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5
§ 204화
마경에는 ‘길’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마경에 드나드는 사람이 없기도 하고, 길을 만들어봤자 그것을 유지보수하기도 어렵기 때문이었다.
마수들이 출몰하는 마경에서 길을 유지보수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런데 그 위험한 마경의 한복판에 지금 아스팔트를 적재한 공사 차량이 지나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요정들이 날아다니며 도로를 깔고 있다.
“제 평생 이렇게나 많은 요정을 보기는 처음입니다.”
한가장의 장주가 된 한윤은 눈 앞에서 보도블럭을 들고 날아다니는 요정들을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요정이란, 인간들에게 있어 ‘귀신’보다도 보기 어려운 존재였다.
실제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그 실체를 확인한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게 요정은 인간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보기 어렵다는 요정이 한둘도 아니고 무려 백여 명씩이나 날아다니고 있었으니, 한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보도블럭은 다 깔았다. 이제 뭐를 하면 되지?”
“그럼 잠시 휴식을 하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알았다.”
한윤은 고개를 끄덕이곤 걸어가는 붉은 머리의 요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셀라피네라 자신을 소개한 저 여인은 평범한 요정이 아니었다.
느껴지는 마력만 해도 한윤 그보다도 높아 보였던 것이다.
하물며 그녀가 데려온 요정 중 몇몇도 그리 만만하지가 않아 보였다.
저런 요정들이 도로를 까는 인부로 부려지고 있다니······
한윤이 황당하단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저 요정들은 대체 다 어떻게 데려오신 겁니까?”
“요정경하고 교류를 시작했더니 도와주러 왔습니다.”
“···요정경이라면 요정들이 산다는 차원말입니까? 그런 곳이 정말 존재했습니까?”
“예, 있더라고요.”
내 간단한 대답에 한윤이 고개를 내저었다.
이건 ‘있더라고요’정도로 넘기기에는 너무 대단한 사건이었으니······.
요정경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그곳과 교류를 시작했다는 말부터는 현실감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윤이 괴리감을 느끼고 있는 한편, 나는 순식간에 깔리기 시작한 마경의 길을 보며 만족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 빠르네.’
요정을 인부로 부리니 공사의 진척이 말도 못하게 빨랐다.
모르긴 몰라도, 사람을 썼다면 일주일은 족히 걸리지 않았을까 싶은 작업을 요정들은 반나절만에 끝내고 있던 것이다.
‘요정술’을 도로공사에 아낌없이 퍼붓고 있었으니, 느릴 래야 느릴 수가 없었다.
손 한 번 휘저으면 숲이 개간되고, 땅이 고르게 펴졌으니.
“거봐요, 제가 뭐랬어요. 도로공사에는 요정이 최적이랬죠?”
“어, 짱이네.”
아멜리아의 의기양양한 말에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이 도로공사를 제안하고, 요정을 투입시킨 것은 바로 아멜리아였던 것이다.
자연을 가꾸기 위한 요정술을 도로공사에 사용해도 되나 싶긴 했지만, 셀라피네의 반응도 예상 외로 나쁘지 않았다.
“우리 숲이 아니니 크게 신경은 쓰지 않는다. 하물며 마수의 숲을 부수는 건 오히려 환영이지.”
이런 말을 하며 숲을 파괴하는데 앞장서고 있었으니······
다른 요정들도 정도만 다를 뿐, 마경파괴에 무슨 사활이라도 걸린 것처럼 열성적이었다.
요정이 자연을 사랑한다는 건 미디어가 만들어낸 지나친 환상인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아멜리아가 제출한 공사 계획표를 바라보았다. 상단에 써져 있는 제목이 유독 눈에 띄었다.
【마경 개척 계획】
“······.”
내가 종이를 훑어보는 걸 확인한 아멜리아가 기대 어린 표정으로 눈을 별처럼 반짝인다.
“어때요?”
“음···”
잠시 턱을 쓰다듬은 내가 되물었다.
“좋기야 한데, 이거 맞아?”
“그야 당연하죠. 이 제가 계산한 거니, 안심하고 믿으셔도 돼요.”
제 가슴에 손을 얹어보이며 안심하라는 아멜리아. 자신감이 넘쳐 보였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불안했다.
