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67
67
체포 (1)
“잘은 모르겠지만, 저거 귀한 거 아니야?”
카빈이 떠나는 것을 확인한 가빈이 엘런에게 물었다.
“물론 중요하긴 하지. 폐하께서 특별히 주신 거니까. 하지만 일단은 사람들부터 구하고 봐야 하지 않겠어?”
그 말을 들은 가빈은 멍해졌다.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폐하께서 내리신 인장을 사용했단 말이야?’
자신이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봤다.
섣불리 답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눈앞의 이 자는 그 어려운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그럼 이제부터 어떻게 할 거야?”
“양동작전을 펼치는 거다.”
“양동작전이라니?”
엘런은 카빈의 지도에 한 지점을 가리켰다. 그곳은 도시 밖 성채의 서쪽 출입구였다.
“대략적인 전략은 이곳에서 네가 시선을 끌어 주면 반대쪽에서 내가 해결을 보는 거지.”
기대감에 차 있던 가빈의 표정이 실망스러움으로 바뀌었다. 그는 엘런의 말이 못 미더웠다.
“난 시선을 끌고 충분히 도망칠 수 있어. 그런데 그동안 너 혼자서 저놈들을 토벌한다고? 그게 가능해?”
“그냥 토벌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하겠지.”
가빈은 엘런이 허세를 부리는 것인지 진짜 실력이 있는 것인지 파악되지 않았다. 하지만 목숨 걸고 그런 허세를 부릴 사람이 있을까.
‘없다. 거기다 귀족까지 관련된 일이다. 저 녀석이 나선다고 자신에게 득이 될 것도 전혀 없어. 그렇다면 정말 실력이 있는 걸까?’
그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구하는 것은 다르지. 문제가 훨씬 복잡해졌어.”
엘런이 고민하는 것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일반적인 토벌 작전이라면 가빈이 반대쪽에서 시선을 끌어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각개격파로 나간다면 혼자서 상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토벌이 목적이 아니라 구출이 목적이다.’
저들을 모두 상대하기 위해서는 화염계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성채를 불태우고 그 혼란을 틈타 상대를 차례차례 각개격파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성채 안에는 감금된 사람들이 있었다.
‘무턱대고 불을 지를 수는 없다. 그들부터 탈출시킨 후 광역 마법을 사용해야 해.’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곳은 서쪽 출입구 쪽과 중앙 총 두 곳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중앙에 갇혀 있었고 일부의 사람들이 서쪽 출입구에 있었다.
두 곳에서 동시에 사람들이 탈출해야만 마음 놓고 광역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분신 마법을 사용한다?’
5서클의 클론 마법이라면 자신의 능력 일부를 사용할 수 있는 분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분신을 이용해 양쪽을 동시에 탈출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러기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클론으로 만든 분신이라면 갇혀 있는 사람을 구해 내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만약 그곳에 조금이라도 강한 자가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분신으로는 그 정도의 인물을 상대할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작전은 실패로 돌아간다.
‘비록 성채에 대해 조사를 마쳤다고는 하지만, 진입하고 나면 많은 변수가 있을 거야. 그 변수에 대응할 방법을 찾아야 해.’
엘런의 눈에 자신을 보고 있는 가빈이 들어왔다.
‘중앙은 내가 탈출시키고 동쪽은 가빈이 탈출시킨다?’
방법만 놓고 보면 가장 좋았다. 이토록 자세한 지도를 그려온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는 어떤 변수가 나타나든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어쩌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감금된 곳의 문을 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능력은 딱 거기까지다.’
가빈의 실력이 사람들을 탈출시킬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그의 인기척을 숨기고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은 탁월했다. 하지만 전투 능력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었다.
혼자서 빠져나가는 거라면 모를까 사람들을 끌고 가는 것은 무리였다.
‘다른 방법이 없는 건가?’
가빈은 대번에 엘런이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전혀 없었다.
“어디선가 사람들이 한 번에 하늘로 솟든지 아니면 땅으로 꺼졌으면 좋겠다.”
물론 그것은 답답함에서 나온 가빈의 혼잣말이었다.
