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균열의 문 너머로 펼쳐진 것은 끝도 없는 사막이었다.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고, 시도 때도 없이 마수가 튀어나오며, 살을 태울 듯한 고열의 태양이 연신 내리쬐어 온다.
지하에 펼쳐지기에는 너무도 부적절하고도 기이한, 삭막한 풍경.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균열에 가까워져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균열의 근처에서는 시공간이 뒤틀려 어떠한 현상이 일어나도 하등 이상할 바가 없었으니. 지하의 사막 정도야 평범한 것이었다.
─크아아아!
순간 세상이 어두워진다. 사막의 모래를 뚫고 거대한 생명체가 솟구쳐오른다.
하늘을 가리는 한 쌍의 너른 날개, 회색의 비늘과 파충류의 누런 눈.
얼핏 용의 형상을 닮았으나 그와는 다르게도 뿔이 없는 생명체.
어스 드레이크.
추락한 용이라고도 불리우는 6성급의 최상위 마수였다.
“별게 다 나오네.”
녀석을 본 내가 피식 웃었다.
좀 전에는 오크 챔피언이 나오더니 이번에는 어스 드레이크라니.
이 사막에는 이런 괴물같은 마수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던전의 보스급인 거물들이 한낯 마물처럼 심심치 않게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신경 쓸 바는 없었다.
츄아아악───
녀석은 등장과 동시에 한 줌의 잔해가 되어 갈려 나갔으니······.
잿빛의 마력폭풍에 어스 드레이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치 믹서기에 갈려 나가는 듯한 처참하고도 경이로운 광경. 이를 자행한 유진을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더 강해졌네.’
그에게서는 어떠한 피로도, 마력의 소모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균열에 가까워져 올수록 유진은 더욱 강해져가고 있었다.
우르크와의 거리가 좁혀지니 그로부터 전해받는 마력의 양 또한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정표조차 존재하지 않는 사막에서도 우리는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 수 있었다. 유진이라는 확실한 길잡이가 존재했으니.
“가지.”
망설임 없이 사막을 나아가는 유진. 그러던 와중에 느닷없이 사막이 뒤흔들렸다.
────────!
사구가 무너지고 모래가 파도처럼 출렁이며 지형이 시시각각 변해간다.
세상 전체가 뒤흔들리는 것만 같은 착시.
이윽고 거칠게 출렁이던 사막이 군세처럼 솟구쳤다.
아니, 녀석들은 실제로 군세였다.
사람의 형상을 한 모래병이 광활한 사막을 지평선 가득 메워왔다.
─그오오오······!
갑주, 창, 검 등으로 무장한 모래병들의 울림이 공간을 울린다.
“이건······”
소피아의 표정이 긴장으로 물들고 한세연도 조금 놀란 눈치다.
엔마나 유진도 뜻밖이었는지, 눈이 살짝 커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예상하고 있던 일이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나왔네.”
우리를 둘러싼 수백, 수천의 모래병. 그들은 마수도, 마물도 아니었다.
[우르크의 군세가 도래합니다.]우르크의 부활을 기다리며 스스로의 영혼을 사막에 가둔 고대의 망령들이었다.
오랜 잠에 빠져있던 그들이 우르크의 사도인 유진의 접근으로 인해 깨어난 것이다.
동시에 상태창에 여러 문구들이 떠오른다.
[레오드의 망령들입니다.] [망령의 힘은 의지에 비례합니다.] [······주의! 망령의 의지는 최고조에 달해있습니다.]─그오오오······
원한이 서린 스산한 울림, 붉은 눈길이 정확히 나와 엔마를 향한다.
여신의 가호를 받고 온 나와, 수호자인 엔마는 우르크와는 적대하는 관계였으니.
이윽고 파도처럼 진군하기 시작하는 모래병들. 모래병의 진군은 그 자체로 장엄한 물결이었다.
쿠구구구구······
사막 전체가 일어나 우리를 향해 밀려드는 듯한 어마어마한 광경.
“해솔님, 뒤로 물러나십시오.”
소피아가 내 앞을 막아선다.
소피아의 대검에서 튀어나온 어린 검령이 앙다문 표정으로 소피아와 같은 자세를 취하는 것이 제법 귀엽다.
엔마라던 수호자도 무시무시한 마력을 발산하고, 한세연조차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다.
