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64
§ 163화
······눈을 뜨자 어두운 공동이 나를 반겼다.
“변했네.”
허리춤의 그람을 뽑아본 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평범한 장검 같아 보이던 그람의 검신이 새하얀 순백으로 바뀌었다. 닿으면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예기가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아무런 특징도 없던 손잡이는 짙은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색감의 변화에서 무언가가 떠오르려 했으나, 조용히 넘어갔다.
[그대를 기쁘게 하고자 변했으니, 좀 더 솔직해져도 좋다.]내가 그람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말 할 수도 있었습니까?”
[나와의 대화는 그대가 동화의 최대치를 사용했을 때뿐이다. 지금은 잠깐 무리를 해서 의지를 전달하는 것뿐이다.]“그렇군요.”
나와 그람의 동화율은 최대 23%. 하지만 내가 평시에 동화할 수 있는 수준은 10~15%정도일 것이다.
이 이상을 넘어서면 그람의 늘어난 마력으로도 그리 오랜 시간을 사용할 수는 없으니.
이게 다 내게 마력이 없는 탓이었다. 지금의 대화도 그람의 마력을 소모해 이루어지고 있었으니.
그건 그렇고 내가 기쁜 것과 이 변화에 대체 무슨 연관이······
[그대가 원했지 않나.]짓궂은 그람의 미소가 떠올랐다.
[마음에 안 든다면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다만?]“뭐, 이대로 하죠.”
확실히 낡아 보였던 이전보다는 지금이 훨씬 나았다. 예기면에서야 말할 것도 없었고.
아무튼, 그렇게 새로 변화한 그람을 얻은 나는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
[오후 6시 23분]“벌써 이렇게 됐네.”
심상에 빠져들기 전이 오후 1시쯤이었으니, 내가 의식을 잃은 지 꼬박 5시간이 넘게 흘렀다는 말이었다.
뭐, 용의 영혼을 흡수한 것치고는 제법 짧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공동의 벽에 한세연이 기대 누워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슬며시 눈을 뜬다.
“일어나. 가자.”
“몸에 힘이 없어.”
일어나지 못하겠다는 듯 슬며시 손을 뻗다가 축 늘어트리는 한세연.
내가 그녀를 잡아 번쩍 들쳐 맸다. 어찌나 가벼운지 솜털처럼 등으로 날아드는 한세연.
청아한 향이 코끝을 스치고 팔다리가 내 몸을 부드러이 감싸온다.
“무거우니까 가만히 있어.”
“으음.”
내 말을 못 들었는지, 잠결 어린 음성을 흘리며 등에 볼을 부비적거리는 한세연.
······이거 진짜 힘없는 거 맞나?
왠지 당한 기분이 들었지만, 한숨을 포옥 내쉰 나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동을 나오자 밖에는 소피아가 가만히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가시지, 계속 여기 있던 거예요?”
“해솔님이 나오지 않으셨으니,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기다리면서 훈련도 많이 했습니다.”
“훈련이요?”
“예.”
내가 갸웃거리자, 소피아가 싱긋 웃어 보였다. 그러곤 자랑스레 손에 쥔 젓가락을 까딱여 보인다.
딱-! 딱-!
한세울이 제작한 특제 강철 젓가락.
대체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젓가락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상당히 경쾌하다.
‘확실히 동작은 맞네.’
다행히 젓가락도 무사한 것 같았다······.
“음, 많이 느셨네요.”
“그렇죠?”
딱-! 딱-!
내 칭찬이 기쁘다는 듯, 활짝 웃으며 젓가락 끝을 부딪혀 보이는 소피아.
그녀에겐 미안하지만, 힘조절을 조금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활짝 웃는 게 보기 좋았기에 거기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어련히 알아서 늘겠지.
“가죠.”
“예.”
소피아를 대동한 나는 모두가 기다리는 수련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
영멸의 밤으로 인해 벌어졌던 소동은 다행히 무사히 잘 마무리가 되었다.
