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66
66
쫓고 쫓기다 (2)
어두컴컴한 밤, 사람이 바로 앞에 있어도 겨우 그림자만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탁, 타악.
줄지어져 있는 건물의 지붕에서 가볍고 은밀한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한 건물의 지붕에 멈춰 섰다.
‘다 찾은 건가?’
엘런은 종이를 하나 펼쳐 들었다. 종이에는 글자와 그림이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슥슥슥.
그는 종이에 쓰여 있는 곳에 줄을 몇 개 더 그었다.
‘이거 정말 곤란하군.’
완성된 그림을 보자 엘런은 골치가 아파졌다. 각 인물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그 이름들과 공통적으로 연결된 자가 있었다.
‘클리프 자작까지 연관되어 있을 줄이야.’
클리프는 이곳 부네르의 영주였다. 지난 삶에서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그 외에는 어떤 인물인지 자세히 알지 못했다.
‘지난번에는 이쪽으로 터진 일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귀족까지 연관된 큰 규모의 인신매매 사건이 터진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을 둘 수 있었다.
‘나의 선택으로 미래가 바뀌었거나 아니면 죽을 때까지 들키지 않았거나.’
둘 중에 무엇이 이유이든 상관이 없었다. 일단은 전 대륙적으로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인신매매가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저들을 구해 내는 게 먼저야. 이거 꽤 많은 준비가 필요하겠어.’
상대는 예상보다 훨씬 조직적이었다. 이곳까지 오는 길에도 마차를 몇 번이나 바꿔 탔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마차 같았지만, 주위로 몇 명의 사람들이 티가 나지 않게 호위를 하기까지 했다.
엘런이 이번에 필립스에게서 체술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추적하는 것 자체도 힘들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귀족이 뒤를 봐주고 있기까지 하다. 자신도 귀족이긴 했지만, 영지도 없는 단승 귀족에 불과했다. 명예훼손이니 그런 것으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명백한 상황을 만들어내야 했다.
엘런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였다.
쐐애애애액.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그의 귀에 똑똑히 들렸다. 전에는 마나를 순환시키고 있을 때만 신체가 강화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평상시의 감각도 많이 높아진 상태였다.
텁.
엘런은 날아오는 물체를 손으로 덥석 잡아 버렸다.
날카로운 쇠붙이의 소리가 아니었기에 충분히 손을 사용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돌멩이?’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작은 돌멩이였다. 어느 길가에서나 보이는 그런 평범한 것이었다. 조금 더 치명적인 무기를 생각했던 엘런은 맥이 풀리는 것 같았다.
“누구야?”
엘런은 잡고 있던 돌멩이를 휙휙 던졌다 잡으며 물었다. 엘런은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였지만, 속으로는 잔뜩 준비하고 있었다.
‘비록 무기는 초라했지만, 그게 날아오기 전까지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의 몸을 따라 마나가 순환했다.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디텍트.’
동시에 그는 적의 위치를 파악했다.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그의 마나에 2명의 사람이 감지되었다.
파아악.
그곳을 향해 들고 있던 돌멩이를 던졌다.
‘이걸 피하는 순간 바로 공격에 들어간다.’
그렇게 생각한 엘런은 다리에 힘을 줬다. 언제든지 튕겨 나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으악.”
“응?”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엘런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다.
“가빈, 괜찮아?”
“으아아.”
엘런은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다.
‘애들?’
그곳에는 1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소년 2명이 있었다.
한 소년은 돌멩이에 맞은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고 다른 소년은 그를 보며 걱정하고 있었다.
“너희들 뭐야?”
엘런의 목소리가 들리자 소년들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경계했다.
“젠장, 우리 둘 다 도망치긴 그른 것 같군. 먼저 가라, 카빈.”
“둘 다 도망쳐야지!”
“아니야, 한 명은 남아서 시간을 벌어야 해. 형으로서 말하는 거니까 들어.”
“가빈, 고작 몇 분 먼저 태어난 거로 우쭐대지 말라니까!”
엘런은 그들을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너희들 광대냐?”