그렇게 모두가 다가올 사막의 군세를 대비하는 와중에 나는 유진을 바라보았다.
밀어닥치는 사막의 군세를 바라보며 유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모래병들의 적의는 그에게는 일절 향해있지 않았으니.
‘눈치챈 것 같지는 않고.’
기실, 모래병들은 자신의 사도를 균열로 보내기 위한 우르크의 안배였다.
노아조차 이곳에 우르크의 망령들이 잠들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만약 저 모래병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균열까지 도달하는 것은 수월할 터였다.
‘하지만 그래서는 곤란하지.’
내가 균열에서 우르크의 영혼을 가지고 나온다면 저 망령들은 필시 이를 알아차릴 테니.
그렇게 되면 유진에게 우르크의 영혼을 집어넣겠다는 내 계획도 물거품이 되리라.
그러니, 이르지만 퇴장해줘야겠다.
“해솔님?”
“괜찮아요.”
소피아를 뒤로한 내가 앞으로 나선다. 내 뒤로 열두 자루의 그람의 비도가 뒤따랐다.
현재 나와 그람의 동화율은 30%가 조금 넘은 상황.
하지만 여신의 가호를 받으면서 이를 일시적이나마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는 방도는 마련되었다.
“그러려고 가호를 받았습니다.”
“그러지 않을 거잖아요.”
“검령이 아니라 그람을 믿는 겁니다.”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그람의 영이 개방된 내 육체로 흘러들어온다.
무언가가 스며드는 기이한 감각이 온몸을 적셔 들며 나는 그람이 내 안에 들어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소감은요?”
“음.”
내 침음에 픽 웃으며 그람이 말을 덧붙였다.
“그거 좋은 말인가요?”
“그거 잘됐네요.”
몸에 익힌 게 없다 보니 그람이 마음껏 다루기 편하다는 이야기였다.
씨익 웃은 나는 앞을 바라보았다.
쿠구구구구구······
장엄한 군세가 사막을 울리며 해일처럼 밀려들고 있었다.
그들 하나하나가 고대의 사막을 누볐던 정예들이었다.
시야에 보이는 사막 전부를 점령한 그 수는 물경 수천을 헤아릴 수준.
‘나’와 ‘그람’이 녀석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열두 자루의 비도가 진군하는 수천의 군세를 향해 나란히 도열한다.
그 수의 차이는 너무도 극명했고, 한없이 작고 초라해 보였다.
뿌연 모래바람을 피워올리며 밀려드는 군세를 응시하며 나와 그람이 마력의 언어를 읊조린다.
대보구, 그람의 진정한 능력이 담긴 개방의 언어를.
━분열.
[대보구 그람의 능력, 이터널이 발동됩니다.]찰나, 열두 자루에 불과했던 비도가 분열하며 증식을 시작한다.
스스스스스······
스스로를 복제하듯 무한하게 늘어나기 시작하는 비도.
열두 자루에 불과했던 비도는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고, 태양이 가린 사막에 그늘이 드리운다.
“!”
놀란 일행의 눈이 나를 향하고, 내 뇌리로 뜨거운 전류가 달린다.
마력을 담아 파랗게 명멸하는 눈이 진군하는 사막의 정예들을 바라본다.
지천에 깔린 그 수천의 모래병을, 한 명 한 명 전부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
검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
무수한 검의 비가 사막에 내리꽂히며 모래무더기를 피워올린다.
절벽에 부딪힌 포말처럼, 아스라이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모래병들이 허무하게 스러져간다.
【레오드의 망령 처치 수】
[79] [239] [458] [839] [1052] [2038].
.
.
시스템이 고장이라도 난 듯 상태창의 숫자가 미친 듯이 튀어 오르고.
【레오드의 망령이 소멸합니다.】
한 줄의 글귀와 함께 사막이 붕괴한다.
유리처럼 깨져나가는 사막의 너머로 새로운 세상의 풍경이 들어찬다.
언제 태양이 있었냐는 듯, 주위는 별무리로 가득한 밤의 세계였다.
휘리릭──
열 두자루의 비도가 내게로 돌아온다. 비도를 회수한 나는 유진을 돌아보았다.
그는 내가 없앤 레오드의 망령이 자신에게 주어진 안배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나를 보며 나직이 감탄을 했다.
“대보구를 각성시킨 건가?”
