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1
§ 60화
한세연을 등에 업은 나는 가기 전, 김도준의 옆에 잠시 멈춰 섰다.
“내가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지?”
안도하던 김도준의 표정이 흠칫 굳어졌다.
“착각하지 마, 너는 아직 쓸데가 있어서 살려둔 거니까.”
솔직히, 노아가 김도준을 죽여준다고 했을 때, 충동적으로 그래달라 할 뻔한 것을 나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죽이더라도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으니까.
설령 그런 게 아니더라도, 김도준은 아직 죽으면 안되었다.
그 전에 해줘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쓸데라면······”
“세계수의 가지.”
“······!”
김도준의 눈이 부릅떠졌다.
“······어떻게 네가 세계수의 가지를 알고 있지?”
“알 필요 없어. 넌 그냥 가져오기만 하면 돼.”
세계수의 가지는 앞으로 있을 마인들의 계획을 저지하는데 유용하게 쓰일 도구다.
그리고 위그드라실에서는 다량의 세계수의 가지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건 위그드라실에서도 극비에 속하는 비밀이다.
‘세계수의 가지’는 이터니티의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템으로 이 세계에서는 그 존재 자체가 무척이나 귀중했으니까.
그리고 김도준은 그 세계수의 가지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물론 김도준이 이를 쉽게 말할 리 없었다.
“미안하지만, 세계수의 가지에 대해 나는 아는 바가 없다.”
그는 자신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였다. 예상대로의 반응에 내가 픽 웃었다. 그리곤 툭 던지듯 말했다.
“조금 전 싸움에서 이그니스가 소멸했나 보네.”
“······.”
내 말에 김도준의 눈이 흔들렸다.
불의 상급 정령 이그니스가 한세연과의 싸움에서 소멸당했다는 것은 오직 김도준, 그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역소환당했는지, 소멸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계약의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기가 어려운 사실이었던 것이다.
“아니, 이그니스만이 아니라, 모든 계약이 다 끊어진 건가?”
“!”
김도준의 표정이 혼란으로 물들었다.
상대방의 계약 여부를 파악하는 것 또한 이터니티의 상식에서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게는 또렷이 보여왔다.
김도준의 영혼에 이어진 빛바랜 실들이.
십여 개에 달하는 빛바랜 실들은 강제로 뜯겨나간 듯, 끊어진 채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가 정령의 소멸이라는 것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 눈에는 소환사와 소환수의 영혼 간에 이어져 있는 ‘맹약의 선’이 보였으니까.
그리고 보통의 계약에서 보이는 맹약의 선은 저렇게 빛이 바랜 색깔이 아니었다.
소환수의 특성에 따라 각각의 색깔과 성향을 띄게 된다.
한세연과 모르도간에 이어진 맹약의 선은 새까만 검은색을.
불의 정령과 계약했다면 타오르는 불길과도 같은 선을.
하지만, 김도준에게서 끊어진 맹약의 선에서는 어떠한 특성도 엿볼 수가 없었다.
빛이 바랜 회색.
저 잿빛의 선은 단순히 계약을 끊었다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다.
소환수의 소멸을 의미하는 색이었다.
“정령이 없는 정령사만큼 죽이기 쉬운 것도 없지.”
내 말이 협박임을 깨달은 김도준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가 그런다고 쉽게 말을 들을 것 같나?”
“들어야 할 거야. 안 그러면 죽으니까.”
김도준의 영혼은 완전한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소환수의 소멸로 인한 충격으로 영혼의 껍질이 깨져나가면서 영혼의 색이 바깥으로 전부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그리고.
“잿빛 영혼에는 기운이 아주 잘 듣는 것 같더라고.”
“······?”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김도준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가 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 말을 안 들으면 네가 죽는다는 소리야.”
“그게 무슨······!”
눈살을 찌푸리던 김도준의 얼굴이 순간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내게서 뻗어나간 기력이 김도준의 영혼을 파고든 것이다.
영혼을 파고든 기력은 살갗을 뚫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끄으으······”
이를 악문 김도준의 전신에서 푸른 핏줄이 징그럽게 돋아났다.
나는 그걸 무심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세계수의 가지, 한 달 내로 가져와.”
그리고, 파고든 기력을 파편으로 분리해 김도준의 영혼에 심어놓았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 터져 김도준의 영혼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폭탄을.