‘한 번에 땅으로?’
하지만 그 말을 들은 엘런은 결정적인 영감을 받았다.
‘그래, 모든 방법을 다 사용하면 되는 거야.’
엘런의 머리에서 꽤 그럴듯한 전략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 전략의 대략적인 형태가 만들어지자 곧 세부적인 것들을 채웠다.
“가빈, 사람들을 한 번에 구할 방법을 찾았어.”
* * *
‘슬슬 움직여야겠군.’
약속한 시각이 되자 서쪽 출입구에 있던 가빈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가는 긴장감으로 잔뜩 굳어 있었다.
“이번에 온 녀석 중에 미인이 있다고 하던데?”
한 경비원이 툭 던지듯 말을 걸었다. 원래 근무 중 잡담은 금지였다. 하지만 이 극도의 지루함 속에서 그런 것들은 전혀 유효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아까 보고 왔는데 눈이 절로 가더군. 아마 오늘 밤에 그년을 가만히 안 두는 놈들이 몇 명 있을 거다.”
“그래? 그럼 나도 이번 근무 끝나고 가 볼까? 흐흐흐.”
그의 웃음소리는 듣는 사람마저 기분 나쁘게 했다.
부스스.
탁.
“응? 뭐지?”
경비원 하나가 전방의 풀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조차 없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다른 경비원의 시선도 그곳을 향했다.
그때였다.
파바밧.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의 시선이 그곳에 쏠린 사이 뒤쪽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지나갔다.
“아무것도 아니야. 무슨 소리가 들려서 말이야.”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여기는 산짐승도 잘 안 나타나는 곳이라고.”
“그렇겠지? 그래서 근무 끝나고 나서 같이 철장에 가 보자고?”
“보스에게 안 걸리기만 하면 돼.”
그들은 이내 원래의 잡담으로 돌아왔다.
‘일단 들어오기는 성공이다.’
가빈은 반사되는 빛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검은 옷에 복면까지 쓰고 있었다. 그는 어둠에 녹아들어 성채를 누비기 시작했다.
그의 눈이 이곳저곳으로 움직였다. 사전에 엘런과 정한 건물을 찾는 것이었다.
‘저기다.’
성채에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군데군데 화톳불들이 있었다. 특히 조직원들이 잠을 자고 있는 막사 앞에는 커다란 화로가 있었다. 가빈이 노리는 것은 바로 그곳이었다.
쫘아악.
활시위가 팽팽해지자 가빈은 한쪽 눈을 감고 화로를 조준했다.
탕.
시위가 퉁겨지는 소리가 칠흑 같은 어둠을 가로질렀다.
파악.
그의 화살이 정확하게 화로를 맞췄다. 화살에 맞은 화로가 쓰러졌다.
기이잉.
화살에 그려 둔 마법진이 발동되었다.
그리고 쓰러진 화로 위로 파이어 마법이 발동되자 작은 화재가 일어났다.
“불이야!”
막사 앞에 화재가 발생하자 조직원 하나가 흙을 뿌리며 외쳤다.
“무슨 일이야?”
그 소리에 막사에서 조직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최초로 화재를 발견한 조직원은 여전히 모래를 뿌려 대고 있었다.
“어떤 놈이 기습을 한 것 같습니다!”
“젠장, 내일이 얼마나 중요한 거래일인데.”
내일은 귀족들까지 오는 큰 거래가 있었다. 그는 보스의 질책이 두려웠다.
“너희는 이 건방진 새끼를 찾아라. 그리고 나머지는 불부터 꺼.”
“예.”
몇 명의 사내가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보며 가빈을 찾기 위해 움직였다.
나머지 조직원들은 어디론가 달려가 양동이에 물을 퍼 왔다.
‘시선 끌기도 성공이다.’
옆으로 번질 만큼의 큰불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법진에 의한 불은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누군가의 기습이 명백했기 때문에 그들은 민감하게 반응할 것이었다.
‘몇 군데 더 질러 놓고 사람들을 구하러 가야지.’
