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9
§ 108화
“감사합니다, 해솔님 덕분에 저희도 한시름 놓을 수 있겠습니다.”
트윈헤드 오우거가 협곡 너머로 달아났다는 소식에 이본느가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어떻게 해서 녀석을 협곡 바깥으로 몰아냈느냐에 관해서는 내 기프트에 관련된 걸로 해두었다.
마수가 꺼려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이본느는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눈치였지만, 애초에 오거스트의 지배를 ‘약화’시켰던 내 능력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그 비슷한 맥락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실상은 내가 한 일은 없고 모두 한세연이 세운 공적이었으나, 그녀가 모르도의 계약자라는 사실은 가급적 비밀로 해두고 싶었다.
모르도의 존재는 그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밖으로 새어 나갔다가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항상 공적을 가로채는 것 같아서 미안하네.
오거스트 때도 그렇고, 이번 트윈헤드 오우거 때도 그렇고, 붙잡아두거나 물러나게 한 건 내가 아닌 한세연이 한 일이었다.
은가를 구할 때도 크루트 무리를 조용히 해결한 건 한세연이었고.
그럼에도 모르도를 숨겨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공적이란 공적은 내가 항상 가로채고 있건만 한세연은 어떠한 불만이나 요구 한 번 내보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너무 고맙네.
나는 수박을 잘라 온 그릇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묵묵히 앉는 한세연의 입가에 닿은 머리카락을 옆으로 넘겨주었다.
놀랐는지 나를 돌아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던 한세연이 이내 옅게 웃어 보였다.
괜히 멋쩍어진 나는 이본느에게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바깥에 다크우드가 꽤 많던데, 이참에 그것들로 어둑서니의 영역을 둘러 쳐보는 건 어떨까요. 울타리처럼.”
“다크우드를 옮길 수가 있나요?”
조용히 웃고 있다가 내 발언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묻는 이본느.
“예, 위협을 가하면 옮겨가거든요.”
마냥 위협만 가하면 안 되고, 뿌리 쪽에다가 공격을 가하면 기겁한 다크우드가 엉금엉금 자리를 옮긴다.
그렇게 토끼몰이를 하듯이 움직이면 놈들의 배열을 바꾸는 게 가능한 것이다.
일명 ‘옮겨심기.’
이게 다크우드가 옮겨 심기만 하면 알아서 방범역할을 해주기에 게임에서도 유용하게 써먹던 기능이다.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좋은 생각이에요. 그러면 저희도 쉴 수 있어서 한결 편해지겠네요. 감사합니다. 해솔님.”
이본느의 얼굴에 화색이 떠올랐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거점을 옮겨야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표정이 어두웠던 이본느다.
그런데 트윈헤드오우거가 사라져서 그 문제도 해결된 데다, 다크우드가 심어지면 밤새 경계근무를 서던 데몬스폰들도 휴식을 취할 수 있으니 마음이 놓인 듯했다.
그때, 돌연 바깥에 쿵, 소리가 나더니 아나스타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수 15마리. ·········잡았어.”
“그래, 잘했어.”
내가 아나스타샤의 작은 머리를 쓰담쓰담 해주었다.
아나스타샤의 얼굴에 뿌듯한 웃음이 걸린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차리기 어려운 미미한 변화였다.
최근 꾸준히 마수를 사냥한 아나스타샤는 이틀 전 레벨 4가 되더니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어설프게나마 인간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떠듬떠듬 입을 여는 것을 보고는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이건 나도 전혀 모르는 변화였으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아나스타샤는 말을 하는 것 외에도 완전히 빛이었던 외관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외양을 점점 닮아가고 있었다.
나는 이 변화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 것인지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융합수이기 때문인가.’
아나스타샤와 나는 평범한 계약관계가 아닌, 융합으로 묶인 ‘운명공동체’였다.
그 말은 즉, 서로가 서로를 닮아가게 되어 있다는 소리다.