이본느와 아멜리아의 활약으로 셀로스는 별 다른 수확을 거두어 보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녀석이 작정하고 숨으면 찾기가 어렵기에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이본느는 방법이 있다며 자신에게 맡겨달라 했었다.
그리고, 그 방법이란 건 바로 셀로스의 질투심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천애고아 출신으로 자라난 셀로스는 인간을 질투하는 본능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 질투의 대상이 된 건 바로 아멜리아였다.
성적대비 재능 하나는 탁월한 아멜리아는 셀로스가 시기하기에 충분한 초특급 인재였으니.
심지어 셀로스가 숨는 족족 아멜리아가 그 위치를 특정지어줬다고 한다.
역시 성능 하나는 확실했다.
그 뒤야, 뭐. 이본느가 죽을 때까지 태웠다고 하는데, 수련관의 바닥이 까맣게 문드러진 걸 보니, 얼마나 지독했을지 상상도 가지를 않았다.
참고로, 나와 한세연이 강당에서 사라진 건은 이본느가 정해준을 잘 설득시켰다고 한다.
눈앞에서 셀로스를 하루종일 불태우던 여자가 설득을 하니, 잘 설득 당해준 모양이다.
그렇게 사건이 일단락된 다음날에서야 나는 마경의 저택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사이 한세연의 애완동물은 두 마리로 늘어나 있었다.
“끼이이.”
한세연의 무릎에 누워 애교를 부리는 자그마한 여우.
모르고 보면 무척이나 귀엽겠으나, 저 녀석의 정체는 무려 영멸의 밤의 수호를 도맡았던 고위마수, 요호였다.
“꺄아- 귀엽네요.”
한편,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멜리아는 요호를 보며 부럽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저 귀여운 애가 자신을 한입에 잡아먹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나 보다.
‘하긴, 그럴 만도 하나.’
“다녀오겠습니다-!”
쿠웅─! 쿠웅─!
상아를 매단 거대한 마수, ‘무소’의 등에 올라타 외출을 하는 은가예.
“이놈, 흑요!”
─카르르르!
창고에서 훔쳐 온 냉동육을 문 채 소피아에게 쫓기고 있는 그림자용.
이런 곳에서 지내니 마수에 대한 위기감각이 결여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아나스타샤는 고사리만한 손으로 내 옷깃을 꼬옥 붙잡은 채 한세연의 무릎에 앉은 요호를 잔뜩 경계어린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요호는 그런 아나스타샤와 시선이 마주치더니, 흥-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아무래도 상극의 속성이다 보니 사이가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나는 무소를 타고 서리의 영역으로 외출하는 은가예를 바라보았다.
‘꽤 오래 걸리네.’
솔직히 지금쯤이면 서리의 시련을 깨고, 전용보구인 나겔링을 들고 나올 줄 알았는데, 은가예는 아직까지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것이다. 내 예상과는 다른 전개였기에 의문이 들었다.
한 번 구경이나 해볼까.
“잠깐 나갔다 올게.”
“응.”
요호의 갈기를 빗질해주고 있던 한세연이 고개를 끄덕인다.
“가자, 아나.”
요호를 경계하던 아나스타샤가 내 가슴으로 뛰어들 듯 쏘옥- 들어온다.
그 뒤로 나는 곧장 저택을 나섰다.
***
부르르르······
하늘하늘 눈송이가 떨어져 내리는 황야의 한복판.
소피아에 의해 내 전용 이동수단이 되어버린 할리 데이비슨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다.
“다 왔습니다. 해솔님.”
“빠르네요.”
“칭찬 감사드립니다.”
“······.”
싱긋 웃는 소피아.
우리는 초록거인의 언덕을 ‘날아’ 서리의 영역까지 다이렉트로 질주해왔다.
처음에는 영 적응이 안 갔으나, 이것도 여러 번 타다 보니, 적응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그런지 빨라서 편했다.