가빈은 이후에 두 군데에 불을 더 질렀다. 조직원들은 더 큰 혼란에 빠졌다.
그들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던 가빈은 쉽게 감옥 근처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여기였지?’
가빈은 한 지점에 서서 발을 크게 굴렀다.
파삭.
흙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빈은 거기서 몇 번 더 크게 발을 굴렀다.
파사삭.
그러자 흙이 무너지면서 사람 한 명이 들어갈 만한 구멍이 생겼다. 깊은 구멍이었지만, 쉽게 내려갈 수 있도록 벽면을 따라 홈이 파여 있었다.
‘좋았어.’
가빈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구덩이로 내려갔다.
* * *
‘시작됐군.’
엘런은 뷰 마나 포스를 이용해 성채 내부의 마나 흐름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마법진이 발동하는 것을 탐지했다.
엘런은 스태프를 일자로 세웠다. 그리고 오른손을 스태프로 가져갔다. 마치 활을 쏘는 듯한 자세였다.
‘매직 미사일.’
피융.
“컥.”
입구를 지키고 있던 경비원이 제대로 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뭐야?”
갑자기 피를 뿜으며 죽어 버린 자신의 동료를 보며 얼빠진 표정이 되었다.
엘런의 신체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경비원의 뒤에 있었다.
빠악.
그의 주먹이 경비원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그러자 두개골이 쪼개지는 소리가 났다.
“끄륵.”
경비원은 충격 때문에 몸을 푸들푸들 떨며 게거품을 물었다.
엘런은 그들을 뒤로 한 채 재빨리 성채 안으로 진입했다.
“서쪽 막사에 불이 났대.”
“누군가의 습격일 수도 있다고 하니까 빨리들 움직여.”
성채 안은 번잡스러웠다. 조직원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머리 위로 지나가는 엘런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가빈이 생각보다 더 잘해 주고 있어.’
엘런이 준비해 준 화살은 3개였다.
그리고 현재 세 곳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덕분에 엘런이 움직일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단숨에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간다.’
엘런은 성채 중앙에 있는 감옥으로 달려갔다.
한편, 성채 중앙에 있는 본부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쥐새끼가 이곳에 침입한 거야?”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 거구의 사내는 바로 이곳 인신매매업장의 주인인 데피였다.
“그래도 큰 피해는 없는 것 같습니다.”
“큰 피해가 없어? 내일 귀족들도 오는 큰 거래가 있는데 상품들 망가지면 어쩔 거야?”
“그, 그게…….”
“빨리 가서 상품들 상태부터 확인해.”
“예!”
데피의 말에 일부의 부하들이 서쪽 감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우리도 간다.”
데피 역시 남은 부하들을 이끌고 중앙 감옥으로 갔다. 대부분의 상품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다급했다.
본부 밖으로 나오자마자 감옥이 보였다. 하지만 옅은 불꽃만이 비추고 있는 탓에 감옥 안의 상태가 잘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달려가면 갈수록 이상한 것이 느껴졌다.
‘왜 경비원 녀석들이 없는 거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불길한 예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감옥에 도착한 데피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원래 이 커다란 철장 안에는 사람들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텅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철장 앞에는 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어야 할 경비원들이 쓰러져 있었다.
“이 새끼들이. 내가 가만두지 않겠어.”
“가만두지 않으면 어쩌려고?”
그때 감옥 안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놈이 저지른 짓이냐?”
“그렇지. 아마 서쪽도 상황은 비슷할 거야.”
후웅.
철장 안에 있는 바닥이 무너졌다. 사람 두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 구멍에서 엘런이 올라왔다.
“그곳으로 상품을 빼돌린 거냐?”
“내가 즐겨 쓰는 방법이지. 그렇게 오래된 건 아니니까 지금 쫓아가면 다시 잡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가 안 보내 줄 거야.”
엘런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오냐, 그렇다면 내가 직접 너를 찢어 주고 가지러 가지.”
데피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자신의 대도를 꺼내 들었다.
“어디 한번 그 잘난 혓바닥을 끝까지 놀려 봐라.”
그는 대도를 훙훙 휘두르며 엘런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