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55
§ 54화
교실 내 모두의 시선이 학급요원으로 지목을 받은 내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할게.”
이런 내 결정이 의외였는지, 생도들이 웅성였다.
“와, 노예를 자진해서 해버리네.”
“저게 수석이냐?”
한세연 또한 눈을 말똥거렸다. 나는 잘못들은 게 아니라는 듯 재차 말했다.
“수업 끝나면 기다려, 잠깐 나갔다 와야되니까.”
불사조 밥 좀 먹여주고 와야되거든.
“응. 기다릴게.”
한세연이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끝으로 내가 다시금 책상에 드러눕자 은가예가 은근하게 물어왔다.
“야, 너 무슨 바람이냐. 알아서 요원을 다하게?”
“왜, 하면 안 되냐?”
“아니, 안되는 건 아닌데···”
뺨을 긁적인 은가예가 미간을 좁히며 나를 수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여태 안 했잖아?”
“내 맘이지.”
대충 대답을 한 나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날 은가예가 별종처럼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게, 학기 내에 이런 잡다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라, 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고, 그때마다 한세연이 모두 홀로 도맡아 해 온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번에도 그렇게 될 것이었다. 한세연 또한 딱히 기대를 가지고 나를 지목을 한 게 아니었고. 그러니 내가 거절을 한다 해서 신경 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목받은 걸 오히려 다행이라 여기고 있었다.
‘하마터면 잊을 뻔했네.’
이번 이터니티의 축제에서 한세연에게 누군가 접근을 하게 된다. 그에 관해서는 나도 자세히는 모른다. 그도 그럴 게 한세연은 주연 캐릭터가 아니었고, 그 접근 또한 게임에서는 지나가듯이 언급되고 말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지목을 받는 순간 떠오른 것이다.
게임에서야 딱히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었지만, 현재에 있어서 한세연은 천우진만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전력이 되었기에 그 접근이 무엇이 되었건 관여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자면 ‘학급 요원’이라는 명목으로 한세연의 곁에 붙어있는 것이 가장 용이했다.
결국 한세연이 지목을 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자발적으로 맡았어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학급 요원이 방과 후에 남아야 한다는 것뿐이지, 그리 어려운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그마저 한세연이 다 알아서 할 가능성이 농후했다.)
“학급 요원은 정해졌으니 이제 무대공연쪽 인원을 나눠야 해. 다들 참여하고 싶은 쪽이 있으면 손을 들어줄래?”
한세연이 칠판에 ‘검무’ ‘환상’ ‘합동’이라는 세 단어를 적었다.
아카데미의 생도들이 지닌 능력은 다양하지만, 크게 마법, 검술, 총으로 나뉘기에 이를 주제로 각 반마다 무대를 꾸며야 하는 것이다.
“나 총검술 할래!”
“무슨 소리야, 김하윤, 너 총기 못 다루잖아.”
“와, 자존심 상하네. 너보단 낫거든?”
학급 요원을 뽑자 할 때는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던 생도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게 이터니티의 축제를 구경하러 오는 이들 중에는 각 단체의 유력인사들 또한 다수 있었기에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던 것이다.
거기에 중간고사라는 지옥에서 해방되었다는 풀어진 분위기가 생도들의 참여를 활발하게 만들었다.
“···합동공연의 팀장은 제가 맡겠어요!”
길드 업무로 바쁘다 할 때는 언제고, 눈을 별처럼 빛내며 손을 번쩍번쩍 들어 보이는 아멜리아.(일전부터 느끼는 건데 코디나 공연기획 쪽에 진심이다.)
관심 없다는 듯 따분하게 게임기를 두드리던 은가예를 생도들이 잡아 일으킨다.
“···뭐, 뭐야?”
“가예야, 우리랑 검무하자.”
“그런 건 천우진 시키면 되잖아?”
“안 돼. 쟤는 너무 뻣뻣해서 검무같은 거 시켰다간 망해. 너가 딱이라니까? 응? 내 말 한 번만 믿어봐, 안무는 우리가 짜줄 테니까···.”
고양이과처럼 날렵한 동작을 보이는 은가예의 몸짓은 액션배우처럼 화려했기에 검무를 하기에 딱인 인재상이었다. 반면 천우진은 너무 깔끔해서 애가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이건 검술이 아닌, 춤이었으니까.
“···아, 알았어. 할 테니까 이것 좀 놔봐.”
겉보기에는 틱틱거리는 것 같지만 의외로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인 은가예는 생도들의 강요에 못 이겨 검무에 이름이 적혔다.
