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3
§ 172화
······따사한 햇살이 쏟아지는 9월의 오후, 블랙마켓의 어느 집무실.
“흥흥~”
이리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붉은 와인잔을 우아하게 기울였다.
“후후, 매일 이랬으면 좋겠네.”
입가에서 웃음이 지워지지를 않는다. 그녀는 최근 기분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거물급 마인들이 알아서 움직였고, 눈치를 본다.
이리나의 일생을 통틀어 최고로 짜릿한 시간이었다.
물론, 그녀가 그토록 증오하던 복수의 대상인 한세연의 비위를 맞춰가며 설설 기어야 하긴 했지만······
“내가 미쳤지.”
그런 괴물 같은 아이한테 복수? 증오?
상상만으로도 끔찍했기에 이리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살하는 방법이 널리고 널렸는데, 굳이 그런 최악의 방식을 택하고 싶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녀는 죽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오래오래 살아남아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이리나의 원대한 꿈이었다.
그리고 한세연의 심복이 되는 것이야말로 그 꿈을 향한 길임을 이리나는 확신했다.
그렇기에 한세연이 굳이 말하지 않음에도 그녀가 관련된 곳에는 알아서 인력을 파견하는 이리나였다.
‘그런데 교대를 하는데 왜 나한테까지 보고를 했지?’
조금 전 광산에 보안요원으로 파견했던 마인이 돌아온 것을 이리나는 별말 없이 넘겼다.
마인들의 사소한 근무 스케쥴까지 그녀가 일일이 신경을 쓰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것 외에도 그녀가 신경 써야 할 일은 차고 넘쳤던 것이다.
당장 한세연이 계속해서 거둬들이는 거물급 마인들을 관리하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때, 그녀의 스마트폰이 울려왔다.
상대가 부관임을 확인한 이리나는 의아해하며 통화를 연결했다.
“응, 무슨 일이야?”
─···그게, 큰일 났습니다.
“큰일?”
─예, 세연님께서 마인 한 명을 처리하셨습니다.
“쯧, 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네.”
대체 어떤 멍청한 놈이길래 한세연한테 덤벼서 죽을까.
“그래서 그게 뭐가 큰일이야?”
─죽은 마인이 네이슨입니다.
“네이슨?”
이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같았던 것이다.
“네이슨 네이슨······”
─카터와 함께 다니는 녀석입니다.
“아, 카터!”
카터는 안다. 무려 십혈에마저 속했던 마인이었으니까.
네이슨이라면 그 카터 옆에 붙어 다니던 멀떼 같이 키만 큰 놈인데······
“···누, 누구한테 당했다고?”
─세연님에게 당했습니다.
“···왜, 왜?”
이리나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그게, 채유나를 도와서 광산을 공격한 모양입니다.
“그, 그, 그그럼 세연이가 처리하러 간다던 마인들이란 게······”
─예, 카터와 네이슨입니다.
“······.”
이리나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집무실의 문이 열렸다.
들어온 상대를 확인한 이리나의 손에서 스마트폰이 툭 떨어졌다.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바로 한세연이었다.
“세, 세연아. 이게, 그러니까, 그, 그게······”
스스스스─
한세연의 반지에 어둠이 맺히는 걸 본 이리나가 벌떡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내가, 내가 다 설명할게! 이, 이게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면-”
쉬이. 한세연이 조용히 입가에 검지를 올려 보였다.
횡설수설하던 이리나가 입을 꾹 다물자 한세연이 입을 슬쩍 벌려 보였다.
“아.”
따라하라는 것임을 알아차린 이리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그리고.
“아- 우우우웁!”
마기의 물결이 벌어진 이리나의 입가로 밀려 들어갔다.
***
······광산습격사건의 뒷정리는 빠르게 마무리되었다.
주범인 채유나는 물론, 그 스승인 윤선아까지 와서 내게 울고불며 싹싹 빌어댔으나, 그런다고 선처를 해줄 내가 아니었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바로 협회로 넘겨버렸다.