“광대라니. 우리는 프로드 왕국 최고의 정보 상인 가빈, 카빈 형제다.”
카빈이 가슴을 퉁퉁 치며 말했다. 엘런은 여전히 적응할 수 없는 분위기에 머리를 긁적였다.
‘잠깐, 가빈, 카빈 형제?’
엘런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그는 애초에 용병이었기 때문에 왕실의 단체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왕실의 정보기관 레이븐은 프로드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각종 부패로 프로드의 국력이 약해지고 있을 때도 왕국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바로 이곳에 있었다.
‘그곳의 수장이 바로 가빈, 카빈 형제였는데…….’
그들에 관해서는 이름 외에 알려진 것이 없었다. 출신지, 나이 등은 전부 극비사항이었다.
‘그들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들은 향후 프로드 최고의 정보원이 될 형제였다.
미리 손을 써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너희들 나를 왜 공격한 거지?”
엘런은 화를 누그러뜨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 저 녀석들과 무슨 관계지?”
가빈은 건물 밑에 있는 인신매매업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엘런은 그가 가리킨 곳을 한번 슥 보았다.
“저 녀석들을 쫓고 있었다. 보아하니 인신매매업자 같더군.”
“너도 알고 있었던 거야?”
가빈의 눈이 동그래졌다.
“우리가 저 녀석들을 쫓고 있을 때, 네가 계속 보이기에 같은 편인 줄 알았어.”
카빈도 형과 똑같은 표정이 되었다.
“너희는 뭐 때문에 쫓고 있었던 거지?”
“저놈들 인신매매를 하고 있다고! 당연히 막아야 하는 거 아니야?”
“인신매매는 절대 용서할 수 없어.”
엘런의 눈이 빛났다. 이들과 가까워질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회귀한 엘런은 정보의 중요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체감하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이 알고 있는 미래만 믿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았다.
‘어떤 상황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휘하의 정보단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지? 보다시피 저 녀석들 매우 조직적이야. 그 규모고 거대하고 심지어 뒤에는 귀족까지 있다고.”
그 말에 형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이렇다 할 방법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엘런보다 약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더 적었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는데, 상황이 좋지는 않아.”
“무엇보다 뒤에 있는 클리프 자작님이 문제야.”
엘런도 녀석들의 본진에 커다란 피해를 줄 힘은 있었다. 하지만 그 후의 상황을 정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다. 평소 같았으면 관할 도시의 영주에게 말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자가 바로 공격해야 할 대상이었다.
“결국, 너희들끼리 할 수 없다는 말이군.”
“맞아.”
형제가 동시에 대답했다. 침울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럼 나랑 같이해 볼래?”
“무슨 방법이 있는 거야?”
형제는 귀를 쫑긋 세우고 엘런을 바라보았다.
“일단 지도가 필요해. 너희들 정보원이라고 했지? 저곳과 도시 밖에 있는 성채의 지도까지 좀 그릴 수 있겠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해야 해.”
엘런이 알아본 바로는 이곳은 문서와 돈, 그리고 사람이 오가는 일종의 거래소였다. 도시 밖에는 성채가 하나 있고 잡혀간 사람들은 그곳에 있었다.
스윽.
가빈이 품에 있던 종이를 하나 꺼냈다.
“그거라면 이미 모두 준비 돼 있어.”
“우리가 성채의 지도까지도 만들어 왔다고.”
지도를 받아본 엘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진짜 이 소년들이 만든 거란 말이야?’
지도에는 성채와 거래소의 내부의 모습까지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기호는 직관적이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런 것까지도 모두 조사했다니 레이븐의 수장은 떡잎부터 달랐었군.’
심지어 그 지도에는 갇혀 있는 사람들의 위치와 경비원들의 위치, 교대 시간까지도 날짜별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걸 진짜 너희들이 했단 말이야?”
엘런의 반응에 형제는 신이 났다.
“우리는 최고의 정보 상인이라고.”
“아마 이 근방에서 이 정도 지도 찾기는 힘들 거야.”
그들의 말대로 이 정도면 충분했다. 이제는 전략을 세우기만 하면 된다.
