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 cooldown RAW novel - Chapter 90
90
엘프의 숲 (3)
* * *
소드 마스터.
하급 중급 상급에 따라서 그 실력의 차이는 뚜렷하다.
하지만 소드 마스터들은 오러를 이용한 강화의 경지를 돌파한 자들이다.
그들은 무기에 서려 있는 오러를 밖으로 사출시킬 수 있었다. 그것이 소드 마스터의 전유물 오러 블레이드다.
‘이거 소란만큼은 꼭 피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저 녀석을 보니, 이미 그 소란은 피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네놈의 공범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마법사가 그토록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는 갑자기 흔적이 사라진 것이 설명되지 않더군.”
타악.
베이브는 엘런이 있는 지붕으로 뛰어내렸다.
“그런데 마법사와 네가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하니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직접 보니까 놀랍군. 마법사가 그 정도의 신체 능력이라니.”
스윽.
페레스가 엘런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는 엘런의 옷자락을 꼭 잡고 있었다.
“얼른 그자를 내놓아라. 그럼 한 번에 죽여 주겠다.”
베이브의 검이 엘런을 향했다.
그의 검에 서려 있는 금빛 오러가 당장이라도 엘런을 찢어발기려고 했다.
“얘가 무슨 물건이냐? 내어놓고 말고 하게.”
“그렇다면 너의 사지를 하나하나 잘라 내어 죽여 주지.”
그의 검이 엘런의 미간을 노리고 들어왔다. 엘런은 페레스를 밀치고는 몸을 틀었다.
‘패더 폴.’
지붕 밑으로 떨어지는 페레스에게 낙하 마법을 걸어 주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너 아까부터 나를 쉽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네가 나보다 약하다는 건 알고서 말하는 거냐?”
쩌저적.
어느새 베이브의 두 발은 얼어붙어 있었다.
“어느 틈에?”
베이브는 그가 마법을 사용하는 낌새조차 느끼지 못했다.
‘주문 없이 마법을 사용한다는 건가?’
그런 형태의 마법은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가정을 그대로 적용했다.
쨍그랑.
판단이 빨랐기 때문에 놀라고 있는 시간도 적었다.
몇 초만 지체했어도 허벅지까지 얼음이 타고 올라왔을 것이다.
펄쩍 뛰어오른 베이브는 엘런을 향해 검을 내리쳤다.
‘배리어.’
위쪽에서 내려치는 공격이었기에 머리 위쪽으로 장막이 펼쳐졌다.
스스슥.
갑자기 그의 검로가 급격하게 틀어졌다.
위에서 아래로 베는 공격이었던 검은 어느새 방향을 바꿔 왼쪽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왔다.
‘위험하다.’
엘런은 허벅지 혈관의 마나를 폭발시켰다. 거기서 터져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그 자리를 이탈했다.
“놓치지 않는다.”
베이브의 검은 집요하게 엘런을 쫓았다.
‘이건 프로드 왕국의 검술이 아니다.’
기사 아카데미에서 배우는 검술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무술에는 초식招式이라는 게 있다.
엘런은 필립스에게 체술을 전수받을 때, 프로드의 대표적인 검술 초식도 공부했었다. 그런데 베이브가 쓰는 것은 엘런이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검술이었다.
엘런은 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 신체나 스태프를 강화하는 인챈트 계열 주문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변칙적인 공격은 전투를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방어형 오러라니.’
기사들이 오러를 개방하게 되면 그 오러는 각자의 특성을 가지게 된다.
불행히도 베이브의 오러 특성은 방어형이었다. 엘런의 저급 마법 정도는 충분히 방어해 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큰 마법을 사용하자니 그 여파로 다른 사람이 다치면 안 되고…….’
엘런에게는 살상 능력을 갖춘 필립스 권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했을 때였다.
주먹에 오러를 두르지 않는다면 그에게 아무런 피해도 줄 수 없다.
베이브도 엘런이 공격형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자신을 위협할 만한 공격이 없다는 걸 알자 그는 더욱 대담하게 달려들었다.
틱.
그때, 엘런의 팔꿈치에 단검 하나가 닿았다.
‘이거다.’
단검의 존재를 인식하자마자 엘런의 머릿속에 전략 하나가 번뜩였다.
지금같이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는 판단과 동시에 움직여야 했다.
엘런의 스태프에 혹한의 냉기가 서렸다.
채앵.
그러고는 물결처럼 출렁이는 베이브의 검을 막아 냈다.
극한의 냉기는 스태프와 검을 얼어붙게 했다.