저런 막 나가는 애를 사회에 내버려 두는 것부터가 범죄였으니.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시점인 오늘. 나는 소피아와 함께 서리의 영역에 나와 있었다.
“······오늘은 깨갰는데요?”
“예, 그럴 것 같습니다.”
나와 소피아가 바라보는 곳에서는 은가예가 리빙아머들을 상대로 날렵한 움직임을 선보이고 있었다.
십혈, 액터를 상대로 검술을 갈고 닦은 그녀의 실력은 일취월장해 있었고, 중력의 마력을 다루는 능력도 몰라보게 늘어 있었다.
쿠구구구구궁──!
아니나 다를까, 그녀를 상대하던 열댓개의 리빙아머들이 일제히 지면에 처박혔다.
─아자아아!
은가예의 환호성이 안개 속에 울려 퍼졌다.
드디어 단 한 번의 유효타도 맞지 않은 채, 리빙아머들을 모두 쓰러트려 버린 것이다. 무려 두 달 만에 이루어낸 쾌거였다.
그렇게 리빙아머들이 모두 쓰러지자, 안개가 좌우로 갈라지며 은가예에게 길을 내주었다.
그녀는 열린 길을 따라 용족의 보구, [나겔링]이 꽂힌 제단에 올라섰다.
“오, 뽑았습니다.”
은가예의 손을 따라 나겔링이 서서히 뽑혀 나오자 소피아가 환호했다.
‘됐네.’
이것으로 은가예는 중력의 마력을 제 수족처럼 완벽하게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기량이 족히 두 배가량은 증가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소피아를 슬쩍 돌아보았다.
은가예가 나겔링을 얻은 것을 마치 제 일처럼 기뻐하는 그녀의 등 뒤에는 낡은 검이 메여져 있었다.
그것은 무척 단단해 보이지만, 군데군데 날이 많이 상해 있었다.
저 검은 보구도 뭣도 아닌 그저 일반적인 검이었다.
하기사, 오거스트를 피해 도망만 다니던 부랑자 신세이던 언데몬이 보구 구경을 하는 것도 말이 안 되기는 했다.
그때 내 시선이 자신에게 가 있는 걸 확인한 소피아가 갸웃거렸다.
“해솔님?”
“소피아씨도 검 바꿔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내 말에 소피아가 제 검을 빼보았다.
군데군데 이가 나가있는 것을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조만간 한 번 날을 갈아야겠습니다.”
나는 내심 고개를 저었다.
이참에 보구라도 하나 구해보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건만, 그저 이가 나간 것만 간다는 것이 소박한 건지 무신경한 건지 감이 안 왔다.
‘뭐, 잘 됐나?’
마침 그동안의 고마움에 대한 표시로 뭐 하나 해주고 싶었으니.
“그 날, 제가 갈아줘도 될까요?”
“해솔님이 말입니까?”
“예.”
소피아의 눈이 휘둥그레지자, 이를 못 미더운 것이라 받아들인 내가 말을 덧붙였다.
“물론, 날을 가는 거야-”
“당연히 됩니다!”
내 말을 끊으며 소피아가 방긋 웃어 보였다.
“해솔님이 날을 세워주시는 거라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아, 예.”
너무 시원스러운 반응에 내가 멋쩍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어쨌든 된 건가.
***
나는 소피아의 날을 가는 김에, 한세연에게 주었던 심연의 반지 또한 다시 한 번 손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심연의 반지는 그저 시나리오의 초반에나 쓰는 하급 아이템이었으니.
하지만 한세연에게서 심연의 반지를 받아든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
▶심연의 반지(상급) 【성장형】
─시전자의 마기를 축적하고, 증폭시키는 반지.
─본 마도구는 마기를 흡수하면 성장을 거듭한다.
*주의 : 마인플레이어에게 적합합니다.
===
“······.”
한낱 하급마도구에 불과했던 심연의 반지가 ‘상급 마도구’로 변해 있던 것이다.
