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
§ 14화
은가예가 속한 2조는 순조롭게 던전을 깨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은 놀랍게도 은가예가 아닌 박유천에게 있었다.
“이야~ 유천아. 너 죽인다. 그림자사마귀놈들 어떻게 쫓은 거야? 던전 웜은 또 어디 갔고?”
“와, 갑자기 웜 새끼들 튀어나와서 나 깜짝 놀랐잖아. 유천이가 있어서 다행이지.”
던전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세상 다 산 표정이었던 이순철과 남민우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박유천을 칭찬했다.
그도 그럴 게 던전의 마수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박유천만 보면 꽁무늬 빠져라 도망가기 바빴다.
심지어 박유천이 휘두른 주먹 한 방에 그림자 사마귀 수십 마리가 갈려 나가기까지 했다.
그런 박유천의 활약 덕에 2조는 별다른 어려움 없이 던전의 보스룸까지 직행할 수 있었다.
“야, 유천아. 너 이렇게 강한데 왜 올F 받은 거야?”
“그때는 약했으니까.”
“하하, 입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하루아침에 강해지기라도 한 사람처럼.”
이순철의 농담에 박유천이 슬쩍 입꼬리를 말아 보였다.
보스룸을 앞둔 이들답지 않게 2조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다 쉬었으면 이제 들어가자. 다들 이상 없는지 체크부터 해봐.”
이순철의 말에 2조는 각자 몸 상태를 점검했다.
무구는 멀쩡한지, 마력은 충분히 회복했는지, 놓고 가는 건 없는지······
은가예는 이해솔이 던전에 들어서기 전에 억지로 떠넘겼던 비도를 내려다보았다.
대체 무슨 의도로 쥐여준 건지 감도 잡히지를 않았다.
‘박유천을 조심하라는 건 또 뭐고?’
하여간 이상한 소리만 골라서 하는 놈이다.
고개를 저은 은가예가 흘낏 박유천을 바라보았다.
여유롭게 팔짱을 끼고 있는 모습이 평소의 우중충한 박유천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아니, 오늘 보여준 모습들만 놓고 보면 완전 딴 사람 같았다. 물론, 실력을 숨겨왔다니까 그럴 수 있기야 하다.
하지만 이해솔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난 직후여서 그런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 박유천의 안색이 갑자기 거멓게 달아올랐다. 은가예가 혀를 찼다. 하여간 무리하는 것 같더니만.
“야, 괜찮아?”
“어, 응, 조금 피곤한 것뿐이야.······콜록!”
“힘들면 쉬고 있어. 우리끼리 갔다 올 테니까.”
말을 내뱉고 반쯤 몸을 돌렸을 때였다. 은가예의 발이 뚝 멎었다. 놀란 눈이 크게 뜨였다.
“······야, 박유천.”
“왜?”
기침을 하던 박유천이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은가예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박유천의 눈가에 선명한 검은 기운이 맺혀 있었다.
그것은 선을 넘어버린 이들만이 지닐 수 있는 불길한 마력, ‘마기’였다.
“조심하라던 게 이거였구나.”
“뭐?”
푸하악!
붉은 피가 솟구쳤다. 박유천의 오른팔이 떨어져 나갔다.
“크아아악!”
어깨를 부여잡은 박유천이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은가예! 너 미쳤어?!”
느닷없이 박유천의 팔을 자르는 은가예의 행동에 놀란 이순철과 남민우가 소리쳤다.
하지만 은가예는 그들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두 사람의 시선이 은가예를 따라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부릅 뜨였다.
“헙!”
박유천의 잘려 나간 어깨. 그 단면부에서 검은 잿가루가 뿌옇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도 아주 잘 알고 있는 기운이었다. 이순철이 멍청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기?”
***
그 시각, 3조는 미친 듯이 던전의 통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많은 거야?!”
“바닥! 바닥 조심해!”
사방에서 튀어나오는 그림자 사마귀의 공격에 3조는 정신을 못 차렸다.
그리고 나는 제일 먼저 뛰어나갔던 게 무색하게도 어느새 가장 뒤처져 있었다.
“존나 빠르네.”
말이 뛴다지 저건 그냥 나는 수준이다. 그 좁힐 수 없는 격차에 새삼 내 육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게 되었다.
아무튼 그렇게 3조가 그림자 사마귀를 피해라 죽어라 뛰는 동안, 나는 나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그림자 사마귀들을 보고서 뒤늦게 깨달았다.
