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3
§ 162화
영멸의 밤이 물러가면서 녀석이 문을 열려던 시도는 무산이 되었으나, 노아는 영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고?’
그녀는 공동에 쓰레기 더미처럼 산산이 조각난 지룡, 키아브리스의 사체를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제아무리 유진이 용들의 약점인 레퀴엠을 들고 있었다고 하나, 키아브리스는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가장 오래된 존재인 올드원의 일원이자, 영악하기가 그지없는 서쪽의 사악한 악룡이었으니······
그런 키아브리스를 금제하고 균열의 문을 지키는 ‘가디언’으로 구속시켜 놓았던 것이 바로 노아였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재앙’이라 불리는 키아브리스를 바깥에 풀어놓는 것만큼 인류에게 해악이 되는 것은 없었으니까.
애초에 고작 레퀴엠 하나 얻었다고 이렇게 쉽게 해결될 존재였다면 ‘재앙’이라 불리지도 못했던 것이다.
녀석의 영악함에 미루어 보자면 지금의 상황은 영 수상쩍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사체를 보고 있자니 키아브리스가 죽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정말 당한 건가.’
눈을 얇게 여민 그녀가 손을 휘저었다.
화아아아악──
암해처럼 어두운 마력이 퍼지며 공동에 산재한 키아브리스의 사체가 먼지로 화한다.
피 웅덩이, 뼈, 비늘, 육신······
그녀는 찜찜함을 지우고자 키아브리스의 사체를 단 한 점의 조각조차 남기지 않고 모두 없애버렸다.
노아는 그제서야 주변에 있는 이들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단 한 명만 빼곤.
이와중에도 제 검에 키아브리스의 마력을 흡수시키고 있는 녀석을 보며 노아는 혀를 내둘렀다.
상황에 휘말리지 않고 알아서 제 몫을 챙기는 게 대단히 영악한 녀석이었다.
마법으로 인상착의를 바꾸곤 있었으나 노아는 상대가 이해솔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리고 그로 인해 마음이 상당히 복잡해졌다. 그녀가 아는 이해솔은 ‘그 녀석’의 후손이었으니. 반응으로 봐서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그건 그렇고······
‘신기하단 말이지.’
이해솔이 넘겨 받는 한세연을 보며, 노아의 눈이 이채를 띄었다.
‘분명 침식을 당하고도 남았어야 하는데.’
그녀가 보는 한세연은 당장 폭주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아슬아슬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모르도와의 동화율이 어찌나 높은지, 거진 100%에 달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보통 소환수와의 동화율은 60% 이상만 넘어도 몸을 빼앗길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하물며, 그 소환수가 숙주에 기생하는 마수인 모르도이며, 한세연은 의식을 잃기까지 한 상황이었다. 벌써 몇 번이고 폭주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모르도는 한세연의 몸을 넘보지 못했다. 암만 소환계약에 묶여 있다지만 이는 대단히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는 주체는······
‘이해솔. 저 아이겠지.’
이해솔이 한세연을 넘겨받자 그녀의 상태가 눈에 띄게 안정되었으니까.
그리고, 육신에 안착한 정신이 안정적이라면 암만 모르도라도 육체의 주도권을 빼앗아 오진 못한다. 그만큼 자아가 뚜렷하다는 뜻이었으니.
한세연에게 있어 이해솔이란, 그녀의 정신을 붙들어주는 디딤목이자 ‘검집’의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 검집을 위해 무리를 한듯했지만······.
“그 아이, 잘 대해줘라. 너를 위해 희생을 하고 있는 듯하니.”
“알고 있습니다.”
이해솔이 고개를 끄덕인다. 노아의 말은 걱정임과 동시에 경고였다.
만약 한세연이 폭주를 해버린다면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의. 한세연의 폭주는 곧 ‘재앙’의 시작이었으니까.
말을 끝낸 노아가 균열의 문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해와 같은 마력이 뻗어나가 문에 스며들었다.
쿠그그그그그─
문고리를 감싼 쇠사슬이 굉음을 내며 돌문을 단단히 옥죈다. 그리고 그 위로 수십 겹의 새로운 쇠사슬이 창조되었다.
