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4
§ 43화
‘진로 상담’이란, 상담자가 내담자 본인에게 맞는 진로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을 말한다.
한 마디로, 담임 선생님이 학생을 불러다 앉혀 놓고 미래에 대한 조언을 해주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진로상담이고, 이터니티 아카데미의 진로상담은 좀 많이 달랐다.
애초에 초인에게 진로란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담임 선생님이 아닌 업계 기성들이 초빙 강사로 와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게 단순한 상담이 아닌 ‘시험’이라는 것에 있었다.
“진로상담의 점수는 성적에 반영되니,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상담실’까지 갈 수 있기를 바라마.”
1학년 생도들이 모두 모인 학생광장. 단상에 선 학년주임 정해준이 말했다.
“행여 상담실까지 못 가고 낙오하는 생도가 나온다면, 그 녀석은 나와 특별상담을 하게 될 테니 기대해도 좋다.”
아카데미에서 해마다 이루어지는 진로상담은 각 단체에서 나온 초빙강사들이 저마다의 시험을 준비해놓는다.
그 시험을 통과해야지만 비로소 상담실까지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쭉정이는 안 받겠다 이거지.’
마수와 대적하는 일선의 단체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들을 도와줄 인재였지, 발목을 잡을 ‘낙오자’가 아니었다.
그들이 시간이 남아돌아서 진로상담을 해주러 온 게 아니란 것이다.
인재발굴이 목적이었으니, 생도를 가려 받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 10분을 줄 테니 각자 상담받을 곳을 정하도록.”
정해준의 말이 끝나고, 생도들이 웅성이자, 은가예가 다가왔다.
“야, 넌 어디 갈지 정했냐?”
“어, 여명의 수호자.”
내 대답에 은가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명의 수호자? 거긴 왜?”
“마수 상대할 거면 이쪽이 최고니까.”
상위 초인길드들은 저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다.
예를 들어, 별의 성좌는 ‘금전’을 보고 움직이기에 던전공략이나 유적탐색이 주가 된다.
중국의 길드인 천검성(天劍城)은 겉으로는 순수한 ‘무’를 추구한다곤 하지만, 자기네 뜻대로 안 되면 죄다 배척해버리는 양아치들이었고.
반면 ‘여명의 수호자’는 그 설립 모토부터가 인류를 수호한다는 대단히 거창한 목표를 지니고 있었기에 마수와 마인을 상대하는 것에 사활을 건 단체였다.
뭐, 속만 파고 들어가 보자면 이쪽도 썩은 살이 있기야 했으나 내게 가장 도움이 될만한 단체는 ‘여명의 수호자’였다.
그나마 이쪽은 마인을 상대한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움직여 줄 만한 인물이 적어도 한 둘쯤은 있었으니까. 이번 상담사로 온 ‘서하린’이 그중 하나였고.
연을 만들어두면 마인관련 퀘스트가 나왔을 때 가장 써먹기 좋은 패인 것이다.
물론 ‘인류 수호’에 가장 앞장서는 단체는 여명의 수호자보단 초인 협회였기에, 이용 가치만 놓고 보면 초인 협회 쪽이 더 높긴 했다.
문제는 그쪽은 꼰대들 집합체라 건드려봤자 나만 피곤해진다.
반면 여명의 수호자는 융통성이 허용되는 ‘신세대’였고.
여러모로 여명의 수호자가 훨씬 나았다.
“음, 그래? 그럼 나도 그쪽으로 가볼까?”
내 대답에 은가예가 가벼이 중얼거렸다.
-여명의 수호자
-별의 성좌
-천검성
-위그드라실
-백야
-초인협회
-마법사협회
운동장에는 7개의 팻말이 있었고, 대부분의 생도가 진로를 정해둔 반면, 은가예는 이런 쪽으로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7단체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 망설이고 있는 것이었고.
이런 은가예의 고민에 어느새 다가온 아멜리아가 화사하게 웃어 보였다.
“별의 성좌는 어떤가요? 당신이라면 언제든 환영인데.”
“···어.응. 고마운데, 생각 좀 해볼게.”
“예,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세요.”
그 적극적인 구애에 은가예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은소백을 비롯한 직계들에게 견제를 받으며 살아온 은가예는 아멜리아의 저런 적극 공세에 대한 면역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은가예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대상 ‘1호’ 또한 아멜리아였다.
나야 아멜리아를 게임에서 많이 접해봐서 익숙하다지만, 은가예에게 저런 이유 없는 ‘친근함’은 영 어색한 종류의 것일 터였으니.
참고로, 여명의 수호자는 별의 성좌하고는 앙숙관계다.
‘이익’을 추구하는 별의 성좌와 ‘정의’를 표방하는 여명의 수호자.
구조부터가 서로 부딪힐 일이 많을 수밖에 없는 집단들이었다.
그런 탓에 내가 여명의 수호자를 택한 것에 아멜리아는 상당한 서운함을 내보였다.