내가 아나스타샤에게서 높은 시력과 몸이 가벼워지는 민첩성을 얻었듯이, 아나스타샤도 내게서 영향을 받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것 외에 아나스타샤의 지금과 같은 변화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파랑이가 날이 가면 갈수록 잔꾀를 부리기 시작하는 거야 뭐··· 나도 모르겠다. 애초에 불사조가 그런 종족이거나 시스템에러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무튼, 아나스타샤의 변화는 당장으로서는 나쁘지 않았다.
“앞으로 들어올 때는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야 된다?”
“·········응.”
끄덕끄덕.
누구를 닮았는지 말도 참 잘 들어요.
앞으로 사회적인 상식도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아나스타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을 때다.
“실례하겠습니다.”
화사한 금발의 여자가 열려진 문에 정중히 노크를 하며 서 있었다.
아멜리아였다.
***
내가 아멜리아를 마경에 데려온 것은 트윈헤드오우거를 잡은 다음 날이었다.
이곳에 아멜리아를 들여도 될지에 대한 고민은 딱히 하지 않았다.
내가 겪은 아멜리아는 신용 면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었으니까.
일례로 한세울의 상점에서 만들어지는 단약에 관해서 입도 뻥끗 안하고 있는 게 바로 아멜리아였다.
물론 경고성 차원에서 협박을 좀 해두기는 했다.
이곳에 관해 발설하면 한세울의 포션사업에서 의자를 빼버리겠다고.
매점빵을 규제하겠다는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이만하면 문제 없겠지.
아무튼, 아멜리아를 부른 이유는 은가예와는 조금 다른 이유에서였다.
얘는 자신의 ‘기프트’가 비겁하다는 이유로 창피하게 여기고 있었다.
오죽하면 기프트를 각성했다는 사실마저 각성 당시 함께 있던 그녀의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그게 바로 아멜리아의 발전을 가로막는 ‘벽’이었다.
그리고 이 벽을 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강자와의 싸움이었다.
자신의 기프트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무시할 수 있는 강자에게 수십, 수백 번이고 깨져봐야 비겁한 기프트라도 망설임 없이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내가 봐도 아멜리아의 기프트는 사기였다.
마력탐지기보다 성능이 뛰어난 기감만 해도 이미 비겁한데, 거기에 기프트까지 탑제해 완전체로 진화한 아멜리아는 비겁함의 결정체라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니까.
무려 상대방의 마력 흐름을 읽고, 간섭까지 해버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아멜리아의 기프트, ‘마력의 지배자’였다.
···그랬다.
내 별명을 고스란히 현실화시킨 능력이 바로 아멜리아의 기프트인 것이다.
이게 얼마나 사기냐면, 상대방이 다음에 쓸 마법을 추측해가며 수 싸움을 벌여야 하는 마법사간의 대결에 있어서 상대방의 마법을 사전에 알 수 있는 아멜리아는 절대적인 우위를 가지는 것이다.
남들이 머리 빠개지게 치열한 심리전을 벌일 때 아멜리아는 그럴 필요 없이 미리 대처해놓고 다음 마법을 준비하면 그만이었으니까.
못해도 한 수에서 두 수 이상을 무조건 앞서가게 되니······
자존심이 강한 아멜리아로서는 양심에 가책을 느낄 수밖에 능력이었다.
아멜리아가 이런 자신의 기프트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계기는 2학년 1학기에 발생하는 ‘친언니’와의 분쟁을 통해서다.
천우진이 아멜리아를 잘 다독여서 ‘네 기프트는 비겁하지 않아! 조금 특별한 뿐이지.’라며 말도 안 되는 사상교화를 시키고 거기에 감화된 아멜리아가 기프트로 친언니를 박살 내 버리는······ 차마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토리다.
내가 하려는 짓은 아멜리아의 이런 기프트 사용을 무려 1년이나 앞당기는 것이었으나 딱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얘는 은가예와 달리 애초에 있는 걸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멜리아를 교육시켜 줄 대상으로써 내가 선택한 사람은 바로 이본느였다.
두 수를 보던 세 수를 보던 관계없이 화력으로 찍어 눌러버리는 이본느야말로 이런 교육에 적격이었으니까.
