엘런은 필립스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덕분에 즐거웠다. 벤틀러에게도 안부 전해 주고.”
“필립스 님께서는 해리포드로 가실 생각이 없으십니까? 벤틀러도 당신을 볼 날만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필립스는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이제 그곳에 발을 들일 수가 없어. 그냥 이곳에서 평생 반성하며 살겠다. 대신 가끔씩 놀러 와라. 내가 여기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의 고집은 절대 꺾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죠.”
“잠깐.”
엘런이 돌아서려 할 때, 필립스가 그를 불러 세웠다.
툭.
필립스는 책 한 권을 꺼내더니 엘런에게 내밀었다. 책은 군데군데 낡은 티가 났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된 것 같았다.
“이게 뭡니까?”
“아직 네가 배우기에는 어려운 거라서 남겨 두었던 거야. 체내 마나 순환에 관련된 내용이지.”
엘런의 눈이 동그래졌다. 마나 순환은 저번 생에서 배운 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넌 이해력만큼은 정말 뛰어나니 책만 보고도 익힐 수 있을 거다.”
엘런은 수련할 때 놀라울 만큼의 이해력을 보여 주었다.
필립스가 어떤 기술의 원리를 알려 주면 그는 손쉽게 그것을 이해하고 적용했다.
‘신체 능력이 그 이해력을 따라 주기만 했더라도.’
엘런의 몸이 그의 머리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가 기술의 원리를 아무리 이해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몸은 그것을 구현하지 못했다. 그래서 수련의 내용도 대부분을 실전에 치중했다.
‘신체 능력도 나쁘지는 않지만,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세기의 천재가 나올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
필립스는 입맛을 다셨다. 분명 그라면 자신이 준 책만으로도 신체 강화술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술은 이른 시일 내에 꼭 익히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어. 그리고 혹시나 해서 그러는 건데, 돌아가서도 날 찾지 마. 정보를 흘리고 다녀서도 곤란해.”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엘런은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고는 몸을 돌렸다. 필립스는 재밌는 일이 사라졌다는 것에 아쉬움을 느끼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 * *
3개월 사이에 엘런의 몸은 눈에 띄게 좋아져 있었다. 침묵의 로브를 입었음에도 탄탄한 근육이 드러났다.
약간은 앳돼 보이던 그의 외모에서 청년의 티가 조금씩 보였다.
‘앞으로 이틀 정도 남았나?’
엘런은 지도를 보며 해리포드까지 남은 거리를 가늠했다.
현재 지나고 있는 곳은 부네르 지방의 작은 마을이었다. 부네르 자체는 꽤 큰 도시였지만, 마을 주변에는 왕래하는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이해는 가는데 말이야.’
엘런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책을 읽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하기에는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몸의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마법과 이번에 익힌 뛰어난 균형 감각이 있었다.
그가 읽고 있는 책은 헤어지기 전 필립스가 준 책이었다. 거기에는 새로운 신체 강화법이 쓰여 있었다.
‘단순히 체내에서 순환시키는 게 다가 아니다. 요점은 폭발인가?’
그가 원래 알고 있던 방법은 마나를 체내에서 순환시켜 신체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안에서 마나를 조금씩 폭발시켜 더욱 강한 힘을 얻는 것이다.
‘이해는 되는데…….’
원리 자체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것이 어려웠다.
체내를 돌아다니는 마나는 폭발시킬 틈도 없이 이미 그곳을 지나가 버렸다.
‘앞으로 계속 연습해야겠어.’
다그닥. 다그닥.
그러는 중에도 엘런의 말은 계속해서 달렸다. 말은 곧 갈대숲을 지나게 되었다. 말을 타고 있음에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키가 큰 갈대들이었다.
‘아차. 여기 갈대가 한창 자랄 때였구나.’
푸르르.
그는 급하게 말을 세웠다.
‘어차피 그리 넓지도 않은 갈대숲이니 그냥 지나가자.’
이런 곳을 말을 타고 가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그는 말에서 내려 직접 끌고 갈대밭으로 들어갔다.
“얼른 돌아가자고.”
“흐흐. 이년 너무 예쁘지 않냐? 가기 전에 내가 먼저.”