그렇게 문의 보안을 강화한 노아는 우리를 내버려 둔 채 공동의 밖으로 나갔다. 그 뒤를 서하린을 비롯한 1팀의 초인들이 따랐다.
생도들이 마력을 빼앗기는 바람에 바깥의 소란은 아직 잦아들지 않았을 테니까.
“마스터는 안 나가십니까?”
“소피아 먼저 나가 있어요. 금방 갈게요.”
“알겠습니다.”
이윽고 소피아마저 공동을 나서자 안에는 나와 기절한 한세연만이 남았다.
한세연을 소피아에게 맡길까 싶었으나, 지금처럼 기절한 상태에서는 언제 모르도가 침범해올지 알 수 없었기에 가능하면 주위에 놓는 게 옳다 판단한 것이다.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력을 불어넣자 한세연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공동의 한편에 그녀를 기대 놓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실 내가 공동을 나서지 않은 이유는 이 에피소드의 핵심이 ‘영멸의 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저 지나가는 태풍일 뿐이다. 에피소드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내 시야에는 하나의 상태창 문구가 떠올라 있었다.
[지룡 키아브리스가 풀려났습니다!] [경고! 키아브리스가 그릇을 얻을 경우, 재앙이 탄생합니다.]굵직한 붉은 글씨와 삐이, 삐이- 경고음을 울려오는 상태창.
그러나 내 입가에 들어찬 것은 긴장이나 두려움이 아닌 짙은 웃음이었다.
지금이야말로 내가 가장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으니까.
그으으으으─
그때, 내 눈앞으로 희뿌연 안개 같은 영혼이 떠올랐다.
【크하하하하! 드디어 풀려났구나!】
용의 형상을 갖춘 영혼이 대소를 터트린다.
노아의 금제로 인해 균열의 문을 지키는 가디언 신세가 되어야만 했던 지룡(地龍) 키아브리스였다.
녀석은 영멸의 밤에게 일부러 당해주는 척 연기를 함으로써 노아를 속이는데 성공한 것이다.
【멀쩡한 육신도 준비되어 있군.】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을 하지 못하는지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키아브리스.
내 입가에 어린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
스아아아악──
키아브리스의 영혼은 지체없이 내 몸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가 드높은 정신력을 가진 용이라지만, 육신이 없는 상태로는 오랫동안 영혼을 유지할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조급한 선택이야말로 녀석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였다.
“뛰어들 상대를 보고 뛰어들었어야지.”
만약 키아브리스가 나를 지나쳐 밖으로 나가 다른 생도의 몸으로 들어가기만 했었어도 골치가 아파졌을 것이다.
녀석이 작정하고 기척을 감추면 어느 몸에 숨어들었는지 나조차도 알아내기는 어려웠을 테니까. 하지만 녀석은 오랜만의 해방감에 들뜬 나머지, 조심성 없게 내 몸속으로 기어 들어오는 실책을 범했다.
【이, 이건······!】
키아브리스에게서 당혹감 어린 음성이 터져 나왔다.
“왜, 예상과 많이 달라?”
【너, 인간이······】
“인간 맞아.”
【그런 말도 안 되는·····!】
녀석이 나를 두려운 눈길로 바라본다.
그런 우리의 사이로 거대한 대형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강남의 왕복 4차선 도로. 나와 키아브리스는 도로를 마주 보고 서 있었다.
이곳은 내가 그려내는 심상.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세계였다.
스윽. 내가 손을 들어 올리자 모든 소음이 사라진다.
웅성웅성 떠들며 거리를 지나다니던 사람들도, 도로를 달리던 차량도.
모든 것이 멈추어 선 채, 키아브리스를 쳐다보았다.
““······.””
수백 쌍의 눈길이 쳐다보는 소름 끼치는 정적 속.
삐비비비- 삐비비비-
[녹색 불이 켜졌습니다. 건너가도 좋습니다.]삐비비비- 삐비비비-
신호가 바뀜을 알리는 기계음이 정적을 깨며 울려 퍼졌다.
나는 하얀 선이 쳐진 거리를 넘어 키아브리스에게로 걸어갔다. 녀석의 황금색 눈동자가 잘게 떨린다.
“도망치게?”
【······!】
“어떻게 알았냐고?”
【너······】
“그야 당연하지. 여기는 내 심상이니까.”
