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8
§ 27화
“아오, 죽겠네. 이 짓을 왜 하는지. 참.”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생도동 뒤편의 숲길을 순찰하던 요원, 박상철이 투덜거렸다.
학년대항전으로 인해 대부분의 요원이 대련장으로 차출되는 바람에 이터니티는 외곽 경계가 다소 느슨해진 상황이었다.
때문에 박상철은 평소보다 많은 구역의 순찰을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는 순찰을 돌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는 구역도 있었다.
가령 그가 지금 돌고 있는 생도동의 숲길이 바로 그러했다. 이곳은 아카데미의 관계자가 아닌 이상 드나들 수 없게끔 마력 결계가 쳐진 구역이었으니까.
그만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좀 전에 소변을 보러 간다며 사라진 사수는 아직까지 돌아오지를 않고 있었다.
“이 인간은 오줌을 만들러 갔나 보네.”
혀를 찬 박상철이 인근 초소의 계단에 앉아 시계만 연신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숲길에서 인영 하나가 나타났다.
“하여간 빨리도 오시네.”
사수가 돌아왔다 판단한 박상철은 자리에서 일어나다 흠칫 굳어졌다.
“······음?”
숲길에서 나타난 건 사수가 아니었다.
어두운 낯빛에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을 풍기는 남자였다.
하지만 박상철이 놀란 건 남자의 불길한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다.
‘···피 냄새!’
바람을 타고 비릿한 혈향이 감돌았다.
사수가 죽었음을 직감한 박상철은 반사적으로 총을 쐈다. 정확히 3발을.
마력이 담기지 않은 일반 탄환이었으나, 그런 탄환이라도 근접거리에서 맞으면 그 살상력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대체 무슨 조화인지 총탄은 남자를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남자에게 아무런 피해도 입히지 못한 채,
“헛!”
경악한 박상철의 눈이 커졌을 때, 그의 시야가 돌연 곤두박질쳤다. 그게 끝이었다.
박상철의 잘린 머리가 굴러떨어지고, 머리를 잃은 몸통이 뒤로 넘어갔다.
“······.”
불길한 기운을 풍기던 남자, 마인 구준명이 박상철의 시체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구준명이 온 숲길에서 세 사람이 더 나타났다.
구준명은 그중 이터니티의 생도 ‘에머슨’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고맙다, 덕분에 일이 수월해졌군.”
에머슨의 도움 덕에 구준명과 그의 동료들은 이터니티에 아무런 방해 없이 들어올 수가 있었다.
아카데미 생도증에 로마노라는 가문의 이름이 지닌 입김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리고 죽은 박상철의 시체를 바라보는 에머슨의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뭔가 일이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지만, 에머슨은 이내 이를 외면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에머슨 그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이렇게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는 구준명이 없으면 당장이라도 죽는 목숨이었으니까. 에머슨이 그렇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사연이 있었다.
1년 전, 에머슨은 구준명이 제공해주는 마력초를 들이키곤, 마력이 늘어나는 충만감을 맛보았다.
그때의 에머슨은 여타 생도들보다 뛰어난 실력을 보일 수 있었다.
그것은 에머슨이 처음 느껴보는 신세계였다.
따로 마력초를 구해보았지만, 구준명이 주었던 마력초에서 느껴지던 충만감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에머슨은 구준명이 주는 마력초를 끊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에머슨은 점차 자신의 마력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그 끔찍한 현상은 오직 구준명이 주는 마력초가 있어야지만 해소될 수 있었다.
그 탓에 에머슨은 구준명이 자신을 이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버렸다.
“들여보내 줬으니 마력초를 줘, 빨리.”
“아, 물론 당연히 줘야지.”
구준명이 품에서 검은 풀을 꺼내 들었다.
에머슨이 이를 집어 들려 하자, 구준명이 손을 물리며 말했다.
“그 전에 한 가지만 더 부탁하지.”
“뭘?”
“아멜리아 로마노를 데려와 줄 수 있겠나?”
“아, 아멜리아? 걔는 내 말 안 듣는데······”
당황한 에머슨의 목소리가 떨리자 구준명이 걱정 말라는 듯 말했다.
“그럼 물건 하나만 전해주면 된다.”
구준명이 손을 들어 올리자, 뒤에 서 있던 배가 툭 튀어나온 괴인이 무언가가 든 검은 주머니를 에머슨에게 건넸다.
“아멜리아에게 전해주기 전까지는 절대 열어보지 말아라.”
“마, 마력초는···”
안달하는 에머슨의 모습에 피식 웃은 구준명이 검은 풀을 던졌다.
