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
§ 15화
박유천의 잘린 어깨에서 마기가 안개처럼 흘러나온다.
혈관은 거멓게 침식되고, 동공에서는 흰자위가 사라졌다.
“뭐, 뭐야. 저게?”
“···박유천이 마인이라고?”
마인을 처음 마주한 이순철과 남민우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순간 흘러내린 마기가 뭉치더니 두 사람을 덮쳐갔다.
“헙!”
멍하니 굳어있다 퍼뜩 정신을 차린 두 사람이 잽싸게 좌우로 산개했다.
다음 순간, 뿜어진 마기가 두 사람이 있던 공간을 덮쳤다.
천장이 와르르 무너지고 벽이 무언가에 찢긴 것처럼 깊게 패여 나갔다.
두 사람의 표정이 꺼멓게 죽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찢기는 건 벽이 아닌 그들 자신이 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박유천의 공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울컥거리며 뿜어져 나온 마기를 갑주처럼 두른 박유천이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녀석이 노리는 대상은 자신의 오른팔을 잘라간 은가예였다.
포탄처럼 날아든 박유천의 공격이 마구잡이로 퍼부어진다.
주먹을 붕붕 휘두르고, 이빨로 물어뜯고, 어깨를 들이받고······
이성을 잃은 짐승처럼 어설프기 짝이 없는 공격의 연속.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광포함은 어설픔을 덮고도 남았다.
공간을 울리는 광포함에 기가 질릴 법도 했으나 은가예는 당황하지 않았다.
힘만 강해졌다 뿐이지 박유천의 움직임 자체는 형편없었으니까.
어색하게 휘둘리는 주먹을 피한 은가예가 검을 사선으로 내리그었다.
“크아악!”
상반신을 베인 박유천이 찢어지는 비명을 토한다. 하지만 공격을 성공시켰음에도 은가예의 표정은 찌푸려졌다.
“칫.”
마기가 꿈틀거리더니, 박유천의 잘린 몸이 순식간에 수복되고 있었다. 설상가상 마력을 제어하기가 힘겨워지고 있었다.
평소에도 흐름이 거친 그녀의 마력이 광포한 마기에 자극을 받자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길게 끌면 안 되겠어.’
마력이 더 날뛰어서 제어가 어려워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
날아드는 마기를 쳐내며 훌쩍 물러난 은가예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푸른 마력이 검에 맺히며 크기를 부풀려갔다.
시간을 주면 위험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한 박유천이 달려들었다.
은가예는 박유천이 달려들고 있음에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직 검에 마력을 모으는 것에만 온 정신을 쏟아부었다.
그렇게 한 발자국만을 남겨두고 마기의 권풍이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을 때.
휘이익!
은가예의 검이 움직였다. 휘둘리는 검을 따라 중력이 뒤틀리며 마기가 밀려난다.
콰아아앙!
처참히 찢겨 진 박유천이 달려오던 속도보다 배는 빠르게 튕겨 나가 던전의 벽에 처박혔다.
“하아, 하아.”
검을 거둔 은가예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띵하고 눈앞이 흐릿했지만 은가예는 던전의 벽에 처박힌 박유천을 노려보았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지만 박유천이 일어 날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 탓이었다.
그리고.
“크으으.”
“!”
신음을 내뱉으면서도 박유천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가슴에 커다란 상흔이 패인 채, 어깨며 머리가 박살난 기괴한 모습.
그런데 잘만 움직인다.
“······씨발, 더럽네.”
욕지거리를 내뱉는 찰나, 시야가 캄캄해졌다. 아니, 마기가 덮쳐온 것이었다. 은가예는 눈을 감았다.
이만하면 할 만큼 했으니까.
더 이상 뭘 할 여력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랬기에, 은가예는 덮쳐오던 마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도 느껴지지 않는 고통에 은가예는 눈을 떴다.
그리고.
“······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누군가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분명 여기 있을 리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항상 의미 모를 짓만 일삼는 이상한 녀석. 그럼에도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가는 사람.
