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78
78
그루트의 검 (2)
척.
지휘관의 손이 올라오자 부대원들의 움직임이 일순간에 멈췄다.
“취륵.”
오크 무리가 오솔길을 지나고 있었다. 좁은 길을 지나가고 있는 탓에 녀석들의 대열은 세로로 길게 늘어뜨려져 있었다.
부대원들은 오솔길 좌측에 있는 수풀지대에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가고 있는군.”
“오늘이 너희들 제삿날일 거다.”
부대원들은 지휘관의 손이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척.
지휘관이 쥐고 있던 주먹을 폈다. 그러자 부대원들은 활에 살을 먹였다.
쫘아악.
활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음에도 활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지휘관의 손이 밑으로 내려갔다.
쐐애액.
퍼걱.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날아간 화살이 오크의 머리에 명중했다. 오크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몇 번의 화살을 더 쏜 부대원들은 활을 집어넣고는 검을 꺼냈다.
챙.
“바코로 숲에서는 잘도 기습했겠다!”
“몬스터 주제에 기습이라니. 너희들은 이렇게 당하는 쪽이 훨씬 어울린다고.”
“지옥에 가면 그때 죽인 녀석들에게 사과나 해라.”
부대원들은 종으로 길게 뻗어 있던 녀석들의 대열을 단번에 갈라 버렸다.
대열에서 이탈한 녀석들은 부대원들에게 둘러싸여 온몸을 난도질당했다.
전투는 그렇게 쉽게 마무리됐다. 수많은 실전경험으로 단련된 케니프라의 병사들이었다. 게다가 기습까지 성공했으니 광폭화된 오크들도 별수 없었다.
“크아아앙.”
전투를 끝내고 오크들의 시체를 수습하려고 할 때였다. 귀를 찢을 것 같은 포효소리가 산을 울렸다.
쿵. 쿵.
3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녀석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회색의 피부와 지독한 누린내. 그 녀석들은 바로 트롤이었다.
트롤 2마리가 조잡해 보이는 손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그 크기 탓에 위력은 결코 조잡하지 않았다.
콰앙.
부대원들은 지휘관의 명령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흩어졌기에 피해는 없었다.
거대한 크기와 강한 근력. 무엇보다 상식을 뛰어넘는 회복력.
야지에서 아무런 준비 없이 트롤을 만난다면 그 부대는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된다.
하지만 케니프라의 병사들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기대감까지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나 소드 앞으로.”
지휘관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며 말했다. 그에 따라 몇몇의 병사들도 똑같이 생긴 검을 꺼내 들었다.
“드디어 베리타티 님께서 주신 검을 실전에서 써 볼 때가 온 것 같군.”
“저번에 이 검 쓰고 온 녀석들 말을 들어 봤는데 정말 엄청나다더군.”
그들은 횡으로 서서 트롤의 이동 경로를 틀어막았다.
“크르륵!
트롤은 자신들의 앞을 막아선 이 겁대가리 없는 인간들이 어이가 없었다.
먹이사슬의 상위에 올라있는 자신들을 보면 누구든지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놈들은 오히려 검을 빼 들고 자신들과 겨루려 하고 있었다.
드르르르.
병사들의 검신이 가늘게 떨렸다. 긴장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준비 단계 같은 것이었다.
후웅.
트롤이 손도끼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전원 마나 소드 가동.”
그와 동시에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병사들은 검 자루에 박혀 있는 마정석을 눌렀다.
위이이잉.
마정석에 푸른빛이 서렸다. 그리고 그 빛은 검신으로 흘러 들어갔다.
“마나 소드를 사용하는 것은 처음 봐.”
“진짜 기사들의 오러 같잖아.”
뒤에 있는 병사들이 마나 소드를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그들의 말대로 검신을 따라 푸른빛이 서려 있는 모습은 마치 기사들이나 사용하는 오러 소드 같았다.
“지속 시간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 한 합으로 끝내야 한다.”
“예.”
타앗.
