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71
71
인생은 실전 (3)
“여기서 마음껏 연구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마정석 연구가 그루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원하는 만큼 마정석을 공급받고 연구 공간까지 받다니. 이것은 연구가에게 있어 꿈만 같은 제안이었다.
“대체 저에게 왜 그렇게 해 주시는 건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말이 마정석 연구가였지 아직 그는 제대로 된 연구 결과도 낸 것이 없었다.
물론 구상하고 있는 것은 많았지만, 실험할 마정석을 구할 돈이 없었다.
“우연히 자네가 만든 마나 추출기를 본 적이 있네.”
엘런이 정육면체의 작은 상자를 올려놓았다. 그것을 본 그루트의 두 눈이 커졌다.
“그걸 어떻게……?”
그것은 마정석에서 마나를 효율적으로 추출할 수 있는 도구였다. 연구가 진행되던 중 생활고 때문에 집을 모두 팔며 함께 팔았던 것이었다.
“이 물건을 보니 발상이 아주 신선하더군. 나는 앞으로 이 마정석을 여러 분야에 적용하고 싶어. 그리고 자네가 마정석을 이용한 무기 연구를 맡아 줬으면 하군.”
그루트는 침을 꿀떡 삼켰다.
그동안 연구 지원을 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곳을 돌아다녔던가.
문전박대를 당할 때도 절대로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까지 팔게 되면서 그 결심이 많이 무너진 상태였다.
‘드디어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
그가 엘런의 저택으로 들어갈 결심을 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게 보내 주신 믿음에 꼭 보답하겠습니다.”
“전적으로 자네를 믿겠네. 다만.”
“따로 원하시는 바가 있습니까?”
엘런이 뜸을 들이자 그루트가 되물었다.
“지금 바로 연구에 임해 줄 수 있겠는가? 짐을 옮기는데 시간이 든다면 내가 사람을 보내 주겠네. 자네부터 먼저 내 저택으로 와서 연구를 시작해 주게.”
그루트는 엘런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자신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며칠 더 일찍 연구를 시작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그러시는지는 제가 감히 헤아릴 수가 없겠지요. 알겠습니다. 필수적인 것만 챙겨서 지금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그루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장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며칠이라도 빨라야 소문이 멀리 퍼지겠지. 이제 하나만 더 하면 되겠군.’
* * *
‘아직 결정적인 게 부족하단 말이야.’
레오나드는 자기 생각대로 일이 척척 진행되자 신이 나 있었다.
마탑의 고위 마법사들이 도와준 것은 의외였다. 하지만 이제 프로드의 중소 귀족들이 모두 자신의 상소문을 옹호하고 나섰다.
분위기로 봐서는 고위 귀족들도 묵인을 통해 자신의 상소문에 힘을 실어 주는 것 같았다.
‘프로드의 모든 실세가 나를 밀어주고 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레오나드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 정도의 뒷배면 상소문이 통과되는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걸로는 큰 제약을 걸지 못할 텐데. 더 확실하게 보내 버릴 수 있는 게 필요해.’
그의 생각대로 이 정도 꼬투리로는 엘런에게 가할 수 있는 제지는 많이 없었다. 그저 그가 제멋대로 나서지 못하게 견제하는 것 정도가 다였다.
더 나아간다 하더라도 마탑에 등록시켜 그들의 감시를 받는 것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것은 엘런에게 파멸에 가까운 타격을 주는 것이었다.
‘절대 그 치욕감을 잊을 수 없다.’
자신보다 출생 신분이 좋은 것도 아닌 녀석에게 굴욕을 당한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분노의 불꽃은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 때문에 다른 곳으로 튀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저택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상입니다.”
“뭐 더 알아낸 거 없어? 어떻게 매일 저택에서 수련했다는 것밖에 없는 거야?”
원래 정보 길드장이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는 레오나드 떡하니 앉아 있었다.
레오나드는 앞에 서 있는 정보 길드장을 쏘아붙였다.
‘네놈이랑은 달리 매일 마법 수련과 체력 단련에만 힘쓰는 걸 나더러 어쩌라는 거야?’
길드장 메튜는 당장이라도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 같은 말을 애써 삼켰다.
“죄송합니다.”
“내가 죄송하다는 소리 듣자고 이런 말을 했겠냐? 진심을 보여 달라고 진심을, 이런 성의 없는 정보 말고.”
촤락.
