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2
§ 41화
노블레스.
다른 말로 ‘귀족.’
블랙마켓에서 그 단어가 주는 의미란 거대하고도, 직접적이었다. 이는 단순히 층이 높기에 오는 위압감이 아니었다.
5층에 속할 수 있는 ‘자격’이란, 마켓이 인정하는,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가문’ ‘길드’ ‘단체’의 핵심 구성원, 혹은 그에 준하는 초인으로서의 명성을 쌓아 올린 인물이다.
그렇기에, 5층에 주어진 이름 또한 ‘노블레스’.
하재명처럼 아래층에 눌러 앉아 귀족 행세를 하는 이들과는 격이 다른, 이터니티의 ‘진짜 귀족’이었다.
─크아악!
─이 새끼 막아!
골목을 점거한 길드원들이 쓰러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하재명으로서는 남자가 도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걸어가기만 하는데 알아서 길드원들이 쓰러진다.
“저, 저게 노블레스······”
직원의 떨리는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하재명이 소리쳤다.
“애들 당장 치워!”
그러고도 늦다 생각했는지, 하재명은 직원을 밀치곤 직접 뛰쳐나갔다.
검을 들고 골목을 막아선 길드원들을 본 하재명이 뒤통수를 후려치고, 발길질을 했다.
“큭! 어떤··· 기, 길드장님?”
“나와 미친 새끼야! 다 나와! 나오라고!”
하재명이 악다구니를 써가며 길드원들을 밀치는 와중에도 이미 골목으로 달려 나간 길드원들은 쓰러지고 있었다.
퍼어억─
파리를 쫓는 듯한 손동작에 가슴이 함몰된 사내가 날아가고.
─뿌드득! ─꽈득!
“끄아악!”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에 붙들린 덩치의 사내는 갈비뼈가 박살 나 눈을 까 뒤집었다.
부르르······.
하재명은 몸을 떨었다.
단순히 길드원들이 제압당해서가 아니었다.
길드원들을 제압하는 남자에게서, 단 한 줌의 마력조차 느껴지지 않은 것이다. 거리가 이렇게 가까움에도.
“이, 이게 노블레스······”
남자와 자신 간에 존재하는 격의 차이를 실감한 하재명은 길드원을 치우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졌다.
이내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치운 남자가 다가왔다. 하재명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전신을 가린 검은 코트가 죽음처럼 느껴지고, 다가오는 걸음걸이는 사신의 낫이 목에 들이 밀어지는 듯만 했다. 하재명이 양손을 천천히 하늘로 들어 올렸다.
“져, 졌습니다.”
“······?”
그 항복에 남자, 이해솔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
“······뭐야?”
양팔을 들어 올린 하재명을 본 나는 내심 당황스러웠다.
사실 그를 본 순간, 만만치 않은 강적이 등장했음을 직감했던 것이다.
그람이 부르르 떨며 경고를 보내왔으니까.
그렇다는 것은, 그가 적어도 아카데미 생도급의, 3층에 속하는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하물며 뒤에서 사내에게 길드장님이라며 소리치는 것도 들었다.
상대가 길드장 하재명인 것을 알아차린 나는 조금의 방심도 하지 않을 생각으로 천천히 거리를 좁혀갔다.
그런데, 느닷없이 하재명이 양팔을 들어 올리며 항복을 해온 것이다.
“쩝.”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어 나는 멋쩍음에 볼을 긁적였다.
아무튼, 이거······
‘기회인 것 같지?’
[서브 퀘스트 : 연금제약 ‘한울’을 바저드길드의 위협으로부터 구하세요!]*바저드 길드장 하재명(0/1)
*길드원 (20/20)
[보상 : 1000SP]퍼억!
항복의사를 표하며 양팔을 번쩍 들어 올린 하재명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이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거든······
머리를 가격 당한 하재명이 뒤로 넘어갔다. 이어서 띠링! 소리와 함께 알림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 연금제약 ‘한울’을 바저드길드의 위협으로부터 구하세요!]*바저드 길드장 하재명(1/1)
*길드원 (20/20)
[보상으로 1000SP가 수여됩니다.]기절한 하재명을 바라보던 나는 어둑해진 사위에 문득 시계를 바라보았다.
[PM 07 : 38]“······음.”
은가예와의 약속이 7시였는데, 38분이나 오버되어 있었다.
바저드길드를 정리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으나 여기까지 오는 데 시간을 다 잡아 먹어버린 것이다. 한세울이 알고 보니 엄청난 길치였으니까.
공방에서 아예 나가지를 않는 사람을 데리고 길을 찾으라는 것부터가 심각한 오류였던 듯싶다.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문자가 수십 통이나 와 있었다.
