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87
§ 186화
한주상의 죽음은 그와 교감을 하고 있던 정령들의 폭주를 불러왔다.
─끼아아아아아아아아!
머리를 감싸 쥔 채 비명을 터트리는 정령들.
녀석들이 미쳐 날뛰며 무차별적으로 연회장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연회객은 물론이고, 천장, 테이블, 계단, 샹들리에······
녀석들은 주변의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부수고 찢어발겼다.
원래대로라면 한주상의 죽음과 함께 소환이 취소되어야 했으나, 녀석들을 속박한 정령석이 건재한 탓에, 충격을 고스란히 받아 그 반동으로 미쳐버린 것이다.
정령들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정령석들을 연동시키는 축이 되고 있는 정령석을 부수어야만 한다.
하지만 정령석을 부수어봤자, 한 번 미쳐버린 정령들이 원래대로 되돌아오리란 보장은 없었다.
무엇보다 정령석은 자연력의 집약체다. 그걸 부수었을 때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기운을 통제하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
잘못 부수었다간 연회장이 날아가 버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모두 소멸시키겠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네요.”
정령들을 소멸시키겠다는 한윤의 말에 나는 내심 혀를 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한주상으로 인해 미쳐버린 정령들이 불쌍하기야 했으나, 저대로 내버려 둔다면 건물이 무너져내리는 것은 물론이고, 사상자가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였으니까.
여러모로 정령을 소멸시키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한 번 미쳐버린 정령을 되돌릴 수단은 흔치 않았으니······.
그렇게 내게 허락을 구한 한윤이 가문의 무사들을 동원하려던 차였다.
누군가 내 옷깃을 잡아당겼다.
시선을 돌려보니, 아나스탸샤가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어.”
“너가?”
끄덕끄덕.
“·········정령력, 버티는 거 가능해.”
한주상이 연회장에 떨어트린 정령석을 가리켜 보이며 말하는 아나스타샤.
정령석을 부수었을 때 터져 나오는 기운을 자신이 통제해 보이겠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리 아나스타샤라도 위험한 일이었기에 나는 쉽사리 허락을 하기가 어려웠다.
“괜찮겠어?”
“·········이론상으로, 충분히.”
“······.”
이론까지 나온다는 게 조금 당황스럽긴 했으나, 아나스타샤의 의지는 확고해 보였다.
문득 정령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염려’와 ‘걱정’이 담겨있는 것을 느낀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3분 밖에 못 기달려.”
“·········응!”
밝아진 얼굴의 아나스타샤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정령석을 향해 도도도도- 달려간다.
그 달려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윤이 물어왔다.
“괜찮겠습니까?”
“3분 정도는 기다려줘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만약 정령석이 터지면······”
“통제를 못하더라도, 폭발은 막을 수 있을 겁니다.”
정령석을 들어 올리는 아나스타샤를 보며 내가 작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정령이니까요.”
***
······정령들은 서로의 감정을 교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아나스타샤는 지금 날뛰는 정령들이 얼마나 큰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끼아아아아아아아!
‘아파, 아파, 아파. 구해줘. 구해줘.’
사람들에게는 비명으로 뿐이 들리지 않는 그 소음이, 아나스타샤에게는 자신을 구해달라는 구조요청으로 들려왔던 것이다.
그 구조신호를 외면할 만큼 아나스타샤는 냉혹한 정령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해솔에게 허락을 맡고, 황급히 달려가 정령석을 들어 올렸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지에 관해서는 이미 머릿속으로 계획을 다 세워놓았다.
남은 건 실행하는 것뿐이었다.
“·········할 수 있어.”
그리 중얼거린 아나스타샤가 눈을 감은 채 정령석에 기운을 불어넣었다.
단순히 이 정령석 하나만이 아닌, 이것과 연결되어 있는 모든 정령석을 통제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아나스타샤의 기감에 한가장에 퍼져있는 수십 개의 정령석이 연결되었다.
그리고.
콰직─!
그녀가 든 정령석에 균열이 가더니, 깨져나갔다. 번쩍! 하얀빛이 연회장을 가득 물들이며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 빛은 얼마 가지 않아 막혀버렸다.
아나스타샤가 퍼져나가려는 정령력을 감싸 안은 것이다.
그녀의 몸으로 기하급수적인 정력력이 쏟아져 들어왔다.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지 못한 아나스타샤의 몸이 빛으로 화하고, 살점처럼 빛이 올올히 풀어져 나왔다.
우웅우웅······
수용의 한계치에 다다른 그녀의 정령체가 위태로이 흔들렸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정령력을 끝끝내 감싸 안은 채 제 몸에 모두 받아들였다.
─아파! 아파! 구해줘! 구해줘! 구해줘!