이본느는 이런 내 부탁에 흔쾌히 응했다. 아니, 오히려 기껍다는 반응이었다.
‘적적하던 차였는데 마침 잘 되었네요.’
저 말이 무섭게 들리는 건 분명 착각이 아니었다.
차분한 사람이 실은 무섭다고,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여도 실제로는 언데몬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바로 이본느였으니까.
아마 아멜리아를 반쯤 죽여놓지 않을까?
요즘 이래저래 스트레스도 많이 쌓인 것 같던데······
이런 자신의 미래는 꿈에도 모른 채 아멜리아는 내가 가져온 매점 빵으로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그녀는 단순히 ‘마법전 과외’를 받아보지 않겠냐는 내 제안에 가벼운 마음으로 온 차였다.
보이는 것만 봐서는 과외보다는 아나스타샤와 노는 것에 더욱 관심이 많아 보였지만.
전날 아나스타샤를 보더니, 푹 빠져버려서 이래저래 놀아주는데 아나스타샤도 딱히 싫어하는 것 같지가 않아서 내버려 두고 있었다.
“아움, 한국의 마경에 와보기는 처음이에요.”
“그런가요.”
빵을 우물거리며 창밖을 기웃거리는 아멜리아.
어제 방과 후에도 와봤으면서 아직도 놀랄 게 더 남아있나 보다.
하긴, 마경 안에 마을이 있다는 게 신기하긴 하겠다. 이건 나도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었으니까.
“그럼 이본느님, 부탁드리겠습니다.”
“후후, 맡겨주세요.”
“잘 부탁드릴게요.”
아무것도 모른 채, ‘과외’라는 가벼운 기분으로 예의를 차리는 아멜리아.
“여기는 좁으니 나가볼까요?”
“예.”
두 사람이 방을 빠져나갔다.
누군가의 비명이 메아리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꺄아아아악!
나는 아나스타샤의 두 귀를 막아주었다.
***
‘백야’는 미지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모험가 집단이다.
이터니티에는 아직도 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던전이나 신비가 수도 없이 존재했고, 백야의 목적은 그 미지를 밝히는 것에 있었다.
그들이 마경의 개척에 나서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현대에 들어서도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는 마경은 가장 큰 미지의 땅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고작 넷이서 어둑서니의 영역 주변을 탐색하라니······”
전사계열의 초인, 하태준이 고개를 저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어쩔 수 없어. 단체로 움직이면 다른 개척길드의 눈에 띄니까.”
GPS로 길을 탐색하던 백야의 마법사, 나탈리아가 말을 받았다.
마경의 개척은 위험하고, 손해밖에 나질 않는 사업이었지만, 그래도 마경에 발을 걸친 길드들은 존재한다.
운 좋게 자리를 잘 잡으면 그동안의 적자를 모두 메우고도 남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곳이 바로 마경이었던 것이다.
미국의 마경, 아마겟돈에서 떼돈을 벌어들이는 길드, 별의 성좌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시였다.
아무튼, 정보의 우위가 중요한 마경의 개척사업에서 다른 길드의 눈에 띄는 건 금물이었기에 그들은 넷이서 행동에 나선 차였다.
“긴급 워프석도 받아왔으니까 다들 안심하세요.”
로브를 쓴 정령사, 클로에가 푸른 마석을 들어 보이며 짐짓 밝게 웃었다.
“워프석이라도 주니까 왔지, 돈이 급한 게 아니라면 이런데 오지도 않았을 텐데.”
일본계 초인 타카바시가 한숨을 푹 내쉬자 클로에가 쓴 미소를 지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하지만 말은 그렇게 했어도 클로에 또한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둑서니는 추정불가등급 판정을 받은 ‘재앙’이다.
그런 재앙의 영역 주변을 탐색하라는데 긴장되지 않으면 거짓말이었다.
그때, 길을 탐색하며 앞장서던 마법사, 나탈리아가 멈춰서자 하태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이상해. 지도에 표시된 것하고 영역이 달라.”
나탈리아의 표정이 굳어졌다.