그리고, 뒤돌아 다시 걸어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뒤에서 김도준의 비명이 처참하게 울려 퍼졌다.
***
필드를 벗어나, 아카데미의 학생광장으로 이어지는 어두운 교정을 거닐 때였다.
“우음···”
내 등에 업힌 한세연이 몸을 뒤척였다. 내가 그에 대답했다.
“안 자는 거 다 안다.”
“···피, 들켰네.”
눈을 뜬 한세연이 입술을 삐죽였다.
“일어났으면 내려. 허리 아파.”
알다시피 내 체력 수치는 ‘4’였다.
필드에서 이곳까지 한세연을 업어오려니 살짝 힘이 들었다. 그리고 내리란 내 말에 한세연이 능청스레 대답했다.
“다리가 안 움직여. ···아얏!”
“잘만 움직이네.”
허벅지를 꼬집힌 한세연이 다리를 틀었다. 내가 코웃음을 쳤다.
“그런데 배가 너무 아파. 왜 이럴까?”
“······.”
한세연의 의문 어린 말에 떠오르는 게 있던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지를 상실한 그녀의 복부에 내가 사정없이 주먹을 꽂아 넣었으니까. 당연히 아플 수밖에. 주먹이 묵직했던 게 진짜 제대로 들어간 듯했다. 다행히 심하게 아픈 건 아닌 듯했지만··· 이건 말하면 안 되겠지. 그랬다간 몇날며칠 배 아프다고 엄살을 부려댈 게 뻔하게 그려졌으니까. 그나저나.
“아무것도 기억 안 나냐?”
“어떤 남자를 따라서 필드에 간 건 기억나는데 그 뒤로는 모르겠네. 왜 해솔이가 나를 업고 있는 거야?”
내 인상이 팍 찌푸려졌다.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라니까 왜 따라갔냐?”
“음, 괜찮을 것 같아서? 아얏!”
한세연이 이마를 부여잡았다.
이마를 쥐어박은 내가 혀를 찼다.
“마수 하나 제대로 못 다루는 주제에 괜찮긴 뭐가 괜찮아?”
내 짜증 어린 말에 한세연이 되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걱정해주는 거야?”
하아. 한숨을 푹 내쉰 내가 한세연을 짐짝 던지듯 내려놓았다.
광장 무대 후미의 객석이었다.
“읏, 너무해.”
“앉아서 구경이나 하던지.”
원래는 기숙사 방에 던져놓고 나올 생각이었지만 그래도 다 같이 계획한 합동공연인데 한세연도 학 날리는 건 봐야겠다는 생각에 데리고 왔다.
얘도 학을 접긴 접었으니까. 제대로 접은 게 얼마 없어서 대부분이 휴지 조각이 되긴 했지만.
“또 어디로 새지 마라. 그때는 진짜 버리고 갈 거니까.”
“응.”
뭐가 그리도 좋은지 계속해서 웃기만 하는 한세연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린 나는 혹시 몰라 파랑이를 소환해 내려놓았다.
아까와 같은 일이 다시 한번 발생하면 정말 골치가 아팠으니까.
***
······한편, 합동공연을 벌이고 있는 1반의 생도들은 갑자기 사라진 이해솔 탓에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원래는 검, 마법, 총기가 어우러진 생도들의 합동공연이 있고 난 후, 아멜리아, 일레인 등 학을 날리는 생도들이 무대 위로 올라오는 게 기존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합동공연이 끝난 지 한참 지난 시점임에도 학을 날리지를 못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일레인이 ‘곰’ ‘토끼’ ‘늑대’등, 식신을 활용해 막간의 ‘인형극’을 벌이고 있었다.
“이거 시간 너무 끄는 거 아닐까? 인형극만 벌써 20분째야. 차라리 그냥 날리자.”
“하윤이 말이 맞아. 다 못 날리더라도 지금이라도 날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지금 공연도 억지로 늘리고 있는데······”
“아까 오고 있다고 연락왔어요. 5분만 더 기다려보죠. 그러고도 안 오면 그때 시작하도록 해요.”
생도들의 동요에 아멜리아가 망설이며 대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객석에서도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는지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뭐야, 학 날리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아, 그거 보러 왔는데 안 하나 보네.
─그래? 난 인형극도 꽤 볼만한데.
아멜리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빨리 좀 와요.’
