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5
§ 4화
나는 이터니티 검성전기의 끝을 본 유일한 인간이다.
당연히 중요 정보들은 모두 꿰차고 있다.
어떤 보구를 얻으려면 어디를 가서 뭐를 해야 하고 마수에 따른 공략법은 무엇인지, 심지어 주연 캐릭터들의 과거사까지 전부.
하지만 필기시험에 나온 문제들은 성향 자체가 달랐다.
최단 사정거리 마력 농도 어쩌구저쩌구······ 알아먹을 수 없는 말만 잔뜩 늘어져 있다.
그리고 형편 좋게 떠오른 메시지.
[필기시험을 통과하세요!] [최저 통과비용 : 500SP]“······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네.
처음 초심자의 혜택이라면서 주어진 포인트가 1000SP였다. 그리고 보구 감응에 필요한 포인트가 500SP다.
만약 내가 그람이 아니라 대충 적당한 보구를 골라서 운 좋게 실기를 통과했다면 남은 500SP로 필기를 통과시켜주겠다는 뭐,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조건이다.
초심자의 혜택은 헛소리고, 그냥 필수지출비용을 챙겨준 거였다.
아주 고마워서 때려죽이고 싶네.
내가 상태창의 세심한 배려에 이를 갈고 있을 때였다.
“362번 곽진용 탈락.”
─안 돼애애!
후보생 하나가 조교들에게 끌려 나갔다.
‘······뭐야, 저거?’
설마 컨닝한 건가?
나는 어이가 없어서 비워진 자리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수능에서 베끼다가 실격처리되는 놈들이 있다고 들은 적은 있지만 그걸 실제로 눈앞에서 목격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341번, 327번, 378번 실격!”
······이거 필기 맞아?
뭐, 오래오래 살아남기, 그런 건가?
조금씩 비워져 가는 좌석들을 보자니 뇌정지가 왔다.
컨닝도 컨닝인데 내가 아는 ‘컨닝’하고는 단어만 같지 장르부터가 달랐다.
모르긴 몰라도 마법에 주술에 별의별 해괴한 방법이 다 동원되는 듯했다.
이건 뭐, 제대로 공부한 사람만 호구 되는 구조다.
그보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는 게 있어 나는 옆을 흘낏 바라보았다.
눈알 하나가 떠서 검은자위를 뒤룩뒤룩 굴리며 시험지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설마 저거 나만 보이는 건가?
그때 교탁에 선 감독관이 교실을 훑어보더니 태평하게 지껄였다.
“컨닝하는 놈들은 대충 다 걸러진 것 같군. 뭐, 안 걸렸으면 그것도 능력이지.”
······아, 그런 겁니까?
컨닝도 능력이라는 감독관의 소신 발언에도 눈알은 시험지들을 훔쳐보기 바빴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커다란 마녀모를 푹 눌러 쓴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저 여자애가 하는 거 같은데······’
내 시선을 느낀 여자애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검지를 입에다 가져다 댔다.
거기에 내가 뭐라고 답을 하기도 전에 감독관이 말을 이었다.
“다들 풀던 거 멈추고 주목해라. 이제부터 이론평가 시간이다.”
필기시험에 웬 이론평가?
내 의문을 후보생들도 똑같이 느꼈는지 다들 의아한 얼굴로 감독관을 바라보았다.
“이론도 적용을 시키지 못한다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지. 이론평가는 그걸 적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시간이다.”
뭐, 듣기 평가 비슷한 건가 보다.
감독관이 칠판을 탕탕 두드리며 말했다.
“다들 나와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적어라. 그걸로 이론을 평가하지.”
후보생 한 명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 그거면 됩니까?”
“가장 먼저 이름을 적는 후보생은 필기를 통과시켜주마.”
“······!”
감독관의 폭탄 발언에 시험실에 일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리고 후보생들은 이게 단순히 이름을 적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뭔지는 몰라도 필시 어려운 일이리라.