“그러다 보스가 가만 안 둘 거다.”
“매일 보스 타령만 하는군. 남자라는 놈이 부끄럽지도 않냐?”
갈대숲의 끝자락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다.
‘뭔가 심상치 않은데?’
대화 내용으로만 봐도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마다가 본부로 데려가는 여자 손댔다가 어떻게 됐는지 못 봤어?”
“쳇. 알겠다, 알겠어. 따라와, 이년들아.”
“우웁.”
한 무리의 남성들이 여성들을 묶은 채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었다.
‘인신매매를 하는 놈들인가?’
엘런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프로드뿐만 아니라 전 대륙에서 노예 매매는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유일하게 자유도시 발리체에서만 제한적으로나마 허용되었다.
‘그런데 이놈들이 프로드에서 뻔히 노예 거래를 해?’
엘런은 당장에 저놈들을 처리하고 묶여 있는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
‘한꺼번에 깡그리 족쳐 주지.”
그들이 말하는 것을 봐서는 분명 조직체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그들을 따라가 한 번에 소탕하고 사람들을 구해오는 것이 훨씬 좋은 선택이었다.
결심이 선 엘런은 그들의 뒤를 밟았다.
인신매매업자들은 엘런이 뒤쫓아 오는지도 모르고 한참을 걸어갔다. 자신들은 상관없었지만 묶인 채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매우 힘들어했다.
“시간 맞추려면 더 서둘러야 한다고.”
“야, 빨리 안 걸어?”
그들은 뒤처지는 사람들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저 자식들이.’
엘런은 당장이라도 저놈들을 두들겨 패 주고 싶었다.
“다 와 가니까 빨리 끌고 가자.”
한 사내의 말에 다른 사내들이 묶여 있는 줄을 잡아당겼다.
“윽!”
입이 막혀 있는 사람들은 제대로 비명을 지르지도 못하고 그들에게 끌려갔다.
‘부네르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이 향하는 방향은 부네르 성이 있는 곳이었다.
‘마차?’
성 근처에 도착한 그들은 사람들을 마차에 태웠다. 마차의 크기가 꽤 커서 6명을 동시에 태울 수 있었다.
사람들을 태운 마차는 그대로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검문이 있는데 어떻게 통과하겠다는 거야?’
대도시들은 각 성문에 병사들이 배치되어 출입하는 인원들을 검문한다. 저렇게 허술하게 마차에 태우는 방식으로는 병사들의 눈을 피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곧 엘런은 성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병사들은 마차가 다가오자 일단 정지시켰다. 그리고 마부와 몇 마디 나누더니 그대로 마차를 통과시켰다.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하나도 없군.’
병사들까지도 한 패거나 매수당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엘런은 더 자세히 조사해볼 필요성을 느꼈다.
“신분을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엘런이 성문으로 다가가자 병사가 다가와 공손하게 물었다. 엘런의 옷은 척 보기에도 마법사임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미 베리타티 남작.”
마법사 정도만 되어도 성문은 쉽게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엘런은 마탑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마탑의 인정이 없다면 그의 실력과는 상관없이 마법보조사의 지위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마법보조사는 평민과 다를 바가 없다.
‘지금은 저 줄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하루에도 출입하는 인원이 많은 대도시에는 항상 검문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진다. 저 줄을 기다렸다가는 인신매매업자들을 놓치고 말 것이다.
“충성,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몰라뵀습니다.”
병사는 엘런의 작위를 듣고는 식겁한 표정이 되었다.
“아니네, 모를 수도 있지. 그럼 수고하게.”
“예! 조심히 가십시오.”
엘런은 경례를 하는 병사를 그대로 지나쳐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놓친 것은 아니군.’
작위를 밝히면서까지 급하게 들어온 보람이 있었다. 저 멀리 대로를 따라 달려가고 있는 마차가 보였다.
‘도시의 병사까지 매수하다니. 조직 규모가 꽤 큰 것 같군. 네놈들 뿌리까지 모두 밝혀 주지.’
히이잉.
엘런은 말에 박차를 가하며 마차를 쫓아갔다.
타앗.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자 2개가 그런 엘런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