콰앙.
병사들이 흩어지며 트롤이 휘두른 손도끼를 피했다. 한 병사가 트롤의 팔에 검을 휘둘렀다.
서걱.
웬만한 검으로는 흠집도 내기 힘든 질긴 가죽을 가진 트롤의 팔이 종잇장처럼 썰려 나갔다.
크륵?
트롤은 갑작스러운 상황 때문에 움직임이 멈췄다.
그 순간 여러 개의 섬광이 번쩍하더니 트롤은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졌다.
옆에 있던 트롤도 고깃덩이가 되어 버린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거 진짜 엄청나잖아?”
“정말 베는 감각조차 안 느껴졌어.”
이제는 푸른빛을 잃어버린 검을 보며 병사들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바닥에 누워 있는 트롤들이 자신들의 작품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이것만 있으면 기사도 별거 아니겠어.”
한 병사가 검을 꽉 쥐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이 검 좋긴 좋은데 준비 시간은 긴데 사용 시간은 짧고 일회용이야. 트롤 같이 덜떨어진 몬스터니까 가능했지 사람이었으면 사용도 못 해 보고 죽었을 거다.”
어디를 가나 초를 치는 녀석은 꼭 있었다. 그의 말에 상기된 병사는 다시 시무룩해졌다.
“저 검 봤어? 평범한 병사들이 오러를 사용한다니.”
“소문을 들어 보니 베리타티 님께서 대몬스터전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이 검을 만든 거라고 하더라.”
“정말이지 대단하신 분이야.”
병사들도 새로운 무기가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잔말 말고 전장부터 수습해! 아직 처리해야 할 몬스터 무리가 많이 남았다.”
“예!”
“죄송합니다.”
지휘관의 호통에 뒤에 있는 병사들마저 헐레벌떡 달려와 전장을 수습했다.
* * *
“오늘은 보고드릴 게 좀 많습니다.”
가빈은 굵은 종이 뭉치를 들고 있었다.
“정보는 많을수록 좋은 거니까.”
엘런은 휴고의 저택에서 머물며 흑사회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었다.
“케니프라 지역의 내부 수습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워낙 경험이 많은 병사들이다 보니 수월한 듯 보입니다.”
휴고는 케니프라 게이트에 주둔하는 병사의 반을 내부 수습 작업에 투입했다. 그 공백은 엘런이 있음으로써 메꿀 수 있었다.
“간간이 트롤과 같이 중급 몬스터들이 등장하지만, 그루트가 만든 마나 소드가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엘런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루트가 만든 검은 평범한 병사들이 오러 소드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아직 미완성이었고 양산이 불가능해 그 숫자가 넉넉하지는 않았다.
게다가 제약도 많았지만, 몬스터를 처리하기에는 제격이었다.
“흑사회에 관한 정보를 모아봤는데 이렇다 할 것을 찾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빈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고 엘런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아니야. 흑마법이 금지당하면서 관련 정보도 전부 사라졌으니까.”
마탑이 공식적으로 흑마법을 금지하며 모든 자료는 파기되었다.
그것과 관련된 서적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되었다.
‘아, 그나마 정보가 가장 많은 곳이 있었지.’
엘런은 흑마법의 자료가 남아 있는 한 곳을 떠올렸다.
“가빈, 에니스로 가봐.”
“에니스라면, 마법사들의 유배지 말씀입니까? 아무리 저라도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에니스에는 수많은 분파의 흑마법사들이 있었다. 혹시 흑사회에 대해 아는 녀석들이 있을 수도 있었다.
“맞아. 그리고 그곳에 들어가는 방법은 따로 있지. 이걸 들고 빈으로 가 봐. 그곳 시장통을 돌아다니다 보면 그들이 너를 찾을 거다.”
엘런은 에니스와 연락을 할 때 쓰는 증표를 가빈에게 주었다.
“그리고 피어 산맥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연결된 몬스터들에게서 이상이라도 발생했습니까?”
