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72
72
케니프라의 이상 징후 (1)
“베리타티 남작이 만들고 있는 신무기는 이미 왕실의 협력을 받아 연구하고 있었다. 전략관으로서 왕국군의 전력 강화를 도모하겠다고 하더군.”
레오나드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뒷조사를 한 정보로는 왕실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그 순간 번쩍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시장판에 널린 정보 길드의 일개 길드원이 왕실의 정보를 샅샅이 알고 있을 수 있나?’
그런 의심이 들고 보니 이상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엘런을 끌어내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이성적이지 못했던 것이다.
머리가 차가워지고 의심의 꼬리를 따라가 보니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 새끼가 일부러 정보를 흘렸구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손톱이 살갗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그럼 그렇지.”
“일개 마법사 놈이 괜히 우쭐거리기는.”
“저 녀석 때문에 괜히 꼬투리 잡을 거리만 없어졌잖아?”
“누가 평민 출신 아니랄까 봐. 성만 단다고 없던 피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귀족들의 반응도 일순간에 변해 버렸다. 레오나드를 향하고 있던 기대의 시선은 이제 경멸의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며칠 사이 진척 상황을 전혀 듣지 못했군. 하루가 멀다고 유의미한 발전 사항을 보고했는데 말이야.”
반면에 알베르토와 엘런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송구하게도 폐하께 보고를 올릴 성과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와 연구원이 힘을 모으고 있으니 곧 좋은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방금까지 엘런을 몰아붙이던 주변의 시선도 한층 꺾여 있었다.
“베리타티 경은 연구 성과 자료를 모두 넘겨줄 예정이었다. 프로드 왕실의 명성을 드높이기 위해 왕실의 주도로 연구를 진행한 것으로 하겠다는 말까지 했었지.”
엘런은 레오나드의 계략을 눈치챘을 때부터 이 상황을 계획하고 있었다.
“과인은 이토록 충직한 신하를 본 적이 거의 없다. 경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러자 눈치 빠른 한 귀족이 재빨리 한쪽 무릎을 꿇었다.
“베리타티 남작의 충심이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저희도 보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엘런의 상소에 소극적이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몫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문제는 적극적으로 그를 몰아간 이들이었다. 그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알베르토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으면 되겠군.’
추문의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알베르토에게 넘어갔다.
“추문의 결과를 말하겠다.”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레미 베리타티 남작의 마법 남용 및 통제 불능 상태에 대한 우려는 미비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군소 귀족과 마탑의 우려를 전혀 무시하지는 않는 바, 베리타티 경에게 마탑의 임무를 수행할 것을 명한다.”
알베르토는 둘 중 어느 쪽도 버리지 않았다.
이미 승기가 넘어간 상황에서도 귀족들의 의견을 일부 반영해 주었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이 정도로도 그들의 반발은 잠재울 수 있었다.
엘런 역시 임무 수행 정도는 귀찮을 뿐이었지만,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마탑에서는 일전에 일러 준 대로 상소문에 대한 선별 체계를 갖추도록 하라.”
알베르토의 시선이 레오나드를 향했다. 그 따가운 시선에 그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명심하겠습니다.”
마탑의 대표 격인 올란도가 대답했다. 그 역시 일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은 탓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 녀석이 괜한 소리를 해서 일을 그르쳤군. 평민 놈에게 너무 큰 걸 맡겼어.’
레오나드는 그저 부들부들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탑의 촉망받는 인재였던 그는 이처럼 많은 이들의 멸시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 기분은 상상 이상으로 수치스러웠다.
“그럼 이것으로 추문을 마치지.”
알베르토의 선언과 함께 엘런을 귀찮게 하던 추문이 끝이 났다.
* * *
“잘 끝나고 오셨습니까?”
“생각대로 한 방 먹여 주셨죠?”
가빈과 카빈 그리고 그루트가 추문을 마치고 돌아온 엘런을 반겼다. 이제 저택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의 물음에 엘런은 웃음으로 답해 주었다.
“너희들이 모아 준 정보 덕분이야.”
“에이, 별말씀을요.”
“해리포드의 정보는 저희에게 맡기세요.”
이제 정보 길드 아르곤도 그 형태를 점점 갖추어 가고 있었다.
믿을 만한 직원도 몇 명도 고용했고 체계적인 정보 선별 작업에도 들어갔다.
“그루트, 네가 일찍이 연구에 들어가고 성과를 내준 것이 결정적이었어. 폐하께서도 칭찬 일색이더군.”
그루트는 행복하기만 했다.
돈이 되지 않는 연구를 한다며 얼마나 많은 멸시를 받았던가.
하지만 이곳에 오고 나서부터는 전폭적인 신뢰를 받으며 연구할 수 있었다.
“앞으로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은 그루트의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이었다.
“시간이 넉넉하지는 않으니 조금만 서둘러 줘.”
“예, 알겠습니다.”
그루트는 엘런이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볼 수 없는 무언가를 보고 계시겠지.’
엘런은 앞으로 3년 정도 후에 일어날 사건을 떠올렸다. 폭주하는 몬스터와 북서쪽 지방의 참사.
‘그 틈을 타 주변국이 프로드의 국익을 침탈했었지.’
몬스터의 폭주를 미리 대비하지 않은 탓에 북서쪽 지방은 몬스터들에게 점령당하다시피 되었다.
이미 퍼져 버린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프로드는 주변국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그들의 도움으로 사태를 정리할 수는 있었지만, 그 대가로 빼앗긴 것이 많았다.