심지어 ‘마기의 증폭’과 ‘성장형’이라니······
이는 히든피스급의 마도구에서나 볼 수 있는 특성이었다.
“무슨 문제 있어?”
내가 반지를 든 채, 말이 없자 한세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제야 나는 당황을 가라앉히곤, 입을 열었다.
“···야, 너 이거 어떻게 한 거야?”
“뭐가?”
“마도구가 성장했잖아.”
한세연은 여전히 의아한 표정이었다. 이에서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의식적으로 한 건 아니라는 소리인가.’
가끔 마도구의 특성이 변질되는 경우가 있긴 있었다.
너무도 순수하거나, 강한 기운을 받아들일 경우다.
물론 이 경우 대부분의 마도구는 기운을 버텨내지 못하고 깨져버린다.
‘강화’를 시도한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심연의 반지는 그 강화에 성공을 한 듯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씩이나.
‘성장형’이라는 특성은 고작 하급 마도구를 한 번 강화한다고해서 나오는 특성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한세연에게 다시 심연의 반지를 돌려주었다.
“됐어?”
“응, 이건 건들 필요 없겠다.”
“다행이다.”
내 말에 방긋 웃은 한세연이 반지를 제 약지에 끼어 보였다.
반지를 소중하게 매만지는 것이, 아마 저러한 마음 때문에 강화가 성공한 듯했다.
이터니티의 강화시스템은 사물에 대한 소유욕이나 애정 또한 성공의 요소로 작용했으니까.
얘한테는 뭘 주더라도 대충 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
방으로 돌아온 나는 테이블 위에 소피아의 대검을 올려놓았다.
“그럼 시작해볼까.”
이미 오면서 대검을 어떻게 강화시킬 지에 대한 구상은 모두 끝내놓은 상태였다.
이전부터 소피아가 어떠한 무기를 들면 좋을지에 대해 계속 생각해왔으니까.
‘마기와 마력, 기력이 조화된 검.’
기존에 존재하는 보구들은 소피아하고는 상성이 맞지 않는다.
그녀의 혼마력은 기존의 것과는 다른 기운이었으니까.
기력처럼 아예 연관이 없는 기운이라면 모를까, 혼마력이 기존의 기운에서 변질된 것인 이상, 그에 따른 ‘전용 보구’가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혼마력’에 걸 맞는 보구는 이터니티에 존재하지 않는다.
혼마력은 이 세상에 단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기운이었으니.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없으면 만들면 되지.”
[검령의 씨앗]─해당 검에 검령의 씨앗을 부여합니다.
─단, 검령의 씨앗이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해당 검의 역사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보구에 깃드는 에고. 즉, 검에 깃드는 검령이란, 해당 검에 대한 소유주의 강한 애정 쌓이고 쌓여 탄생하는 것이다.
하지만 검령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몇 세대에 걸친 긴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단축시키기 위해서 플레이어에게는 SP를 통한 인위적인 에고 생성창이 존재한다.
나는 그 에고 생성창을 통해 그 검령을 탄생시키려 하고 있었다.
물론, 검령을 지녔다고 해서 무조건 뛰어난 검이라는 것은 아니다.
당장 한세연의 심연의 반지만 해도 에고를 지닌 보구보다 훨씬 무서운 물건이었으니.
다만, 소피아에게 적합한 검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기운을 지닌 검령을 탄생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소피아의 대검
[검령의 씨앗이 자리 잡기 위한 조건이 충분합니다.] [검령의 씨앗을 생성하겠습니까?] [소모SP : 5000]“어.”
[5000SP가 소모됩니다.]우우웅······
이가 나간 소피아의 대검이 테이블 위에서 은은한 떨림을 발한다.
검령의 씨앗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이제 이 검에 어떠한 기운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자라날 검령의 성질이 결정된다.
나는 테이블에 올려놓은 물잔의 물을 대검에 부었다. 소피아에게서 받아온 혼마력이 깃든 ‘혼마수’였다.
