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
§ 19화
돌이켜보면 나는 홀로 마물을 사냥한 경험이 없었다.
첫 던전에서는 은가예와 천우진을 앞에 내세웠고, 그 다음 실습에서도 조원들이 앞장서기는 마찬가지였다.
막거나 피할 필요 없이 그저 뒤에서 마음 놓고 비도만 날려대면 되었던 셈.
심지어 그마저도 조원들이 대부분 처리했기에 나는 부족함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홀로 사냥하려니 새삼 그 공백이 강하게 와닿았다.
앞에서 막거나 잡아주는 사람이 없으니 마물의 공격에 그대로 노출되었고, 자연스레 몸을 움직이는 횟수가 많아졌다.
키에에엑!
달려드는 코볼트 두 마리의 목을 비도로 꿰뚫은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래서는 얼마 못 잡겠는데.”
잡기는 쉬운데, 덤벼드는 걸 피하려니 체력의 소진이 너무 빨랐다.
게다가 내가 보유한 기력의 양조차 쥐꼬리만큼 적은 수준.
전날 한세연을 도운 것으로 기력의 용적이 늘었다지만 이런 소모전에서는 여전히 부족함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람의 마력과 이카루스의 반지가 있기는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보험이었다.
‘분배를 잘해야겠어.’
대충 계산해 본 결과 앞으로 잡을 수 있는 마물은 많게 잡아도 30마리. 하지만, 잡몹 30마리를 잡는 것보단 강한 놈을 잡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해솔님?”
“잠시 내버려 두죠.”
죽은 코볼트의 사체를 회수하려는 신동훈을 내가 만류했다.
“이러면 피 냄새가 퍼질 겁니다.”
“예, 그러라고 내버려 두자는 겁니다.”
피 냄새가 나면 마물의 어그로가 끌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마물이 다 몰려들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마물이란 놈들은 위기감각이 비상하게 발달해서 자신보다 강한 생명체가 주변에 있다는 것을 느끼면 귀신같이 자리를 피해버리니까.
결국 피 냄새를 맡고 오는 것은 강한 개체일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코볼트의 시체를 미끼 삼아 기다리길 몇 분.
드디어 미끼를 문 놈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이가 가득한 아가리, 길게 뻗은 날렵한 꼬리. 네 다리로 땅을 기는 그것은, 2급 악어과 마수 엘리게이였다.
피 냄새를 맡고 늪지대부터 여기까지 기어 나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엘리게이를 본 신동훈의 안색이 급격히 나빠졌다.
“이거, 좋지 않군요.”
“왜요?”
“녀석이 피 냄새를 맡아 흥분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흥분한 엘리게이는 피부에 난 미세한 숨구멍을 통해 마비 독을 분사한다.
치이이이이이······
엘리게이가 내뿜는 마비 독이 순식간에 퍼지며 수증기가 끼인 것처럼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독을 피하려면 빨리 물러나야 하는 상황. 신동훈이 연기를 피해 달아났다. 하지만 나는 되려 앞으로 걸어갔다.
“해, 해솔님! 앞으로 나가는 것은 위험······!”
놀라 소리치던 신동훈의 목소리가 굼떠지더니 뚝 끊겼다. 마비 독에 몸이 굳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해서 나아가 엘리게이의 근처까지 도달했다.
놀란 엘리게이가 뒤늦게 마비 독을 나에게 집중적으로 퍼부었으나 그런다고 변하는 건 없었다.
[···엘리게이의 마비 독에 중급 독 면역Lv.1이 작용합니다.] [중급 독 면역Lv.1의 경험치가 소폭 상승합니다.]“오, 이거지.”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엘리게이라면 그래도 2급 마수 중에는 독성이 지독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의 독을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다.
이 정도 면역이라면 어지간한 3급 마수의 독까지도 버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예상은 했지만 중급 독 면역Lv.1의 효능은 내가 알던 대로였다.
나를 잡아먹으려는 듯 날카로운 이가 우수수 난 아가리를 쩌억 벌리는 엘리게이.
푸욱!