“괜찮냐?”
이해솔이었다.
***
······2조가 싸움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 던전을 순조롭게 나아가던 3조는 난관에 봉착했다.
“읏!”
오진혁이 무릎을 굽히며 멈춰 섰다. 뒤따르던 김하윤과 한세연도 마찬가지였다.
“······마력장?”
오진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통로 전체에 움직임을 구속하기 위한 마력장이 펼쳐져 있던 것이다.
덕분에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제 자리에 멈춰 서야 했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야, 진혁아 저거······”
김하윤이 손을 억지로 움직여 바닥을 가리켰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땅에 어지러이 파인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래에 던전 웜이 기생하고 있을 때 볼 수 있는 흔적이었다.
하물며 저건 한두 마리가 남길 수 있는 흔적이 아니었다.
“못해도 20마리는 되겠어.”
김하윤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오면서도 몇 번이고 던전 웜을 마주했지만, 그 특유의 징그러운 생김새와 바닥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돌발성 때문에 그녀는 던전 웜이라면 질색을 했다.
그런데 그 던전 웜이 한 두 마리도 아니고 20마리씩이나 몰려있던 것이다.
“······.”
나는 눈을 좁혔다.
마력장만이라면 모를까, 통로에 기생한 던전 웜까지 이터니티에서 준비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위험하다. 아무래도 던전 웜은 박유천의 소행인 듯했다.
오진혁 또한 위험하다는 것을 느꼈는지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이거,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아니, 여기로 가자.”
그람의 비도는 이 너머에 은가예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굳이 위험한 길로 갈필요는 없잖아. 이걸 어떻게 뚫고 가게?”
오진혁이 인상을 굳혔다.
마력장으로 인해 몸이 굳었기는 하나, 억지로 움직이려면 움직이는 건 가능했다. 다만 그랬다간 던전 웜의 공격을 받게 될 터였다.
마력장도 힘겨운데 거기다 던전 웜까지 상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오진혁은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오진혁의 판단은 지극히 옳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라면 가능했다.
마력이 없기 때문인지 나는 마력장의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으니까.
“한세연, 던전 웜들 나오면 쏠 수 있지?”
“응, 미리 대비하면 가능하기야 한데······”
한세연이 말끝을 흐렸다. 어떻게 던전 웜을 불러낼 거냐는 의문과 함께.
“내가 갈 테니까 나오면 잡아.”
“······.”
눈을 크게 뜨는 한세연을 뒤로하고 숨을 크게 들이마신 나는 곧장 뛰어나갔다.
콰과과과과광!
위를 지나기 무섭게 땅을 뚫고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는 던전 웜들.
떨어져 내리는 던전 웜의 벌어진 아가리에서 수십 쌍의 날카로운 이가 번뜩인다. 그리고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퍼엉!
한세연의 사격이었다.
그녀의 탄환은 단 한 마리의 던전 웜도 놓치지 않았다.
저 미친 명중률은 한세연이 지닌 재능의 극히 일부였다.
그렇게 한세연의 엄호를 받으며 나는 간신히 통로 너머까지 도달했다.
“뭐, 뭐야? 지금 뭐 어떻게 한 거야?”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당황한 김하윤이 중얼거린다. 놀란 조원들의 눈이 나를 향한다. 하지만 그러한 반응에 대답해 줄 여유는 없었다. 아까부터 그람이 몸을 떠는 게 은가예 쪽의 상황이 심상치 않아 보였으니까.
“······어휴, 쉬지를 못하겠네.”
마력장을 굼벵이처럼 기어오는 조원들에게 먼저 갈 것을 통보한 나는 통로 너머로 달려갔다.
좁았던 길이 넓어지며 기분 나쁜 마기의 끈적임이 피부를 적셔왔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너른 공동에는 2조가 마수무리와 대치하고 있었다.
‘은가예는?’
나는 은가예를 찾아 시선을 돌렸다.