나는 녀석이 느끼는 감정, 생각, 무의식 등을 손금 보듯 꿰뚫어 보았다.
이곳은 나의 세계이고, 부동의 각인을 지닌 나는 절대자였으니.
철컥─. 철컥─.
순간, 어디선가 들려오는 강철의 걸음.
“오셨네요.”
키아브리스의 시선이 나를 따라 돌아간다.
그곳에는 현대의 도심과 어울리지 않은 인물이 걸어오고 있었다.
찬연한 백금발의 머릿결을 늘어트린 중세의 여기사.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람.”
그런데, 내가 쳐다보자 다가오던 그람의 복장이 스르르 바뀐다.
갑주는 몸에 달라붙는 새하얀 와이셔츠로, 하의는 무릎에 닿는 푸른 스커트로. 아니, 검은 스커트.
강철 부츠는 캐쥬얼 신이었다가, 구두로 바뀌고, 흰 목을 가렸던 머릿결은 깔끔히 뒤로 넘겨져 리본이 묶여 진다.
휘릭-
머리에 묶인 푸른 리본을 한 손으로 잡아 풀어헤치는 그람. 풍성한 금발이 너울졌다.
그녀는 제 복장의 변화를 내려다보며 입매를 은근하게 말아 올렸다.
“이게 그대의 취향인가 보군.”
“···어, 음.”
나는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그런가 본데요?”
이곳은 나의 심상이기에 내 무의식마저 영향을 끼치는 공간이었다. 그렇기에 내가 은연중에 무언가를 떠올리면 그것이 모두 반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지금의 그람의 모습은 내가 가장 어울린다 은연 중에 생각한 외견이라는 뜻이었다.
이는 나도 집중을 하지 않으면 조절을 하기가 어려웠다.
‘···조심해야겠네.’
엄한 상상이라도 했다간 큰일이니.
내가 그리 굳건히 마음을 먹었을 때였다.
【크아아아악!】
돌연, 비명이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니 키아브리스가 두 눈을 부여잡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을 부여잡은 녀석의 손가락 사이로 붉은 피가 흘러내려 땅을 적신다.
“······.”
나만 보기를 원했나?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내 심상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던 키아브리스가 그 반동으로 타격을 받은 것이다.
두 눈을 부여잡았다 여긴 건 이마를 감싸쥔 거였고······
아무튼, 내 심상으로 그람을 초대한 것은 바로 나였다.
그녀에게는 지룡의 피를 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이는 단순히 공동에 널린 피웅덩이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지룡, 키아브리스.
녀석의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신화의 시대. 악룡 파프니르를 베어 영성을 획득한 그람에게 있어 용이란 가장 일용할 양식이었으니.
그런데 키아브리스도 그람이 자신의 천적이라는 것을 인식한 듯했다.
도망치려고 두 다리를 미친 듯이 움직였으니. 물론 ‘제자리’에서.
기실, 키아브리스가 온전한 상태였다면 아무리 이곳이 내 심상 속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스스로의 죽음을 연기하며 제가 가진 힘을 모두 날려버린 상태였다.
즉, 지금의 녀석이 지닌 것이라고는 단순히 영혼으로서의 격이 전부였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나와 그람에게는 차고 넘치는 보상이었다.
【크아아아악!】
다리에서부터 내 심상에 녹아내리는 키아브리스. 녀석은 갖은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을 쳤으나 녹아내리는 영혼을 붙들어 놓지 못했다.
이윽고, 키아브리스가 완전히 심상에 녹아 사라지며, 상태창이 떠올랐다.
[···지룡, 키아브리스의 영혼을 얻었습니다.] [용의 격(SSS)이 주어집니다.]===
+용의 격(SSS)
─격이 낮은 대상을 상대로 공포를 선사할 수 있다. 사용 시, SP가 지속적으로 소모됩니다.
===
‘SP를 또 모아야겠네.’
만족스레 웃은 내가 그람을 돌아보았다.
조용히 눈을 감은 그녀에게서 은은한 백색의 서광이 비쳐오고 있었다.
[대보구 그람의 신성이 회복됩니다.] [그람◆이해솔 동화율 23%]“이거지.”
내 입꼬리가 시원하게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