레오나드가 들고 있던 종이가 바닥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저 새끼가 진짜.’
메튜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표정만큼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상대는 마법사이자 양자이긴 했지만, 콜먼 가문의 사람이었다.
“다음에는 훨씬 유용한 정보를 들고 오겠습니다.”
“실례합니다. 말씀을 나누고 계시다는 걸 알았지만, 급한 정보가 있어 결례를 범하게 됐습니다.”
그때 엘런의 정보를 수집하고 다니던 길드원 하나가 응접실로 급하게 들어왔다.
“아아, 괜찮아. 보고해 봐.”
정보의 생명은 정확성과 신속성이다. 정보 길드의 장인 메튜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그 때문에 그는 길드원의 무례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어디 높으신 분들 이야기하고 있는데 무례하게 말이야. 넌 중요한 정보가 아니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라.”
하지만 레오나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살벌한 눈빛으로 길드원을 째려보았다.
“그 그것이…….”
어쨌거나 레오나드는 마탑에서 잘나가는 마법사였다.
그의 살기를 정면으로 버티기에는 길드원의 기력이 부족했다.
“이것입니다.”
그는 벌벌 떨리는 몸을 억지로 진정시키며 종이 뭉치를 그들에게 제출했다.
“흥.”
레오나드는 콧방귀를 끼며 그가 제출한 종이를 집어 들었다. 엘런의 하루 동선이 적혀 있었다. 지금까지와 다를 바 없는 방식이었다.
“또 주야창천 수련이나 하고 있겠지. 응, 이건……?”
레오나드는 탁자에 종이를 내려놓고는 벌떡 일어섰다. 그런 반응은 메튜도 마찬가지였다.
“그놈이 아무도 모르게 무기를 개발하려 한단 말이야?”
보고서에는 엘런의 며칠간 동향이 쓰여 있었다.
그중 최근 들어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 있었다.
집에 들어갈 일이 없어서 자세히 확인은 못 했지만, 그곳을 엘런을 제외하고 그곳에 출입하는 자가 바로 그루트였다.
‘무기를 주로 연구하는 자라…….’
주변에서 정보를 수집해 보니 그곳으로 무기 재료들이 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심지어 이게 왕실에 보고가 되는 연구 내용과 다르다는 것이지?’
그는 평범한 정보 길드원이 왕실의 정보를 어떻게 구했는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레미 베리타티 남작이 왕실 몰래 신무기를 연구하고 있다.
이 사실이 가장 중요했다.
신무기 연구는 반드시 왕실에 보고하고 왕실의 관리, 감독 하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과거 프로드에서는 당시의 수준보다 훨씬 강력한 검 제작법을 만든 가문이 그 검을 이용해 반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결국 진압되기는 했지만, 그 사건의 충격은 컸다. 그래서 왕실은 혹시 모를 반란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무기 개발을 직접 관리하는 것이다.
‘몰래 신무기를 연구하는 것은 중죄에 해당한다. 네놈이 저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겠군.’
그 장면을 상상만 했는데도 레오나드의 광대가 툭 튀어나왔다.
“야, 너. 지금 당장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추가 증거를 찾아와.”
그가 길드원에게 명령했다. 길드원은 조심스럽게 메튜를 쳐다보았다.
끄덕.
레오나드의 성질을 잘 알고 있는 그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길드원은 곧장 엘런의 저택으로 달려갔다.
* * *
며칠 후, 알베르토는 지방 군소 귀족과 마탑의 상소를 완전히 무시하지 못하고 엘런을 왕실로 소환했다.
“내 경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레미 베리타티 경을 추문 할 자리를 마련했다.”
알베르토의 앞으로 도열해 있던 귀족들이 한쪽 무릎을 굽히며 국왕에게 예를 표했다.
“후우.”
알베르토는 이런 상황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라는 것은 자신의 마음대로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레미 베리타티를 데려와라.”
덜컹.
국왕의 명이 있자 대전의 문이 열렸다.
뚜벅뚜벅.
열린 문으로 엘런이 걸어왔다.
그는 열한 걸음을 걷고는 오른쪽 무릎을 꿇었다.
“레미 베리타티, 경이 프로드의 충심임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다만, 경의 무분별한 마법 남용에 대해 추문할 것이 있어 이렇게 불렀노라. 경은 진실만을 말한 것을 맹세하겠나?”
엘런은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올렸다.
