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1
§ 190화
나는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곤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울창하던 숲에 땜빵이라도 난 듯 수십의 나무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져 있었다.
놀란 마수들이 우르르- 떼거지로 도망가는 게 느껴졌다.
한순간에 마수들의 영역조차 바꿔버릴 정도의 위력. 이게 전부 소피아의 검강이 만들어낸 광경이었다.
털썩.
그때 뒤에서 무언가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소피아가 노면에 납작 엎어져 있었다.
“소피아, 왜 그래요?”
“우, 체력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아직 조절이······”
“아.”
체력을 혼마력으로 치환해 날리는 거였나.
그런 거라면 지금의 광경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소피아가 저리 시체처럼 납작 엎드려버릴 정도라면 거진 모든 체력을 다 방전시켰다는 이야기였으니······.
‘은근 허당이라니까.’
손가락 하나 꿈쩍 못한 채 울상을 짓고 있는 모습에 피식 웃은 내가 물었다.
“못 일어나겠어요?”
“···잠깐 쉬면 괜찮아질 것 같습니다.”
땅과 하나가 된 채로 말하는 소피아의 말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어 보였다. 작게 혀를 찬 내가 그녀를 훌쩍 업어들었다.
“어엇?!”
내가 업을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소피아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버둥거리며 소피아가 황급히 말했다.
“···내, 내려주십시오. 잠깐 쉬면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걸을 정도는 아니잖아요? 보니까 힘도 쭉 빠진 것 같은데요 뭘.”
힘없이 버둥거리는 다리를 팔로 꽉 잡아 옆구리에 고정시켰다.
“······.”
소피아는 내 말에 반박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불만이라는 듯 볼이 부풀어 있었다.
“업히기 싫으면 다음부터 힘 조절을 똑바로 하라고요.”
“딱히 싫은 건 아닙니다.”
뜻밖의 대답에 걸음을 옮기던 내 발이 멈칫거렸다. 소피아가 갸웃거렸다.
“해솔님?”
“아니에요.”
고개를 저은 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전과 달리 어색해진 기분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마경의 마을로 복귀했다.
***
······마을로 복귀한 나는 가장 먼저 마경의 상황실을 찾았다.
마을의 모든 전반적인 업무가 처리되는 저택 1층의 상황실.
“해솔님 오셨어요?”
“마스터를 뵙습니다.”
“예, 일들 하세요.”
내가 들어서기 무섭게 업무를 보던 사람들이 모두 벌떡 일어났다. 그 숫자가 무려 열 명이 넘는다.
‘그새 또 셋이 늘었네.’
마경과 외부의 교류가 본격적으로 활발해지면서 업무적으로 처리할 일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협회에서의 일감도 많아지고, 마경에 의뢰를 넣는 길드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였으니······.
주로 치안이나 마수 퇴치와 같은 무력이 필요한 일이 마경에 의뢰되는 일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난이도가 높은 의뢰들은 대부분 나와 소피아의 몫이었고.
“여기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자리에 앉자 여성 한 명이 커피와 태블릿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태블릿에 표시된 것은 협회에서 넘겨주는 의뢰들.
얼마 전까지는 직접 협회의 지부에 들러 의뢰를 받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이쪽에서 자료를 넘겨받는 식으로 바뀌었다.
나는 화면을 슥슥- 넘기며 의뢰들을 확인했다.
폐공장의 호저떼, 천안 오크 출몰, 제철소 아이언 슬라임······
‘별거 없네.’
크게 흥미가 가지 않는 노가다 의뢰들에 대충 화면을 넘기던 내 손이 문득 멈추었다.
“······음?”
【미아랜드 요정 점거】
던전으로 변모해버린 놀이공원과 작은 요정이 그려진 페이지였다.
“요정 점거 사건이군요.”
“아, 고맙습니다.”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이본느가 커피를 넘겨주었다. 왠지 잘 아는 듯한 말투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시는 사건인가 보죠?”
“아렌이 갔는데 포기하고 돌아왔답니다.”
“아렌이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도 그럴 게 아렌은 마경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의뢰 방면에서는 마경의 그 누구보다 유능한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아렌이 의뢰를 포기하고 돌아올 정도라면······
‘진짜 요정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네.’
