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75
75
피어 산맥 (2)
쿠오오오.
누구의 것인지 모를 포효가 일자 주변에 있던 새들이 깜짝 놀라 날아갔다.
피어 산맥.
인간의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 몬스터들의 소굴.
웬만큼 강한 자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들어와야 하는 위험천만한 곳.
엘런은 그곳에 발을 들였다.
-생전에 왔을 때보다 분위기가 더 으스스해졌군.
‘스승님이 으스스하다고 하는 게 썩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피어산맥은 울창한 나무 탓에 대낮임에도 숲은 어두웠다. 엘런은 스태프로 수풀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키에엑.”
고블린의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멀리서만 들려오던 포효와는 달랐다.
‘이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겠군.’
엘런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몬스터들의 이상행동을 조사하러 온 만큼 몬스터들을 직접 만나 볼 필요가 있었다.
“키익.”
수풀을 살짝 걷어 내자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보였다.
‘찾았다.’
엘런은 발달된 감각 탓에 고블린들이 인식하지 못할 만한 거리에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녀석들은 커다란 상자를 수레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있었다.
‘흐음?’
엘런은 시력을 강화해서 그 수레를 자세히 보았다.
‘저거 고블린들이 만들 만한 수준이 아닌데?’
고블린과 같이 유사인종 몬스터들은 간단한 도구를 만들어 쓰고 서로 의사소통을 할 정도로 지능이 발달되어 있긴 했다. 하지만 저토록 정교하게 수레를 만들 수 있는 고블린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그 수레는 마치 인간이 만든 것 같았다.
“키익, 키익.”
엘런의 눈에 홉고블린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커다란 박도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있었다. 고블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끼릭끼릭.
고블린들은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수레를 끌고 갔다.
‘마치 보급품을 옮기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리 지능이 있다지만, 그것들은 몬스터에 불과했다. 저런 체계성을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래, 이렇게 관찰만 해서는 알아낼 수 없지. 한번 부딪쳐 봐야겠어.’
엘런은 스태프를 들어 고블린을 겨눴다.
‘아이스 스피어.’
퍼억.
날카로운 얼음이 고블린 한 마리의 심장을 관통했다.
“키익.”
“키에엑.”
그 모습을 본 고블린들이 당황한 듯 괴성을 질러 댔다.
허둥대고 있는 녀석들과 달리 홉고블린은 아이스 스피어가 날아온 방향을 보았다.
녀석의 시선이 엘런이 숨어 있던 수풀에 이르렀다.
“키익.”
자신의 부하를 죽인 녀석을 발견한 그는 곧바로 달려들었다. 그를 따라 다른 고블린들도 함께 달려들었다.
‘방향을 보고 위치를 찾아내다니. 자기는 홉고블린이다 이건가?’
수십 마리의 고블린이 한 사람에게 달려드는 광경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하지만 엘런은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
파악.
아이스 스피어가 3마리의 고블린을 뚫었다.
앞서가던 녀석들이 쓰러졌지만, 녀석들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움 따위는 없는 것처럼 엘런에게 돌진했다.
‘광폭화되었구나.’
그는 윈드커터에 팔이 떨어져 나간 상태로도 자신에게 돌진해 오는 고블린을 보며 생각했다.
“키에엑.”
고블린들의 온몸에는 핏줄이 울룩불룩 튀어나왔다. 녀석들은 시뻘게진 눈을 한 채 괴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그것이 엘런에게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화르륵.
그가 스태프를 휘두르자 엘런과 고블린들 사이로 불의 장벽이 생겼다.
그 불꽃은 엘런의 조종에 따라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잘 모여 있으라고.’
엘런의 불꽃이 그대로 고블린을 덮쳤다.
수십 마리의 고블린들은 금방 잿더미가 되어 버렸다.
“끼이이.”
졸지에 혼자가 되어 버린 홉고블린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아, 넌 안 죽일 거니까 걱정하지 마.”
휘리릭.
마나로 된 끈이 순식간에 홉고블린의 몸을 묶어 버렸다.
그러자 그는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좀 가만히 있어. 이제부터 조사해야 하니까.”
