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0
§ 199화
요정궁, 세계수의 어느 공간.
은은한 조명의 랜턴이 테이블에 마주 앉은 나와 엘리아스를 비추었다.
“수호자를 만날 방법은 없다는 이야기이군요.”
“예, 아쉽게도 현재로서는 연락할 방도가 없습니다.”
엘리아스의 말에 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야단났네.’
내가 요정경을 찾은 이유는 수호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수호자들은 이터니티의 균열과도 연관이 있는 존재였으니.
예를 들면 이들은 ‘퍼즐’이었다.
퍼즐 조각이 모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듯, 수호자는 세계를 구성하는 퍼즐의 일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녀석들 중 한 명이라도 영멸의 밤에게 당하게 된다면?
아카데미에 존재하는 균열은 그 크기를 더욱 벌리게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노아도 무사하진 않겠지.’
아카데미의 균열이 여지껏 심화되지 않고 현상유지를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노아의 희생 덕이었다.
노아는 아카데미의 균열이 벌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를 영면에 빠트렸으니까.
지금 아카데미를 돌아다니고 있는 노아는 그녀의 화신체였다.
하지만 만약 수호자의 죽음으로 차원의 균열이 더욱 벌어져 버린다면?
부담이 가중된 노아는 화신체조차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영멸의 밤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노아가 화신체를 유지할 수 없다면 그에게는 가장 커다란 장애물이 사라지는 셈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수호자에게 영멸의 밤에 대한 경고를 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껏 요정경까지 왔건만 막상 있어야 하는 놈들이 없으니······
“정확히는 뜻이 달라 갈라졌습니다.”
“수호자나 요정이나 하는 일은 같을 텐데요.”
둘 다 세계의 안정에 기여하는 족속들인데 뜻이 다를 수가 있나?
내가 갸웃거리자 엘리아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래 요정은 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세계가 돌아가기만 한다면 그 모습이 어떻건 간섭할 부분이 아니지요. 하지만 수호자들의 생각은 다릅니다.”
“간섭하나 보군요.”
“예. 관리의 영역이라 보는 듯합니다.”
엘리아스의 말에 내가 혀를 찼다.
이건 뭐, 판을 유지하라고 넣어놨더니, 지들이 그 판에 뛰어들었단다.
운영자가 플레이어짓을 하고 다니는 격이다.
쉽게 말해······
“개판이네요.”
엘리아스는 말을 하는 대신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게임보다 더 심하네.’
내가 게임에서 수호자들을 만나는 시점은 2년 뒤인 3학년에 들어서고 나서였다.
그때의 수호자들도 막장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지금의 놈들은 지들이 무슨 정의의 사자인 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었으니까. 끽해봐야 세계의 부속품에 불과한 놈들이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놈들의 정신머리는 정의의 사자인데, 실력은 전혀 그렇지가 못하다는 점이었다.
2년이 지난 시점에서의 수호자들이 제 힘을 겨우 다루는 수준에 불과했는데 지금이야 오죽할까.
‘그러고 보니 이놈들 언제 물갈이된 거지?’
의문이 생긴 내가 엘리아스를 보며 물었다.
“이번 대 수호자가 세대교체를 한 게 언제입니까?”
“반년 전입니다.”
···미친.
그냥 생초짜라는 소리 아니야.
“그걸 그냥 내보냈다고요?”
“수호자의 행동에 관여할 권리가 요정에게는 없습니다.”
엘리아스는 말로는 내쫓았다고 했으나, 사실은 수호자들이 제 발로 요정경을 떠났다고 보는 게 맞았다. 엘리아스는 그걸 굳이 잡으려 들지 않은 것이고.
뭐가 어찌 되었건, 이놈들이 영멸의 밤과 조우하는 순간 죽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해 보였다.
온전한 상태라도 될까 말까인데, 제 힘조차 제대로 다루지 않는 수호자야 말할 것도 없었으니까.
아무튼 요정경에서 수호자를 만나겠다는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셈이었다.
하지만 요정경에 온 것이 마냥 허사인 것만은 아니었다.
‘수호자가 안 죽는 게 최선이긴 하지만, 균열이 벌어지면 다시 메꾸면 그만이니.’
사실 이쪽이 수호자를 찾는 것보다 훨씬 더 쉬운 방법일 수도 있었다.
균열의 열쇠를 지닌 자가 이 요정경에는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바로 내 눈앞에.
아니, 정확히는······
“요정왕.”
“예?”
“요정왕은 어디에 있습니까?”
