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82
82
진리의 문
피융.
엘런의 손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섬광 다발이 네트의 팔을 꿰뚫었다. 인간의 시각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속도는 마치 엘런이 그 자리에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네트의 팔이 땅바닥에 떨어지기도 전에 엄청난 수의 빛줄기가 그의 몸을 관통했다. 사방에서 빽빽이 날아온 탓에 어두웠던 주변이 일순간 환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후두둑.
네트의 몸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다. 지천을 떠도는 시체인 구울 조차 지금의 그에게 한 수 접어야 할 것 같았다.
‘이 기술을 이런 놈에게 시험하게 될 줄이야.’
엘런은 필립스의 책에 적혀 있던 두 번째 신체 강화술을 사용하고 있었다.
마나의 폭발을 통한 초월적인 속도, 거기에 무영창을 이용한 수십 번의 중첩 마법을 조화시킨 필살의 공격이었다.
네트는 자기 몸의 이곳저곳을 만져 보고서야 자신의 상황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이 애송이 새끼가!
그의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검은빛의 마나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때와 비슷하다.’
흑사회 마법사의 폭주와 현상이 비슷했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이 흘린 피가 네트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넝마가 되었던 그의 몸이 급속도로 회복되었다.
완전히 검붉은 빛을 띠게 된 마나가 그의 몸에 둘렸다.
전과 비교하여 그 위압감은 몇 배는 더 커 보였다.
-내가 널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이제 목소리가 아니었다. 전혀 종잡을 수 없는 음역대의 소리가 엘런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꿀꺽.
침 넘기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들렸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콰앙.
검붉은 마나를 두른 주먹으로 공격하는 것. 그때와 똑같은 방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그의 주먹이 지나간 바닥에 구멍이 생겨 있었다. 그 구멍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었다.
퍼엉.
그의 발차기가 엘런의 복부에 꽂혔다. 타격음이 아닌 폭발음이 났다.
“켁. 켁.”
외부에서 전해진 충격이 배 안쪽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렸다.
엘런은 내장이 터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만약 급히 마나로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게 되었을 것이다.
오우거의 몽둥이를 정면으로 맞아도 이것보다는 덜 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의 이어지는 공격 탓에 고통을 느낄 시간도 없었다.
칼날 같은 손톱이 엘런의 옆구리를 찢어발기기 위해 날을 세웠다. 엘런은 몸을 비틀었고 손톱은 공기를 갈랐다.
주륵.
스치지도 않은 손톱 때문에 옆구리에서 피가 났다. 그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딱 한 대만 맞아도 죽는다.’
방금 발차기를 맞은 복부가 진정되지 않았다. 이 상태로 단 한 번만 더 충격이 전해진다면 이대로 몸이 붕괴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맞지 않으면 된다는 말.’
그럴 자신은 있었다. 여전히 자신이 저자의 속도를 앞서고 있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엘런의 마나가 들끓었다.
쾅.
바닥에서 터지는 파열음과 함께 엘런의 모습이 사라졌다.
쩌저적.
바닥에서 올라온 얼음이 네트의 발을 붙잡았다.
등 뒤에서는 덩굴이 그의 몸을 옭아매려 했다. 검붉은 마나는 엘런의 공격을 막기 위해 이곳저곳 움직였다. 그 빈틈으로 쇼크 웨이브와 파이어 랜스가 파고들었다.
네트가 파이어 랜스를 피하기 위해 몸을 틀었을 때, 주변이 번쩍하더니 세 각도에서 빛줄기가 쏘아졌다.
퍼걱.
한쪽 뿔이 날아가고 등 뒤에 구멍이 뚫렸다. 정수리를 관통한 매직 미사일은 턱까지 박살 내 버렸다.
네트의 회복 속도도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필립스의 속도와 무영창의 마법, 흑마법을 통한 개량 마법을 구사하는 엘런만이 할 수 있는 전술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잘 먹혀들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10분 후 완전히 뒤바뀌었다.
-쥐새끼 같은 놈, 너에게 딱 맞는 전투를 해 주지.
꿀럭꿀럭.