나는 그 서운함으로 벌어진 입에 기력 몰빵의 특제 메론빵을 물려주었고.
지금 은가예를 꼬득이는 아멜리아의 입에 매달린 메론빵이 그것이다.
물론 저거 가지고 서운함을 다 무마시키진 못하겠지만, 하나쯤 더 물려주면 괜찮지 않을까?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한세연이 생도들에게 둘러싸여 친근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저 많은 생도들하고 일일이 대화를 나누자면 귀찮을 만도 할 텐데, 얘는 무슨 팬서비스를 하는 아이돌도 아니고 얼굴에서 웃음이 조금도 지워지질 않는다.
‘진짜 대단하다니까.’
나라면 저런 짓은 죽어도 못한다. 하기야, 저러니까 반장인 건가?
나름의 납득을 하면서 한세연에게 다가가자 생도들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는 딱히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우리 반에선 내가 하는 일은 방해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룰이 형성되어 있었다.(일레인이 얼마 전에 나한테 대참패를 당한 영향이 가장 컸다.)
그게 조금 어색하면서도 편하기에 딱히 신경은 쓰지 않고 있었다.
내가 다가오자 한세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해솔아, 무슨 일이야?”
“진로상담 어디로 할지 안 정했으면 말해둘 게 있어서. 여기서 말하긴 좀 그렇고.”
나는 한세연을 광장의 나무 그늘로 데리고 갔다.
사람이 없는 주변을 둘러본 한세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해솔아, 너무 빨라.”
“?”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는데.”
내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무슨 소리야?”
“고백하는 거 아니었어?”
“어, 절대.”
“에이, 아쉽네.”
장난스레 아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한세연의 모습에 내가 혀를 찼다.
얘는 장난을 칠 때도 표정의 변화가 없어서 감정을 읽기가 어려웠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자니 한세연이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너, 위그드라실 무조건 피하라고. 아니, 아예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
한세연이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이유라도 있어?”
“그러다 모르도랑 계약한 거 걸릴 수도 있으니까.”
한세연의 몸이 멈칫 거렸다.
“······걸릴 수도 있다고?”
“어, 어지간하면 안 걸리는데, 오늘 온 강사가 좀 특별한 사람이거든.”
위그드라실은 소환사들이 주축이 된 길드다. 누구보다도 소환수에 대해 잘 알며, 그 존재감을 읽어내는데 도가 튼 전문가들. 하물며 오늘 온 초빙강사는 그중에서도 소환수의 존재감을 읽어내는데 가장 뛰어나다고 정평이 난 인물이었다.
‘위그드라실의 3팀장 김도준.’
별명은 마수학살자.
마수에게 가족을 모두 잃은 김도준은 그야말로 마수사냥에 미친 남자였다.
오죽하면 밥만 먹고 마수만 사냥한다는 말이 나돌 정도였으니까.
여명의 수호자에 적합할 법한 인재상이지만, 상급 불의 정령을 다루는 뛰어난 소환사였기에 위그드라실의 핵심 인재가 된 인물이었다.
아카데미에 초빙강사로 올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인재를 아끼는 위그드라실에서 김도준을 조금이라도 쉬게 하기 위한 구실로 이러한 초빙 강사 자리를 권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만큼 김도준의 마수의 기척을 읽는 능력은 비상할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
제아무리 모르도라 해도 김도준과 장시간 가까이 있게 된다면 어쩌면 존재를 들킬 가능성도 존재했다.
그러니, 한세연은 김도준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놓아야 했다.
이런 내 말에 한세연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위그드라실만 피하면 된다는 거구나.”
“아니, 여명의 수호자도 가지 마.”
여명의 수호자의 1팀장인 서하린 또한 마수를 사냥하는 데는 도가 튼 인간이다.
김도준만큼 특이케이스는 아니었으나,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듣고 있는 거냐?”
“응. 들었어.”
나는 혀를 찼다.
“듣고 있다는 애가 대답이 뭐 이리 늦어?”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은 처음이라서.”
날 묘하게 쳐다보는 한세연. 괜한 멋쩍음에 시선을 피하곤 말했다.
“아무튼 가지 말라면 가지 마.”
그렇게 등을 돌려 광장으로 돌아오자 정해준이 소리쳤다.
“다들 자신이 진로상담을 받고 싶은 곳이 적힌 팻말로 이동해라.”
생도들이 각자 생각해둔 단체로 걸음을 옮기자, 나 또한 여명의 수호자쪽으로 이동했다. 그런 내 옆으로 은가예가 따라붙었다.
“별의 성좌 가는 거 아니었냐?”
“미쳤어? 내가 거길 왜 가?”
은가예가 끔찍한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질색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멜리아가 어지간히도 부담스러웠나 보다.
피식 웃으며 여명의 수호자 쪽으로 가자니, 모인 생도의 수가 100명에 육박했다. 다른 쪽이 60~70명인데 비하면, 상당히 많은 수였다.
은가예가 혀를 내둘렀다.