“그 말랑말랑한 주먹은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겠나?”
엘런의 허리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왔다.
그와 동시에 엘런은 허리에 매달려 있던 단검을 꺼내 베이브의 가슴팍에 찔러 넣었다.
“엘런 님이야 워낙 강한 분이니 필요하진 않을 테지만, 혹시나 해서 준비했습니다. 기존의 것보다 발동 시간이 빠르고 지속 시간이 길 것입니다.”
해리포드를 떠나기 전, 그루트가 이 단검을 주며 했던 말이다.
울컥.
폐를 관통당한 베이브의 입에서 핏물이 한 움큼 쏟아졌다.
“마, 마법사가 오러를 사용한다고?”
오러는 기사들의 전유물이었다. 전장에서 그들이 흩뿌리는 오러는 그 자체로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한낱 마법사가 사용하고 있었다.
“글쎄, 이건 과학이라고 불러야겠지?”
푸슉.
엘런이 단검을 빼내자 그의 상처가 피를 뿜어냈다.
바닥에 쓰러진 베이브는 폐에 공기가 찼는지 그르렁거렸다.
“미, 믿을 수 없…….”
그는 자신의 말을 채 마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엘런은 그의 시체를 뒤로하고 지붕 밑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너 안 가고 있었어?”
먼저 도망치라는 의미로 내려 보내 준 페리스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엘런은 6미터 높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리더가 죽었으니 이제 더는 쫓아오기 힘들 거야.”
엘런은 어깨를 툭 쳐 주고는 자리를 떠나려 했다.
꽈악.
페리스가 엘런의 소매를 꼭 잡았다.
그의 입이 우물쭈물했다.
“저, 저기…… 감사해요.”
“아니야. 내가 위험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난 가 볼 데가 있어서 그럼 조심히 들어가.”
그렇게 말한 엘런은 그를 지나쳐 갔다.
“어디로 가실 생각인가요?”
페리스의 물음에 엘런이 멈추어 섰다.
“난 엘프의 숲으로 가려고.”
페리스는 놀랐는지 숙이고 있던 고개를 젖혀 들었다. 그 덕에 그의 후드가 벗겨졌다.
생기를 가득 머금고 있는 연한 녹색의 머리가 흘러내렸다.
쫑긋.
엘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미모와 더불어 긴 귀가 쫑긋거렸다.
“너, 여자였어?”
자신의 머리에 손을 올린 페리스는 후드가 벗겨졌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의 금빛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네, 맞아요.”
그녀는 얼른 후드를 뒤집어썼다. 부끄러웠는지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말을 이어 갔다.
“그건 그렇고, 인간이 엘프의 숲은 무슨 이유로 가는 것이죠?”
엘런은 그녀의 경계하는 눈빛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성의 탑에 갈 생각이야.”
페리스의 눈이 더욱 가늘어졌다.
“인간이 그곳을 알 리가 없는데…….”
“나도 스승님에게 들었어. 스승님도 우연히 발견한 거라 위치는 잘 기억 못 하셨거든.”
“스승님이라…….”
그녀는 뭔가를 떠올리려는 것 같았다.
“혹시, 그분의 이름이 프로뱅인가요?”
“너, 스승님을 알아?”
그녀의 입에서 프로뱅이라는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엘프의 수명을 생각하면 프로뱅의 활동 시기와 충분히 맞아떨어졌다.
“그분의 제자였군요. 저도 어릴 때여서 기억은 거의 없어요. 다만 지성의 탑을 찾은 최후의 인간이라는 말만 전해 들은 것이죠.”
-나도 모르는 꼬마다.
프로뱅의 목소리도 함께 들렸다.
영생에 가까운 삶을 사는 두 존재의 말을 들으니 시간 개념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저도 엘프의 숲으로 가는 길인데 함께 가시겠어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
페리스가 생긋 웃으면서 말한 것은 엘런이 가장 기다렸던 말이었다.
“그렇다면 사양하지는 않겠어. 그런데 나를 안내해 줘도 괜찮아?”
아무리 자신을 구해 줬다고 해도 자신은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숨겨진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안내한다는 것인가.
“괜찮아요, 프로뱅 님의 제자라면서요. 그리고 당신이 어떤 난동을 피우든 그곳에는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을 거예요.”
실로 어마어마한 자신감이었다.
그렇다고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프로드 왕국의 최상급 마법사였던 프로뱅도 엘프의 탑에서는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제가 혼자 돌아가기 무서워요. 이번에 인간들에게 너무 당했거든요.”
“나야말로 잘 부탁할게.”