“신 레미 베리타티, 국왕 폐하의 어떤 질문에도 진실만을 고할 것을 맹세합니다.”
“알았다. 그만 몸을 일으키라.”
왕실의 예법이라는 것은 여러모로 복잡했다. 엘런은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순서에 맞춰야 했다.
“경은 어째서 마탑에 속하지 않는 것인가. 마탑에서는 마법사를 조직화함으로써 행여나 일어날 수 있는 문제를 예방한다. 또한 마법사를 위한 체계적인 지원도 있다. 경의 능력이라면 마탑에 속하고도 남을 텐데?”
알베르토는 상소문을 참고하여 그들의 의견을 반영한 질문을 던졌다.
“저는 원래 마탑에 들어가기에 턱없이 부족한 인물이었습니다. 우연한 계기로 스승을 만나 실력의 증진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 스승은 신에게 결코 마탑에 들어가지 말 것을 남기고 타계했습니다.”
엘런은 미리 준비해 놓은 답변을 줄줄 말했다.
“그 뜻은 잘 알겠군. 그런 개인적인 이유로 마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이해한다. 하나 그러한 이유로 고위 마법사를 아무런 관리도 없이 두기는 곤란하다.”
“저는 폐하의 신하이자 전략관으로 왕국군의 전력 강화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이렇듯 저는 폐하의 관리 하에 놓여 있습니다.”
이후로도 알베르토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1시간이 지나도록 그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군소 귀족들의 상소문이 많았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엘런 역시 모든 질문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마치 질문 자체를 미리 알고 대비해 온 사람 같았다.
‘이게 아닌데.’
‘전부 피해 나가고 있어.’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야 한다.’
상소문을 올린 귀족들은 추문의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엘런이 곤경에 처할 것을 예상했던 그들은 당황하고 있었다.
‘미꾸라지 같은 녀석. 하는 수 없군.’
오직 한 사람. 레오나드만이 평온했다. 오히려 자신감에 넘쳤다.
“국왕 폐하, 신 레오나드 콜먼이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나이다.”
그는 추문이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간 틈을 타 얼른 발언권을 요청했다.
알베르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저놈이 최초로 상소문을 올린 놈인가?’
발언권을 주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가 너무나 좋은 순간에 치고 들어왔다.
레오나드는 이런 분위기를 읽는 것에는 도가 터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더냐?”
레오나드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레미 베리타티 남작의 모반 행위를 낱낱이 고하고자 합니다.”
“모반?”
“베리타티 남작이 모반이라니?”
“그 행위가 무엇이란 말인가?”
호시탐탐 엘런을 노리고 있던 귀족들이 큰 반응을 보였다.
“고센 제국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베리타티 경이 모반이라?”
알베르토의 말에 레오나드는 엘런의 동선을 기록해 놓은 종이를 꺼냈다.
“이 종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최근 들어 그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르는 곳이 있습니다.”
레오나드가 종이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레오나드의 손가락 끝으로 모였다.
“이곳은 바로 그가 폐하를 기만하고 몰래 신무기를 연구하고 있는 곳입니다.”
이번에는 그의 시선이 엘런을 향했다.
“베리타티 남작님, 당신이 고용한 그루트는 마정석을 이용한 무기를 연구하는 자였습니다. 또한 당신의 저택으로 무기 제작에 필요한 물자들이 흘러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엘런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레오나드는 승리를 확신했다.
“아니, 정녕 그런 일을 벌이고 있었단 말이오?”
“어째서 몰래 신무기를 연구한 것이지? 그 무기로 폐하가 계시는 왕궁을 공격이라도 하려는 예정이었나?”
귀족들 역시 엘런을 몰아붙였다. 예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이 그를 끌어내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그들도 알고 있었다.
“폐하, 프로드의 국법은 신무기의 개발을 엄격한 관리와 통제 속에서 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 베리타티 남작은 그 지엄한 국법을 어기고 몰래 무기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모반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가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알베르토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폐하, 하명하시옵소서.”
레오나드는 주변의 분위기를 읽는 것에 능했다.
그리고 지금 그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왕실이 모르게 신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지엄한 국법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이는 마땅히 중죄로 다스려야 한다.”
그제야 알베르토가 입을 열었다.
“하나 말이지, 왕실이 모르게 했을 때만 그렇다는 것이지.”
그의 말뜻을 알아차린 레오나드가 고개를 홱 돌려 엘런을 보았다.
그는 레오나드를 보며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