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79
79
용기 (1)
“폐하, 중앙군의 3분의 1이라니요. 그것은 절대 안 될 일입니다.”
도날드 백작이 큰소리로 외쳤다. 왕좌에 앉아있는 알베르토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베리타티 남작의 정보는 꽤 구체적입니다. 피어 산맥에서 내려오는 몬스터의 수가 정말로 그 정도라면 우리는 3분의 1, 아니, 그 이상을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원군에 동의하는 것은 세드릭 백작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엘런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귀족이었다.
“끙.”
알베르토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얼마 전, 프로드 전 고위 귀족들의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모두 국무회의에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의제는 바로 엘런이 보낸 지원군 요청서에 대한 동의 여부였다.
수도의 군사가 대거 이탈해야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결정이었다.
알베르토는 프로드의 전통에 따라 고위 귀족을 소집했다.
그렇기에 이곳 왕궁에는 참석이 가능한 모든 고위 귀족이 모여 있었다. 왕자인 로미우와 공주인 세르넬까지도 참석했다. 그야말로 프로드 최고의 권력가들이 한 번에 볼 수 있는 자리였다.
그리고 그들은 엘런의 요청서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반대와 찬성 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세드릭, 자네는 고작 남작 나부랭이의 말을 믿고 이곳 해리포드의 전력을 다 떼어 가자 이건가?”
도날드가 날이 선 말투로 세드릭을 공격했다.
“그의 활약을 잊었는가? 애초에 케니프라 지역의 이상 징후를 알아차린 자가 그 아니던가? 북서의 에드가가 아무런 보고를 올리지 않은 탓도 있지만, 그전까지 우리는 리틀 게이트가 돌파당한 것조차 모르고 있었네.”
세드릭의 옹호도 굳건했다. 그의 말에 알베르토의 시선이 에드가를 향했다.
“흡!”
에드가가 자신의 목을 거북이처럼 집어넣었다. 프로드 북서쪽을 관리하는 것이 에드가였다.
그는 귀족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케니프라 지역의 상황을 보고하지 않았다. 이것은 엘런이 보낸 지원군 요청서 탓에 밝혀졌다.
‘휴고 바클러 그놈이나 레미 베리타티 그놈이나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에드가는 자신의 잘못은 뉘우치지 않고 그저 그들을 욕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토의 눈치를 의식하여 송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학자들의 가문이라 불리던 에드가 집안에서 저런 놈이 가주가 되다니.’
알베르토는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나도 고민되기는 마찬가지구나.’
그 역시 두 의견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엘런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중앙군을 뺀다는 것은 그만큼 신중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철저한 조사를 해 보자고 했나? 철저한 조사는 이미 레미 그 녀석이 전부 했다잖아. 뭐를 더 조사하겠다는 거냐?”
프로드군의 정점에 서 있는 자이자 대륙 7검 중 한 명인 아카드였다.
“그, 그것이…….”
아카드 공작의 짜증 섞인 말에 도널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감히 그에게 대적할 용기가 없었다. 다른 귀족들도 그의 불같은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도 못 했다.
“아카드 공작님, 물론 베리타티 경의 능력이 뛰어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가 보내 온 신청서에도 쓰여 있듯 아직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추측일 뿐이지요.”
장내의 고요를 깨뜨린 것은 바로 올란도 체들턴이었다. 그의 등장에 아카드의 기세가 조금은 꺾였다.
“그에 반해 중앙군을 빼는 일은 매우 현실적인 일입니다. 우리가 빠진 사이 고센 제국에서 실력자들을 추려 해리포드로 침투시키면 그들을 어떻게 막을 것입니까?”
좌중을 압도하던 아카드의 기세가 눈에 띄게 사그라졌다. 하지만 올란도는 멈추지 않았다.
“베리타티 경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지원군을 보내야겠지요. 그러니 철저한 조사를 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올란도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마쳤다. 평생 검의 길만 걷던 그에게 올란도 같은 유형은 너무나도 어려웠다.
‘젠장, 저 여우같은 놈.’
올란도에 의해 분위기가 다시 돌아오자 반대파 귀족들의 기세가 살아났다.
‘아카드 경, 성급했소.’
알베르토도 꽁해 있는 아카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철저히 무관인 그에게 올란도는 천적과도 같았다.
“아바마마, 제가 한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회의를 관전하고 있던 세르넬이 손을 들며 발언권을 요청했다. 귀족들의 눈도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녀는 우유부단한 로미우와는 달리 진정한 왕의 재목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그녀의 공식적인 첫 번째 발언인 만큼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 말해보아라.”
“베리타티 경의 공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왕실에도 큰 도움을 주었지요. 하지만 그런 배경만으로 그의 정보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야말로 폐단이 아니겠습니까? 왕실은 어떤 순간에도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모두의 귀에 정확하게 전달되었다. 반대파 귀족들이 그녀의 의견에 찬성하고 나섰다.
‘과연, 세르넬. 정치를 알고 있군.’
반대파 귀족 중에서는 그녀를 지지하는 자가 많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지지 세력에 힘을 실어 주었다. 동시에 왕실의 중립이라는 원칙을 내세워 찬성파 귀족들의 반발로부터 명분을 지켰다.
정치적인 감각과 냉철한 판단, 뛰어난 언변. 왕의 덕목에 가장 적합하긴 했다. 하지만 알베르토는 로미우가 계속 눈에 밟혔다.
‘세르넬이 가진 재능을 로미우가 받았다면.’
그의 시선이 로미우에게 갔다. 로미우는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로미우 오라버니, 프로드의 국왕에 어울리는 자는 바로 저입니다.’