“·········기다려.”
요동치던 아나스탸샤의 정령체가 조용히 잦아들었다. 이윽고, 수용한 정령력이 풀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스아아아아아······
안개처럼 연회장으로 퍼져나가는 다채로운 오색의 입자들.
그 자연의 마력에 닿은 정령들이 날뛰던 것을 멈춘다.
─아파 아파······
끊임없이 메아리치던 구조신호도 차츰 사그라들며, 그 위를 맑은 웃음소리가 대신한다.
─꺄르르 꺄르르······
아나스타샤의 주위를 오색의 정령들이 맴돌며 춤을 추었다.
이윽고, 허공에 까맣게 열리는 정령의 길.
아나스타샤의 주위를 맴돌던 정령들이 인사를 하며 통로로 사라진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응, 잘 가.”
고사리같은 손을 들어 배웅하는 아나스탸샤의 입가로 뿌듯한 미소가 걸린다.
이윽고 모든 정령이 사라지자 아나스타샤의 표정이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런 아나스타샤의 머리를 내가 푹 내리눌렀다.
“수고했어.”
“까악!”
파랑이도 부리를 딱딱거리며 아나스타샤를 칭찬했다.
옅게 웃어 보인 아나스타샤가 내 품으로 폴짝 뛰어들었다. 빛으로 화한 그녀가 인장으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넌 왜 가만히 있냐?”
“끼르르!”
부리를 거만하게 치켜 들어 보이는 파랑이.
하급 정령들이 어찌 되건 자신이 신경 쓸 바가 아니란 태도다.
상당히 재수가 없었지만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얘는 엄밀히 말하면 정령이 아닌 신수였으니까.
신수란 자신 외의 존재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생명체였다.
그러면서도 밖에 나와 있는 걸 보면 아나스타샤가 신경이 쓰이긴 했나 보다.
위험해 보이면 은근슬쩍 손을 거들려 한 거겠지. 아닌 척하면서도 은근 잔정이 많은 녀석이다.
고개를 끄덕인 내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령들도 무사 귀가를 했으니 연회장의 상황은 정리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번 사단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흑해의 종자가 남아있었으니.
“워우, 많기도 하네.”
창밖을 내다본 내가 혀를 내둘렀다.
연회장에서 제법 떨어진 정원.
그곳에서는 흑해의 종자들과 마경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분명 연회장에서 미리 다 정리를 해놓았거늘, 어디서 기어 나왔는지 떼거지로 몰려나와 있는 마인들.
정원에 새까맣게 모인 게, 적게 잡아도 백 명쯤은 되어보인다.
50명이라던 액터의 보고보다 배나 많은 숫자다.
물론 그렇다고 액터가 내게 거짓을 고했다는 것은 아니었다.
한가장에 식솔로 침입해 있던 녀석들이 총집합을 한 모양이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저만한 숫자라니······
“아주 작정하고 먹으려 했었네.”
뭐, 그것도 이젠 끝이었지만.
쿠구구구궁─!
“으아아악!”
돌연, 무너져내리는 지반에 모여있던 마인들이 개미 떼처럼 빠져든다.
마인들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고 일어났으나, 안심하기엔 너무 일렀다.
얼굴을 툭 툭, 때리는 물방울.
“···비?”
어두워진 느낌에 하늘을 올려다 본 그들의 눈이 커졌다.
“뭐, 뭐야!”
“어디서 물이······!”
상공에 거대한 물 덩어리가 둥실 떠올라 있던 것이다.
양손을 하늘 위로 번쩍 들고 있던 소녀가 무언가를 집어던지듯 손을 내린다.
그러자 물덩어리가 그대로 마인들에게 떨어져 내렸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물폭탄이 지상을 강타하며 30명에 달하던 마인들은 이렇다 할 저항도 못 해본 채 수장되어 버렸다.
“······.”
“······.”
사람들은 벙찐 얼굴로 자연재해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한가장의 정원에 순식간에 자그마한 호수 하나가 생겨나 있었다.
그리고 이는 고작 두 소녀가 일으킨 업적이었다.
‘리디아’와 ‘니엘’.
두 소녀의 능력은 이제는 어지간한 상격마인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이거 맞나?”
나조차도 살짝 어이가 없어질 지경이었다.
아직 12살도 되지 않은 아이들의 수준이라고 하기엔 두 아이의 능력은 비정상적으로 강했으니까.
애초에 칠악으로 내정된 아이들이니, 재능이야 알아 줄만 했지만······
‘빨라도 너무 빠른데.’
뭐, 혼마력으로 잠재력을 개화해버렸다고 하면 영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실제로도 되고 있다는 게 좀 골때렸지만.
“얼씨구.”
쟤는 또 자고 있네.
