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89
89
엘프의 숲 (2)
‘엘프라니요? 그게 무슨……?’
엘런은 생각하지도 못한 이름이 들리자 당황했다.
-인간 중에서는 그 수가 극히 드문 정령사지만, 엘프에게는 아주 흔하지.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스럽게 정령과 친해진다. 그들은 성장하며 자신만의 정령을 찾게 되고 평생을 그와 함께 보내게 되지.
엘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엘프가 탁월한 정령사라는 말은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그 때문에 고대시대에는 엘프에게 정령술을 배우는 인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엘프가 자취를 감추고 나서부터는 정령사의 수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예전에 엘프를 만나 봤기에 확실히 알 수 있다. 저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바람의 기운. 그것은 필시 바람의 정령 실프의 기운이다.
이 대륙에서 엘프를 직접 만나 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모르긴 몰라도 엘런이 아는 이들 중에서는 프로뱅만큼 엘프에 대해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드르륵.
더는 생각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그 엘프가 식당을 나가고 시간이 꽤 흘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이곳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돈은 식탁에 두겠습니다. 그리고 이 나침반 정말 유용하게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급하게 떠나는 엘런을 보고 식당 주인이 뛰쳐나왔다.
“이보게 젊은이, 이것도 들고 가게나”
그는 엘런에게 천주머니를 던져 주었다. 그 주머니를 받은 엘런은 내용물을 확인해 보았다.
주머니 안에는 육포와 치즈, 버터 등이 들어 있었다. 먼 길을 떠나는 여행자를 위한 보존 식량 꾸러미였다.
“이렇게까지 안 해 주셔도 되는데.”
“내가 챙겨 주고 싶어서 그러네. 잘 가시게나.”
주인은 인상 좋은 미소를 지으며 엘런을 배웅했다.
그는 진심으로 엘런이 엘프의 숲 탐험에 성공하기 바랐다.
엘런의 패기 넘치는 눈빛에 자신의 열정이 다시 타오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엘런은 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식탁에 올려놓고는 서둘러 엘프를 쫓아갔다.
식당의 하루 매출보다도 많은 금액에 주인장은 잠깐 얼이 빠졌다.
‘어디 있는 거야?’
식당 밖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후드를 쓰고 있는 엘프를 찾을 수가 없었다.
애초에 평범한 사람이라면 시장통에서 어느 방향으로 간지조차 모르는 엘프를 찾는 것은 무리였다.
‘뷰 마나 포스.’
다행히 엘런은 마법사였고 그에게는 추적에 유용한 마법이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자 벨라 시장의 마나 반응이 한눈에 들어왔다.
변방의 도시였기에 마나 반응을 일으킬 사람이나 물건은 거의 없었다.
‘이 정도면 금방 찾을 수 있겠어.’
10초 정도가 흐르고 엘런은 그 생각이 완전히 틀린 것을 알게 되었다.
‘엘프는 감지되지 않는 건가?’
벨라 시장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는 특이한 마나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엘프는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대신에 정령 친화도라는 것을 사용하지. 둘 다 근원은 비슷하지만, 다른 성질을 띠고 있어 그 마법으로 찾을 수 없을 거다.
엘런은 난감했다.
마나로 쫓을 수 없다면, 이렇게 사람이 북적거리는 시장 한복판에서 그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젠장, 이렇게 놓칠 수는 없는데.’
나침반과 칼, 식량만 있으면 외곽 지역까지는 어떻게든 탐험할 수 있었다.
수림지대에는 먹을 수 있는 동식물이 풍부했다. 그리고 엘런은 하급 기사 정도의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 한 몸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했다.
하지만 엘프의 숲, 그리고 지성의 탑을 찾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였다.
프로뱅이 한 번 가 본 적이 있다고 해도 길을 잃고 헤매다가 우연히 들어간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그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무엇보다 해리포드에서 출발하기 전, 그는 자신의 입으로 지성의 탑으로 가는 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데 때마침 상상도 못 했던 엘프가 등장한 것이다. 그가 있다면 수림지대를 헤맬 필요도 없이 곧장 지성의 탑으로 갈 수 있었다.