“다크우드 숲이 나오려면 여기서 한참 더 가야 할 텐데 왜 벌써······”
지도에 의존해 오느라 미처 몰랐지만 그들은 어느새 다크우드 숲에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이 다크우드 숲은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GPS대로라면 다크우드 숲은 여기서 한참 더 올라가야 나오는 것이었으니까.
어쨌든 확실한 것은 그들이 피해가야되는 다크우드 숲에 들어와버렸다는 사실이다.
쿠구구구······
사방에서 검은 뿌리들이 지면을 뚫고 솟구쳐올랐다.
“전원 전투준비! 클로에, 바람의 막으로 길을 열어!”
“네!”
지시를 내린 하태준이 검을 빼 들고, 정령사 클로에가 바람의 정령을 소환했을 때, 뿌리들이 네 사람을 향해 쇄도해 들었다.
***
“······큭, 이거 언제까지 계속되는 거야!”
집요하게 엉겨드는 다크우드의 뿌리를 쳐내며 하태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들이 다크우드 숲에 들어선지도 벌써 30분이 지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크우드 숲은 끝날 기미가 안보였다.
모르도의 영역 주변을 탐색해야하는데, 그 길을 따라 계속해서 펼쳐졌던 것이다.
“나탈리아! 제대로 안내하는 거 맞아?”
“마, 맞을 텐데···”
GPS로 방향을 제시하던 마법사, 나탈리아가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람의 막도 이젠 한계에요!”
나아갈 길을 확보하던 정령사 클로에가 지친 목소리로 외쳤다.
“어떻게 할 거야, 하태준, 너가 리더잖아. 빨리 정해!”
타카바시의 말에 하태준이 고개를 내저었다.
“미친, 돌아버리겠군.”
집요하게 들이닥치는 뿌리들 탓에 일행의 체력은 한계에 달해 있었다.
문득 워프석이 떠올랐지만 이렇게 아무런 성과도 없이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일단 왔던 길을 돌아가서 다시······”
이를 악문 하태준이 그렇게 지시를 내리려던 때였다.
피잉─ 피이잉─
돌연 수십의 빛줄기가 빗발치더니 사방을 잠식했던 다크우드의 뿌리들이 터져 나갔다.
“저, 저건···!”
갑작스러운 빛에 눈을 찌푸렸던 하태준은 놀란 클로에의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떴다.
그녀를 따라 시선을 돌리자, 웬 처음 보는 금발의 소녀가 서 있었다.
***
아나스타샤는 하루에 마수 15마리를 잡으라는 이해솔이 내준 숙제를 끝마쳤지만, 사냥을 이어가고 있었다.
‘마수를 열심히 사냥’하라는 이해솔의 조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기에 숙제를 끝냈음에도 마수를 계속 사냥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해가 지기 전에 돌아오라는 말도 숙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마수를 사냥하며 모르도의 영역을 돌아다니던 중 아나스타샤는 다크우드 숲에서 네 명의 사람을 발견했다.
“·········외부인. ·········데몬스폰 아님.”
그들은 하태준을 비롯한 ‘백야’의 마경 조사팀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이해솔이 내려준 행동지침을 떠올렸다.
이해솔은 모르는 사람을 보면 자신에게 보고를 하되, 곤경에 빠졌으면 일단 구해주라고 했다.
그러면 저들은 곤경에 빠졌는가?
“·········빠졌음.”
판단을 마친 아나스타샤가 빛포화로 다크우드의 나무줄기들을 모두 제거했다.
“누구······?”
네 사람 중 정령사로 보이는 여자가 놀란 눈으로 아나스타샤를 보며 물었다.
아나스타샤는 이름을 말하려다 문득 아멜리아가 해준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나는 숲의 관리자야.’
‘·········관리자?’
‘응, 언니가 읽은 판타지에서는······’
아멜리아는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다른 세계의 이야기가 적힌 책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떠오른 아나스타샤가 입을 열었다.
“·········아나스타샤. ·········숲의 관리자?”
“과, 관리자!”
여자가 입을 벌리며 경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