엘런은 홉고블린이 발버둥 치지 못하도록 바인더 마법을 몇 개 더 사용했다.
완전히 꽁꽁 묶여 버린 홉고블린은 아등바등하지도 못했다.
‘스캔.’
그는 홉고블린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뭐지?’
녀석에게서 감지되는 마법이 하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마법이었다.
슥슥.
엘런은 분석한 마법의 수식을 바닥에다 썼다.
-그건 설마 이 마법의 수식이냐?
엘런이 바닥에 쓰고 있는 식을 본 프로뱅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예. 역시 빠진 부분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처음 보는 마법이다 보니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는 쓰인 식을 지우려 했다.
-아니!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스캔 마법으로 감지한 후 곧바로 그 마법의 수식을 쓰다니 놀라울 따름이구나.
스캔 마법은 그저 마법을 감지해 주는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마법이라면 상관없지만, 처음 보는 마법이라면 마법의 유무 외에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한다.
-이론에 능통한 마법사들이 분석을 통해 수식을 도출하는 것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토록 이른 시간에 수식을 도출하는 이는 없었다. 그야말로 마도의 극한을 보고 온 것이란 말인가.
‘수식은 분석했지만, 들어 본 적도 없는 마법입니다. 스승님은 혹시 이게 무슨 마법인지 아시겠습니까?’
프로뱅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엘런이 말을 걸어왔다.
-흠, 나도 처음 보는 마법이구나. 리치가 되어서까지도 마법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거늘.
프로뱅의 말을 들은 엘런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스승님도 알지 못하는 마법이라니.’
프로뱅은 생전에 7서클을 달성해 대마법사의 칭호를 받은 자였다.
그런 그도 모르는 마법이라니.
엘런은 궁금증을 가지고 수식을 분석했다.
‘대상이 술자와 어떤 연결이 되는 것 같고 이건 광폭화 부분인가? 그 이상은 전혀 모르겠네.’
전체적인 뼈대는 그가 알고 있는 마법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 문제는 아주 기본적인 틀만 비슷하고 나머지는 완전히 낯선 체계였다는 것이다.
‘어쩐다. 이걸 풀어내야 몬스터들이 미쳐 날뛰는 걸 막을 수 있는데.’
온갖 난리를 피우던 홉고블린이 제풀에 지쳐 쓰러졌다. 그때까지도 엘런은 수식 분석에만 몰두했다. 유일한 실마리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거 정말 모르겠군.’
아무리 수식을 분석해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마법을 구현해 낼 수는 없었다.
현재 알 수 있는 부분은 광폭화에 관련된 수식과 대상과 술자가 연결되는 수식이 전부였다.
‘아, 그러면 되겠구나.’
순간 엘런에게 번뜩이는 생각이 떠올랐다.
‘스승님, 이거 마법의 주체가 되는 이 부분을 저로 바꾸면 이 녀석이 저와 연결되지 않을까요?’
엘런은 자신이 생각한 식을 바닥에 썼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모습들을 보여 주는구나.
그가 써 가고 있는 식을 보자 프로뱅은 기가 찼다.
마법 수식은 그 자체가 글자 같은 것이었다. 글자는 획을 하나만 고쳐도 완전히 다른 의미의 글자가 된다.
똑같이 수식도 하나만 수정해도 완전히 다른 마법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개량이라는 것은 그 마법의 형태를 유지하며 효과만 강화하거나 추가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엘런은 이 고도로 전문화된 기술을 처음 보는 마법을 대상으로 해낸 것이다.
엘런은 혹시나 다른 마법으로 변하거나 풀려 버릴 것을 대비해 몇 번의 실험을 거쳤다.
‘모디파이.’
엘런의 손을 따라 나온 마나가 홉고블린에게 스며들었다.
“끼에에에엑.”
이질적인 마나가 자신의 몸으로 들어오자 홉고블린이 다시 발버둥을 쳤다.
그렇다고 들어오는 마나를 막을 수는 없었다.
녀석의 몸으로 들어간 마나는 녀석에게 걸려 있는 마법의 수식을 수정했다.
지잉.
‘조종 마법이었구나.’