얘가 확실히 머리가 좋기는 한데, 꼭 이상한 부분에서 엉뚱한 실수를 하나씩 저지르고는 한단 말이지.
“뭔가요, 그 못 믿겠다는 눈빛은?”
“길이야 당연히 믿지.”
믿는 걸 넘어서 아주 훌륭했다.
당장 도로공사에 요정을 투입한 것도 성공적이었으니.
마경을 오가기 쉽게끔 숲 곳곳에 워프진을 설치하자는 의견도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당장 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이니까.
다만······
“개척 사업은 패스.”
“왜요?”
“요정입주도 패스.”
“그게 하이라이트란 말이에요.”
불만이라는 듯 입을 삐죽이는 아멜리아.
그녀는 이참에 마경을 대대적으로 개척하고, 거주시설을 새로이 늘리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요정들도 입주시켜서 개척을 돕게 하겠다는 계획이다.
뭐, 포부야 좋다만······
“너가 개척하자는 곳에 있는 마수들은?”
“그야 밀어버려야죠.”
“그리고?”
“그리고라뇨?”
또 뭐가 있어요? 아멜리아가 순진하게 눈을 깜빡인다.
‘역시 별생각 없었네.’
물론 아멜리아의 말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마수들을 몰아내고 그곳에 거주구역을 만드는 거야 ‘상식’이었으니.
다만 이곳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동네였다. 마수가 썩어 넘치다 못해 해마다 밖으로 밀려나가는 동네가 마경이었으니.
“마수가 다시 몰려오는 것 때문이라면 걱정 마세요. 마수쫓기 결계를 펼칠 거니까요.”
“그러면 거기서 내몰린 마수들은 어디로 가는데?”
“예?”
“거기까지는 생각 안 해봤구나.”
마수를 몰아내는 것만 생각해봤지, 그 내몰린 마수들이 어디로 향할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아멜리아가 당황했다.
“어, 어디로 가죠?”
“바깥으로.”
“아.”
뒤늦게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한 아멜리아가 멍하니 입을 벌린다.
안 그래도 미어터지는 마수들의 자리를 뺏어버리면, 그놈들이 마경 바깥으로 나가버린다는 이야기였으니.
그러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바깥의 사람들이 입게 된다. 무턱대고 건드릴 수가 없는 곳이 바로 마경이었던 것이다.
“그런 줄은 몰랐어요. 이러면 개척은 어렵겠네요.”
공을 들여 계획한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아멜리아가 침울하게 어깨를 축 늘어트린다. 그런 아멜리아를 가만히 지켜보던 내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뭐, 한두 군데쯤은 괜찮겠지.”
“정말요?”
언제 풀이 죽었었냐는 듯이 바로 고개를 드는 아멜리아.
“어, 대신 정확히 조사를 하고 해야지.”
“그거야 맡겨두세요. 확실하게 알아볼게요.”
금세 의욕이 충만해진 아멜리아가 마경의 지도를 펼쳐 들곤 집중해서 들여다본다.
이를 보며 내가 피식 웃자니, 전방의 벌목을 도우러 갔던 소피아가 돌아왔다.
“해솔님.”
“아, 왔어요?”
“예, 그런데 누군가 해솔님을 만나고 싶다 합니다.”
“누가요?”
갑작스럽게 손님이 왔다는 이야기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어?”
보랏빛 머리의 여인이 급해 보이는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 얼굴이 낯익다는 것을 알아차린 내가 눈을 살짝 크게 뜨자니, 상대가 먼저 입을 연다.
“오랜만이야.”
“···이리나?”
“맞아. 그보다 빨리 할 말이 있어.”
“좀 말랐네.”
상대는 아카데미에 전학 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몸이 좋지 못해 고향으로 돌아갔던 이리나였다.
그런데 이리나의 모습은 내가 알던 것보다 수척해져 있었다. 식사를 잘 챙겨 먹지 못한 모습이라고나 할까.
이런 내 시선에도 이리나는 뭐가 그리 급한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세연이가 많이 아파.”
“···뭐라고?”
“쓰러졌어.”
“······.”
내 표정이 딱딱히 굳어졌다.
***
한세연이 쓰러진 걸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이리나였다. 그녀는 처음에 이걸 어찌해야 할지 아주 잠깐 고민에 잠겼다.
그도 그럴 게 한세연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상당히 복잡했다.