그때 후보생 하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름을 적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대로 다시 시험지를 풀면 된다. 단, 내 판단 하에 뒤떨어진다 생각되는 녀석은 즉시 퇴실이다. 더 질문 있나?”
좌중을 둘러본 감독관이 피식 웃었다.
질문을 하기는 커녕 다들 튀어 나가려고 자세를 잡기 바빴다.
“없으면 바로 시작하지.”
감독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후보생들이 앉은 자리에서 달려 나갔다.
그리고.
“허억!”
“으악!”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뭐, 뭐야. 이거?”
“갑자기 오한이······”
하얗게 질린 후보생들이 당황하자 감독관이 히죽였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이론평가’라고.”
이론평가.
나는 그 말과 물러난 후보생들을 보고선 바로 알아차렸다.
‘진법이네.’
진법은 움직이는 것들을 제재하는 마력적 공간이다.
지금 후보생들이 물러난 것과 같이.
나는 일어나지 않은 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가 암만 빨리 뛰어봐야 마력을 쓰는 놈들보다 빠를 수는 없으니까.
괜히 힘 빼느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구경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웠다. 그런데······
‘이러면 또 이야기가 다르지.’
상황이 이러면 나도 방법이 있다.
그 전에 일단 확인부터.
“정말 무슨 방법을 쓰든 상관없는 겁니까?”
“그래, 칠판에 이름을 적기만 하면 된다.”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입니다?”
내가 재차 확인하듯 되묻자 감독관이 피식 웃었다.
“딴소리를 하면 내 재량하에 네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들어주마.”
드르륵─
그 말에 나는 의자를 빼며 일어났다.
***
진법을 파훼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마력이 짙게 느껴지는 축들을 찾아 윷놀이 말 움직이듯 순서대로 이동하기.
둘째. 자력으로 무식하게 뚫고 가기.
어느 쪽이건 마력이 없는 나로서는 불가능한 방법이다.
나는 마력을 느낄 수도 없고, 진법을 뚫고 갈 능력은 더더욱 안 되었으니까.
하지만 되려 그런 마력이 없는 나이기에 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뭐야? 쟤 왜 나가?”
“설마 앞문으로 돌아 들어가려는 건가?”
“감독관님! 저래도 되는 겁니까?”
내 행동을 본 후보생들이 난리를 피웠다.
무슨 수를 쓰든 상관없다고 했지 ‘시험실 밖’으로 나가도 좋다고는 안 했으니까.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불만이면 자기들도 나가야지.
나갈 수 있다면 말이지만.
“으아아악!”
“끄헉!”
뒷문을 통해 나가려던 후보생들은 문턱도 넘지 못하고 튕겨 나갔다.
시험실 문에는 ‘마력감지결계’가 펼쳐져 있으니까.
시험이 끝나기 전까지는 조교가 동행하지 않는 이상 시험실 밖으로 절대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결계였다.
그리고 이 결계는 대상의 ‘마력’에 반응한다. 오직 ‘마력’이 없는 나만이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다는 말이다.
“뭐야, 저거 어떻게 나간 거야?”
“교직원카드 훔친 거 아니야?”
“이건 반칙이에요!”
뒷문에 몰려든 후보생들이 우리에 갇힌 원숭이처럼 아우성쳐댔다.
그들은 이해솔이 무언가 꼼수를 부렸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몇몇 후보생들과 감독관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해솔은 아무런 꼼수도 부리지 않았으며, 그저 순수하게 결계를 뚫고 나간 것이었다.
“······허.”
은가예가 놀라서 입을 벌리고 한세연이 눈을 반짝였다.
마력감지결계를 뚫는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마력감지를 피하자면 마력을 걸리지 않게끔 감쪽같이 숨겨야 하는데 그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제아무리 신경써서 갈무리해도 미약하게나마 흘러나오는 게 마력이라는 놈이었다.