그렇게 말한 네트의 몸에서 검은색의 끈적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이 액체는 바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그 액체는 발에 직접 달라붙는 것은 아니었지만, 마치 접착제처럼 엘런의 발을 붙들었다. 그리고 다른 검은 마나와 같이 그의 마나를 흡수했다.
시간이 갈수록 엘런의 폭발적인 속도는 점점 줄어들었고, 네트는 그를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무슨 저렇게 사기적인 놈이 있는 거야?’
그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엘런을 향한 네트의 사냥은 계속되었다. 네트의 공격을 막는 것조차 불가능한 엘런은 그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수십 번의 치명적인 공격이 엘런을 지나쳤다. 엘런은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려 그 공격을 회피했다.
툭.
‘젠장.’
뒷걸음질 치던 그의 발에 의식을 잃은 세르넬이 걸렸다. 전방에서 네트가 손톱이 쇄도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 배리어.’
엘런은 5서클의 방어 마법 배리어를 몇 겹이나 펼쳤다.
하지만 상대는 마나를 먹어치우는 괴수였다. 배리어가 그의 공격을 버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푸욱.
배가 불에 덴 것 같이 화끈해졌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감각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졌다.
지나갈 길을 잃은 혈액이 세차게 뿜어져 나왔다. 엘런은 두 손으로 그 구멍을 막았다.
하지만 피는 그의 손 틈으로 꾸역꾸역 흘러내렸다.
쑤욱.
찌걱.
이성을 잃다시피 한 네트는 엘런을 몇 번이나 더 쑤셨다.
그럴 때마다 그의 마나와 피가 빠져나갔다. 생기를 잃어 가는 탓에 그의 피부가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쑥.
털썩.
마침내 그가 손이 멈추자 엘런의 몸이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언젠가 겪어 본 감각.’
이전에도 똑같은 감각을 느낀 적이 있었다.
이 감각은 바로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땐 레오나드 같은 녀석에게 죽었는데 이번에는 이런 거물급에게 죽다니. 출세하긴 한 건가?’
엘런은 죽는 순간까지 실없는 생각을 하는 자신을 향해 미소 지었다.
딱히 주마등이랄 것까지는 없었다.
점차 그의 시야가 어두워졌다.
기이잉.
쓰러진 엘런의 밑에서 커다란 마법진이 제멋대로 발동되었다. 마법진이 내뿜는 밝은 빛은 엘런의 몸을 감쌌다.
네트는 그 이상한 빛을 흡수하려 했다.
하지만 모든 마나를 탐식하던 검붉은 마나도 그 빛을 흡수하지 못했다. 절대적인 방어 속에서 엘런의 몸이 점차 희미해져 갔다.
* * *
껌뻑껌뻑.
눈을 몇 번 껌뻑거리자 흐릿했던 시야가 점차 선명하게 돌아왔다.
‘여기는?’
온통 검은색이었다. 왼쪽과 오른쪽, 위와 아래. 그 어떤 방향도 구분할 수 없었다. 공중에 떠 있는 건지 바닥을 딛고 서 있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엘런은 이런 초현실적 공간에 와 본 적이 있었다.
그는 저편에 있던 기억을 불러왔다. 하지만 선뜻 기억날 것 같았던 그것은 확연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엘런의 눈에 무엇인가 보였다.
물론 이 공간 속에서는 무엇이 보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런의 눈에는 커다랗고 검은 문이 보였다. 거대한 문을 따라 그의 시선이 움직였다.
스르륵.
고개를 너무 들어 올려 쓰고 있던 침묵의 로브 후드가 흘러내렸다. 그 덕에 드러난 엘런의 눈은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엘런은 이 문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새로운 기회를 부여해준 문, 그리고 엄청난 능력까지 함께 부여한 문.
‘진리의 문이다.’
쿠궁.
끼이익.
갑자기 진리의 문 가운데 균열이 생겼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밝은 빛이 쏟아졌다.
문이 열릴수록 그 빛은 더욱 강해졌다. 그렇다고 빛 때문에 눈이 부시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곳은 모든 물리법칙에서 벗어난 곳 같았다.
