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76
76
피어 산맥 (3)
‘저놈들은 뭐 하는 녀석들이지?’
홉고블린과의 연결이 끊긴 엘런은 동굴 안에서 목격했던 것들을 정리했다.
‘온통 알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왜 동굴 안에 몬스터들이 모여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동굴 안에 있던 사내들의 정체도 알 수 없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마법도 알 수 없었다.
붉은빛을 내던 구슬도 어떤 효과를 가진 것인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었다.
‘몬스터들을 모아 총공세를 펼친다.’
그들이 말하는 그분이 누구인지 또 언제 오는 건지는 듣지 못했다. 그자들이 몬스터들을 모을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절대 막을 수 없다.’
동굴 안에 있던 녀석들만 모아도 케니프라 게이트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몬스터를 더 모은다니.
녀석들의 총공세를 맞는다면 게이트는 며칠도 버티지 못할 것이 확실했다.
‘이거 일이 더 급해지겠어.’
이제 앉아서 조사만 하고 있을 수 없어졌다.
저들이 몬스터를 모아 총공세를 펼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보아하니 구슬로 녀석들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최소한 저 구슬이라도 탈취해야만 했다.
그 역시 오우거까지 합류한 몬스터들의 연합을 이길 자신이 없었다.
우르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동굴 안에서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동굴은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들을 뱉어 냈다.
‘어떻게 보면 장관이군.’
어느 누가 이토록 많고 다양한 몬스터들이 한 번에 움직이는 것을 보았겠는가.
동시에 불안감도 생겼다. 저기서 나오는 것들만 해도 저토록 위협적이게 보이는데, 이것보다 더 많은 몬스터들이 케니프라 게이트로 쳐들어온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것들이 모두 지나가고 나자 사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졌다. 오직 새소리만이 멀찍이서 들렸다.
‘일단 저곳부터 더 조사해 볼까?’
홉고블린을 통한 조사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몬스터들이 몰려 있는 공동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동굴은 그것보다 훨씬 넓어 보였다. 다음 실마리는 분명히 저 동굴 안에 있을 것이다.
‘디텍트, 뷰 마나 포스, 스캔.’
동굴 입구 앞에 선 엘런은 3가지의 탐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다.
무영창의 능력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방법이었다. 이제 중첩 마법만큼이나 여러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꽤 익숙해졌다.
동굴 안에서는 어떤 마나 반응도 느껴지지 않았다.
생명 반응도 없는 것으로 봐서는 그 사내들도 몬스터들과 함께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았다. 그것을 확인한 엘런은 동굴로 발을 들였다.
뚜벅뚜벅.
엘런의 발소리가 동굴 안에 울렸다.
라이트 마법 덕에 동굴 안은 밝았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춥고 습했다.
‘칫, 라이트 마법을 걸어 놓을 정도면 온도나 습도 조절 마법 같은 것도 걸어 놓지.’
특히 참을 수 없는 것은 냄새였다.
코끝을 찌르는 이 냄새는 무엇인가 썩어 가는 냄새였다. 그 냄새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더 심해졌다. 필립스의 체술 덕에 감각까지 좋아진 탓에 냄새가 더 역하게 느껴졌다.
‘대체 뭐를 썩혀 두고 있는 거야?’
하지만 엘런은 주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위해 따로 보호 마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을 들어가자 조금 전 홉고블린을 통해 보았던 거대한 공동이 나타났다.
‘여기다.’
공동 안쪽에는 사내들이 걸어 나왔던 통로도 보였다.
엘런은 그 앞에 섰다. 마치 과거에 던전을 탐사할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랐다.
‘디텍트, 뷰 마나 포스, 스캔.’
다시 한 번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그의 마나가 통로를 따라 구석구석으로 퍼졌다. 그가 수많은 던전을 무사히 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조심성에 있었다.
‘옅은 마나 반응? 아니지 마나의 흔적인가?’
여전히 생명 반응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전과는 달리 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마나의 흔적이 느껴졌다. 엘런은 아마 그들이 한 것이리라 생각했다.
‘직접 가 봐야 알겠지.’
