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73
73
케니프라의 이상 징후 (2)
“아버지도 참, 그렇게 위험한 곳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내다니.”
화려한 장식이 들어가 있는 갑옷을 착용한 사내가 툴툴거렸다.
“그래도 레네 님의 활약으로 리틀 게이트를 보수했지 않습니까. 이제 내부의 몬스터만 정리하면 됩니다.”
그 사내의 옆에서 말을 타고 있는 자는 스태프를 들고 있었다. 복장을 보니 마법보조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케니프라 게이트만 지키면 되겠지. 얼른 이 지긋지긋한 전쟁이 끝났으면 좋겠다.”
그들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병사들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피부는 푸석푸석했고 눈은 퀭했다.
연속되는 전투로 지쳐 있어, 걸어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소영주님, 전방에 있는 바코로 숲을 돌아서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수행기사가 지도를 펼쳐 들며 그에게 다가갔다.
“리틀 게이트가 돌파당한 후 영지 곳곳에 몬스터 무리가 퍼져 있습니다. 바코로 숲은 울창한 산림 탓에 시야 확보가 어렵습니다. 만약을 위해서라도 숲을 가로지르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케니프라 지역의 소영주 레네 바클러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리틀 게이트를 막으러 갈 때도 바코로 숲을 가로질렀지 않아? 그게 훨씬 시간도 절약되고 말이야.”
“그때는 상황이 너무 급박했습니다. 리틀 게이트로 몬스터가 쏟아져 들어왔으니까요.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야만 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그곳을 돌파한 것입니다.”
수행기사의 냉철한 분석에도 레네는 요지부동이었다.
“나는 얼른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 이번 원정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거든. 뒤에 병사들도 봐. 다들 지쳐 있잖아. 이 상황에서 괜한 의심 때문에 며칠이 더 걸리는 길로 가겠다고?”
수행기사도 뒤따라오는 병사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다.
‘하긴, 올 때도 별일 없었으니까. 바코로 숲까지 몬스터가 점령했다는 소식도 없었고.’
“소영주님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수행 기사는 고개를 숙이며 레네에게서 멀어졌다.
바코로 숲은 울창한 산림 탓에 나무꾼이 아니면 들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한번 보여 달라니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마나는 항상 아껴 둬야 합니다.”
레네는 스태프를 들고 있는 사내에게 칭얼거렸다.
“너, 계속 고용 관계 유지하고 싶으면 잘해야 할 텐데?”
레네의 협박에 그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밥줄을 쥐고 있는 것이 바로 저 소영주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깐만 보여 드리겠습니다.”
레네가 기대감에 찬 얼굴로 그에게 주목했다.
“그대의 힘은 생명의 근원이 되어 세상을 적실 것이다, 아쿠아.”
촤아악.
그의 손에서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굉장하잖아?”
레네는 사내의 마법을 보며 손뼉을 쳤다. 마치 광대의 재롱을 보고 기뻐하는 어린아이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쐐애애애액.
숲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퍼억.
곧이어 머리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한 병사가 피를 뿜었다.
“뭐야? 이게 어떻…….”
그 병사는 말을 끝마치지 못하고 방금 전 자신의 전우와 운명을 같이했다. 사방에서 커다란 돌멩이가 날아온 것이다.
“레네 님, 습격입니다!”
레네는 머리가 삐쭉 서는 것 같았다. 양옆에서 수백 마리의 오크와 고블린들이 뛰쳐나오고 있었다.
“끼에엑!”
“취륵.”
이런 곳에 왜 이렇게 많은 몬스터가 있단 말인가.
리틀 게이트부터 바코로 숲까지 이어지는 경로의 마을이 공격받았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저 녀석들이 우리 몰래 이곳에 온 건가?’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의 몬스터처럼 주변 마을을 닥치는 대로 부수는 것이 아니었다.
“막아라, 대열을 무너뜨리지 마라!”
전투 경험이 많았던 수행기사가 전투를 지휘했다. 하지만 그의 외침은 허공으로 흩어질 뿐이었다.
