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77
77
그루트의 검 (1)
비틀거리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제정신은 아닌 것 같은데.”
“크으으.”
그의 목소리가 점점 더 기괴하게 변했다. 가래가 끓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그의 입에서는 침이 뚝뚝 떨어졌다.
“히익! 시작됐다.”
사로잡혀 있던 사내가 헛바람을 들이키며 기겁했다.
“이거 풀라고! 여기서 나가야 해.”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발버둥 치고 있었다.
휘쳇잉.
검은 마나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마나의 줄기는 그의 주위를 따라 돌았다.
‘뭐야?’
시체더미 밑에 흥건하던 피들이 그에게로 빨려 들어갔다. 검은 마나는 마치 피를 먹어치우는 것 같았다.
“크으으으.”
피를 빨아들일수록 그의 눈은 더욱 붉게 변했다.
‘이거 두고 보고 있을 수만은 없겠어. 매직 미사일.’
엘런은 그의 머리를 노리고 매직 미사일을 발사했다.
스르륵.
하지만 그의 주위를 돌고 있는 검은 마나가 그의 매직미사일을 흡수해 버렸다.
엘런은 곤란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곤란하네.”
“이제 다 끝이야. 여기서 모두 죽을 거야.”
뒤에 있는 사내는 급기야 혼자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어떻게 제정신인 놈들이 아무도 없네.’
엘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는 여전히 피를 빨아들이고 있는 검은 마나를 보았다. 지금까지 여유롭기만 하던 엘런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했다.
‘이거 좀 심각하긴 한 것 같은데.’
피를 모두 빨아들인 검은 마나는 이제 붉은 빛을 띠고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엘런의 털을 삐쭉삐쭉 서게 했다.
“크아아!”
그가 포효하며 엘런에게 달려들었다.
방금처럼 마나로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마나를 몸에 두른 채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콰앙.
‘이거 맞으면 머리 바로 깨지겠는데?’
그가 주먹은 마치 투석기에서 날린 돌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 같았다. 주먹이 내려친 곳은 움푹 파였고 주위로 돌들이 튀었다.
타앗.
그의 공격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가 엘런이 움직이는 속도를 따라잡았다.
치익.
그의 손이 엘런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고작 주먹이 스친 게 전부였지만, 결과는 칼이 스친 것과 비슷했다. 볼이 화끈거리더니 뜨거운 피가 흘러나왔다.
휘웅.
검은 마나는 곧바로 엘런의 피를 흡수해 버렸다.
“큭!”
엘런은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특히 마나가 빠져나가는 기분은 정말 불쾌했다.
“정도껏 해야지.”
볼에 난 상처를 슥 문지른 엘런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타앗.
엘런이 가볍게 제자리에서 몇 번 뛰었다.
그러더니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가 배운 필립스 체술 중 가장 빠른 속도를 자랑하는 초식이었다.
슈욱.
피융.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이미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피융. 피융.
엘런의 모습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사방팔방에서 동시에 날아오는 빛줄기만이 그의 행동을 짐작하게 했다.
그 빛줄기는 사내의 몸 이곳저곳을 관통했다.
털썩.
결국 그는 온몸에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이제야 끝이구나.”
동시에 엘런도 모습을 나타냈다. 엘런의 머리카락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엘런의 스태프가 그의 머리를 겨눴다.
“크아아아아!”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나더니 괴성을 질렀다.
“아직 남은 거냐?”
엘런이 다시 싸울 준비를 했다.
“크, 크윽”
콰콰콰.
갑자기 사내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들끓어 오르던 그의 검은 마나가 사내의 피를 빨아들였다. 그의 몸이 뒤에 있는 시체처럼 말라 비틀어졌다.
쿵.
몸의 모든 피가 빠져나간 사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그의 피를 잔뜩 머금은 검은 마나만이 남아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때 사내가 몬스터를 조종할 때 사용하던 수정구슬에서 빛이 났다. 그러자 사내 주위에서 꿈틀거리던 검은 마나가 그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길 수 있었을까?’