엘런은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는 냄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시체가 썩는 냄새. 거기다 피 냄새도 섞여 있는 것 같은데…….’
뭔지 모를 불길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곳에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는 반드시 어떤 작은 실마리라도 찾아내겠다고 생각했다.
그곳에는 몇 개의 방이 있었다. 엘런은 그 방을 하나하나 조사하기 시작했다.
방은 그들이 여기서 꽤 오랜 기간 생활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었다.
‘남은 건 저 방 하나인가?’
끼익.
쾅.
“윽.”
방문을 열자마자 엘런은 코를 감싸 쥐며 문을 닫아 버렸다. 지금까지 동굴 전체에 퍼져 있던 냄새의 근원이 바로 이곳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악취 탓에 엘런은 어쩔 수 없이 보호 마법을 사용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그 방은 다른 곳과 달리 라이트 마법이 걸려 있지 않아 어두웠다. 엘런은 마나를 순환시켜 시력을 올렸다.
‘저게 무슨…….’
강화된 시력으로 방 안을 둘러본 엘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부의 전체적인 모습은 에니스에서 본 프로뱅의 연구실과 비슷했다.
어떤 마법을 연구하기 위한 마법사의 연구실 같았다. 하지만 엘런의 표정을 굳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실험실의 한구석에 사람들의 시체가 잔뜩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바싹 마르고 쭈글쭈글해진 피부와 텅 비어 버린 눈은 마치 미라를 연상시켰다.
‘끔찍하군.’
시체더미 밑에는 복잡한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시체에서 나온 피가 마법진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마치 마법진이 를 마시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엘런은 그 마법진으로 다가갔다. 시체들의 눈구멍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것도 역시 처음 보는 수식이다.’
앞으로 20년 후에 나올 마법진 마저도 전부 알고 있는 엘런도 전혀 본 적 없는 형태였다.
다만 전체적인 형태는 홉고블린에게 걸려 있던 것과 매우 유사했다.
‘내가 모르고 있던 학파의 마법인 건가?’
휘익.
마법진에 정신이 팔려있던 엘런은 갑작스럽게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쥐새끼 같은 녀석,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온 거냐?”
휙.
오른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재빨리 엘런의 고개가 따라갔다.
“피어 산맥까지 들어온 거 보니까 실력에는 자신이 있나 보군.”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것도 이내 사라져 버렸다.
‘귀찮은 짓거리를 하는군.’
어쩐지 주위의 어둠이 더욱 짙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인기척은 계속 위치를 옮기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엘런은 손바닥을 펼친 채로 앞으로 쭉 뻗었다. 그리고는 눈으로 인기척의 움직임을 쫓았다.
‘캐치.’
츠팟.
그가 펴져 있던 손바닥을 접었다.
그러자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인기척이 그대로 멈춰 버렸다.
드디어 그 인기척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엘런의 염력 마법에 사로잡혀 버린 그는 조금 전 공동에 있던 자였다.
엘런이 움직이지 못하는 그에게 다가갔다. 찢어질 듯 커진 눈이 그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었다.
“좀 방방 뛰어다니지 마.”
“어떻게 찾아낸 거지?”
“그 정도 속도로 움직이는 건 쉽게…….”
파앗.
엘런은 말을 하다말고 옆으로 몸을 던졌다. 급하게 뛴 탓에 착지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바닥을 굴렀다.
콰앙.
등 뒤에서 날아온 검은 구체가 그 자리에서 폭발했다.
“한 명 더 있었던 거야? 이건 좀 놀라운데.”
“몬스터 중 하나에게 장난을 쳐 놓은 녀석이군.”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가 천천히 걸어 나오며 말했다. 그는 오크를 두드려 패던 그 사내였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구슬의 힘을 발동시키고 나서 알았다. 새로 마법이 걸리는 녀석이 있더라니.”
쿵.
검은 후드의 마법사가 스태프로 땅을 내리찍었다.
그러자 스태프를 타고 검은 마나가 땅으로 흘러 들어갔다.
“듣지 말아야 할 걸 들었으니까 그 대가는 목숨으로 갚아야겠지.”