진리의 문이 5분의 1만큼 열렸을 때, 비로소 문이 움직이며 내는 굉음이 멈추었다.
엘런은 어쩐지 저곳으로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탁. 탁.
멍하니 문 안쪽을 바라보고 있던 엘런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렸다. 맨발로 걸을 때 나는 소리 같았다.
‘사람?’
그 문틈으로 누군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아이인지 어른인지 아니면 노인인지 알 수 없었다.
“히히히.”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아이의 웃음소리였다.
“오랜만이야.”
이어서 나온 목소리는 성인 남자의 목소리였다.
엘런이 멍하니 있는 와중에도 그는 계속해서 걸어왔다. 그리고 마침내 엘런의 코앞에 도착했다.
“날 기억 못 하는 건가? 그럴 만도 하지.”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을 때, 엘런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넌 누구인가?”
그의 모습은 그냥 사람의 실루엣이었다. 사람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나? 그냥 심심한 존재라고 해 두지.”
“넌 혹시 ‘진리’인 것인가?”
엘런은 얼른 그 말을 삼켰다. 그의 눈빛이 엘런의 목을 조였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
“아, 알겠다.”
“좋아, 너 지금 내가 널 왜 여기 불렀는지 궁금하지?”
엘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자면 균형 조정 같은 거야. 과거와 미래의 힘 차이가 너무 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럼 재미없잖아.”
“과거와 미래? 그게 무슨 말이지?”
엘런은 당최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그에게 약간의 짜증이 났다.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는 건가? 생각보다 그릇이 더 작았나 보군.”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그렇다고 엘런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과거’는 너 말하는 거잖아. 너! 과거로 나아가는 자.”
생전 처음 듣는 소리에 엘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모르는구나. 이러면 미래를 보는 자보다 너무 뒤떨어지잖아. 내가 다 알려 줄 수도 없고.”
목소리가 바뀔 때면 행동까지도 바뀌는 것 같았다. 그는 마치 아이처럼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민했다.
“그러니까 네가 과거로 나아가는 자라고. 죽기 직전 3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된 것도, 원시의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그 덕분이지.”
엘런의 이마에서 열이 났다. 한 번에 감당하기 힘든 정보를 많이 받아들였다.
“넌 정말 역대 최약체의 ‘과거’구나.”
그는 엘런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다.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다. 그래서 난 죽은 건가?”
그는 고개를 홱 돌렸다.
“죽은 건 아니야. 죽을 위기이기는 하지.”
타악.
죽은 것이 아니라는 그의 말에 엘런은 퍼뜩 그의 어깨를 잡았다.
“방금 균형의 조정이라고 했지? 혹시 나에게 주는 힘이라도 있는 건가?”
“그래, 애초에 저 녀석의 등장은 내가 계산한 인과율 밖에 있는 일이거든. ‘미래’의 짓이겠지. 아무튼 공정한 게임을 위해 내가 너를 도와줄게.”
지금까지 넋이 나가 있던 엘런의 표정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의 눈빛에 의지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꼭 저놈을 이겨야겠다. 네가 줄 수 있는 힘. 그걸 나에게 줘.”
엄청난 신념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그가 만나온 누구보다도 강한 신념이었다.
‘그 신념이 거창한 것도 아니고 그저 방관자가 되기 싫다라니. 특이한 녀석이야.’
탁.
“도와주지.”
그는 한 손으로 엘런의 몸을 밀었다.
‘어어?’
그러자 지금까지 딛고 있던 발판이 사라지고 다시 검은색의 공간으로 떨어졌다.
슈우욱.
이번에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너는 잠시 동안 원시 마법의 절반 정도를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이 정도면 그 녀석을 이기기에 충분하겠지. 하지만 넌 하루라도 빨리 성장해야 할 거야. 이번은 도와주겠지만, 계속 이렇게 도와줄 수는 없어.’
그가 어디에서 말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귓가에 대고 말하는 것 같이 잘 들렸지만 자신의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미래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할 거야.’
쿠웅.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추락이 끝남과 동시에 엘런의 등에 커다란 고통이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