공동의 구석. 팔 한 짝이 날아간 기괴한 몰골의 박유천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은가예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때, 박유천이 손을 뻗었다. 말뚝의 형상을 취한 마기가 은가예를 노리고 쏘아졌다.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다급히 의지를 일으켰다.
재능, 이기어검이 발현되며 은가예에게 보험으로 들여놓았던 비도가 움직였다.
허공에 푸른 마력의 선이 그어졌다. 마기를 가른 그람의 비도가 내게 돌아왔다.
그렇게 은가예에게 달려가니 감았던 눈을 뜬 녀석이 멍청한 소리를 토했다.
“······어?”
“괜찮냐?”
반쯤 얼이 나갔는지,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크아아아아아!”
순간, 분노한 박유천이 괴성을 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노골적인 마기에 나는 잠시 움찔했으나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할 만해.’
기실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혼자 달려온 게 아니었다.
순수한 능력으로만 따지자면 생도 최하위 수준인 내가 마인이 된 박유천에게 비빌 리가 없었으나, 능력에는 그 ‘상성’이란 게 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내 상성은 마인에 특화되어 있었다.
우웅.
허공에 떠오른 세 자루의 비도에 각각의 기운이 맺혀 든다.
첫 번째 자루에는 ‘마룡’을 베어낸 그람의 마력이.
두 번째 자루에는 내 순수한 기력이.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자루에는 항마의 기운이.
이카루스의 반지가 제한하는 것은 사용자의 마력. 반면 그람에 깃든 마력은 그람 스스로가 지닌 마력이었기에 가능한 신기(神技)였다.
휘이익!
상이한 기운을 품은 세 자루의 비도가 박유천을 노리고 쏘아진다.
박유천은 분노한 와중에도 비도의 위험성을 느꼈는지 이를 피하고자 몸을 틀었다.
하지만 내 비도는 피하면 그만인 일반적인 비도와는 다르다.
박유천이 몸을 튼 만큼 비도 또한 방향을 틀었다. 놈은 이마저도 기괴한 몸놀림으로 피해냈으나 비도는 하나가 아니었다.
퍼억!
두 번째 비도가 박유천의 옆구리를 파고든다.
“크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을 토한 박유천이 마기를 일으켰다. 꿈틀거리며 일어난 마기가 세 번째 비도를 휘감는다.
그러나 세 번째 비도는 항마의 비도.
휘어 감는 마기를 간단히 지워버린 항마의 비도가 박유천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어느새 허공을 선회한 첫 번째 비도 또한 어깨를 꿰뚫었다.
“끄어어······”
그람의 마력과, 기력, 항마력이 박유천의 내부를 휘젓고 파괴한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당장이라도 즉사할 치명상.
허나 박유천은 마인의 괴랄한 생명력을 자랑하듯 내게 달려들었다.
퍼어억!
순식간에 면전까지 치달은 녀석이 팔목을 휘두른다.
팔목에서 뻗어 나온 마기는 당장이라도 내 머리통을 분쇄해버릴 만큼 광포했다. 그러나, 그 광포한 일격이 내게 닿을 일은 없었다.
내게서 발출된 비도 한 자루가 녀석의 미간을 꿰뚫은 뒤였기에.
“세 자루가 전부라곤 말 안 했다만.”
“······.”
미간에 비도를 박은 채 부르르 떨던 박유천이 뒤로 넘어갔다.
나는 쓰러진 박유천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기분이 조금 묘했다. 비록 마인이라곤 하나, 이건 내 첫 살인이었으니.
[마인 박유천을 처치했습니다.] [사이드 퀘스트 클리어 : 은가예의 사망선이 해제됩니다.] [보상으로 1000SP가 수여됩니다.] [처음으로 마인을 퇴치했습니다.] [보상으로 1000SP가 수여됩니다.] [보유 포인트 : 5200SP]박유천의 사망을 알리는 보상 알림이 떠올랐다. 마치 이곳이 게임임을 상기시켜주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