‘무영창의 능력과 개량 마법, 필립스 권법에 양동작전을 진행하면 저놈들 모두 상대는 할 수 있다.’
가빈, 카빈 형제라면 그들의 시선을 쏠리게 하고 도망칠 능력은 충분했다.
‘그럼 뒷정리는 누가 해 줄 수 있을까.’
엘런은 자신의 턱을 만지작거렸다.
‘해리포드까지 가서 왕실의 지원을 받는 방법도 있지만, 그건 너무 오래 걸린다.’
언제 거래가 진행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걸 써야 하나.’
엘런은 항상 지니고 다니던 종이를 만지작거렸다. 머릿속에서 많은 계산이 오갔다.
“좋아. 가빈, 카빈, 저놈들 전부 잡아넣자.”
결심이 섰는지 엘런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카빈, 크리슈라는 곳을 알아?”
“당연히 알고 있지. 이곳에서 동쪽으로 반나절 정도만 가면 돼.”
카빈이 가슴을 쭉 펴며 말했다.
“이걸 들고 그곳에 있는 데미온을 찾아가서 병사를 내어 달라고 해.”
크리슈는 부네르 지역에 있는 중소도시였다.
그곳에는 따로 영주가 있지는 않았다. 클리프가 임명한 관리가 그곳을 관리했다.
‘그리고 현재는 크리슈의 성벽 보수를 위해 제4군 치안유지 부대인 가시부대가 주둔하고 있지.’
데미온은 그 가시부대의 부대장이었다. 엘런은 그들의 지원을 받을 생각이었다.
“이 종이는 뭐야?”
카빈이 자신이 받은 종이를 보며 물었다.
“이, 이건……?”
엘런이 어떤 대답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카빈 본인이 종이의 정체를 알아차린 것이다.
“맞아, 왕가의 인장이야. 알베르토 프로드 폐하께 직접 하사받은 거지.”
엘런이 카빈에게 준 것은 그가 알베르토를 처음 알현한 자리에서 받은 왕가의 인장이었다.
“그거라면 바로 가시부대의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적어도 이틀 후까지는 가시부대가 이곳에 도착해야 해.”
무려 왕실의 인장이 찍힌 문서였다. 프로드 왕국 내에서 이 종이를 무시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 알겠어.”
카빈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렸다.
“지금 바로 갔다 올게.”
그는 바로 크리슈를 향해 출발했다. 야심한 밤이긴 했지만, 그에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았다.
빠른 속도로 지붕을 넘는 카빈을 보며 엘런을 입맛을 다셨다.
‘아깝긴 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그가 왕가의 인장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바로 전과 기록의 삭제였다. 하지만 당장에 자신은 가명을 쓰고 있고 위장 마법을 쓰고 있다는 것 말고는 불편함은 없었다.
‘원래의 나를 아는 녀석도 대부분 아카데미 녀석들이고 기껏해야 자크 체들턴이나 유진 정도가 다니까.’
그들은 엘런의 위장 마법을 알아차릴 수 있는 수준이 되지 못했다. 당장의 위험성은 없는 것이다.
‘어차피 왕가의 인장으로 면죄를 받는 것도 왕의 마음이다. 그러니 지금처럼 왕실과의 관계만 잘 유지하면 훗날 면죄를 두고 협상을 벌일 수도 있어.’
이런 계산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눈앞의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었다.
‘더는 귀족 놈들 손에 사람들이 놀아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전생에 당했던 그 모든 차별들이 생각났다. 귀족이어서 평민에게 인간으로서 해선 안 될 짓들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은 평민이어서 그걸 당해야만 했다.
마법사여서 마법보조사에게 함부로 대해도 됐었다. 자신은 마법보조사여서 그걸 당해야만 했다.
이제 자신은 귀족이며 마법사였다. 그리고 그것을 막을 힘도 있었다.
‘이번엔 너희들 마음대로는 안 될 거다.’
엘런의 시선이 다시 거래소를 향했다. 그의 눈은 마치 얼음장처럼 차가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