또 어째서 몬스터들이 폭주했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에는 철저히 준비해야 해.’
그는 아르곤의 정보력을 이용하여 몬스터들의 징후를 파악할 생각이었다. 아직까지 전국의 정보를 다룰 규모는 아니었지만, 특정 지역의 정보 수집은 가능했다.
“가빈. 북서쪽 지방의 케니프라 지역 정보를 수집해 줘. 카빈은 계속해서 공학자들의 소재를 파악해 주고.”
형제들 역시 엘런의 말에 따로 토를 달지 않았다. 그가 요구하는 정보는 자신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앞을 내다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 * *
‘어떻게 된 거지?’
추문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났다. 엘런은 지금 케니프라 지역으로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분명 3년 후에 일어나는 사건이었는데.’
엘런은 며칠 전 자진해서 마탑에 출석했다. 모두가 가기를 꺼리는 케니프라 지역의 임무를 수행하겠다는 것이었다.
마탑은 그의 선언을 반겼다.
사실 케니프라는 매년 몬스터들의 잦은 침공을 받는 곳이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지원군을 요청했다. 하지만 막상 지원을 가 보면 그들의 힘만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을 때가 많았다.
무엇보다 케니프라는 수도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가려는 사람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왕실은 지방 귀족의 엄살과 중앙 지원군의 불평이 모두 듣기 싫었다.
그래서 귀족 평가를 할 때 지원 요청 횟수를 반영하는 방식으로 그들을 통제하려 했다.
엘런이 자진해서 이렇게 귀찮은 임무를 수행하려 한 이유는 아르곤을 통해 들어온 정보 때문이었다.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음. 기초적인 전략 전술을 사용하기까지에 이름. 몬스터들의 기본적인 골격과 근육도 커져서 지방 영주군이 고전하고 있음.
그 정보를 듣는 순간 엘런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3년 후에 있을 사건의 징후였기 때문이다.
엘런은 그 정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마탑에서 임무를 받아 온 것이었다.
‘이번에는 미래가 앞당겨진 건가?’
무슨 일을 해도 벌어지는 미래. 르와투르 협곡 전투가 그랬다.
전제 상황이 달라졌지만, 결국에는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시기가 앞당겨졌다. 분명 같은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몬스터들의 징후를 보면 알 수 있었다. 그것이 3년 후에 일어나야 했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내가 직접 보고 와야겠지.’
엘런은 그루트의 연구실로 갔다. 그는 밤을 새운 것인지 퀭한 눈이었다.
“그루트, 혹시 내가 말한 것은 어떻게 됐어?”
그루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도저히 불가능했습니다. 어떻게든 형태를 구현하는 것까지는 해냈는데 그것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엘런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였다.
“아니야. 애초에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았어. 그래도 자네 정도는 되니까 형태만이라도 구현할 수 있었던 거야.”
“감사합니다.”
그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사실 엘런은 이토록 짧은 시간에 실험작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한순간만이라도 구현할 수 있다면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그 실험작을 있는 대로 줄 수 있나?”
“그것이 혼자서 들고 가시기에는 무리가 있을 겁니다.”
그루트는 곤란해하며 엘런을 창고로 데려갔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100자루 정도의 검과 창이 있었다.
“이렇게나 많이 만들었단 말이야?”
“이제부터는 실전 실험 단계이다 보니 많이 만들게 됐습니다. 전부 구현까지는 가능할 것입니다. 원료가 되는 마정석 또한 들어가 있습니다.”
엘런은 검과 창에 경량화 마법과 소형화 마법을 걸었다.
“고맙군. 앞으로 연구에 더 박차를 가해 줘.”
“여부가 있겠습니까. 남작님께서 돌아오셨을 때는 훨씬 더 발전해 있을 것입니다.”
“기대할게.”
* * *
해리포드에서 북서쪽으로 한참을 달려가야 있는 케니프라 지역. 그곳은 대륙을 종단하고 있는 피어산맥에서 프로드로 들어오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피어산맥은 몬스터가 득실거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고블린과 같은 하급 몬스터부터 오우거와 같은 최상급 몬스터까지 모든 종류의 몬스터가 있었다.
케니프라 지역은 프로드로 들어오는 몬스터를 막는 방파제 같은 곳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잖아?’
케니프라 지역의 모습은 훨씬 심각했다. 후방은 문제없었지만, 피어산맥 쪽으로 다가갈수록 문제였다.
마을은 텅텅 비어 있었고 건물은 여기저기가 무너졌다.
곳곳에서 피 냄새가 섞여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단 말이야?’
새삼스럽게 왕국의 보고 체계에 대해 놀라고 있을 때였다.
“으아아악.”
“살려 줘.”
“버텨라! 버텨야 한다.”
“내 주위로 모여라. 흩어지면 안 된다!”
끔찍한 비명과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가 엘런의 예민한 귀에 들려왔다.
커다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일방적으로 인간이 당하고 있는 소리였다.
‘저 앞의 숲인가?’
엘런은 서둘러 그쪽으로 말을 몰았다.
“취륵.”
“끄아악!”
숲속에서는 몬스터와 인간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엘런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대로 20분만 놓아두면 인간은 몰살당할 것이었다.
“뭣들 하는 거야? 밀리지 말고 싸우란 말이야. 여기서 죽을 수 없어!”
맨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고 있는 자도 보였다. 번쩍이는 갑주와 거추장스러운 투구가 그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일단은 내가 나서야겠군.’
엘런의 손이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