“아니, 꼼수지.”
“?”
“한 번 하면 당분간 못쓰거든.”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그리 말했다.
그람을 받아들였던 부작용인지,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흥분한 심장이 필요 이상의 피를 뿜어낸다.
“그래 보이는군.”
내 상태가 좋지 못함을 알아본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한 모습이다.
“해솔님, 괜찮으십니까?”
“예, 잠깐 어지러운 것뿐이에요.”
“잠깐 쉬었다 갈까?”
“아니, 그럴 시간 없어.”
소피아와 한세연의 물음에 차례로 답한 나는 주위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빠듯하겠는데.’
기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균열의 문을 통과한 시점부터 노아는 우리의 침입 사실을 알아차렸을 테니까.
이곳은 그녀의 본체가 머무는 공간이었으니.
차시우와 고르고프가 노아를 막아준다고는 했으나, 긴 시간을 끌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작정하고 화가 난 노아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이터니티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어떻게든 균열에 빨리 도착을 해야하건만, 재수가 없으련지 최악의 공간이 나와버렸다.
【은하의 토끼】
땅이며 하늘이며 분간 없이 별무리가 총총히 박힌 공간.
작달막한 토끼 한 마리가 붉은 눈으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끼이익······!”
듣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사나워지는 울음을 토하는 녀석.
“유토군요.”
녀석을 본 소피아가 미간을 찌푸린다.
그도 그럴 게 녀석은 무력은 없으나, 아주 까다로운 녀석이었다.
울음으로 주변의 마수를 불러 모으는 특성을 지닌 녀석이었으니.
하물며 실체를 잡기가 어려운 놈이었기에 죽이기조차 어려웠다.
“시간 없으니까 꺼져.”
나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시꺼먼 아공이 열리며 녀석을 집어 삼켜버렸다.
이내 토끼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자 일행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러나 내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토끼는 어찌 치웠으나, 이 은하는 공간 자체가 우르크의 적대감으로 가득했으니.
우르크의 사도인 유진에게 마수의 어그로가 끌릴 거란 건 자명한 사실.
유진 혼자라면 모를까, 일행이 함께라면 길을 나아가는데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터였다.
노아를 따돌려야 하는 우리에게는 좋지 못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내 고민이 겉으로 드러난 탓일까. 한세연이 말을 걸어왔다.
“고민 있어?”
“응, 저 사람한테 마수가 몰려들 거야.”
내가 유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없어.”
한세연은 유진을 바라보며 갸웃거리더니, 뜻밖의 말을 꺼내놓았다.
“같이 가야 돼?”
“뭐? 그야 당연히······”
당연히 같이 가야 된다. 그리 말하려던 나는 문득 말을 멈췄다.
허를 찔린 기분에 멍하니 입이 벌어졌다.
“······같이 갈 필요는 없네.”
어차피 균열에 들어가는 것은 나 혼자다. 그러니 유진과 함께일 필요는 없었다.
유진을 의식하다 보니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문제는 내가 그람과의 동화로 몸이 맛이 가버려서 마수를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인데······
“괜찮겠네.”
소피아와 한세연을 돌아본 내가 중얼거렸다. 맞다는 듯 한세연이 방긋 웃어 보였다.
***
······우리는 그 길로 곧장 유진에게서 떨어져나왔다.
엔마라던 여인도 우리와 함께였다. 그편이 더욱 효율적이었으니.
그렇게 나타나는 마수들을 정리하며 수월하게 나아가니, 은하를 벗어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유진에게 마수의 어그로가 끌려버렸기에, 상대적으로 움직이기가 편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은하를 벗어나기 직전에 멈춰서야만 했다.
은하가 끝나는 경계선. 그곳에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노아?!”
상대를 본 엔마가 아연실색해 소리친다.
그도 그럴 게 은하의 저편에서 우리를 쳐다보는 여인은 노아를 쏙 빼닮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여인은 노아와 판박이었으나 노아가 아니었다.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말없이 전투자세를 취하는 모습은 내게 낯설지 않은 것이었으니.
나는 마력을 예열하는 상대를 바라보며, 그녀의 이름을 말했다.
“타샤.”
노아가 가문의 마력석을 이용해 탄생시킨 마법 생명체.
균열의 가디언이자 최강의 전투인형이라 할 수 있는 존재.
바로 타샤 맥도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