마법이 수정되자 엘런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바로 그가 홉고블린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었다. 여전히 마법의 정체는 몰랐지만, 조종 마법이라는 것까지는 알 수 있었다.
‘보통 몬스터들에겐 광폭화 마법만 걸어 놓고 이 녀석처럼 지휘관급 녀석에게는 조종 마법까지 걸어 놓은 거였군.’
홉고블린은 엘런의 생각대로 움직였다. 그렇다고 녀석에게 자아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엘런이 녀석의 행동을 강제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엘런은 홉고블린에게 조금 전 수레를 끌고 가려고 했던 곳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키이익.”
녀석은 지체 없이 피어 산맥 깊숙한 곳을 향해 발걸음을 뗐다.
‘드디어 실마리를 잡았다.’
* * *
홉고블린은 엘런을 산 깊숙한 곳으로 안내했다. 한참을 걸어가던 녀석이 갑자기 멈춰 섰다.
‘동굴? 마법으로 만든 건가?’
자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매끄럽게 뚫려 있는 동굴이 있었다.
‘여기가 본거지였구나.’
엘런은 동굴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홉고블린을 움직여 동굴로 들여보냈다.
‘역시나 마법으로 만들어진 것이군.’
녀석의 시야를 공유하고 있는 엘런은 빛이 없음에도 동굴 내부가 밝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굴을 따라 조금을 더 들어가자 거대한 공동이 나왔다.
‘이, 이건……?’
공동의 모습을 본 엘런은 두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고블린, 오크, 놀, 트롤에…….’
피어 산맥에 사는 모든 몬스터를 불러다 놓으면 바로 이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몬스터들이 공동을 채우고 있었다.
‘저건 설마 오우거?’
지상 최강의 존재인 오우거까지 있었다.
인간이 오우거를 다룰 수 있다는 것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오우거는 누가 봐도 광폭화 마법에 걸려 있었다.
“젠장할!”
몬스터들의 그르릉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던 공동에서 사람의 말이 들렸다.
‘드디어 주동자가 나오는군.’
홉고블린을 통해 그 소리를 들은 엘런은 기대감을 가졌다.
“리틀 게이트를 뚫어 놓고 병력을 분산시켜 줬잖아. 그놈들이 복귀하는 길에 매복까지 해 줬는데 도대체 그 허술한 게이트 하나를 왜 뚫지 못하는 거냐?”
목소리의 주인은 잔뜩 화가 나 있는 것 같았다. 엘런은 홉고블린을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움직이게 했다.
“그게 프로드 왕국 측에서 고위 마법사를 파견했습니다. 그자가 매복 작전 때부터 합류했습니다.”
“거기 투입된 몬스터가 몇 마리였는데 고작 프로드의 고위 마법사 하나 때문에?”
“그자의 능력이 여타 마법사보다 뛰어났…….”
“닥쳐!”
퍽.
“취익.”
타격음이 들리더니 오크 한 마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분의 인내심이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단 말이다.”
퍽. 퍽. 퍽.
사내는 성질을 내며 오크를 마구 걷어찼다. 하지만 오크는 취륵거릴 뿐 사내가 날리는 발길질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내가 뭣 때문에 이 냄새 나는 놈들과 여기 틀어박혀 있는지 알고 있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 사내의 물음에 하급자로 보이는 사내가 얼른 대답했다.
“후우.”
한참 동안 오크를 짓밟던 그는 이제 진정이 된 것인지 심호흡을 했다.
사내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정해지고 있었다.
“이렇게 된 이상…….”
갑자기 그는 자신의 품을 뒤적였다. 그러더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유리구슬을 꺼냈다. 언뜻 보기에는 통신구나 확성구 같은 것처럼 보였다.
“케니프라 게이트로 총공세를 펼친다. 그분이 오시기 전까지 게이트를 뚫어 놓아야 해. 우리 관할 몬스터는 전부 집결지로 모은다.”
기이잉.
그가 꺼냈던 수정구슬에서 검붉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은 점점 강해졌다.
바로 옆에 있는 몬스터의 모습까지 볼 수 없을 정도로 빛이 밝아졌을 때였다.
파앗.
홉고블린과의 연결이 끊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