이를 허겁지겁 받아든 에머슨이 마력초에 코를 파묻었다.
이내 눈이 불그스름하게 변한 에머슨이 주머니를 들고 떠나자, 구준명의 뒤에 있던 마인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입을 열었다.
“생도 하나 잡는데 혈류석을 사용한다니, 아멜리아란 아이한테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건가?”
에머슨이 지니고 간 주머니 안에 든 혈류석은 일개 이터니티의 1학년 생도에게 사용하기에는 아까운 물건이었다. 하지만 구준명의 생각은 달랐다.
“순수마력을 타고난 아이다. 잡을 수만 있다면 혈류석쯤이야 하나도 아깝지 않아.”
“······!”
순수마력이란 말에 뒤에 있던 두 마인의 표정에 놀람이 스쳐 지나갔다.
그도 그럴 게, 순수마력이란 오대 원소 계열의 마법 모두를 극한까지 터득할 수 있는 무상성의 마력이다.
무척이나 희귀한 마력으로, 만약 마인이 이를 취한다면 순식간에 마기를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는 영약 같은 존재가 바로 순수마력의 소유자였다.
“과연, 순수마력이라면 혈류석쯤이야 아깝지 않지.”
“어쩌면 본관보다 중요할 수도 있겠어.”
그들의 목적은 본관의 테러와 이터니티 생도들에게서의 마력 갈취였다.
이터니티의 생도들은 하나같이 정순한 마력을 지녔기에 마인들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순수마력이라면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인원을 나눠야겠군.”
“내가 본관 쪽을 맡겠다.”
“나도 본관쪽으로 가지.”
한동안 의견을 조율하던 마인들이 이내 숲길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터니티의 본관에서 폭발이 발생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학년대항전은 이터니티의 전교생이 참여하는 축제다. 오늘 하루를 위해 길게는 반년에서 짧게는 석 달을 준비하는 생도도 있을 정도로, 인지도가 제법 큰 행사였다.
하지만 그런 흥미로운 볼거리라도, 자신의 차례가 끝나면 대련장을 빠져나오는 생도들도 다수 존재했다.
밀린 과제를 처리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이유로, 혹은 쉬고 싶어서 등 이유야 다양했다.
아멜리아 또한 대련장을 빠져나온 생도 중 한 명이었다.
다만, 이유는 다른 생도들과는 달랐다.
생도의 신분이지만 별의 성좌라는 초인길드의 한 축을 담당하는 그녀이기에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돈이 들어오고 나가는 자금의 흐름을 매일같이 확인하고, 길드 내에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기록하고 개선사항을 마련하는 것.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어려서부터 그녀가 하루도 빠짐없이 해오는 일들이었다.
그건 학년대항전이라는 축제의 날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아니, 이런 날이기에 오히려 더 빨리 끝내두어야 했다.
그래야 남은 시간 동안 생도들과 친분을 나누고, 저녁에 짬을 내서 밀린 과제와 마법 훈련을 할 시간적 여유도 생길 테니까.
“흐아암!”
노트북을 켜놓고 장장 세 시간에 걸쳐 할 일을 마친 아멜리아가 기지개를 쭉 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2시. 이제부터 다시 대련장으로 돌아가면 생도들과 움직이기에 시간이 딱 맞았다.
‘그나저나 유스칼을 상대로 이기다니, 얼마나 강한 거지?’
문득 낮에 있었던 이해솔과 유스칼의 비무를 떠올린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 또한 정해준과 같이 이해솔이 마력의 벽을 쌓아 올려 유스칼의 마력필드에서 벗어났다고 판단했다.
물론 마력의 벽이야 그녀 또한 얼마든지 쌓아 올릴 수 있기에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그 상황에서 그러한 판단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웠다.
마력의 벽을 쌓아 올리는 도중에는 무방비로 노출되기가 쉽기에 가벼운 공격에도 바로 패배할 수가 있던 것이다.
그리고 아멜리아가 아는 이해솔은 도박을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다.
어떠한 확신과 근거를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유스칼이 공격을 하지 못하리란 확신이 있었다는 말인데, 그 확신의 근거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펜대를 굴리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아멜리아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흐음, 모르겠네.”
쿠키 한 조각으로 당분을 충전한 아멜리아가 노트북을 덮고 일어났다.
이해솔에 관해서야 혼자 생각해봤자 답이 안 나온다는 걸 요 몇 주간 경험하면서 깨달았다. 괜히 깊이 고민해봐야 그녀만 손해였다.
“움직여 볼까.”