차마 열어볼 용기가 안 나 스마트폰을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조졌네.’
다행이라 해야 할지, 경매장 개방은 7시부터라지만 경매가 시작되는 것은 8시부터이기에, 아직 시간이 남아 있긴 했다.
음, 이건 일단 뛰어야겠지?
***
“얘는 왜 안 와?”
7시가 훌쩍 넘은 시점. 위저드홀 앞의 분수대에 앉은 은가예는 초조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경매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속속들이 위저드홀로 들어가고 있었건만, 이해솔은 어디서 뭐를 하고 있는지 연락조차 되지를 않고 있었다.
“설마 이거 그냥 가버린 건가?”
그렇지 않아도 귀찮다는 티를 팍팍 풍기던 이해솔이다.
그냥 가버렸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에 은가예의 입술이 삐뚜름해졌다. 올라오는 짜증에 괜히 머리를 긁었다.
“아~ 씁, 시간만 날렸네.”
경매를 깔끔히 포기한 은가예가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룬어 시험지 돌립니다! 받아 가세요! 별로 어렵지 않아요!
위저드홀 앞에서는 아까부터 여마법사가 전단지를 돌리듯 룬어 시험지를 배포하고 있었다. 경매에 입장하는 조건이 룬어 시험 통과였으니까.
“한 번 풀어봐?”
마침, 경매도 포기했겠다, ‘별로 어렵지 않다’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래도 명색이 아카데미에서 룬어도 배우는 생도인데······
“흠, 나 정도면 평타치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장착한 은가예가 여마법사에게 다가갔다.
“저기요, 시험지 풀어보고 싶은데요.”
“아! 경매에 참가하시려고요?”
“그건 아닌데 그냥 풀어보고 싶어서요.”
“아하, 룬어에 관심이 있으신가 보네요.”
“예, 뭐······”
방긋 웃으며 환영하는 여마법사.
괜히 헛기침을 한 은가예가 시험지와 펜을 받아 돌아왔다.
종이를 펼치자,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하학 꼬부랑 문양들이 펼쳐졌다.
“어?”
······왜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지?
이유 모를 현기증에 고개를 갸웃거린 은가예는 전날 잠을 적게 자서 그렇다고 결론을 내리곤 시험지로 눈을 돌렸다.
“······어음.”
살짝, 아니. 조금 많이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풀만 하다. 풀만 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펜대를 슥슥 놀렸다.
이내 나름 만족스러운 답안지가 나옴에 은가예가 투덜거렸다.
“뭐야, 이해솔 괜히 데려간다 했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무나 잡아다가 머릿수만 채울 걸 그랬다.
그녀가 보기에 이건 무조건 합격이었으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하냐?”
“···뭐? 우, 우엇! 뭐야?!”
느닷없이 시험지와 펜을 채가는 손길에 기겁한 은가예가 홱 고개를 돌렸다.
“뭐, 그래도 세 개는 맞았네.”
시험지를 든 이해솔이 종이에다 빗줄기를 그리고 있었다.
“······와, 존나 깜짝 놀랐네.”
가슴을 부여잡은 은가예가 인상을 확 썼다.
“야, 넌 뭐 하는데 이제 나타나냐?”
“미안, 일 좀 보느라.”
순식간에 답을 전부 작성한 이해솔이 시험지를 제출했다.
“와와! 다 맞았어요. 정말 대단해요.”
여마법사가 이해솔을 칭찬함에 은가예의 입술이 삐뚜름해졌다.
“어우, 저거 진짜.”
못 풀면 말이라도 안 하지.
오라며 손짓하는 이해솔.
결국 도와 달라한 건 자신이었기에 은가예는 고개를 내저으며 일어났다.
***
[위저드 홀]무대를 빙 둘러싼 거대한 원형의 공간.
마법사 협회가 주관하는 이곳은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을 보듯 그 규모나 위용이 대단했다.
“마법사 협회의 경매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마법사의 안내를 받은 우리는 무대가 잘 내려다 보이는 ‘VIP룸’으로 이동했다.
고풍스러우면서 유럽의 느낌이 물씬 풍겨 나는 원목 의자와 탁자. 천장의 샹들리에. 바닥에 깔린 고급 카펫, 경매 입찰에 쓰이는 황금 밧줄 등.
VIP룸은 아예 돈을 처 발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렇다고 은가예가 비싼 돈을 지불하거나 미리 예약을 했기에 우리가 VIP룸에 들어온 것은 아니다.
5층, 노블레스 계급의 특권이었다.
이곳, 블랙마켓에서 노블레스 계급은 어딜 가든 특권을 누리게 되니까.