그걸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완벽하게 감춘다는 것은 이해솔의 마력을 제어능력이 이미 생도레벨을 넘어섰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이해솔은 별달리 어려워하는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힘들어서 헥헥거리진 않더라도 삐질 땀 정도는 흘려줘야 정상인데 말이다.
“······저 새끼, 저거 마력 없는 거 아니야?”
후보생 한명이 기가 차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말을 한 후보생조차 너무 놀라서 해본 소리에 불과했다. 그랬기에 그 정답은 물 흘러가듯 지나가 버렸다.
한편 후보생들의 경악 어린 눈초리에 나는 아차 싶었다. 마력감지 결계를 너무 쉽게 통과해버렸던 것이다.
이거, 힘들어하는 척이라도 좀 할 걸 그랬나?
내심 후회가 되었지만 이미 지나간 일. 앞으로는 조심하자 다짐하며 나는 앞문을 열고 들어갔다. 역시나 생도들처럼 놀란 감독관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나를 맞이했다.
“그 나이에 기프트라도 터득한 건가? 대단하군.”
이걸 맞다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한숨을 내쉰 내가 말 없이 칠판에 이름을 적자 감독관이 그럼 그렇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력제어 기프트였나.”
마력제어는 얼어 죽을.
마력이 있어야 제어도 하지. 괜스레 억울해졌지만 굳이 정정해주지는 않았다.
마력이 없다고 커밍아웃 할 것도 아니고.
그랬다간 합격이고 뭐고 바로 짐 싸서 쫓겨나도 할 말이 없다.
나는 한숨을 푹 쉬면서 물었다.
“하아, 이제 끝난 겁니까?”
“그래, 합격이다.”
감독관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상태창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 완료 : 이터니티에 입학하세요!] [완료보상으로 500SP, 이상의 투영자가 수여됩니다.] [#Ep2. 아카데미 시나리오에 진입했습니다.]***
······필기시험이 끝나 텅 비어버린 시험실.
감독관 정해준은 후보생들이 제출한 시험지들을 넘겨보다 눈썹을 꿈틀거렸다.
“낙서라.”
뭉게구름을 잔뜩 그려놓은 시험지 하나가 떡하니 끼어 있었다.
그리고 정해준은 시험지에 적힌 이름을 읽어보곤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후, 여러가지로 대단한 놈이군.”
올해 입학시험에는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인재들이 몰렸다.
개중에는 아직 정식 초인이 되지 못했음에도 초인만큼의 명성을 날리는 녀석도 있었고, 협회장의 추천을 받은 신성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 시험지의 주인만큼 정해준을 놀라게 한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게 마력을 그토록 정교하게 제어할 줄 아는 이라면 이론 평가에 쓰이는 진법쯤은 가볍게 돌파할 수 있다. 길을 찾을 필요도 없이 진법의 마력을 흘려버리면 그만이니까. 그건 녀석에게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진법쯤은 너무 시시했는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그리고 택한 게 진법보다 훨씬 어려운 마력감지 결계를 돌파하는 것이었다.
그건 정해준의 예상에조차 없던 일이었다.
“하, 이거 웃긴 놈이군.”
시험지를 훑어본 정해준이 헛웃음을 흘렸다.
아예 문제를 건드린 흔적조차 없던 것이다.
“백지로 필기를 통과하는 녀석이라니.”
백지 시험지를 본 필기 과목 교수들이 보일 반응을 떠올리자 정해준은 절로 유쾌해졌다.
그렇게, 칠판에 적힌 유일한 이름, ‘이해솔’이란 석 자가 지워졌다.
***
“······아으으.”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바로 침대에 쓰러졌다.
온몸에 결리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람과의 동화를 하고 난 뒤의 여파가 이제야 나타나는 것이다.
운동이라곤 숨쉬기밖에 안 해본 몸으로 미친 듯이 움직여댔으니 멀쩡한 게 되려 이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태창을 열어본 순간.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
[이상의 투영자]─SP를 소모해 사물 또는 능력을 투영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어 이해솔] [잔여 포인트 : 6500SP]내 예상대로 이상의 투영자는 현실조작계열 기프트였다. 심지어 능력의 투영에는 제약조차 걸려있지 않았다.
