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68
68
체포 (2)
‘뭐 하는 놈이지?’
데피는 눈앞에 있는 엘런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처음 봤을 때는 그저 공명심에 취한 애송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마법보조사라면 많이 상대해 봤다. 마법사라도 경험 없는 초보까지는 상대할 수 있었는데.’
마법사와의 겨룰 때는 거리만 좁히면 됐다. 주문을 외울 시간도 없이 근접전을 펼치면 백이면 백 당황하다가 쉽게 목을 내주었다.
‘그런데 저 녀석은 주문을 외우질 않잖아?’
엘런의 입술은 조금도 달싹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불꽃이며 전기가 터져 나왔다.
‘근접전도 통하지 않는다.’
주문을 외우든 안 외우든 마법 공격을 피해 그에게 접근하기만 하면 되었다.
자신의 대도가 그의 목에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만 가면 끝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라이트닝을 피해 그에게 다가간 순간 승리를 직감했다. 하지만 그는 기이한 체술로 그의 공격을 막아 내고서는 반격까지 날렸다.
‘괴물인가?’
그의 눈이 엘런의 빈틈을 찾아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이제 끝을 내주지.”
피융.
가장 신경 쓰이는 공격이 날아왔다.
얇은 섬광처럼 보이는 저 공격에 당하면 몸에 구멍이 생겨 버릴 것이다.
데피는 사선으로 움직여 섬광을 피함과 동시에 엘런에게 달려갈 추진력을 얻었다.
‘저 섬광 공격을 사용할 때가 빈틈이 가장 많이 생긴다. 이걸 노리고 있었지.’
씨익.
‘웃어?’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는 엘런의 모습에 불안감이 올라왔다.
파앗.
엘런은 순식간에 데피의 뒤로 돌아갔다. 데피는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싸한 느낌에 몸을 숙였다.
머리 위로 지나가는 주먹이 보였다. 저 주먹에 맞았더라면 그대로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큰 공격에는 빈틈이 생기는 법.’
데피는 주먹을 내지르느라 생긴 엘런의 빈틈을 노리고 대도를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 했다.
휘욱.
‘아니?’
분명 데피는 머리 위로 지나가는 주먹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렇다면 지금 저기 내려오는 팔꿈치는 뭐란 말인가?’
빠각.
도끼로 정수리를 찍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으윽.”
“잠시만 자고 있어라.”
차가운 바닥이 느껴졌다.
엘런의 말소리가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바인드.’
데피가 의식을 잃은 것을 확인한 엘런은 그를 묶어 두었다.
“저쪽이다.”
“저 새끼 잡아.”
“보스가 저 새끼에게 당했어.”
한 무리의 조직원이 엘런을 발견했다.
‘차례차례 와 주니 고맙기까지 한데?’
사람들을 대피시킨 가빈은 계속해서 성채를 돌아다니며 조직원들의 시선을 끌었다. 덕분에 아까부터 10명 남짓한 조직원들로 구성된 무리만 만나는 중이었다.
“으아악.”
“마법사다.”
“비켜, 도망쳐야 해.”
엘런의 손짓 두 번이면 그들은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곳은 대충 정리되어 가는 것 같고.’
에니스에서 사용했던 방법대로 땅굴을 이용해 사람들을 탈출시켰다.
‘사람들도 거의 다 도착한 것 같군.’
연결된 분신이 탈출로로 만들어 놓은 구멍이 있는 곳에 도착한 것이 느껴졌다.
“모두 성채를 포위해라.”
“한 놈도 빠져나가게 하지 마.”
때에 맞춰 카빈이 데리러 간 가시부대도 도착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줬어. 하긴 인장이 있었으니 곧바로 출발했겠지.’
엘런은 쓰러져 있는 데피의 뒷덜미를 잡았다. 의식을 잃은 상태여서인지 그의 몸은 축 처져 있었다.
‘이제 굴비처럼 줄줄이 엮기만 하면 되겠다.’
* * *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전날 술을 진탕 마셨을 때도 이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으윽.”
자연스럽게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이게 어떻게…….’
퍽.
쿠당탕.
얼굴이 얼얼해지더니 세상이 옆으로 쏟아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어떤…….”