누구도 듣지 않을 혼잣말을 중얼거린 아멜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돌연, 기숙사가 지진을 만난 것처럼 우르르 흔들렸다.
“흐앗!”
반쯤 자리에서 일어났던 아멜리아가 휘청였다. 책상을 잡으며 가까스로 자세를 잡은 그녀가 창가 쪽으로 다가갔다.
“···폭발?”
창밖을 내다보니 이터니티의 본관 방향에서 시꺼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이에 놀란 그녀가 눈을 휘둥그레 뜰 때였다.
똑똑.
─아멜리아, 나야.
“에머슨?”
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그녀의 사촌인 에머슨 로마노였다.
평소엔 오지도 않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지?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아멜리아가 문을 열어주었다.
“무슨 일이야?”
“이거.”
“······?”
검은 주머니를 건네주는 에머슨의 행동에 아멜리아가 미간을 좁혔다.
“이게 뭔··· 읏!”
무심결에 주머니를 열어보았던 아멜리아가 일순 휘청였다. 현기증이 일고 마력을 가누기가 어려워졌다. 주머니 속의 붉은 보석, 혈류석을 본 순간부터였다.
마치 독 연기를 마시기라도 한 듯, 혈루석의 기운이 화악! 몸으로 스며들었다.
‘······위험해!’
본능이 경종을 울려왔다. 지금이 무척이나 위험한 상황이라고.
아멜리아는 가눠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창가로 이동했다.
에머슨을 믿을 수 없으니, 어떻게든 창가로 자리를 피할 생각이었다.
기숙사의 2층이었지만, 그녀는 주저 없이 뛰어내렸다.
다행히 마력이 아예 움직여지지 않는 것은 아니었기에, 착지의 충격은 생각보다 적었다.
“······으읏.”
잔디밭에 떨어진 아멜리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키려 할 때였다. 그녀의 머리 위로 검은 인영이 드리웠다.
“아멜리아 로마노.”
“······!”
아멜리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찾았군.”
칙칙한 낯빛을 한 남자가 탐욕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
이터니티의 본관에 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생도들도 알게 되었다.
“본관에서 연기가 솟고 있어.”
“진짜 테러라고?”
“이거 위험한 거 같은데.”
본관에서 치솟기 시작한 연기와 끼쳐오는 마기가 마인의 침입을 알려주었으니까.
“모두 조용!”
“다들 대련장에서 나가지 말고 대기하고 있어라!”
동요하는 생도들을 교관들이 통솔하며 대련장 안에 대기시켰다.
물론 나는 대련장 안에 가만히 대기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멜리아의 사망선이 나타난 이상, 잠자코 있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사태를 가장 먼저 알아차렸기에 교관들의 통제가 시작되기 전부터 나는 이미 대련장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주위의 눈치를 살필 필요는 없었다.
Lv.1
유스칼을 쓰러트리며 얻은 능력 탓에 아무도 나를 주시하는 이가 없었으니까.
그렇게 대련장을 빠져나오자 본관으로 달려가는 요원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나는 본관만이 테러 대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양동이네.’
본관에 한 눈이 팔린 사이, 생도동 또한 테러의 위협에 노출되어 있을 터였다.
사망선에 놓인 아멜리아와 다수의 생도들이 생도동에 남아 있었으니까.
그리고 나는 아멜리아의 사망선에 등장하는 마인이 누구인지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허귀(虛鬼) 구준명.’
특정조건이 갖추어지면 외부의 공격을 무시해버리는 마인.
‘그럼 본관 쪽은 크루트인가.’
마인들이 초인에 대적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조마수. 통칭 크루트.
이 크루트란 놈들은 초인을 상대로 괴랄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놈들이다.
‘내버려 둬도 알아서 정리될 것 같긴 하지만······’
현재 이터니티에는 교관이나 요원들 뿐만이 아니라 외부의 길드에서 온 초인들도 대기하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본관의 테러는 금방 진압될 것이었다.
다만 그사이에 생기는 피해를 생각하자면 시간을 단축시킬 필요가 있었다.
“거기! 대련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기척을 풀자 요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발견하곤 다가왔다.
마침, 어깨의 완장이 제법 지휘가 있어 보이는 남자였다.
“본관에 나타난 크루트들, 아랫배 부근이 약점입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냐.”
“아랫배 부근이 약점이라고요. 거기를 공략하라고 하세요.”
Lv.1
반문을 하려던 남자는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내 모습에 당황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본관으로 뛰어갔다.
“이 정도 말해 놨으면 알아 먹겠지.”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나는 생도동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내 걸음에 망설임은 없었다.
생도동의 테러쯤이야, 나 혼자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