가빈은 바로 엘런의 말을 받아 적을 준비를 했다.
엘런은 홉고블린에게 썼던 방식을 피어 산맥의 다른 몬스터들에게도 사용했다. 그들을 통해 흑사회의 끄나풀을 찾을 생각이었다.
예상대로 수정구슬을 든 흑사회 마법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그때의 사내와 똑같은 방식으로 몬스터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몇 주 동안 조사한 결과, 흑사회는 피어 산맥을 본거지로 삼고 있다는 것과 그들의 대략적인 조직 체계를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몬스터들의 움직임이 점점 방향성을 가지게 됐어.”
“방향성이라면?”
열심히 엘런의 말을 받아 적던 가빈이 물었다.
“원래 그들은 각자의 관할 구역을 두고 움직였어. 그런데 얼마 전부터 한 곳을 향해 몬스터들이 이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더군.”
엘런의 손가락을 본 가빈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케니프라이군요.”
“맞아. 왜 그런지는 몰라도 케니프라 게이트를 노리고 움직이고 있지.”
엘런의 눈에 결연한 의지가 담겼다. 과거의 이 사건을 돌이켜 보면 이 정도의 공세는 없었다.
이전까지의 공세만으로도 두 게이트를 돌파해 버렸기 때문이다.
‘케니프라 지역의 힘만으로는 절대 막을 수 없다.’
그렇다고 미리 문제를 알았음에도 마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내야만 했다.
‘왕실의 지원을 받는다면 막을 수 있을까?’
중앙군은 지방의 군대보다 월등한 전투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게다가 프로드의 자랑이라고 할 수 있는 마법사. 그들의 도움이 있다면 그 많은 몬스터들을 막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폐하는 설득할 수 있을 건데, 귀족 놈들이 반대하겠지.’
반대를 위한 반대. 그들은 단지 엘런의 의견이라는 이유로 반대를 할 작자들이었다.
게다가 이곳에 필요한 지원의 수는 일개 군단 정도가 아니었다. 적어도 마탑의 전투마법사를 대거 포함한 중앙군의 3분의 1 정도가 필요했다.
고작 남작의 말을 듣고 그토록 많은 중앙군이 수도를 비운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귀족들이 반대할 명분도 충분했다.
‘귀족들의 반발을 무마하고 지원군을 보내 주셔야 할 텐데.’
엘런은 알베르토에게 보낼 지원군 요청서를 썼다.
“가빈, 이건 직원을 통해 해리포드로 보내 줘.”
“예! 알겠습니다.”
* * *
피어 산맥 깊숙한 곳.
검은 로브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쓴 자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다.
주위의 공기마저도 음침해지는 것 같았다.
“몬스터들이 전부 모였나?”
“죄송합니다. 워낙 넓게 퍼져 있어 모두 모으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수장의 말에 한 사내가 답했다.
“어차피 소환이 완성되어야 출정하니까 그 전까지만 맞춰라.”
“아르투로 님, 이제 소환도 거의 막바지 단계입니다. 원료로 사용할 피만 있으면 됩니다.”
아르투로는 그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후드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끔찍했다. 얼굴에 커다란 흉터가 있었고 흐릿한 검은자 때문에 눈 전체가 흰색으로 보였다.
“주변에 피를 구할만한 마을은 많으니 시간문제겠군. 그나저나…….”
아르투로는 한 청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놈, 흑마법을 사용했단 말이지.’
그는 수정 구슬을 통해 엘런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엘런은 흑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흥미로웠던 것은 흑마법을 사용함에도 특유의 검은 마나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이상한 방식으로 마법을 사용했고…….’
무엇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아무런 영창도 없이 마법을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아르투로는 무영창의 마법에 대해 단연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놈 때문이라도 이번 프로드 공세는 서둘러야겠군.’
그런 존재는 흑사회의 번영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충분한 피가 모이면 나에게 말해라. 곧바로 소환 의식을 거행하겠다. 그날이 우리 흑사회가 세상에 드러나는 날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