첫 공식 석상의 발언은 성공적이었다.
세르넬은 턱을 치켜들며 로미우를 보았다. 그 샌님이 우물쭈물하는 모습은 퍽 보기 좋았다.
“폐하, 물론 세르넬 공주의 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의견은 부족합니다.”
약간은 떨리는 듯한 그 목소리에 귀족들이며 세르넬이며 심지어 알베르토까지 놀란 눈이 되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로미우였기 때문이다.
‘떨린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모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갖은 모욕이 담긴 말을 삼키며 눈빛으로 자신을 욕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장이라도 방금 한 말을 취소하고 이곳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왕자님께서 하고 싶은 말은 전부 내뱉으셔야 합니다. 틀린 답을 말하는 것보다 답을 안 말하는 게 훨씬 부족해 보입니다. 특히 공주님 앞에서라면요.’
엘런이 해 준 말이 떠올랐다.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물어봤었을 때였다.
꽈악.
로미우가 주먹을 꽉 쥐었다. 떨려오는 팔을 억제했다.
“국왕폐하, 공주는 왕실의 안위를 생각한다고 했으나 그것도 영토와 백성이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너무 떨렸던 나머지 목소리가 갈라져서 나왔다.
“쿡.”
세르넬이 비웃는 것이 보였다. 로미우는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케니프라 게이트가 돌파당하고 나면 북서쪽의 땅은 모두 몬스터들에게 빼앗길 것입니다. 그럼 그곳의 백성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알베르토는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그토록 소심하던 자신의 아들이 지금 모두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있었다.
“국가를 유지함에 있어 왕실과 귀족만큼이나 필수적인 것이 바로 백성과 영토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버린다면 어느 백성이 우리를 믿겠습니까?”
로미우도 점점 마음이 진정되는 것이 느껴졌다.
“숫자와 상관없이 한낱 몬스터에게 영토를 잃었다는 것은 왕국의 수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베리타티 경이 운용하는 정보 단체는 그 정확도 면에서는 왕실 특무대와도 겨룰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의 말에 찬성파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로미우는 그들을 보며 더 자신감을 얻었다.
“백성과 영토가 없는 왕실은 있을 수 없습니다. 대륙 7검 아카드 경과 마탑의 탑주. 그들이 왕실을 지키고 최소한의 병력이 수도에 주둔한다면 적들도 함부로 손을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로미우는 다리가 풀린 듯 자신의 자리에 주저앉았다. 대전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왕자, 너의 뜻이 정녕 그렇단 말인가?”
그 무거운 침묵을 깬 것은 알베르토였다.
“예. 그렇습니다.”
“후우.”
국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쉬움보다는 시원함이 담긴 한숨이었다.
“경들의 의견도 거의 반으로 나뉘어 대립하고 있으니 과인도 결정을 내리기 곤란했다. 하지만 진정성이 담긴 왕자의 말을 들으니 이제 결단이 설 것 같군.”
왕실 서기가 펜에 잉크를 묻혔다. 국왕의 결정문을 작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마탑은 고위 마법사 3명을 포함해 케니프라로 지원을 나갈 지원군을 구성하라.”
반대파 귀족들이 넙죽 엎드리며 아니 되옵니다를 외치려 했다.
싸아.
하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었다. 아카드의 살기가 그들을 옥죄었기 때문이다.
“아카드 경, 제2군과 제3군의 병력의 3분의 1, 그리고 4군과 5군의 병력의 반을 케니프라로 보내도록 하라.”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아카드와 올란도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올렸다.
“왕자, 너는 이 회의가 끝나는 대로 나를 찾아오너라.”
“예, 폐하.”
알베르토는 엘런에 대한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었다.
‘그를 붙여놓은 것이 이토록 큰 효과를 발휘할 줄이야.’
뒤에서 세르넬이 이를 빠드득 갈고 있었지만, 알베르토의 귀에는 잘 들리지 않았다.
* * *
‘아직도 아무 반응이 없다니. 왕실과 귀족 놈들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엘런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지원군 요청이 거부 될 때를 대비해서 여러 방책을 마련하고 있긴 했다.
하지만 최선의 수는 지원군이 오는 것이었다. 그 회의결과가 일주일이 지나도록 들려오지 않았다.
‘국무회의를 거쳤다는 말까지는 들었는데.’
그 후로는 아르곤을 통한 정보가 들어오지 않았다.
“레미 님, 왔습니다. 왔어요.”
가빈이 창문을 타고 넘어왔다.
그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있었다. 엘런은 그것이 국무회의 결과라는 것을 눈치챘다.
“어떻게 됐어?”
“헉헉.”
가빈은 급하게 달려온 탓인지 숨을 몰아쉬느라 대답하지 못했다. 그 대신 종이를 펼쳐 엘런에게 보여 주었다.
“성공했구나.”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지원군이 출발한다는 소식이었다. 그것도 엘런이 신청한 것과 거의 비슷한 규모였다.
‘응? 이 녀석이?’
밑에는 국무회의의 결과를 간추린 내용이 있었다.
로미우의 활약으로 지원군 신청이 통과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씨익.
엘런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이거 그동안 공들인 보람이 있잖아?’
자신이 그토록 왕자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이렇게 빛을 보게 되었다. 동시에 로미우가 대견스럽기도 했다. 마치 아들의 성장을 본 아빠의 마음 같았다.
‘어쨌든, 이제 지원군이 오는 것을 전제로 계획을 짜면 되겠어.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는군.’
엘런은 곧장 휴고의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