오크들은 무지막지한 덩치로 도끼를 휘둘러 댔다. 그 도끼에 맞은 병사들은 한 번에 머리가 뭉개졌다.
“도일! 어떻게 좀 해 봐.”
레네는 다급하게 스태프를 들고 있던 사내를 불렀다.
“매섭게 타오르는 불꽃이 되어 모든 것을 불살라 버려라, 파이어볼.”
도일도 당황하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는 많은 실전을 경험한 마법보조사였다. 그는 밀집된 적에게 큰 효과를 내는 파이어볼을 사용했다.
하지만 그가 이 전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일개 마법보조사가 전장의 상황을 역전시킬 수는 없었다.
“끼이익!”
불에 타고 있는 고블린들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남아 있는 몬스터가 너무 많았다.
“내 주위로 모여. 흩어지면 안 된다!”
겁에 질린 레네가 소리쳤다. 그의 명령을 듣는 병사는 아무도 없었다.
“뭣들 하는 거야? 밀리지 말고 싸우란 말이야.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
그는 급기야 눈을 꼭 감으며 악을 썼다. 이곳에서 죽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르르륵.
“꾸에에에엑.”
돼지 멱따는 소리가 들렸다. 고기 굽는 냄새도 같이 났다. 레네는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파지직.
번쩍거리는 전기가 곳곳에서 터지고 있었다.
‘도일이 한 건가?’
레네는 자신의 부대에 있는 마법보조사를 떠올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건 절대 그가 연출할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그럼 누구지?’
그런 생각과 동시에 그의 눈에 들어온 한 사내가 있었다. 펄럭거리는 검푸른 색 로브 사이로 그의 얼굴이 언뜻 보였다.
스윽.
그의 손짓은 우아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 우아한 손짓 한 번에 몬스터 몇 마리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저거 사람 맞아? 마법을 저렇게 쓰는 놈이 어디 있어?’
도일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마법보조사였기에 더욱 격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고위 마법사인가?’
퍼억.
커다란 바위가 생겨나더니 오크 2마리를 깔아뭉갰다.
“마법사님이 우리를 도우러 오셨다! 모두 정신 차려.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건 도일이었다. 그는 누군지 모르는 저 마법사의 등장으로 전세의 분위기를 확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와아아.”
“우리도 보여 주자.”
“인간을 우습게보지 말란 말이야.”
병사들은 검과 창을 고쳐 쥐었다. 그들의 눈빛에 투지가 돌기 시작했다.
“그대의 권능은 모든 것을 움켜쥐어 정화할 것이다, 버닝 핸즈.”
도일 스스로도 자신감을 얻었다.
그렇게 몰살 직전에 서 있던 부대는 오히려 몬스터들을 몰살시켰다.
“저희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아니었으면 집에 돌아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전투가 끝나자 병사들은 검푸른 로브의 사내에게 넙죽 절을 했다.
레네는 그 사내에게 다가갔다.
그의 무위를 보면 단번에 고위 마법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마탑의 마법사를 대하는 예를 표했다.
“정말 고맙소. 그런데 누군지 물어봐도 되겠소?”
“레미 베리타티 남작이오. 케니프라 지역의 지원 요청을 받고 오는 길이었소.”
그 말에 레네보다 더 놀란 사람은 도일이었다.
‘레미 베리타티? 설마 침묵의 마법사? 마탑을 엿 먹인 그자?’
동료들에게 그에 관한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마탑이 자랑하는 고위 마법사를 손쉽게 이긴 마법사.
그러면서도 마탑의 등록 제의를 그 자리에서 거절해 버린 마법사에 관한 소문이었다.
그가 마법을 사용할 때는 주문을 전혀 외우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게 붙은 별명이 침묵의 마법사였다.
도일은 그것이 과장된 소문이라고 생각했다. 주문을 외우지 않는 마법사라니,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저 주문을 극도로 단축시켰다는 표현인 줄 알았다.