내 눈이 반짝였다.
요정은 이터니티에서도 보기 드문 희귀종족이었다.
요정에 의한 사건이라 알려진 것들의 태반이 실제로는 인간이 저지르고 얼버무린 것들일 정도였으니까. 쉽게 말해 귀신이나 유령 같은 존재였다.
오죽하면 나조차도 직접 찾아다니는 것은 포기하고 있었다.
흥미가 동한 내가 자세히 의뢰내용을 확인해보았다.
─미아랜드. 2019년 폐쇄된 놀이공원. 작년 11월 철거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미아랜드에 자리를 잡은 요정으로 인해 놀이공원이 던전화가 되어버렸다.
“요정에 관심이 있으신가 보죠?”
“예. 보고 싶네요.”
관심이 있는 걸 넘어서 만나면 득이 되는 존재가 바로 요정이었다.
녀석들은 이 세계의 뒷무대와 연결이 되어있는 존재였으니까.
특히 이번처럼 영멸의 마인이 무언가를 저지를 게 확실시되는 상황이라면 요정을 무조건 만나야만 했다.
그나저나 던전 놀이공원이라······
‘뭔 느낌인지 알겠네.’
요정은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하다 못해 업(業)처럼 생각하는 녀석들이었다.
남을 놀래킨 걸 자랑처럼 떠벌리고 다니는 녀석들이었으니까.
그런 요정이 놀이공원에 자리를 잡은 이유야 뻔했다.
놀이공원만큼 사람 놀래키기 쉬운 곳도 없었으니까.
때마침 타이밍 좋게도 상황실 문이 열리며 아렌이 들어섰다.
“찾아가려던 차였는데 잘됐네.”
“나를?”
“어, 너가 미아랜드에 다녀왔다고 해서.”
“······.”
갸웃거리던 아렌의 얼굴이 마치 들으면 안 될 걸 들은 사람처럼 굳어졌다.
그 발작적인 반응에 이본느를 돌아보자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보신대로 저 상태랍니다.”
“뭘 보고 왔길래······”
내가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자 아렌이 질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가보면 알 거다.”
이야기를 들어보자니 놀이기구로 겪을 수 있는 상황이란 상황은 죄다 겪고 나온 듯했다.
탔더니 안 멈춘다거나, 제멋대로 기구가 움직인다거나, 뭐 그런 것들.
“···고생 많았네.”
“그건 그냥 미친 요정이야.”
아렌이 떠올리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렇다고 놀이기구를 안 탈 수도 없는 게, 요정이 자리를 잡은 던전은 요정이 제시하는 ‘룰’을 반드시 지켜야만 했다.
지키지 않을 시에는 공간이동으로 던전 밖으로 쫓겨나 버리니.
‘아무튼 잘됐네.’
뜻밖에 요정을 만날 기회를 얻은 내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
······해가 중천에 걸린 주말의 오후.
마경의 바깥에는 검은 세단 한 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내가 미아랜드에 간다는 소식에 협회에서 보내준 차량이었다.
그런데.
“미아랜드! 미아랜드!”
“미아! 미아!”
어째서인지 내 옆에서는 리디아와 니엘이 신난 목소리가 한창이었다.
내가 오라고 한 적은 없었기에 의아해진 내가 소피아를 바라보았다.
“소피아가 데려왔어요?”
“아닙니다.”
그녀도 두 아이가 왜 왔는지 의아한 표정이었다. 결국 내가 니엘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네는 왜 따라오냐?”
“놀이기구 타러요!”
“리디아도요!”
눈을 별처럼 빛내며 잔뜩 기대감을 드러내는 리디아와 니엘.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내가 미아랜드에 가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다고 한다.
이게 무슨 애들 소풍 가는 것도 아니고······
하도 어이가 없어 멀뚱히 쳐다보고 있자니 멀리서 포니테일을 한 여성 한 명이 마경의 숲을 헤쳐나왔다.
“앗!”
“엇!”
여자를 본 리디아와 니엘이 얼른 내 등 뒤로 숨어버린다.
이윽고 내 앞에 도착한 여자가 숨을 마쉬며 입을 열었다.