이제는 어딘가 가려 치면 나도 모르게 바이크 뒷좌석부터 찾고 있었으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조차 무서울 지경이었지만.
헝클어진 머리를 털어 정리한 내가 바이크에서 내렸다.
“이곳이군요, 가예씨가 훈련을 하고 있는 곳이.”
“예, 안쪽으로 들어가면 보일 거예요.”
내 동급생이라며 꼬박꼬박 ‘님’자를 붙여가며 존칭을 하던 소피아는 은가예의 강력한 거부에 ‘씨’로 뒷말을 바꾼 차였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서리의 안개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카앙─! 카앙─!
“저기 있네요.”
안개의 너머. 은가예가 일단의 리빙아머들을 상대로 화려한 검술을 선보이고 있었다.
마치 날렵한 표범처럼 곳곳을 누비며 리빙아머들을 몰아치는 은가예.
‘제법이네.’
나조차 감탄이 나올 정도의 날렵함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면서 왜 은가예가 서리의 영역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은가예는 통과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통과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그녀는 리빙아머들을 완벽히 제압하지 못하면 다시 나갔다가 들어와 새로 싸웠으니까.
어중간한 승리가 아닌, 완벽한 승리를 목표로 도전을 하고 있던 것이다.
“좋은 마음가짐입니다.”
“그렇네요.”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문득 갸웃거렸다.
‘왜 조용하지?’
이전이라면 나에게 적대적인 사념을 보내왔을 서리의 영역이 조용하기만 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내 걸음을 따라 안개가 밀려나는 것 같기도 했다.
“소피아, 잠깐 기다려주세요.”
“해솔님?”
“뭣 좀 확인하게요.”
홀로 떨어져나온 나는 서리의 영역을 거닐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걸음에 따라 안개가 좌우로 갈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안개의 끝에서 보여오는 낡은 제단. 그 중심에 꽂혀 있는 장검.
띠링!
[전용보구를 발견했습니다.] [보상으로 3000SP가 수여됩니다.] [그림의 대검, 나겔링.]우웅.
내게는 들리지 않아야 할 녀석의 울음이 귓가를 적셔왔다.
‘······용족의 검이라서 그런가?’
이터니티의 설정에 따르면 나겔링을 마지막으로 소유한 이들은 용족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룡, 키아브리스의 영혼을 흡수했다.
+용의 격(SSS)
내 특성에 새겨진 용의 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나는 시험삼아 제단으로 올라가 나겔링을 잡아보았다.
“오, 이게 되네.”
[용의 격(SSS)이 확인되었습니다.] [나겔링 ─ 적합성 38%]과연 전용보구가 아니라 그런지 적합성은 떨어졌으나, 나겔링은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이는 내가 ‘용족’으로 인식이 된다는 상당히 중요한 정보였다.
“앗, 뜨.”
그때, 나겔링을 잡고 있던 나는 순간 손에 이는 찌릿한 전기의 충격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내가 그 전기의 발원지를 내려다보았다.
[나 이외의 검을 사용하려는 건 아니겠지?]어딘지 모르게 살짝 까칠한 음성을 발하는 그것은 ‘그람’이었다.
“설마요, 잠깐 시험 삼아 잡아봤을 뿐입니다. 저는 그람뿐인걸요.”
[그러면 좋다.]내 대답이 썩 만족스러웠는지, 흡족한 목소리를 내뱉는 그람.
아끼는 마력까지 낭비해가며 말을 걸어온 용건이 고작 이런 것이라니.
그 모습이 꽤 귀여워 보여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올 때였다.
주머니의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찾았어. 좌표 찍어주는 곳으로 오면 돼.
“알았어. 곧 갈게.”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최아린의 목소리에 내가 대답했다.
내가 찾아 헤매던 곳을 최아린이 발견한 모양이었다.
통화를 끊은 나는 은가예가 있는 안개의 너머를 잠시 바라보다 제단을 나섰다.
***
마인들에게 있어 가장 쓸모가 있는 존재란 바로 ‘크루트’다.