“이야, 여명의 수호자 인기 장난 아니네.”
“이 나이에는 정의라 하면 좋아 죽잖아.”
“너는 이 나이 아닌 것처럼 이야기한다?”
“맞지, 그럼 아니겠냐.”
알맹이야 어쨌든, 겉은 이 나이가 맞지.
아무튼, 생도가 다 모이자 우리는 인솔자를 따라 여명의 수호자의 시험장인 이터니티의 강당, ‘영웅관’으로 이동했다.
영웅관의 중심에서는 한 명의 여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워요. 이번 아카데미의 진로 상담사로 오게 된 여명의 수호자 1팀장 서하린이라고 합니다!”
짝짝짝!
스스로 박수를 치며 고개를 숙여 보인 검은 장발의 미녀, 서하린이 방긋 웃어 보였다. 그에 대한 생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우와! 서하린님이래.”
“백은의 기사!”
“초인랭킹 357위······”
그도 그럴 게 서하린은 초인랭킹 1000위 안에 드는 고수로 생도들 사이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 명성이 자자했다.
불의에 당당히 맞서는 그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초인이라 불리기에 부족할 게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녀의 별호가 ‘기사’인 것이다.
초인랭킹 357위. 여명의 수호자 1팀장. 백은의 기사 서하린.
“자! 소개는 이쯤하고, 그럼 시험의 주제를 설명해드릴게요.”
드넓은 강당의 중심에 표시된 붉은 원을 가리키며 서하린이 말했다.
“저곳에는 현재 정신계 방벽이 준비되어 있답니다. 정신력이 약하면 빠져나올 수 없게끔 설계되어 있죠.
”······.“
”정신력으로 때우든, 혹은 다른 방법을 쓰든 상관없어요. 저 원 안에서 빠져나오면 그걸로 시험은 끝! 순번에 맞춰 저와 진로상담을 갖으시면 된답니다.”
100명이라는 인원을 상담하게 될지도 모름에도 서하린의 표정은 맑기만 했다.
“자 그러면 다들 안으로 들어가 주세요~”
서하린의 말에 마지막 생도까지 붉은 원 안으로 들어가자, 원에서 붉은 빛이 기둥처럼 솟구쳐 올랐다.
“헛!”
“뭐, 뭐야?!”
놀란 생도들의 반응에 아랑곳없이, 서하린이 말을 이었다.
“제한 시간은 지금부터 2시간! 그러면 저는 상담실에서 기다릴 테니, 다들 천천히 들어오세요.”
말을 마친 서하린이 생도들을 인솔 해온 부관과 함께 강당 너머로 사라졌다.
***
“몇 명이나 통과할 것 같습니까?”
“음, 글쎄요? 일단 한 명은 무조건 합격이에요. 금방 빠져나올 거거든요.”
“금방이요?”
영웅관의 뒤편, 임시 진로상담실.
서하린의 말에 여명의 수호자 1팀의 팀원인 이수학이 해괴한 표정을 지었다.
서하린은 단순히 정신력으로 때워도 상관이 없다고 말했으나, 저 방벽은 단순히 정신력만으로 통과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도 그럴 게 저건 무려 6서클에 해당하는 결계였으니까. 이수학 그와 1팀의 마법사가 힘을 합쳐 설치를 한 것이다.
초인이라면 머리를 써야지, 무식하게 몸으로 때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미련한 짓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한 것이 이번 시험의 목적이었다.
그러니, 방벽을 빠져나오기 위해선 ‘머리’를 써야만 했다.
방벽의 환상이 보여주는 마수와 대적하여 그 마수의 움직임을 읽어내고, 어떻게 하면 ‘일격’에 죽일 수 있는지, ‘최선의 수’를 알아 내야지만 빠져나올 수 있다.
그 단계는 무려 38단계였다.
주어진 상황에 따라 마수를 일격에 죽일 수 있는 38번의 ‘최선의 수’를 알아내야만 하는 것이다.
그 38개의 답을 모두 찾아내려면 제아무리 타고난 천재라 해도 최소 1시간은 필요하다는 게 이수학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금방이라니?
이런 이수학의 의문을 읽은 서하린이 피식 웃어 보였다.
“작년에 이 시험을 가장 빨리 통과한 생도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시나요?”
“영국의 유스칼 아르세이였죠.”
“그 생도가 걸린 시간이 1시간이었어요.”
“예, 저도 기억합니다. 정말 대단한 생도였죠.”
“아마, 3학년 생도 중에서도 수 싸움으로 유스칼을 이길 생도는 몇 없을 거예요”
“맞습니다.”
이수학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 생도를 수 싸움으로 이긴 생도가 이번 1학년에 있거든요.”
“······예?”
이수학이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서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저기 보이네요.”
강당의 정경이 보이는 CCTV화면 속, 한 생도가 결계의 중심부를 벗어나고 있었다.
이수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벌써 3단계나······”
“잘 봐두세요, 정말 대단한 생도거든요.”
서하린이 확신을 담아 빙긋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