“이거 완전 사긴데?”
이터니티는 능력이 곧 실력이라는 개념이 자리잡힌 세계다.
간단한 예로 은가예는 중력 기프트 하나만으로 후보생들을 공기인형처럼 가지고 놀았다. 이상의 투영자는 그러한 능력들을 아무런 제약 없이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그냥 상상하면 되나?”
나는 대충 떠오르는 대로 아무거나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보았다.
▶플레이어 이해솔은 모든 보구를 다룰 수 있다.
상태창에 내 상상이 그대로 문구가 되어 떠올랐다.
“이런 식이구나.”
살짝 섬뜩했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애초에 이 세계부터가 게임이니까.
아무튼, 보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은 내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었다.
마력이 없으면 템빨로라도 밀어붙여야지.
그런데.
[모든 보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 [비용 : 1000000SP]“음.”
눈이 침침한가.
저게 0이 몇 개지?
일단 패스.
나는 대충 몇 개 뒤적여보고 깨달았다.
이건 양심이 없을수록 비싸다.
‘기프트 쪽은 아예 손도 못 대겠네.’
이터니티의 능력은 크게 ‘재능’과 ‘기프트’로 나뉜다.
재능은 말 그대로 특정 분야에 대한 소질을 나타낸다. 반면, 기프트는 현실에 간섭하는 이능력이다.
은가예의 중력이나 내 이상의 투영자가 이 기프트에 속한다.
사기적인 만큼 각성한 이도 드물고, 막상 각성해도 제어하기가 어려운 능력.
나는 내심 기프트를 투영하고 싶었으나 현재 내 포인트가지고 기프트는 어림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당장 써먹을 수 있을 만한 특성을 떠올렸다.
▶플레이어 이해솔은 비도술의 천재다.
······.
[재능 : 비도술의 귀재] [비용 : 3000SP] [보유 포인트가 충분하여, 투영이 가능합니다. 투영하시겠습니까?]‘예스.’
[3000SP를 소모합니다.] [재능 ‘비도술의 귀재’를 투영합니다.]갱신된 정보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이해솔
[체력 : 1.5] [근력 : 0.8] [민첩 : 2.8] [지구력 : 1] [손재주 : 3]보유 기프트 : 이상의 투영자
보유 재능 : 비도술의 귀재 Lv1
[잔여 포인트 : 3500SP]······.
비도술(飛刀術).
얼핏 보기에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터니티에서 이 비도만큼이나 써먹기 쉬우면서 효율을 뽑아내기 쉬운 능력도 드물다.
쉽게 말하면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나뭇잎 따위를 던져도 무기가 된다는 소리다.
이는 숙련도가 오르면 오를수록 치명적이다.
그래 봤자 총이나 마법을 쓰는 편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 비주류 취급을 받지만, 그람의 기프트 [분열]과의 상성을 따져보면 내게는 비도술이 더 어울렸다.
마력을 못 쓰는 이상 위력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시발.”
생각할수록 억울하네.
마력도 없다는 게 말이 돼?
그럼 이능을 투영하면 뭐, 소모값 없이 난사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런 내 의문에 답하듯 상태창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초로 능력을 투영하였습니다. 1000SP를 지급합니다.] [플레이어 시스템, ‘기력’이 구현됩니다.] [기력 활성화 비용은 3000SP입니다.] [보유 포인트가 충분하여 기력을 활성화할 수 있습니다. 활성화하시겠습니까?]“기력?”
나는 ‘기력’라는 항목을 차분히 읽어보았다. 그러곤 입을 벌렸다.
······마력인지 미역인지 그딴 거 필요 없을 것 같다.
“당연히 이래야지.”
나는 쾌재를 부르며 바로 기력을 활성화시켰다. 순간, 빛이 번쩍이더니 마치 게임처럼 시야의 하단으로 노란색 게이지 바가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