‘정말로 있었다니. 입술을 달싹이기조차 하지 않는 침묵의 마법사.’
하지만 그는 직접 두 눈으로 그 모습을 확인했다. 그저 손짓만으로 마법을 발동시키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베리타티 남작, 고맙소. 나는 케니프라 지역의 소영주 레네 바클러요. 리틀 게이트 보수를 마치고 케니프라 게이트로 돌아가는 중이오.”
레네가 악수를 청했다. 엘런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마침 잘됐군. 나는 지금 케니프라 게이트로 가고 있는 중이오. 바클러 경도 그곳으로 가고 있다면 안내를 해 주겠소?”
레네는 그의 요청이 반가웠다. 케니프라 게이트 근처까지 몬스터가 퍼져 있을 줄 몰랐다.
이제 이곳도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마법사가 동행을 해 준다니, 오히려 그들이 보호를 받는 형국이었다.
“알겠소. 내가 그대를 안내하지.”
척.
레네가 수행기사에게 손짓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수행기사는 병사들을 지휘했다. 그들은 능숙한 몸놀림으로 동요의 시체와 몬스터 사체를 수습했다. 매년 몬스터들과 전쟁을 벌이는 케니프라였다. 이곳의 병사들은 전후 수습에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출발한다.”
레네의 명령에 맞춰 부대는 다시 케니프라 게이트를 향해 움직였다.
* * *
“리틀 게이트가 돌파당한 것이오?”
엘런은 도일에게 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는 알 수 있었다.
레네는 현재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이 지역에서 주로 활동하는 마법보조사인 도일이 상황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이곳 케니프라는 매년 몬스터들의 침공이 잦은 곳입니다. 하지만 이번 해에는 유독 거셌습니다.”
케니프라는 피어산맥을 따라 길게 성벽이 세워져 있었다.
피어산맥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성벽의 양쪽 끝에 있는 리틀 게이트와 케니프라 게이트가 전부였다. 그곳에는 성벽이 아니라 말 그대로 통로가 있었다.
피어 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국가들은 처음에 저마다 몬스터의 침공을 막기 위해 산맥 주위로 성벽을 둘렀다.
하지만 그렇게 되니 피어산맥 안에서 몬스터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갈 곳이 없어진 몬스터들은 강력한 생존 본능에 사로잡혀 인간의 성문을 공격하러 왔다.
그래서 주변국들은 협정을 맺어 성벽의 양 끝에 구멍을 만들었다. 그곳으로 몬스터를 유인해 수를 조절하기로 한 것이다.
“연례행사와도 같은 몬스터와의 전쟁 탓에 각 게이트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폭주하는 몬스터 탓에 리틀 게이트가 돌파당해 버렸습니다. 그곳으로 몬스터가 쏟아져 들어왔고 저희는 서둘러 그곳을 막으러 간 것입니다.”
엘런은 습격 받은 것 같은 마을의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재 몬스터들의 상태입니다. 몬스터들의 힘이 예년보다 훨씬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두려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마치 광전사의 모습이었습니다.”
도일은 진저리를 치며 말했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무작정 달려들기만 하느냐? 그것은 아닙니다. 마치 누군가의 지휘 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한 것 같소.”
몬스터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중대한 문제였다.
몬스터는 인간보다 월등히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녀석들을 몰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인간의 지성과 연합 때문이었다.
옆에서 도일의 말을 듣고 있던 레네도 불안함을 느꼈다.
‘사건 자체는 변함이 없다. 그저 시기가 앞당겨진 것뿐.’
엘런이 과거에 겪었던 사건과 변함은 없었다. 그때에도 몬스터의 폭주와 조직적인 움직임에 의해 케니프라의 게이트가 모두 돌파당했다.
‘이번에는 내가 그 이유를 밝혀 내야겠어. 실마리는 피어 산맥에 있겠지?’
생각이 거기에 이르렀을 때, 레네의 목소리가 들렸다.
“케니프라 게이트에 도착한 것 같소. 상황이 좋지는 않은 것 같은데.”
케니프라 게이트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