* * *
벨라의 나무꾼에게 동부 수림지대의 외곽을 3일 만에 돌파했다고 말한다면, 실없는 소리 하지 말고 술이나 마시라며 핀잔을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페레스는 숲의 종족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동부 수림지대 외곽을 순식간에 돌파하였다.
그냥 뛰어갔다고 생각해도 좋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하지만 엘프의 숲 들어가서부터는 페레스도 조심스러워졌다.
“이곳은 세계수 님의 보호가 닿는 곳이에요. 이곳에서부터는 나무의 위치가 제멋대로 바뀌기 때문에 길을 잘 살피면서 가야 해요.”
프로뱅이 길을 잃은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주위는 어두컴컴했다.
군데군데 들어오는 햇빛이 없었더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나무가 우거졌다.
괴기하리만치 많은 나무 때문에 어쩐지 으스스한 기운이 돌았다.
마치 숲이 이곳에서 썩 꺼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서 며칠을 헤맸는지 모르겠어. 다시 돌아와도 기분 나쁘군.
프로뱅이 눈앞에 있었다면 몸서리를 쳤을 것이다.
‘이곳에 혼자 들어오려고 했다니, 저도 참 미쳤나 봅니다.’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방향이 헷갈렸다.
손목에 차고 있던 식당 주인의 나침반을 슬쩍 보니 그것만큼은 제대로 방향을 표시하고 있었다.
페레스가 방향을 틀 때마다 나침반도 핑그르르 돌더니 새로운 방향을 표시했다.
‘신기하단 말이야.’
-거기서 느껴지는 기운이 익숙하다고 했더니 무엇인지 알 것 같구나.
프로뱅의 말에 엘런이 정신을 집중했다. 그도 나침반의 정체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엘런 님, 혹시 법칙에 어긋난 존재를 만난 적이 있나요?”
갑자기 끼어든 건 페레스였다.
엘런은 그녀가 본의 아니게 프로뱅의 말을 끊자 아쉬워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엘런 님과 함께 있다 보면, 한 번씩 아주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거든요. 마치 이 세계의 법칙을 뒤틀어 버린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에요.”
엘런은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것은 프로뱅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아직 어려서 정확하게는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신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존재라는 엘프.
그들은 사악한 것과 대척점에 있는 존재였다.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엘런의 눈에 환한 빛이 들어왔다.
“다 왔다! 이제부터 진짜 엘프의 숲이에요.”
주변의 환경이 일순간에 바뀌었다.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볕은 나뭇잎에 부딪혀 부드럽게 숲으로 떨어졌다.
탐스럽게 생긴 과일들이 여기저기 맺혀 있었으며, 동물들이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모습은 마치 낙원에 와 있는 것 같았다.
“페레스?”
“어디 갔다 온 거야? 다른 분들이 얼마나 찾아다녔는지 알기나 해?”
숲을 경비하고 있던 엘프들이 페레스를 보고 망루에서 급히 내려왔다.
생전 처음 엘프를 본 엘런은 현실성 없는 현재의 상황에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다들 죄송해요.”
페레스와 인사를 나눈 엘프는 뒤에 있는 엘런을 보았다.
“페리스, 저자는 누구지?”
“프로뱅 님의 제자라고 해요. 저를 구해 주신 분이기도 하고요. 지성의 탑을 찾고 있다기에 데리고 왔어요.”
프로뱅이라는 이름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계하지 않는 건가?’
페리스라면 몰라도 다른 엘프들은 엘런을 경계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처음의 페리스보다 덜 경계하는 것 같았다.
-엘프는 인간에게 호감도 없지만, 그렇다고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이곳에서 생활하는 것에 만족해서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일 뿐이지.
프로뱅의 설명처럼 한 엘프가 그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난 대지의 아들 가르노아라고 하네.”
“엘런이라고 합니다.”
“지성의 탑을 찾아왔다고? 내가 안내하지.”
앞장선 가르노아를 따라 엘런과 페리스가 걸어갔다.
숲길에 있던 엘프들은 낯선 이방인엔 호기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자신이 하던 일로 돌아갔다.
‘애초에 남한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인가?’
엘런은 자신만 들뜬 것 같아 괜히 머쓱해졌다.
-여기저기 낯이 익은 자들이 있구나.
아무래도 들뜬 것은 자기 혼자만이 아닌 것 같았다.
정신없이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가르노아가 발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엘런은 하마터면 그의 등에 부딪힐 뻔했다.
그는 엘런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여기가 엘프의 보금자리 엘리너스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