‘이 녀석들은……?’
그렇게 초조해하며 탐지 범위를 조금씩 넓혀 나가고 있을 때, 엘런의 마법에 한 무리의 마나 반응이 잡혔다. 식당에서 봤던 녀석들의 것이었다.
마나를 풀풀 풍기고 있는 것이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파앗.
방향을 파악한 엘런은 곧바로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 * *
“조그만 놈이 빠르기는 왜 이렇게 빠른 거야?”
“페리스, 더는 도망칠 곳도 없으니까 이쯤에서 포기해.”
인적이 드문 한 골목길에서 6명의 사내가 한 사람을 막아서고 있었다.
“다들 비켜 주세요. 저는 돌아가야 합니다.”
등 뒤에는 막다른 골목이었고 앞쪽에는 사내들이 서 있어 페리스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 돌아가야지. 가스필 님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자는 저에게 거짓말을 했어요. 저는 그자와 함께하기 싫습니다!”
페리스가 소리쳤다. 하지만 사내들은 귓등으로 그 말을 듣지 않았다.
페리스의 눈빛이 사나워지면서 덩달아 골목에 일던 바람이 조금씩 사나워졌다.
그들은 엘프의 정령술을 잘 알고 있었다.
사내들도 긴장하며 검집에다가 손을 올렸다. 그때 맨 뒤에 있던 사내가 조용히 걸어 나왔다.
“자꾸 이러면 강제로 데려가는 수밖에 없다.”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리자 페리스의 동공이 떨리면서 손발에 땀이 났다.
그것은 마치 늑대를 만난 토끼의 모습과 유사했다.
‘이거 데리고 나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겠는데?’
기척을 숨기고 지붕 위에서 그들을 보고 있던 엘런이 생각했다.
모두 엘런보다 한 수 아래의 실력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엄연히 오러를 사용할 수 있는 오러 유저였다. 그들이 흩뿌리는 오러는 분명 주변에 커다란 피해를 줄 것이다.
‘특히, 저 소드 마스터 녀석.’
마나로만 판단했을 때, 하급 소드 마스터였다.
하지만 사냥감을 노리고 있는 듯한 눈빛,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자세.
엘런의 실전 경험이 말하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위험한 녀석이라고.
‘아무 소란 없이 데리고 나오려면 아주 신속 정확하게 움직여야겠어.’
엘런은 골목 주위의 지형을 살폈다. 마법사인 그만이 가능한 동선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아이스 포그, 5중첩.’
그의 스태프에서 하얀색의 서리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다섯 번이 중첩된 아이스 포그는 바로 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었다.
사아아.
공기보다 무거운 안개는 자연스럽게 밑으로 내려갔다.
골목은 순식간에 짙은 서리 안개로 휩싸여 버렸다.
“이게 뭐야?”
“페리스, 내가 가만히 있으라고 했지?”
급속도로 냉각된 공기 탓에 사내들은 오한을 느꼈다.
동시에 미세한 얼음 알갱이가 그들의 시야를 완전하게 차단했다.
“제, 제가 한 게 아니…… 읍!”
페리스도 갑자기 들이닥친 서리 안개에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보다 더 그의 심장을 떨어지게 한 것은 자신의 입을 틀어 막아 버린 손이었다.
“걱정하지 마, 널 꺼내 주려는 거니까.”
그 말에 페리스의 고개가 끄덕였다.
파앗.
엘런은 나타난 것과 똑같이 잔상을 남기며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이 모든 것이 불과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엘런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전부 안개를 걷어 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소드 마스터가 소리쳤다.
“예!”
사내들은 검을 꺼내 들었다.
우웅.
형형색색의 오러들이 검에 맺혔다.
그들이 검을 휘두르자 짙었던 안개들이 한 번에 걷혔다.
하지만 어디에도 페리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거야?”
“미치겠네. 정말, 가스필 님에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사내들이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을 때, 소드마스터의 눈은 허공을 맴돌았다.
그러다 그의 시선이 어느 한곳에 머물렀다.
타앗.
그의 몸이 바로 움직였다.