입을 벌리던 엘리게이의 미간을, 단검이 아닌 온전한 형태를 취한 그람의 검이 꿰뚫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마비 독을 제외하면 별것도 아닌 녀석이었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코볼트 무리보다 사냥하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그렇게 엘리게이를 죽이고 난 직후, 뒤를 돌아본 내가 머리를 긁적였다.
“···저건 기다려야겠지?”
신동훈은 왼 다리를 들고, 오른팔은 뻗은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굳어 있었다. 놀란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고.
나야 중급 독 면역 때문에 괜찮다지만 신동훈의 중독까지 풀어줄 방법은 없었다. 마비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다행히 엘리게이의 냄새가 나기 때문인지, 주변에 마물이 꼬일 염려는 없어 보였다.
“아우, 죽겠다.”
마침 쉬고 싶던 마음이 굴뚝같았기에 나무에 기대앉았다.
그렇게 얼마간을 기다리니 신동훈이 어설프게 입을 열었다.
“이, 이데 푸렸스니다.”
“아직 덜 풀리신 거 같은데요?”
“괘, 괘챦스니다.”
마비가 덜 풀렸는지 혀 짧은 발음을 내면서도 할 일은 해야겠는지 코볼트와 엘리게이의 사체를 정리하는 신동훈.
몸은 대충 다 풀린 모양이었기에 기대있던 나무에서 일어났다.
“가죠.”
“늡지돼는 안 가쉴 겁니까?”
“늪지대요? 예. 안갑니다.”
나는 엘리게이가 왔던 길과 정 반대 방향으로 발을 옮겼다.
마음 같아서는 늪지대에 서식하는 엘리게이를 싹 다 잡아서 가죽을 벗겨 팔아버리고 싶었으나 그건 마음으로만 그쳐야 했다.
일전의 오진혁처럼 먼저 나서줄 미끼가 있다면 모를까, 나 혼자서라면 늪지대에서 엘리게이의 공격을 피할 자신이 없었다.
개도 제집 앞에서는 한 수 먹고 들어간다고, 늪지대에 자리 잡은 엘리게이는 지상에서와는 다르게 날렵한 놈들이었으니 말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 남았지만, 엘리게이도 잡았겠다, 오늘만 날이 아니었기에 그만 기숙사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나저나 정말 놀랐습니다.”
어느새 마비 독이 풀렸는지 혀 짧은 소리가 사라진 신동훈이 나를 놀랍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터니티의 생도분들은 다 엘리게이의 마비 독이 통하지 않는 겁니까?”
“다는 아닐 걸요?”
강함과는 별개로 독에 면역이 없는 생도들도 꽤 있었으니까.
천우진이라면 멀쩡하겠지? 아멜리아도 마법으로 해독할 테고. 니콜라이나 은가예도 마력으로 신체를 감싸면 아마 엘리게이를 잡을 동안은 멀쩡할 거다. 한세연이야 말할 것도 없고.
어휴, 말하고 나니 이건 뭐, 안 멀쩡한 애가 없다.
새삼 이터니티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괴수들의 소굴인지를 깨달은 내가 고개를 내저을 때다.
“음?”
돌연 자리에 멈춰선 신동훈이 앞을 바라보자 나도 그를 따라 시선을 던졌다.
“아.”
숲의 너머. 무장을 한 다섯 명의 남녀가 밖으로 나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그사이에 낀 낯익은 용병을 보는 순간 나는 저들이 누군지 알아차렸다.
“사상회네.”
턱주가리 맞고 친구들을 불러온 건가?
하여간, 양아치가 하는 짓거리도 추잡하네.
그때, 눈이 마주친 용병이 흠칫 놀라더니 나를 손가락질했다.
“저놈입니다! 저놈이 저를 죽이려 들었습니다.”
“···에?”
누가 누굴 죽여?
순간 내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닌 듯했다. 눈이 마주친 용병의 입꼬리가 히죽 올라갔으니까.
“···와, 개새끼네.”
턱을 친 적은 있으나, 죽이려 든 적은 없었다. 되려 돌에 머리가 찌일까 염려되어 각도까지 조절해가며 친절하게 기절시켜 주었건만······ 저게 말로만 듣던 자해공갈인가?