우우우우웅─
혼마수를 잔뜩 머금은 대검이 잿빛으로 물들며 몸을 떨어온다. 잔뜩 이가 나간 부위에 예리한 날이 올라왔다.
“이 정도론 택도 없네.”
여전히 듬성듬성 이가 나간 검을 보며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입매를 구겼다.
검의 완전한 복구와 씨앗의 발아를 위해서는 이보다 훨씬 많은 기운이 필요한 듯했으니.
물론 그렇다고 내 기운을 부여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가는 검령의 성질이 완전히 틀어져 버릴 테니까.
“여기서 만족하는 수밖에 없겠네.”
이왕 선물하는 거 온전한 상태로 검령까지 발아시켜서 주고 싶었으나 그건 내 욕심이었다. 이대로 주더라도 소피아가 알아서 발아시키리라.
물론 이대로 주는 건 영 성에 들지 않았기에, 나는 2000SP를 소모해 아공간 수납과 경량화 기능을 추가했다.
“···흐아함, 자야겠네.”
작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창가를 보니 어느덧 밤이었다.
대검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나는 그대로 씻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
······다음날 오전, 마경의 주말.
“히히.”
거실의 쇼파에 드러누운 은가예는 아침부터 히죽거리기 바빴다.
그런 그녀의 손에는 고풍스러운 검이 한자루 들려 있었다. 은가예의 전용보구 [나겔링]이다.
전날부터 보구를 얻었다고 잔뜩 자랑을 하고 다니더니, 아직도 웃음기가 떠나질 않나보다.
이를 힐끔 본 나는 소피아에게 전날 작업한 대검을 건넸다.
“자요.”
내가 건네는 검을 받지 않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소피아.
하기사, 날을 갈아준다고 가져갔는데 여전히 군데군데 이가 나가 있으니 어리둥절할 만도 하다.
내가 그에 대해 기운을 주입하면 해결된다는 이야기를 꺼내려던 때였다. 소피아가 느닷없이 대검을 덥썩 받아 갔다.
“감사하게 잘 쓰겠습니다.”
“한 번 혼마력을 주입해볼래요?”
“예, 알겠습니다.”
갸웃거리면서도 대검에 기운을 주입하는 소피아.
우우우웅─
잿빛에 휘감긴 대검이 떨며 검날에 날카로운 예기가 어린다. 하지만 이가 나간 곳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음, 생각보다 효과가 덜하네요.”
금새 발아할 줄 알았던 검령의 씨앗은 발아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SP를 이용하면 씨앗의 성장을 가속시킬 수 있기에 그것을 써볼까 갸웃거릴 때였다.
“괜찮습니다. 이걸로 충분합니다.”
소피아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치 생일 선물을 받은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에 나는 그냥 피식 웃고 말았다.
‘뭐, 좋으면 그걸로 됐나.’
씨앗이야 어차피 나중에 알아서 발아할 테니.
마치 웃음이 전염되는 듯. 나마저 작게 웃고있자니 옆에서 강렬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아멜리아가 은근한 기대를 담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게 마치 뭔가를 바라는 듯한 눈초리이기에 내가 갸웃거렸다.
“뭐?”
“저는 뭐 없어요?”
“금갑어 내단 줬잖아.”
“그건 같이 잡은 거잖아요.”
“······.”
은가예는 나겔링, 한세연은 심연의 반지, 소피아는 대검······. 이제는 자신의 차례라고 여기나 보다.
‘뭐, 맡겨뒀나.’
속으로 헛웃음을 흘린 나는 짐짓 눈을 가늘게 뜨곤 아멜리아를 보며 턱을 쓸어보였다.
“음.”
내가 뜸을 들이자 아멜리아의 금안이 잔뜩 기대를 담고 별처럼 반짝였다.
짐짓 그녀의 복부를 흘낏거리던 내가 입을 열었다.
“없어.”
“···예?”
“없다고.”
얘는 애초에 전용보구를 제 몸에 지니고 태어난 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