그가 뛰어오른 지붕은 엘런이 뛰어올랐던 지붕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 후로도 그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걸음은 엘런이 지나간 자리를 그대로 쫓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추적은 어느 막다른 골목길에서 끊겨버렸다.
‘없어졌다?’
지금까지 쫓았던 그의 흔적이 거기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어느 지붕을 보아도 누군가 밟은 자국이 없었다. 마치 그가 허공으로 떠오른 것 같았다.
‘그런 것은 마법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그는 마법사가 이토록 높은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헉헉, 베이브 님!”
“놓친 겁니까?”
뒤늦게 쫓아온 사내들이 숨을 헐떡였다.
“아무래도 별난 놈이 있는 것 같군.”
베이브는 벽을 툭 차고는 몸을 돌렸다.
“얼른 사람들을 더 풀어 벨라 시내를 샅샅이 뒤져라.”
“예!”
명령을 받은 사내들은 제각기 방향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베이브는 계속 그 자리에 남아서 한곳만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따돌린 것 같군.”
레비테이션과 급속기를 이용해 베이브를 따돌린 엘런은 페리스를 내려 주었다.
“아까 들으니까 페리스라고 하는 것 같던데, 그게 너의 이름이야?”
페리스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덜 된 것인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친 데는 없고?”
끄덕끄덕.
이제야 긴장이 풀린 것인지 엘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못 하는 건가? 아까 보니까 말은 할 줄 아는 것 같던데.”
도리도리.
페리스는 따로 말은 하지 않고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너 엘프야?”
그가 놀랄 것을 예상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페리스는 후드를 더욱 눌러쓸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갑자기 주변의 바람이 약간은 거칠게 불어왔다.
페리스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졌다. 아무래도 바람의 정령 실프는 페리스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하기 싫다는 건가? 하긴…….’
엘런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엘프의 숲을 안내받는 것은 그의 자발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이지 강제로 시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페리스는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을 매우 꺼린다.
그걸 굳이 들들 볶아 밝혀내고 지성의 탑까지 길을 부탁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이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자에게 그렇게까지 하기는 싫었다.
‘그냥 스승님과 함께 헤매다 보면 찾을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엘런은 지붕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위기 상황에서 데려 나와 추적까지 따돌려 주었다. 선의로 베푼 행동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꼬르르륵.
그것은 엘런의 배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뒤를 돌아보니 페리스의 고개가 푹 숙이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며칠은 굶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너 배고파?”
하지만 페리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에휴.”
한숨을 쉰 엘런은 주인장에게 받은 주머니를 꺼냈다.
“이거라도 먹어라.
엘런은 육포를 꺼내 페리스에게 주려 했다.
“아, 아니지. 엘프는 고기를 안 먹나?”
그러면서 육포를 도로 집어넣고 치즈를 꺼내려고 했다.
스윽.
페레스의 손이 엘런의 소매를 잡았다.
“엘프도 고기를 먹어?”
끄덕끄덕.
유난히 그 고갯짓이 즐거워 보였던 것은 엘런의 주변으로 부는 기분 좋은 바람 때문이었다.
페리스는 배가 아주 고팠는지 쉬지 않고 먹어 댔다.
엘런은 아예 자리를 깔고 앉아 그의 식사를 기다렸다.
만약 누군가 저렇게 먹성 좋게 먹고 있는 그를 본다면, 절대 엘프라는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다 먹은 거야?”
그는 식사가 끝났는지 쭈뼛쭈뼛 천 주머니를 엘런에게 돌려주었다.
“감사해요.”
드디어 페리스의 입에서 말이 나왔다.
“아니야, 앞으로는 어디 가서 잡히지 말고 다녀.”
“네.”
엘런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슈우욱.
그 순간 엘런은 목이 서늘해지는 기운을 느꼈다.
‘배리어, 2중첩.’
콰앙.
엘런은 순간적으로 배리어를 펼쳤다. 그리고 그 서늘한 기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오러?’
“설마 했는데 역시 마법사가 맞았군.”
엘런은 소리가 들린 쪽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검에 금색의 오러를 두른 베이브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