“후우, 죄송합니다. 해솔님. 아이들이 갑자기 도망쳐서······”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예, 하지만···”
내 등 뒤에서 눈만 빼꼼 내민 리디아와 니엘을 보며 여자가 도끼눈을 부릅뜬다.
그녀는 리디아와 니엘의 교육담당인 ‘레오니’였다.
참고로 전혀 아닌 것 같지만 레오니는 라우라의 친언니다.
매일 잠만 퍼 자는 라우라와 다르게 레오니는 이터니티에 없어서 안 될 존재였다.
철저한 노력가인데다, 무엇보다 쌍둥이를 돌봐주는 존재가 바로 레오니였으니. 얘네들 돌본다고 참 고생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이들은 신경 쓰지 마시고 다녀오세요.”
“아닙니다, 제가 데려가죠.”
“예?”
뭔가를 떠올린 내가 고개를 젓자 레오니는 물론 소피아마저도 눈을 크게 뜬다.
“···괜찮겠나요?”
“예, 요정은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으니까 위험할 건 없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
나와 쌍둥이를 번갈아 보는 레오니.
적어도 쌍둥이를 걱정하는 눈초리는 절대 아니었다.
뭐를 말하고자 하는지 안 내가 걱정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사고는 못 치게 할 테니까 오늘은 푹 쉬세요.”
“후우, 알겠습니다.”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는 레오니. 표정이 밝아지는 게 정말 피곤했나 보다.
니엘과 리디아의 환호성이 뒤따랐다.
저 환호성이 계속 갈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타라.”
““네에!””
합창하듯 소리친 리디아와 니엘이 열려진 차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
부우웅─
미아랜드로 향하는 차 안.
마도공학이 가미된 세단은 건물처럼 흔들거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의자에 몸을 기댄 나는 창밖에 펼쳐진 풀숲을 구경하며 델리만쥬를 우물거렸다.
내가 가져온 것은 아니고, 소피아가 챙겨온 거다.
백 아저씨가 소피아의 간식거리로 챙겨줬다는데 이게 집어먹는 맛이 쏠쏠했다.
“크으-”
델리만쥬에 혼마수 한잔을 걸쳐주니 맛이 기가 막혔다.
“맛있네.”
“우···”
문득 옆에서 들려오는 끙끙 앓는 소리에 시선을 돌리니, 소피아가 체스판을 내려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다.
따악─!
“·········체크메이트.”
“졌습니다.”
소피아의 고개가 떨궈졌다. 아나스타샤가 옅은 웃음을 짓는다.
“·········좋은 승부였어.”
“소피아, 또 졌어!”
“3승 0패야! 너무 못해.”
끝나기 무섭게 리디아와 니엘의 매정한 소리가 쏟아진다.
소피아는 벌써 3판이나 연달아 참패의 쓴맛을 맛보고 있었다.
그 상대는 바로 아나스타샤였다.
‘그러게 하지 말라니까.’
이를 지켜보던 내가 작게 혀를 찼다.
소피아가 말을 움직이는 방식은 지극히 단순했다. 공격 일변도. 무조건 전진만 한다······. 그러다 보니 수를 읽기가 너무도 쉬웠다.
소피아처럼 얼굴에 표정이 다 드러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결국 보다 못한 내가 직접 시범을 보여줄 요랑으로 입을 열었다.
“소피아, 체스는 그렇게 두는 게 아니에요. 이리 줘보세요.”
체스판을 가져가는 내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흘러 넘쳤다.
이래뵈도 안 해 본 게임이 없는 나였다.
체스도 당연히 잘 두었다.
고작 책보고 며칠 배운 정령쯤이야······
‘껌이지.’
내가 자신 있게 선수를 양보하며 체스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수가 오간 지 10분이 지난 시점.
“해솔, 또 졌어.”
“소피아보다 못해.”
“닥쳐.”
“우웁!”
“웁!”
선을 넘은 원색적인 비난에 내가 두 아이의 입을 기력으로 동봉해버렸다. 아나스타샤가 흐뭇한 미소로 입을 연다.
“·········피셔디펜스야. ·········1960년에 보리스 스파스키가 킹즈갬빗을 파훼하기 위해 만든 방식이라고 해.”
“응, 그렇구나.”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못 해 먹겠다는 거 하나쯤은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