한편 니콜라이는 총검술이란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직접 이름을 적으러 칠판에 나갈 정도로 적극적이었다.
총도 안 쓰면서 웬 총검술인가 싶긴 했지만, 묘하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뭐를 할지 몰라 고민을 하던 천우진도 생도들의 권유에 니콜라이와 함께 총검술에 이름이 적혔고.
‘학급 요원도 은근 꿀이네.’
꼭 참여를 안 해도 요원 일 한다고 뺄 수가 있으니까.
책상에 누워 시끌벅적한 교실을 구경하던 나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제나 생도들 사이에 녹아들지 않을 것만 같던 한세연이, 분위기에 전염됐는지 조금이지만 영혼의 색이 진해진 듯만 했다.
***
축제가 시작되기 전 일주일은 오후 수업이 없고 대신 축제의 준비기간을 가진다. 학급 요원의 일은 이때부터가 시작이었다.
“무대 쪽 예산이 너무 부족해요. 더 편성해주실 수 있을까요?”
“총검술 공연 시간을 5분만 더 늘려줄 수는 없나? 마무리를 완벽히 하고 싶다.”
“나 이거 검이 손에 안 맞아. 가검 말고, 내 검으로 하면······”
예산부터 소품 조달, 공연 시간 조정 등 여러 잡다한 업무요청이 임시로 설치된 ‘요원실 책상’으로 쇄도한다. 나는 이를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는 한세연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눈으로는 내가 정리한 소품 목록을 체크하고 손으로는 공연 시간을 조정한다. 입은 생도들의 요청사항을 들어주고 있다.
눈과 손과 입이 따로 논다. 저게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그 정신없이 바빠 보이는 모습을 외면할 수 없어서 나는 열심히 생도들의 민원을 해결해주었다.
이제와서 팀을 바꾸고 싶다는 소리는 어지간하면 무시했고, 민간인이 구경하는 검무에 소품용 가검 대신, 진검을 들고 나가겠다는 은가예의 미친 소리도 기각 처리했다. 다른 반과 함께 시간을 쪼개 쓰는 무대의 시간을 늘려달라는 니콜라이의 뻔뻔한 소리도 당연히 기각.
그렇게 하나하나 민원을 처리하다 보니 오후의 수업 시간이 모두 끝이 났다.
“고마워, 해솔이가 도와주니까 일이 한결 수월하네.”
그런 괴물 같은 일 처리를 보여주면서 수월하다고 해도 하나도 공감이 안 간다만.
그나저나······
프린트물을 정리하는 한세연을 보며 내가 눈을 깜빡였다.
‘짙어졌네.’
좀 전에 영혼의 색이 진해졌다 느낀 건 착각이 아니었다. 한세연의 영혼은 옅지만 뿌연 백색을 내뿜고 있었다.
설마 일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건 아닐 테고, 생도들과 어울리는 즐거움을 조금쯤은 알아가는 듯했다.
‘좋은 건가?’
피식 웃고 있자니 교실 문이 열리고 하진우가 들어왔다.
“다들 준비는 잘 되어가고 있나 보군.”
난장판이 된 교실을 보며 픽 웃은 하진우가 축제의 변경 사항을 전했다.
“합동 공연은 원래 자율 참가였다만, 학급 전원이 참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참고로 학급요원은 추가 가산점이 부여되니 알아두도록.”
“엑! 뭐야, 그런 소리 없었잖아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하는 건데.”
학급 요원은 쳐다도 안 보던 생도들은 가산점이란 소리에 하진우에게 못 들었다며 항의를 했으나 자발적으로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며 전부 기각당했다.
부러워하면서 바꿔 달라고 은가예가 눈으로 싸인을 보내왔으나, 백날 쳐다봐라. 그런다고 누가 바꿔주나.
학급 요원, 은근 꿀이 아니라, 이건 그냥 꿀보직이다.
***
아무도 없는 텅 빈 교실에 나와 한세연이 책상을 맞대고 앉아 있었다.
처음에는 내 옆에 붙어 앉으려는 걸 내 강력한 주장으로 책상을 맞대게끔 바꾼 것이다.
도서관에서 과외를 받는 거야 내가 요청한 거라 괜찮았는데, 이런 식으로 단둘이 있으려니 어색해서 옆에는 도저히 못 앉겠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애가 뭐든지 다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은근 맹한 구석도 있다.
“음, 이렇게 하는 건가?”
학 접기 책을 펼쳐놓고, 색종이를 수십 번 접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는 한세연을 보며 내가 혀를 찼다.