나는 뛸 필요가 없는데 뛰고 있었다는 사실을.
마력을 먹이로 삼는 그림자 사마귀들에게 마력이 없는 나는 길가의 돌멩이만도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이걸 무시 받았다고 화를 내야 할지 아니면 편하게 갈 수 있어 좋다고 해야 할지 잠시 헷갈렸으나 죽어라 뛰는 조원들을 보니 좋은 게 분명했다.
어느새 나는 뛰는 걸 멈추고 느긋하게 걸었다. 3조가 뛰는 걸 구경하면서 걸어도 그림자사마귀들은 내게 신경 하나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몸이 편하다 보니 자연히 사고회전이 빨라졌다.
소수 생활을 하는 그림자 사마귀가 군집을 이루는 경우는 명령을 내리는 ‘머리개체’가 나타났을 때뿐이라는 걸 뒤늦게 자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그놈만 잡으면 사마귀들이 알아서 해산한다는 소리였다.
나는 벽을 서성이는 사마귀들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음, 역시 모르겠네.”
숫사자가 하이에나들 사이에서 우두머리를 기가 막히게 잘 찾아낸다는 말이 떠올라서 해 본 행동인데 내 눈에는 다 그놈이 그놈 같아 보였다.
하기야, 이게 구분되면 내가 짐승이지.
물론 맨눈으로 봤을 때 구분이 안 간다는 소리고, 내게는 사자보다 더 유용한 레이더가 있었다.
우웅.
그람을 쥐자 안에 잠들어 있던 신대의 마력이 팔을 타고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마력을 머금은 육체가 세포 단위로 깨어나고 오감이 극대화된다. 장님이 눈을 뜬 것처럼 세상이 확 밝아진 기분이다.
[그람◆이해솔 동화율 5.3%]“오, 0.3%나 올랐네.”
그동안의 노고가 허사는 아니었는지 작게나마 높아진 동화율에 소소한 만족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림자 사마귀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돌아왔다.
일시적으로 받아들인 그람의 마력에 놈들이 반응한 것이다.
사방이 놈들로 둘러싸였기에 제법 위험한 상황이었으나 상관없었다.
좀 전까지 읽히지 않던 녀석들의 행동체계가 손에 잡히듯 훤히 들어왔으니까.
고개를 옆으로 슥 돌렸다. 고맙게도 우두머리 사마귀는 바로 내 옆 벽면에 붙어있었다.
─······!
시선이 마주친 녀석의 놀라는 기색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를 공격하라는 신호를 보내려는 것까지도.
저 신호가 가면 사방에서 무수한 갈고리가 나를 노리겠으나······
“늦어, 새끼야.”
퍼억!
신호가 채 전달되기도 전에 그람의 비도가 놈의 머리통을 박살 내버렸다.
머리가 사라진 녀석이 검은 재가 되어 무너져 내렸다. 그러자 어두웠던 던전이 차츰 밝아지기 시작했다.
우두머리 개체의 죽음에 통로를 잠식했던 그림자 사마귀들이 달아나는 것이었다.
***
한세연은 그림자 사마귀들의 무리에 자연스레 섞여드는 이해솔을 흥미 어린 눈으로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그들과 함께 뛰던 이해솔이 갑자기 뒤처지는 척 늦어지더니, 사마귀들 사이로 스며든 것이다.
그리고 그림자 사마귀들은 이해솔이 자신들 사이에 섞여들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실낱같은 마력에도 반응하는 그림자사마귀들이었으나, 이해솔은 그 실낱의 마력조차 내보이지 않았으니까.
이해솔의 마력을 지우는 능력은 그만큼이나 뛰어났다.
그런데 왜 섞여든 거지?
의아해하던 한세연은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해솔은 그림자 사마귀 중 한 개체를 정확히 골라내더니 비도로 소멸시켰다. 그러자 마치 썰물 빠지듯이 그림자 사마귀들이 물러나기 시작했다.
“뭐야? 이것들 갑자기 왜 물러나?”
“인공던전이잖아. 여기까지만 오게 되어있나 보지.”
“그런건가?”
정신없이 뛰느라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김하윤과 오진혁이 중얼거렸다.
그림자 사마귀들 탓에 거리가 조금만 멀어져도 시야를 분간할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이해솔이 사마귀들 사이로 섞여들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사수’인 한세연은 눈이 좋았기에 이해솔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해솔은 단순히 그림자 사마귀를 죽인 것이 아니었다. ‘우두머리 개체’를 색출해 사냥한 것이다.