“크르르···!”
어디 소풍이라도 왔는지, 마수의 등에 누워 태평하게 낮잠을 청하고 있는 라우라.
더 골이 때리는 건 저러는데도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체고만 3m가 넘어가는 마수, 무소의 등 위에서 잠을 청하는데, 어디 올라갈 수나 있어야지.
한편, 아렌은 3m는커녕 수십 미터 상공에서 일방적인 공격을 자행 중이다.
하늘에서 마력을 펑펑 쏘아대는데 무슨 수로 반격할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마인들이 불쌍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머리를 잘못 만났으면 고생 좀 해야지.”
“까악.”
파랑이와 내가 마인들의 뒤편에 있는 가면인을 바라보았다.
***
“···당했군.”
흑해의 간부, 스완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 당혹을 감추지 못했다.
한주상의 죽음에 다급히 불러 모은 마인들이 개미 떼처럼 쓸려나가고 있었다.
하물며 이를 자행하는 이들은 고작 네 명에 불과했다.
이런 놈들이 한가장에 들어올 때 동안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당혹스럽기만 했다.
한윤의 손에 놀아났다고는 하지만, 그가 한가장에 깔아놓은 눈들을 생각하자면 지금껏 아무런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다는 것은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일어나버린 일. 스완은 빠르게 출구를 물색했다.
그는 이런 암울한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제 한 몸을 빼낼 자신이 있었다.
날아드는 마력도, 흔들리는 지반도, 짓쳐드는 물보라도 그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그가 손을 뻗을 때마다, 붉게 일어난 피보라가 다가드는 위협을 배제했다.
혈술(血術)에 있어서는 따라갈 이가 없다는 권위자가 바로 스완이었다.
하물며, 사방에 ‘재료’가 넘쳐나는 이상, 그는 무적에 가까웠다.
“커억!”
“끄어어···”
스완의 주위에 몰려있던 마인들은 눈과 입, 코, 모공 등, 피부의 모든 구멍을 통해 피가 빨려나갔다.
스완은 그 피를 바탕으로 이적에 가까운 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마경의 이들조차 그가 펼친 피의 장막을 넘어서지는 못하고 있었으니.
과연, 흑해의 간부다운 위용이었다.
그렇게 스완이 마경의 공격을 막으며 출구를 물색하는데 정신이 팔려있을 때였다.
“스완님.”
“시끄럽다, 지금-”
푸욱!
”!!“
느닷없이 허리를 엄습하는 고통에 스완의 눈이 부릅떠졌다.
고개를 내리자, 시뻘겋게 물든 검첨이 그의 복부를 관통해 있었다.
“······너였구나!”
제 부관을 돌아보는 스완의 목소리가 경악에 가득찼다.
자신의 눈과 귀를 가린 이가 누구인지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제가 신임하던 여성 부관의 배신에 스완조차 살짝 놀랐을 때다.
“참 빨리도 깨닫는군.”
“······!”
여자라기엔 너무도 두터운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스완의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순간, 부관의 얼굴이 점토처럼 일그러지더니, 각이 진 남자의 얼굴로 바뀌었다.
그는 바로 마인들 사이에 잠입한 도플갱어, 액터였다.
츄아아악─!
스완의 꿰뚫린 허리에서 터져 나온 피가 액터를 덮쳤다.
“웃.”
액터가 피를 피해 검을 버리고 뒤로 물러났다.
“크큭···”
스완의 입매가 뒤틀렸다.
액터를 몰아 내는데는 성공했으나, 이 잠깐의 균열로 피의 장막이 깨져버렸다.
더 이상 마경의 진격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스완이 미리 보아두었던 정원의 한편으로 몸을 날렸다.
“이런!”
스완이 도주하자 액터가 황급히 불덩이를 쏘아냈다.
빠른 속도로 날아간 불덩이는 스완을 덮쳐들었다. 그리고.
츄아아악─!
스완의 등허리에 난 상처에서 새어 나온 붉은 피가 둥글게 퍼지며 불덩이를 막아버렸다.
뒤이어 날개처럼 펴진 피가 그의 몸을 하늘로 운반했다.
표정이 굳어진 액터가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마스터. 놓쳤습니다.”
사박사박······
“아니야, 너가 잡을 거라곤 생각도 안 했어.”
어느새 액터의 뒤에 다가온 내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액터는 잠입에는 뛰어났지만, 전투능력에서는 흑해의 간부에 비해 현저히 뒤쳐졌으니.
멋쩍게 고개를 든 액터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그러시다는 것은······?”
“어, 도망쳐봐야 헛수고란 거지.”
밤하늘 너머로 사라지는 스완을 보며 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여긴 새장이거든.”
나는 스완이 사라진 길을 따라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