식은땀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마지막에 그가 폭주할 때 그의 마나는 자신을 훨씬 추월했었다. 순간적이었지만, 두려움까지도 느껴졌었다.
-혈마법이다.
프로뱅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혈마법이라니요?’
-저 녀석이 사용한 것 말이다. 나도 직접 본 적이 없어 긴가민가했었는데 혈마법이 확실한 것 같구나.
흑마법이 허용되던 시절에도 그 잔악성 때문에 금지되었던 혈마법.
어떤 마법보다도 효율적이고 강력했지만, 마법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마나 외에도 다른 것이 필요했다.
인간의 피.
한두 방울 정도의 피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법이 강력할수록 더욱 많은 피를 사용해야 했다.
‘몬스터의 광폭화 현상도 혈마법과 관련 있었던 것이구나.’
연관 관계를 찾아낸 엘런은 다른 사내에게로 걸어갔다.
“안 돼. 난 할 수 없어.”
그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아직도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야, 정신 차려.”
“으아악!”
엘런이 그에게 손을 가져다대자 그는 소스라치며 놀랬다.
“어떻게 된 거지?”
그는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퍽.
눈앞에서 별이 번쩍였다.
코뼈가 주저앉은 것 같은 고통이었다.
“너보고 질문하란 소리 안 했어.”
그는 양손으로 코를 감싸 쥐고 있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너희 뭐 하는 놈들인데 혈마법을 사용하는 거지?”
“크흡!”
그는 사레가 들렸는지 기침을 해 댔다. 정곡을 찌른 게 틀림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
결사적인 눈빛으로 말하는 꼴이 영 마지에 들지 않았다.
“오호, 그래? 그렇다면 말하고 싶어지게 만들어 주지.”
그 후로 동굴 안에서는 한 사내의 비명이 끊이지 않았다.
“제가 말하겠습니다. 제발 말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사내는 엘런에게 엎드려 빌다시피 말했다.
엘런이 밝게 웃자, 그 모습을 본 사내는 움찔거렸다.
“어떤 단체라고?”
“흑사회입니다.”
“흑사회라…….”
엘런은 전생의 기억까지 모두 뒤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스승님은 혹시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흑마법이 번영하던 시대의 사람이니 혹시나 아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흑사회. 혈마법을 연구하는 놈들이었지. 한마디로 미친놈들의 모임이었다. 나도 그놈들에 관해 자세히는 모르지만, 이놈들이 유명해진 사건이 있었지.
엘런의 생각대로 프로뱅은 그들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놈들 무슨 마법 실험을 하겠다고 해리포드 성 밖에 있는 빈민촌 하나를 폐허로 만들어 버렸다. 그 단체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줄은 몰랐군.
엘런이 살던 때에는 혈마법은 물론이고 흑마법까지도 그 맥이 완전히 끊겨 있었다. 그 때문에 아무도 피어 산맥 몬스터의 광폭화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
이제야 그 원인의 시작점을 찾아낸 것이다. 엘런은 의욕을 가지고 그에게서 정보를 더 캐내려고 했다.
화악.
그때 검은 마나를 품은 수정 구슬에서 빛이 났다.
두웅.
구슬이 자리에서 두둥실 떠올랐다.
검붉은 빛을 내뿜는 구슬은 어딘지 모르게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늦었군. 이미 그 가벼운 주둥아리를 놀렸나 보구나.”
구슬에서 인간의 말이 들렸다. 그 목소리에 사내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스겅.
구슬이 품고 있던 검은 마나가 방출되더니 그의 목을 잘라냈다. 엘런이 그를 지키기 위해 배리어 마법을 사용했지만, 배리어는 유리창처럼 깨진 후였다.
스르륵.
목적을 이룬 구슬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젠장. 어떻게 찾은 단서인데.”
엘런은 죽어버린 사내를 보며 망연자실했다. 그들이 흑사회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마음 같아서는 피어 산맥에 눌러앉아 계속 조사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이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금쯤이면 리틀 게이트로 몬스터가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케니프라 게이트를 연결하려 할 것이다.