“조금만 더 맞고 시작할까?”
귓가로 파고드는 목소리에 데피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전날 밤 꾸었던 악몽 같았던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흐릿했던 시야도 또렷해졌다.
그러자 현재 자신의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살려 주십시오.”
그는 넙죽 엎드렸다. 손이 뒤로 묶여 있는 탓에 엉거주춤한 자세가 되었다.
“물론 살려 줄 거야.”
엘런은 그를 일으켜 세웠다. 데피의 눈에는 4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데미온, 내가 말한 계획은 이놈이 도와줄 것이오.”
“알겠습니다. 가시부대는 왕명을 받은 베리타티 남작님을 따를 것입니다.”
데미온의 대답을 들은 엘런은 다시 데피를 보았다.
“묻는 것에는 솔직하고 신속하게 대답한다. 알겠지?”
“예, 알겠…….”
짜악.
엘런의 손바닥이 데피의 뺨을 때렸다. 그의 뺨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대답이 늦었어.”
“알겠습니다.”
데피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대답이 조금이라도 늦었다가는 저 녀석에게 죽을 것이다.’
“내일 거래가 열릴 예정이지?”
“예, 그렇습니다.”
엘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데피의 대답이 돌아왔다.
“좋네, 그러면 거기 참가하는 사람이 누구지?”
“그, 그건…….”
짜악.
데피가 뜸을 들이자 가차 없이 손바닥이 날아왔다. 입안이 터졌는지 입술 밖으로 핏물이 배어 나왔다.
“누가 온다고?”
“여러 명이 있습니다만, 유명한 사람을 들자면 하델 상단의 가렛, 리오디 상단의 게일, 카멜로 남작과 데니 남작, 그리고…….”
데피의 말이 늘어졌다. 뺨을 맞을 것을 걱정한 그는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빨리 말 안 하면 뺨으로 안 끝날 줄 알아라.”
살기로 가득한 눈이었다. 그의 눈을 본 데피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그리고 클리프 자작입니다.”
“아.”
그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들은 데미온은 탄성을 내뱉었다. 생각지도 못한 거물급의 인물들이 이번 인신매매와 연관되어 있었다.
“너 살고 싶냐?”
“살려만 주시면 절대 이런 일은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의 대답은 어느 때보다 빨랐다.
“그럼 내일 거래는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거다.”
“예?”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진행하라고. 현장에서 모조리 잡아야 하니까. 성공하면 너희들은 살려 주지.”
살려 준다는 말에 데피는 다시 넙죽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착하게 살겠습니다.”
“내일 계획이 성공하면 그때 다시 말해.”
엘런은 바닥에 이마를 대고 있는 데피를 뒤로하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덫을 모두 놓아두었으니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평민은 가축과 동일시하는 너희들의 콧대를 뭉개 주지.’
* * *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예전에 산 년들은 질려서 말이야.”
“하긴 그럴 때도 됐습니다. 제가 들어 보니 좋은 녀석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하더군요.”
“그거 기대되는군.”
다음 날 밤, 거래소에서는 예정대로 거래가 열렸다. 저마다 가면을 쓴 사람들이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단상을 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찐득한 눈빛을 보내는 자가 있었다. 그 옆에는 데피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오늘 마지막 상품 경매는 자정에 열 예정입니다. 제대로 준비했으니 어르신께서는 다른 곳에 돈을 아끼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자네가 그렇게 자신하는 거 보니 오늘은 그것만 보면 될 것 같아.”
데피는 무대 뒤에 있는 조직원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경매를 시작하라는 의미였다.
“자, 먼저 이곳까지 걸음을 해주신 어르신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사회를 맡은 아칸입니다. 다들 기다리느라 지치셨을 테니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성들이 올라오자 가면 밑의 눈빛은 더욱 음흉해졌다.
“딱 보기만 해도 오늘 상품들은 모두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경매는 그렇게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럴수록 클리프의 기대감은 깊어졌다. 그의 눈은 자꾸만 시계를 향하고 있었다.
마나로 작동하는 시계가 자정을 가리켰을 때, 아칸의 진행이 시작되었다.