“보시는 앞에 있지 않습니까?”
“진짜를 말하는 겁니다.”
순간, 엘리아드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가 짐짓 갸웃거린다.
“진짜라니, 무슨 말씀을 하는 것인지요.”
“당신은 화신(化身)이지 않습니까.”
“···호오. 이거, 흥미로운 손님이군요.”
엘리아드가 나를 이채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가 어째서 화신체라는 것입니까?”
“당신은 단 한 번도 자신을 ‘정령’이라 지칭하지 않았으니까.”
요정왕이란, 요정이면서도 동시에 ‘정령’인 존재다.
그들은 세계수가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체(假體). 즉, 세계수의 정령이었으니. 그리고 엘리아드는 세계수의 정령이 아니었다.
내 영혼의 눈에 비친 엘리아드와 세계수의 유대감은 그 정도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결정적으로, 내 직감이 엘리아드가 정령과는 다른 존재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령에 가까워졌기 때문인지 요즘 들어 정령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된 나였다.
“이런, 앞으로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말을 조언이라도 되는 양, 받아들이는 엘리아드. 내가 어이가 없다는 듯 물었다.
“정령이라고 거짓말이라도 치려는 셈입니까?”
“못 할 거야 없지요.”
뻔뻔하게 웃으며 대답하는 엘리아드.
수호자를 내쫓았다고 할 때부터 알아보긴 했지만, 이 요정, 하는 짓이 쌩 양아치였다.
“하지만 한 가지 틀리셨습니다.”
“?”
“저는 진짜 요정왕입니다.”
엘리아드가 자신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그분께서 제게 요정왕의 대리를 맡기셨으니 말입니다.”
정정하자.
이건 그냥 양아치다.
***
엘리아드에게서 세계수의 정령, 즉 전대 요정왕이 있는 위치를 알아내고자 했으나, 나는 아무런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
엘리아드조차 자신의 본체가 요정경에 있다는 사실만 알 뿐,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본체하고 소식이 100년이나 끊긴 화신이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찾는 걸 포기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니, 나는 되려 낙관적이었다.
엘리아드의 때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상대가 정령인지 아닌지를 분간할 수 있었으니.
······다음날 아침. 나는 요정경을 구경도 할 겸 간단하게 세계수 인근을 탐색했다.
운무 사이로 솟아오른 거대한 식물과 나무들은 전부가 요정들이 기거하는 집이었고, 이는 다리와 다리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하여간 풍경 하나는 기가 막히네.”
우리는 전날에 탔던 모래감옥, 아니. 모랫 배를 타고 주변을 돌아다녔다.
참고로 이 모래배를 만들고 우리를 태운 것은 ‘셀라피네’다.
“···어제는 오해해서 미안했다. 동족의 납치에 나도 모르게 판단이 흐려졌던 것 같다.”
“그럼. 당연히 미안해해야지. 이쪽 말도 안 들어보고 다짜고짜 노예상인으로 몰아갔는데.”
“정말 죽는 줄 알았다고요.”
나와 아멜리아가 셀라피네를 힐난했다.
한세연도 말은 하지 않았지만 셀라피네를 바라보는 눈이 그리 고와 보이지는 않았다.
파랑이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제대로 된 사실확인도 없이 죽을 뻔했었으니까.
이런 우리의 힐난에 셀라피네는 고개를 푹 숙여 보였다.
“입이 두 개라도 할 말이 없군. 셀라피네란 이름을 걸고 이번 일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갚도록 하겠다.”
“뭐, 그 정도면 됐어.”
내가 바로 수긍을 하자 셀라피네가 의외라는 듯 쳐다보았다.
“왜, 너무 쉽게 용서하는 것 같아?”
“솔직히······”
“예, 저도 좀 이상하네요. 웬일이에요?”
셀라피네보다 한 술 더 떠 나를 수상쩍다는 듯 쳐다보는 아멜리아.
그 의심이 한가득 담긴 시선에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난 그냥 용서하면 안 돼냐?”
“그건 아니지만, 그런 적이 없잖아요. 몇 배로 뜯어낸다면 모를까.”
···이걸 확 쥐어박아?
“···물론 용서할 수도 있지만요.”
내 눈빛에 아차 싶었는지 아멜리아가 황급히 뒷말을 덧붙인다.
말을 하고선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 모습에 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얘는 가끔 본인의 생각을 필터링 없이 말하곤 하는데 악의가 없어서 사람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곤 한다.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
나는 아멜리아의 말처럼 셀라피네를 쉽게 용서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나중에 부탁할 일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기에 넘어간 거지. 빚은 몇 배로다가 톡톡히 받아낼 예정이었으니까.