시야가 트인 던전. 멀리서 걸어오는 이해솔을 보며 한세연이 중얼거렸다.
“정말 해솔이는 대단하네.”
이해솔이 처음 비도를 사용할 때만 해도 그녀는 조금의 흥미만을 보였다.
신기하긴 했으나 딱 거기까지일 뿐, 총하고 비교했을 때 실용성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그림자 사마귀들에게 자연스레 섞여드는 모습 또한 놀랍긴 했으나 한편으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자 사마귀는 마력에 반응하고, 이해솔의 마력제어가 뛰어나다는 것은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니까.
하지만 이해솔이 수많은 그림자 사마귀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개체를 정확히 골라내 퇴치했을 때, 한세연은 정말이지 놀라버렸다.
그도 그럴 게 그림자 사마귀들 사이에서 특정 개체를 골라내려면 녀석들의 마력 패턴을 읽어내야만 했으니까.
그리고 마력 패턴을 읽는 행위는 상대방과 몇 단계 이상의 현격한 차이가 나야지만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이곳에 모인 그림자 사마귀 전부의 마력패턴을 읽어내자면 그 이상의 차이가 나야할지도 몰랐다.
물론 대보구쯤 되는 물건이라면 마력패턴을 읽어낼 수도 있다고 들었으나 능력의 일부만이 해금된 그람이 대보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한세연이었다.
***
“쟤는 왜 저래?”
아까부터 부담스럽게 눈을 반짝이는 한세연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 나는 대충 무시하기로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굴이네.”
“응, 동굴이야.”
김하윤이 내 의견에 동의했다.
던전이 동굴이지, 뭐가 동굴이겠냐만 우리가 여지껏 지나온 던전은 동굴이라 하기엔 그 환경이 지나치게 제각각이었다.
반면 이곳은 진짜 오리지널 동굴다운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천장에는 종유석이 달려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벽에는 이끼가 껴 있는 그런 동굴.
보스룸이 가까워졌다는 증거였다.
이터니티에서는 보스룸 가까이를 이런 식으로 꾸며놓으니까.
그때 동굴 저편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울려왔다. 이내 등장한 건 1급 언데드 마수, 블랙독 4마리였다.
1급치고는 제법 날렵하지만 앞서 겪었던 놈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난이도를 지닌 마수.
“뭐야, 4마리면 별거 없네.”
오진혁이 김빠진다는 반응을 보이며 자신있게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나는 이 녀석들이 순 훼이크성 마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스룸이 가까운데 이터니티에서 고작 이런 놈들을 마수랍시고 세워두었을 리 없었으니까.
나는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신경 써서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지렁이 기어간 흔적이 어지러이 남아 있었다.
‘던전 웜이네.’
2급 마수 던전 웜.
블랙독이 위에서 시선을 끌 때, 바닥에서 확 튀어나와 사람 간 떨어지게 하는 녀석.
이놈은 확실히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알 길이 없고, 튀어나왔다 싶으면 바로 들어가 버리니까.
“으엇!”
과연, 생각 없이 나섰던 오진혁은 느닷없이 바닥을 뚫고 튀어나온 던전 웜에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퍼억!
불쑥 고개를 내민 던전 웜은 미리 대비한 내 비도에 머리를 뚫려 죽었다.
“······와.”
던전 웜의 머리를 꿰뚫은 비도를 보며 김하윤이 나직이 감탄했다.
그럴 수밖에. 그녀가 보기에는 갑자기 튀어나온 던전 웜을 내 비도가 번개처럼 꿰뚫은 것으로 보였을 테니까.
속도도 속도고 던전 웜의 두터운 가죽을 단숨에 뚫는 것도 놀라웠을 것이다.
실상은 한참이나 미리 비도에 기력을 모으고 있다가 바닥이 흔들릴 때 날려 예측 샷을 노린 것뿐이지만.
옆에서 한세연이 마치 다 안다는 듯 싱긋 웃는 건 조용히 무시해주었다.
그렇게 오진혁을 미끼 삼아 던전 웜을 가볍게 사냥한 뒤였다.
허리춤의 비도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내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벌써 시작했나.’
아무래도 박유천이 본색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가자.”
나는 비도가 이끄는 대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3조가 뒤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