‘일단은 영지로 되돌아가야겠어.’
* * *
“케니프라 게이트 연결 작업은 어떻게 되었는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엘런이 원인을 조사하겠다며 피어 산맥으로 들어간 지 일주일이 넘게 흘렀다.
‘무사하긴 한 것일까?’
그의 무위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긴 했다. 하지만 피어 산맥은 어떤 일하 일어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곳이었다.
‘명예롭지 못하긴 하지만, 게이트가 연결되기 전에 그가 돌아왔으면 좋겠군.’
엘런이 있다면 사상자는 확연히 줄 것이었다. 휴고 역시 명예를 중요시하는 귀족이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영지민과 병사들의 무사였다.
“영지 내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분부하신 대로 현재 영지 내 몬스터들을 처리하기 위한 별동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괜찮았으나 곧 게이트가 연결되면 그들의 수를 줄여야 합니다.”
휴고의 고민이 깊어졌다. 내부에 들어온 몬스터들을 정리하면서도 외부에서 들어오는 몬스터를 막아야 했다.
‘베리타티, 진심으로 자네를 기다리게 되는군.’
휴고의 마음이 통한 것일까?
하인이 집무실의 문에 노크를 했다.
그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영주님, 유한입니다. 케니프라 게이트에서 레미 베리타티 경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그게 정말이더냐? 아직 하늘이 이 케니프라를 버리지 않았군.”
휴고도 그 소식이 반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얼른 그를 불러오거라. 아니지 내가 만나러 가야겠다. 말을 준비시켜라.”
그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유한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길을 비켰다. 그곳에는 엘런이 서 있었다.
“오오. 베리타티 경, 무사히 돌아왔군. 뜻하는 바는 이루었는가?”
그의 말에 엘런은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유의미한 성과는 있었습니다.”
“그것 참 다행이로군.”
“상황은 여기까지 오며 대충 들었습니다.”
엘런의 말에 휴고의 표정이 다시금 어두워졌다.
“상황을 들었다니 구태여 설명할 필요는 없겠군. 이보게, 베리타티 경, 염치없는 것은 알지만, 이 케니프라 영지를 좀 도와주겠나?”
휴고가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기사와 하인이 깜짝 놀랐다.
휴고는 자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귀족이었다. 그런 그가 평민 출신의 남작인 엘런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신분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휴고에게는 영지민들과 병사들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자존심보다도 중요한 일이었다.
자신은 능력이 부족하여 그들을 지키지 못한다.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바로 눈앞의 이 마법사였다.
“바클러 자작님,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왕실과 마탑의 임무를 받고 온 겁니다. 케니프라 지역을 지키는 것은 폐하의 명과도 같습니다. 자꾸 이러시면 제가 더 불편합니다.”
엘런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휴고를 말리며 말했다. 휴고는 마지못해 고개를 들었다.
“알겠네. 늙은이가 자네를 부담스럽게 했군. 일단 여기 앉게.”
휴고가 의자에 앉자 엘런도 그를 따라 앉았다.
“그럼 이제부터는 조금 더 실무적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엘런은 그루트가 만든 검을 꺼냈다.
“그것이 무엇인가?”
“특별 제작한 검입니다. 아직 시험용이긴 하지만, 별동대에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휴고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엘런은 그런 그를 보며 씩 웃었다.
“그냥 직접 보여 드리겠습니다.”
엘런이 검에 있는 단추를 만지작거리더니 가볍게 휘둘렀다.
콰앙.
“이, 이게……?”
휴고의 입이 닫히지 않았다. 그건 주위에 있던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기사의 얼굴은 가관이었다. 체통 같은 건 잊은 지 오래였다.
“제가 아니라 평범한 병사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오.”
휴고는 그저 감탄만을 내뱉으며 그루트의 검을 살펴보았다.
“이런 물건이라면 병사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겠군.”
“수가 그렇게 많지 않지만, 제가 가지고 온 것을 전부 드리겠습니다.”
“정말 고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