땅이 갈라지더니 그 틈으로 검은 마나가 꿈틀거리며 새어 나왔다.
마치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 같았다.
“몰래 들은 건 맞는데, 네가 나를 죽일 수 있긴 있나?”
“자신감이 넘치는군.”
콰아아아.
엘런의 도발에 그는 커다란 스태프를 휘두르며 공격을 시작했다.
갈라진 틈으로 꿈틀거리고 있던 검은 마나가 엘런을 향해 덮쳐들었다.
카앙.
엘런은 프로텍트를 이용해 그 공격을 막았다. 지금 정도의 공격을 막기에는 프로텍트 한 겹으로도 충분했다.
위이잉.
하지만 검은 마나가 갑자기 프로텍트의 마나를 흡수했다.
쩌저적.
마법을 구성하고 있는 마나가 부족해지자 프로텍트에 금이 가더니 곧 깨져 버렸다.
‘아니?’
반대로 프로텍트를 흡수한 검은 마나는 더욱 위협적으로 엘런을 덮쳤다.
콰앙.
엘런은 뒤쪽으로 크게 점프하여 그 공격을 피했다.
“마법사 주제에 몸동작이 좋아.”
그는 여유로운 얼굴로 말했다.
“금방 끝내 주지.”
검은 마나는 살아 있는 것처럼 진로를 바꿔 가며 엘런을 향해 날아갔다.
‘스톤 엣지.’
쿠쿠쿠.
바닥에서 솟아오른 돌기둥이 검은 마나와 충돌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검은 마나가 엘런의 마법을 흡수해 버린 것이다.
“이런 것도 흡수하냐?”
“크하하! 조심하라고. 그 녀석 너의 마나까지도 먹어치워 버릴 테니까.”
돌기둥을 부순 검은 마나가 엘런의 마나를 먹기 위해 달려들었다.
콰앙.
마법을 사용해 막아 봤자 흡수해 버릴 게 뻔하다고 생각한 엘런은 직접 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잘도 도망치는군.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나 보자.”
그는 신이 난 것 같았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눈이 충혈되어 갔고,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지고 있었다.
콰아앙.
엘런은 공격을 계속해서 피하기만 할 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대충 볼 건 다 본 것 같은데.’
엘런의 눈이 그를 향했다.
‘저것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고.’
검은 마나가 날뛸수록 그의 상태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끝내 보면 알겠지.’
팟.
잔상이 생기는가 싶더니 엘런의 모습이 그의 바로 좌측에서 나타났다.
“어떻게?”
“어떻게긴. 빠르게지.”
엘런은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스태프를 휘둘렀다.
빠악.
머리에 큰 충격을 받은 그는 휘청거렸다.
“너 마법사가 아닌 거냐?”
“마법사 맞아.”
빠악.
엘런은 재차 스태프를 휘둘렀다.
이번에는 그가 견디지 못하고 넘어졌다.
하지만 엘런의 스태프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몸 이곳저곳을 스태프로 가격했다. 그러자 그는 몸이 자연스럽게 동그랗게 말렸다.
“으어어…….”
결국 그가 게거품을 물며 의식을 잃자 엘런의 스태프도 멈췄다.
“기절했어도 진즉에 기절했어야 했을 놈이.”
검은 마나도 점차 사그라지더니 다시 갈라진 틈으로 들어갔다.
“한 놈은 처리했으니 다른 놈에게 정보를 들어야겠지?”
엘런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사로잡혀있는 남자를 돌아보았다.
“너, 너…… 잘도 저분을…….”
하지만 그는 엘런의 말을 전혀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자기 혼자서 중얼중얼하고 있을 뿐이었다.
“피해야 해. 도망쳐야 해.”
그는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뭐라는 거야? 너 실성이라도 한 거야? 이러면 곤란해. 정보는 누가 줄 거야?”
엘런은 당황하며 그에게 가까이 갔다.
콰앙!
그때 엘런의 뒤에서 폭음이 들려왔다.
“흐흐흐.”
방금까지 쓰러져 있던 사내가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비틀거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