멀쩡한 색종이로 휴지를 만들고 있네.
“이리 줘봐.”
보다 못한 내가 한세연의 손에서 색종이를 뺏어 들었다.
책을 보면서 몇 번 반복해 접으니, 순식간에 종이학이 머리를 내민다.
한세연이 감탄했다.
“와, 잘 접네?”
“어, 어릴 때 자주 접어봤거든.”
우리 동네에서만 그런진 모르겠는데, 학 접기가 한때 유행이었다.
그때의 느낌을 새록새록 살려서 접다 보니, 순식간에 5마리가 나왔다.
휘익─!
완성된 학종이를 던지고, 이기어검으로 조종하니 하늘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붉은 학. 이거 은근 재밌네.
내가 학종이를 날리는 동안 한세연은 여전히 휴지 조각을 양산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건 뭐 하는 거냐?”
종이를 접는 틈틈이 무언가를 읽는 한세연의 모습에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대본 외우고 있어.”
“대본?”
귀밑머리를 넘기며 한세연이 대답했다.
“응, 나 이번에 공연하잖아.”
“아. 그거 계속하는 거냐.”
하는 일도 많은데 구태여 공연까지 할 정도로 한세연은 학급 활동에 열성적이었다. 문제는 얘가 연기를 진짜 더럽게 못 한다는 거다.
웃는 건 잘하는데, 그 외의 표현에서는 감정을 담을 줄을 모른다.
그래서 구태여 한다는 걸 애들이 말려서 그만둔 줄 알았는데, 계속하는 건가.
고개를 내밀고 나를 빤히 쳐다보던 한세연이 입을 열었다.
“지금 나 못한다고 생각했지?”
“어.”
가뜩이나 공감 능력이 부족한 애가 연기라니, 백만 년은 이르지.
한세연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무구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다들 못한다고 그러는 걸까. 나는 잘하는 거 같은데.”
“그거야, 못하니까 못한다 그러는 거 아닐까?”
이런 데서까지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못하는 건 빠르게 그만두게 시켜야지.
“···흐음.”
그때 예고 없이 다가온 한세연이 얼굴을 훅 들이밀었다. 흠칫 놀란 내가 고개를 뒤로 뺐다.
“······뭐 하는 거냐, 지금?”
“귀신 연기.”
“······.”
“잘 통하는데?”
왜 못한다는 거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세연.
다시금 얼굴을 가까이 들이미는 한세연의 이마를 밀어내면서 나는 곤란함에 미간을 문질렀다.
‘이걸 지금 귀신같아서 놀랐다고 생각하는 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나, 잠깐만 나갔다 온다. 학 접는 건 내가 할 테니까 내버려 둬.”
“응, 그런데 나 정말 못했어?”
“어, 엄청.”
강조하듯 말한 나는 그대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생각해보니, 방과 후에 불사조의 밥을 챙겨준다는 걸 깜빡 잊고 있던 것이다.
[불사조가 적마석을 원합니다.] [불사조가 적마석을 원합니다.] [불사조가 적마석을 원합니다.] [불사조가 적마석을 원합니다.] [불사조가 적마석을 원합니다.] [불사조가 적마석을 원합니다.] [끼악.]“알았으니까 닥쳐.”
이것까지 난리네.
4시 정각이 되기 무섭게 알람시계처럼 울려대는 불사조의 알림메세지를 차단한 나는 본관 후문으로 나와 골목에 들어갔다.
[끼악! 끼악!]“먹어라.”
적마석 한 알을 멀리 던져주자, 깡총깡총 뛰어가는 불사조.
▶불사조 Lv.3
[재생 횟수 : 1/5] [불사조의 포만감 : 0.02%]일전의 동자귀를 사냥하면서 얻은 포만감을 어찌할까 고민하던 나는 전날에 포만감을 전부 레벨로 돌려버렸다.
어차피 100%를 채우는 건 아득했고, 차라리 레벨업을 시키는 게 현실적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적마석도 다 떨어졌네.”
서하린이 가져다준다고 가져다주긴 했는데, 저 먹보 놈의 식성을 만족시키기엔 부족했다.
한 달도 되지 않아서 전부 동이 나버린 것이다.
“가장 확실한 건 제대로 된 마인 한 명을 사냥하는 거긴 한데.”
한 번 찾아볼까?
턱을 쓰다듬으면서 불사조가 적마석을 쪼아먹는 걸 구경하고 있을 때였다.
“와, 귀여운 새네.”
“!”
느닷없이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내가 뻣뻣해진 고개를 돌리니 한세연이 불사조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