기절이 살인미수로 바뀌는 기적의 날조에 얼이 나간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자니 놈들이 달려와 우리가 빠져나가지 못하게끔 사방을 에워쌌다. 그 위세가 제법 살벌했다.
그런데 이쯤이면 통문에서 이터니티 생도가 북한산에 출입했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법도 한데······ 교류가 없는 건가?
이들은 내가 이터니티의 생도일지 모른다는 의심조차 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랬다면 이런 식으로 섣불리 나오지는 않았을 테니까.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생도증만 보여주면 충분히 넘길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조용히 해결하려던 내 표정이 순간 묘해졌다.
[돌발 퀘스트! 북한산의 용병들과 조우했습니다. 용병들을 퇴치하세요! (0/5)] [보상 : 100SP] [제한시간 5 : 00]용병과의 조우에 돌발 퀘스트가 발동해버린 것이다.
‘해야겠네.’
정말 짜디짠 보상에 귀찮기만 한 퀘스트였으나 SP가 궁한 내 입장에서는 SP만 준다면 칼로 물을 베라 해도 베어야 할 상황이었다.
‘딱히 질 것 같지도 않고.’
용병들에게 에워싸인 상황이었으나 신기하게도 위기의식이 전혀 생기지를 않았다. 그 이유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떼거지로 몰려다니면서 마물이나 잡으러 다니는 놈들한테 위기의식을 느끼는 게 오히려 이상했던 것이다.
차라리 위험하기론 코볼트가 배는 더 위험해 보였다. 그것들은 팔다리 하나 잘려도 달려드는 미친 것들이니까.
한마디로, 저들과 나는 급이 달랐다.
다만 주어진 시간이 5분이니 그 안에 정리해야 했다. 인당 1분 컷인가?
“에휴.”
100SP벌기 더럽게 힘드네.
“시간 없으니까 후딱 끝냅시다.”
“이 도른 새끼가······”
어딘지 모르게 귀찮아 보이는 내 태도에 용병 하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바로 쓰러졌다.
“뭐,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놀란 용병들이 당혹어린 목소리를 토해냈다.
당연했다. 저들은 동료가 어떻게 쓰러졌는지 전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기력이 사기긴 사기야.’
내가 기력을 발출해 다가오던 용병의 얼굴을 뭉개버린 것이다.
이터니티의 교관조차 느끼지 못하는 기력을 고작 마물이나 잡으러 다니는 용병들이 알 리가 없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나도 은근 사기캐였다. 그 외의 능력치가 쓰레기라 문제지.
그때 용병 중 유일한 여성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저러지?
“서, 설마 북한산에 들어왔다던 이터니티 생도가······”
아, 이제야 눈치챈 거였구나.
“예, 전데요.”
굳이 숨길 필요도 없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용병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내게 턱을 얻어맞고 자해공갈을 일삼던 용병이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생도증을 보여줬으면 그냥 통과시켜줬을 텐데 왜······”
음, 그땐 사실 그렇게 통과할 수 있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다.
아무튼.
“그런데 안 덤벼요?”
“지, 지나가시죠.”
아예 북한산 가이드라도 해줄 것처럼 길을 터주는 용병들을 보던 내가 기력을 움직였다.
퍼억! 퍼억!
마치 귀신에 홀린 듯 한 명씩 픽픽 쓰러지는 용병들.
홀로 남은 용병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가진 건 다 드리겠습니다!”
돈 될만한 걸 다 꺼내고 땅에 머리를 박아버리는 용병을 보니 살짝 마음이 약해졌다.
그래도 퀘스트는 깨야 하니까.
퍼억!
뒤통수를 가격당한 용병이 허물어졌다.
[퀘스트 완료 : 용병들을 퇴치하세요! (5/5)] [보상으로 100SP가 수여됩니다.]기절한 용병들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물었다.
“동훈씨, 사냥터 점거한 용병들 협회에 넘기면 제법 짭짤하겠죠?”
“···예? 아, 예. 포상금이 있으니 아마 그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