“상품들이 좋아서 그런지 어르신들의 입찰 경쟁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흘렀군요. 드디어 마지막 상품을 소개하겠습니다.”
아칸이 손짓하자 마지막 여성이 올라왔다.
“와아.”
여기저기서 낮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호오.”
그것은 클리프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콧구멍이 벌렁거렸다.
“정말 곱지 않습니까? 자 이 상품은 10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칸이 입찰을 시작하자 가면을 쓴 자들은 경쟁적으로 가격을 불렀다.
“11골드.”
“11골드가 나왔습니다.”
“12골드.”
“네, 12골드입니다. 더 없습니까?”
“15골드.”
“한 번에 3골드를 올려 15골드입니다. 이 상품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칸의 입이 바쁘게 움직였다. 동시다발적으로 나오는 가격에 그는 능숙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50골드.”
드디어 클리프가 움직였다.
“5, 50골드가 나왔습니다. 정말 엄청난 금액입니다. 여기에 도전하실 어르신 계십니까? 없으면 이 상품은 13번 어르신께 돌아가게 됩니다. 없습니까?”
땅땅땅.
“마지막 상품은 13번 어르신이 가져가셨습니다.”
아칸이 경매봉을 두드리며 낙찰을 선언했다. 이제 클리프의 콧구멍에서는 뜨거운 김이 나오는 것 같았다.
“얼른 가지고 와. 여기서 바로 하고 가야겠으니까.”
클리프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방방 뛰었다.
파앗.
그때 단상을 비추고 있던 라이트 마법이 모두 꺼졌다.
어두컴컴해진 단상에서 단 한 곳만이 라이트가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그곳에는 엘런이 서 있었다.
“그래, 바로 가야지. 감옥으로.”
휘리릭.
땅을 뚫고 나온 덩굴이 클리프의 몸을 감아 버렸다.
덜컹.
동시에 출입구가 열리면서 가시부대원들이 진입했다.
“한 놈도 이곳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라.”
“현장 상황 모두 보존해.”
“이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증거다.”
가면을 쓴 자들을 혼비백산해서 거래소에서 빠져나가려 했다.
휘리릭.
하지만 엘런의 마법과 가시부대원들의 활약으로 그곳에 있는 모든 자를 체포할 수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야? 데피, 뭐라 말을 해 보게!”
클리프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용히 하시지요. 뭘 그렇게 잘했다고 소리를 지릅니까?”
엘런이 클리프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너, 넌 뭐 하는 놈이야?”
“베리타티 남작입니다.”
클리프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도 들은 적이 있었다.
“설마 레미 베리타티?”
“제 이름까지 기억해 주시니 영광이네요. 굳이 기억 안 해 줘도 되는데.”
“네가 감히 어떻게 나에게……?”
클리프의 눈이 시뻘게졌다. 그의 몸은 분노와 치욕스러움으로 부들부들 떨렸다.
“인신매매는 프로드 왕국법으로 엄격하게 금지된 행위입니다. 죗값은 받으셔야죠. 데미온, 끌고 가시오.”
“예.”
데미온이 직접 클리프를 구속했다.
“데미온, 넌 크리슈에 있어야 했을 텐데?”
“왕명이 있었습니다. 다난 클리프 자작님, 왕실 헌병대까지 제가 모시겠습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왕명이라는 말에 클리프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자신의 상황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는지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귀족이라는 놈들이 말이야.’
엘런은 끌려가는 인물들을 보며 혀를 쯧쯧 찼다. 그때 뒤에서 가빈, 카빈 형제가 다가왔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그들은 엘런이 귀족인 것을 알고는 경악했었다.
알고 있었든 몰랐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귀족에게 반말을 한 것 자체로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엘런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엘런의 태도에 형제들도 안심할 수 있었다.
“아니야, 너희들 덕분이지, 고마워.”
“아닙니다. 베리타티님의 활약이 제일 돋보였습니다.”
엘런을 보는 그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야.’
‘실력이며, 인성이며, 모두 엄청나셔.’
엘런은 드디어 본론을 꺼낼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가빈, 카빈. 혹시 나랑 같이 가 볼래?”
“그게 무슨 뜻입니까?”
가빈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너희들이 파는 정보를 내가 독점적으로 공급받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