층이란, 단순히 계급을 구분 지어 놓은 것만이 아닌, 그 특혜조차 남달랐던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블랙마켓이 마냥 좋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 특혜만큼이나 뽑아 먹을 건 죄다 뽑아 먹는 곳이 바로 블랙마켓이었으니까.
“인당 입장료가 100만원이라니, 실화냐?”
“이것도 싼 거야. 어퍼 계급은 120만원이니까.”
“······허.”
하물며, 탁자에 진열된 와인이며, 음료들 또한 공짜가 아니었다.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만원까지도 나가는 것들이라니까.
여긴 모든 게 돈 돈 돈이었다.
뭐, 그만큼 이터니티에서 강자가 가지는 입지가 얼마나 절대적인 것인지 실감이 가기도 했다.
당장 나 또한 1층에서 길드 하나를 박살 내고 왔음에도 이를 누구 하나 문제 삼지 않았으니······ 박살 난 당사자들조차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나중에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하재명이 싸워보지도 않고 쫄은 이유도 다 계급을 열람한 탓이었다.)
그 덕분에 한세울은 바저드길드의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비약의 제조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게임에서의 블랙마켓과 그다지 다른 점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이런 세세한 ‘개연성’ 부분에서 현실의 블랙마켓은 게임의 블랙마켓과 많은 차이를 드러내 보였다.
‘일레인이 정말 대단한 걸 줬네.’
솔직히 마석 24개와 블루마블을 맞바꿀 때만 해도 내가 적선한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막상 ‘노블레스’의 혜택을 체감하게 되니, 일레인이 얼마나 대단한 것을 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아무튼, 이렇게 블랙마켓의 ‘돈 지랄’을 보다 보니 문득 의구심이 들었다.
“너 돈은 있냐?”
“어, 당연히 총알이야 넉넉히 채워왔지.”
“얼마나 가져왔는데?”
“입장료 빼고 한 육백쯤? 저금한 거 다 털어왔거든. 각성제는 이 정도면 충분해.”
보충제 하나에 육백만원씩이나 하는 세상이라······
은가예가 경매장에서 사려는 건 기성품이 아니니 비싼 거야 당연했지만 어쨌든, 액수의 단위가 현실과는 많이 괴리감이 있었다.
─듀라스! 듀라스의 팔찌 3천만원 나왔습니다. 입찰하실 분 더 안 계십니까?
은가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경매가 진행되었다.
─듀라스의 팔찌 3천만원 낙찰······
참고로, 블랙마켓의 공용어는 ‘한국어’다.
초인강국 한국이었으니 세계인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한국어가 공용어로 사용되는 것도 당연했다.
─라이오넬의 눈물
─검은 눈동자 구슬
─아이린의 반지
─수호의 목걸이
경매가 이어지며 물품들이 계속해서 넘어갔다. 마법사 협회에서 주관하는 경매여서 그런지, 대부분이 마법물품이었다.
내가 슬슬 지루해 하는 걸 느꼈는지 은가예가 말했다.
“각성제만 사면 바로 나가자. 밥 살게.”
“어, 고맙다.”
“뭐 먹을까?”
“고기.”
그렇게 우리가 먹거리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려 할 때였다.
─로드릭의 ‘수수께끼 박스’입니다. 로드릭이 살아생전 제작한 물품으로, 안에서 무슨 능력을 얻게 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수수께끼 박스란 말에 내가 시선을 돌렸다. 이를 본 은가예가 고개를 저었다.
“야, 관심주지 마, 저거 다 구라야. 그냥 상자에서 마력이 느껴져서 의미심장하다고 경매장에 나오는 거지, 박스 열어봤자 안에 아무것도 안 들어 있어. 호구잡이야, 호구잡이.”
과연, 은가예의 말처럼 경매장의 누구도 검은 박스의 등장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
─수수께끼 박스, 입찰가는 50만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는 즉시 입찰용 밧줄을 잡아당겼다.
“야!”
은가예가 뭐하냐는 눈빛을 보내왔지만, 나는 아랑곳 없이 확성기를 잡고 말했다.
“50만원.”
─로드릭의 수수께끼 상자 50만원 나왔습니다! 입찰하실 분 더 없습니까?
아무도 없었다.
─수수께끼 상자, 50만원에 낙찰되었습니다.
사회자가 땅땅! 망치를 두드렸다.
수수께끼 상자.
호구잡이 박스.
경매장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내 표정은 담담하기만 했다.
나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으니까.
왜 누구도 수수께끼 상자에서 능력을 얻지 못했는지도.
【로드릭의 수수께끼 상자】
─개봉 시, 플레이어 1회 한정 랜덤한 능력을 100% 획득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게, 저건.
‘플레이어 전용’ 아이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