이런 내 생각을 모르는 셀라피네는 순진하게도 안도한 표정으로 고맙다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나저나······
‘왜 요정경에 오기 싫어했는지 알겠네.’
루시를 쳐다본 내가 혀를 내둘러 보였다.
루시는 어디 물에 들어갔다 오기라도 한 듯 전신이 축 젖어있었다.
물론, 물에 들어갔다 온 것은 아니고, 위에서 ‘물’을 맞았다.
─루시, 안녕!
촤아악!
인사와 함께 물을 뿌리곤 웃으며 도망가는 요정들.
─으으···
축 젖은 머리의 물을 쥐어 짜내며 루시가 이를 간다.
‘생일빵은 봤지만, 살다살다 인사빵은 또 처음보네.’
루시 본인도 남을 골려주는 것을 좋아했지만, 요정들은 장난을 과하게 치는 걸 즐겨하는 족속이었다.
그런데 본인들은 전혀 이를 과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루시, 너는 아직도 별것 아닌 일에 반응이 과하구나.”
셀라피네는 오히려 이를 가는 루시가 과민반응을 한다는 듯이 말을 하고 있었으니······
‘이러니 애가 가출을 하지.’
루시가 처음으로 정상인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루시와는 반대로 요정경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아이도 있었다.
“·········말하는 잠자리. 요정.”
─잠자리 아니라니까!
아나스타샤가 눈을 반짝이며 중얼거리자, 이에 발끈한 루시가 버럭 소리친다.
물론 아나스타샤는 이에 아랑곳 없이 요정경을 둘러보기 바빴다.
당장이라도 모래배에서 나가 주위를 구경하고 싶어 하는 모습에 내가 뺨을 긁적였다.
‘이거, 내보내도 되려나?’
위험하리만치 반짝이는 눈빛이 내보냈다간 무슨 사고라도 칠까 우려가 되었다. 마치 우물가에 애를 보내는 부모의 심정이랄까.
이런 내 망설임을 읽었는지 한세연이 작게 웃으며 조언을 했다.
“잠깐만 놀다 오게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그런가?”
“응. 아나도 그 정도면 될 거야. 그치?”
“·········응.”
한세연의 말에 동의하듯 아나스타샤가 제법 힘을 주어 대답한다.
“그럼 놀다 와. 멀리 나가지는 말고.”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인 아나스타샤가 곧장 요정들을 쫓아 날아가 버린다.
“아나가 신나 보이네요.”
그 신나 보이는 뒷모습에 아멜리아가 훈훈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 말에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 저건 신나 보인다기보다는······
‘관찰을 하는 느낌인데.’
마치 잠자리의 생태계를 조사하러 가는 학자같다고나 할까.
일반적인 애들이 놀러 가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렇게 아나스타샤와 헤어진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세계수의 주변을 돌아다녔다.
‘···안 보이네.’
나는 운해를 날아다니는 수많은 요정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에게서도 정령의 기운을 느낄 수는 없었다.
“여기서부터는 거주지의 밖이다만, 더 갈 텐가?”
“아니, 여기까지 하자.”
셀라피네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만 날은 아니었으니까.
참고로 말하자면 요정경에서의 하루는 바깥에서의 8시간이었다.
즉, 여기서 3일을 머물러도 바깥에서는 하루밖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조사할 시간이야 차고 넘쳤다.
애초에 첫 탐색 만에 바로 전대의 요정왕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돌아가자.”
***
내가 요정경을 돌아보고 세계수로 되돌아가는 한편, 요정들을 쫓아 날아갔던 아나스타샤는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무리를 이루어 날아가는 요정들. 아나스타샤는 눈을 빛내며 요정들을 뒤쫓았다.
그렇게 숲을 지나고, 절벽을 내려간 아나스타샤는 폭포가 흐르는 어느 화원에 다다를 수 있었다.
─꺄하하······
다채로운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난 화원. 요정들은 그 꽃밭 위를 웃으며 날아다녔다.
아나스타샤는 어울릴 생각은 안 한 채 가만히 서서 요정들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아나스타샤가 한참 요정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못 보던 아이구나.
“·········?”
느닷없이 울리는 목소리에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돌렸다.
붉은 꽃밭의 한 가운데. 녹음을 담은 머리의 여인이 나붓한 웃음을 그리며 아나스타샤를 응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