마수를 개조해 초인에게 대적할 수 있게끔 만들어낸 괴물.
고위 크루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만큼 질 좋은 마수가 재료로 들어간다.
그리고 질 좋은 마수를 수급하기 가장 좋은 장소란 바로 ‘마경’이었다.
······광활한 마경. 초인의 침입을 불허하는 이 미지의 어느 장소에는 마인의 대규모 집거지가 존재했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절벽과, 숲을 벌목해 만든 거대한 공터.
결계로 은닉된 이곳은 크루트의 소재가 되는 마수를 수급하며, 마수웨이브를 연구하는 마인들의 대규모 집거지였다.
그런데, 은닉되어있던 이곳의 결계가 조금 전 누군가에 의해 느닷없이 깨져버렸다.
집거지의 담당자이자, 십혈(十血)의 일인인 액터는 침입한 상대를 알아보곤 눈매를 찌푸렸다.
“······탐욕의 마녀.”
“오랜만이네. 액터.”
액터가 눈살을 찌푸렸다.
반갑게 손을 흔들어 보이는 여자는 액터도 면식을 가진 적이 있었으니.
초인협회에서 조종하는 꼭두각시로 저택을 벗어나지 못하는 지박령.
탐욕의 마녀, 최아린.
그녀의 앞을 호위하듯 막아선 덩치 큰 남성은, 최아린의 호위인 철갑의 마인 이든이었다.
방어력 하나만으로는 알아주는 괴물 같은 녀석.
“어떻게 이곳을 찾은 것이지?”
“글쎄, 나도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어떻게 이 근처에 집거지가 있다는 걸 알았을까?”
갸웃거리며 호기심어린 눈으로 주변을 휘- 둘러보는 최아린.
정말 자신도 모르겠다는 최아린의 표정에 액터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 그녀가 어떻게 이곳을 알아냈는지는 의아했으나 상관없었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그게 누가 되었건 살려보낼 수는 없었으니.
설령 그게 탐욕의 마녀라도 말이다.
지하에 가두어놓은 ‘변종 트롤’을 데려온다면 승산이야 충분했다.
“탐욕을 실험하는 것도 재미있겠군.”
입매를 비튼 액터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두두두두두-
일백에 달하는 마인들이 최아린과 이든을 중심으로 넓게 둘러쌌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기가 공터를 끈적하게 메웠다.
제아무리 칠악이라도 긴장을 해야하는 상황. 그런데······
‘왜 이리 여유롭지?’
왠지 모를 불길함에 엑터가 표정을 굳혔다.
최아린의 표정이 너무나도 여유로웠던 것이다. 저것은 둘 만이 온 사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절대 아니었다.
액터는 설마 하는 심정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탐지마법을 펼쳐 절벽의 반경 또한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최아린과 이든 외에 감지되는 기척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 왜지?’
그렇게 액터가 최아린의 이유 모를 여유에 의아해할 때였다. 느닷없이 지상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늘?’
액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가 쨍쨍 내리째는 한낮의 공터에 웬 그늘이란 말인가?
구름인가 싶어시선을 하늘로 올렸던 액터의 눈이 부릅 떠졌다.
“!”
그늘을 만든 것은 구름이 아니었다. 거대한 검은 생명체가 절벽을 넘어 날아들고 있었다.
“······용?”
용이라 짐작되는 그 생명체는 일백의 마인들이 집결해 있는 공터로 날개를 접으며 내려섰다.
쿠우우웅──!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거대한 울림이 땅을 뒤흔들었다.
그리고, 액터는 용의 위에서 누군가 내려서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액터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최근 마인들 사이에서 ‘사신’으로까지 통하고 있는 남자.
“······마경주!”
경악한 액터가 놀라 소리치자, 지상에 내려선 마경주가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런데, 마경주가 걸음을 옮기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으으으···!”
“크윽!”
마경주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던 마인들의 얼굴이 대번 창백해지더니, 짚단처럼 쓰러져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