지금은 같이 움직이는 관계라지만, 그녀에게서 요호를 빼앗고, 식사에 대한 트라우마를 남겨준 공포스러운 존재가 바로 한세연이었던 것이다.
지금이 그 한세연을 물리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리나는 이런 고민을 금세 접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정이라도 들었는지 그럴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으며, 그녀의 야망을 위해서라도 한세연은 꼭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한세연을 방안으로 옮겨놓았던 이리나였다.
한세연이 쓰러졌다는 사실이 경악스럽긴 했으나, 저 괴물이라면 잠깐 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멀쩡해질 거란 알 수 없는 믿음에서였다.
하지만 이리나는 이런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온몸에서 고열이 펄펄 끓고, 마력이 요동을 치는 게 상황이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던 것이다.
마력을 안정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다 취해보았지만, 한세연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던 이리나의 머릿속에 뒤늦게 떠오른 존재가 바로 이해솔이었다.
한세연이 말하는 이해솔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기운을 잘 다루는 사람이었으니.
그녀의 마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사실 한세연은 이해솔에 관해 무조건 좋게 미화해서 말하기만 했기에 과장이 심하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으나, 이리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해솔을 찾았다.
그리고 한세연이 쓰러졌다는 한마디에 이해솔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굳은 표정이 되어 이리나를 따라나섰다.
······그렇게 찾은 블랙마켓의 저택.
몇몇 마인이 침상에 잠든 한세연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검공 가스턴, 오만의 웨인, 분노의 마인 야울.
“여기야.”
이리나의 말에 나는 대답하지 않고, 한세연을 향해 다가갔다.
“비켜.”
내 말에 웨인이 인상을 팍 찌푸린다.
“그럴 수는-”
“아니면 네가 치료할 거야?”
“웨인, 비켜. 이해솔이야.”
이리나의 그 한 마디에 웨인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비켜섰다.
가스턴과 야울도 이채가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한 고위 마인들의 관심에 아랑곳 없이 나는 침상에 누운 한세연의 상태를 확인했다.
‘너무 안일했어.’
온몸이 땀에 젖은 한세연의 모습은 척 보기에도 심각해 보였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나는 그녀와 접촉하는 순간 바로 알아차릴 수 잇었다.
새하얀 백색의 기운이 한세연의 영혼에 들러붙어 그녀의 정신에 파고들려 시도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력이나 마기가 아니었으며, 항마력과도 달랐다.
마기와 완전히 상반된 상극의 기운. 이러한 기운은 이터니티에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성력(聖力).
수호자들이나 쓸법한 기운이 한세연의 정신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던 것이다.
차마 정신까지 살펴볼 생각은 없었기에 나 또한 성력이 침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 성력이 느닷없이 정신에 침투하려 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수호자의 각성.’
수호자가 죽으면 또 다른 수호자가 각성한다. 그렇기에 수호자의 수는 항상 5명으로 유지된다.
그것이 이터니티의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한 명의 수호자가 죽자 공교롭게도 그 빈 자리에 한세연이 낙점을 당한 것이다.
‘빌어먹을.’
다행히도 아직 성력은 한세연의 정신에 침투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복마령. 한가장에서 얻었던 그 정신을 보호하는 목걸이가 성력의 침투를 막고 있었다.
한세연 개인의 정신력 또한 성력의 침투에 저항하며 마력이 날뛰고 있었다.
그녀의 정신에 파고드려는 성력을 나는 손으로 잡아 떨궈냈다.
────!
‘꺼져.’
정신에서 떨어져나온 성력이 맹렬히 저항하며 꿈틀거렸지만,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정신능력자인 내게 이까짓 거머리를 떼어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으니.
화르륵─
새하얀 재를 피워올리며 내 손아귀에서 증발해 버리는 성력.
느닷없는 기운의 증발에 놀란 마인들이 눈을 크게 뜬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임시 조치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거지.’
한 번 수호자로 낙점을 받으면 성력은 계속해서 찾아온다.
저항을 포기하고 성력을 받아들일 때까지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것이다.
그것이 수호자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이었다.
이런 내 설명에 듣고 있던 마인들의 표정이 굳어버린다.
조용히 듣고 있던 웨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긴. 못 보내게 박살 내야지.”
이 성력을 보내오는 곳도 이터니티의 무대 위에 존재하고 있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