온다 한 지가 10분이 넘은 이해솔이 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이리 늦는 건지 알 수 없었으나 아멜리아는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이해솔이 약속을 어길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오지 못하면 오지 못한다고 연락을 해오리라. 그렇게 아멜리아가 주먹을 말아쥐었을 때다.
위이잉─
진동하는 스마트폰을 열어본 아멜리아가 밝아진 얼굴로 소리쳤다.
“다 왔어요, 광장 앞이래요.”
“그렇지만 이미 클라이막스 넘어간 지 한참 지났잖아?”
“맞아, 해가 졌어. 하늘 봐. 지금 학 날려도 어두워서 아무도 못 봐.”
생도들의 말에 아멜리아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에요.”
“뭐가 딱 좋아? 해가 졌다니까?”
은가예의 의아한 표정에 아멜리아가 걱정말라는 듯 웃었다.
“마법 연등 키면 되잖아요. 어두워서 불 비추면 분위기가 오히려 훨씬 좋을 거예요.”
“마법 연등?”
“예,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 종이학에 술식을 그려놨거든요.”
“언제? 난 어디 있는지도 못 봤는데.”
“글귀 적어놓은 부분에 그려진 문양이요.”
“··와, 그게 술식이었어?”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은가예가 혀를 내두를 때였다. 무대의 반대편 후미에서 누군가 푸른 빛의 마도구를 사방에 방사하며 복도를 가로질러 내려왔다.
━♪♬♩
울려 퍼지는 무대의 멜로디와 호흡을 맞추어 빛을 내는 마도구.
어두운 사위를 밝히며 흩뿌려지는 푸른 빛에, 관중들의 시선이 복도를 가로지르는 생도에게 꽂혀 든다.
“왔네요.”
“늦게 온 주제에 뭐 저렇게 화려하게 등장해?”
생도의 얼굴을 확인한 아멜리아의 표정이 밝아지고, 은가예가 어이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일레인, 우리도 올라가죠.”
“응, 알았어.”
의자에 앉아 식신의 조종에 열중하던 일레인이 눈치껏 무대 위의 인형들을 퇴장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아멜리아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짝 박수를 쳤다.
“이왕 올라가는 거 구색을 좀 맞춰서 가죠.”
“구색? 어떻게?”
“다들 모여봐요.”
일레인, 킨델, 데오릭. 세 사람을 불러모은 아멜리아가 제스쳐까지 취해가며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다.
“난 좋은 것 같아.”
“그렇게 가자.”
“찬성.”
그렇게 이야기를 마친 네 사람이, 아멜리아의 의견에 따라 움직였다.
이윽고 나타난 광경에 니콜라이가 중얼거렸다.
“···흠, 급조한 것 치곤 그럴싸하군.”
“그러게, 미리 짠 거 같다.”
은가예가 혀를 내둘렀다.
무대를 가로지르는 이해솔의 걸음에 맞춰, 복도의 좌우에서 적색과 황색의 조명을 들고 나타나는 일레인과 아멜리아.
중앙에서 다른 빛으로 그들을 맞이하는 데오릭과 킨델.
무대의 사방에서 불빛들이 모이는 것은 화려한 구경거리였으니까. 관객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그리고 그렇게 네 사람이 모였을 때였다. 돌연 객석이 웅성였다.
─어? 저기 봐! 저거 뭐야?
─와아··· 예쁘다.
─동화 같아.
무대의 옆에 세워진 거대한 나무에서 천여 개의 불을 메단 학 종이가, 하나, 둘. 유유히 떠오르고 있었다.
그 조용한 시작은, 하늘을 수놓는 장엄한 행진으로 이어진다.
그건 마치, 지상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은하수의 물결을 보는 것만 같이 신비하고도 몽환적인 광경이었다.
아카데미의 교정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그 학의 물결을 관객들은 그저 홀린 듯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이해솔 이놈, 일부러 늦은 건가?”
“그건 모르겠고, 낮에 했으면 무조건 후회했다는 건 알겠어.”
은가예의 말에 1반의 생도들이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 무렵, 객석의 후미.
“좋다, 그치.”
“까악!”
한세연은 파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날아오르는 학의 물결을 조용히 감상했다.
그러며 좀전의 일을 떠올리곤 픽 웃었다.
매몰차게 내리라다가도, 배가 아프다니까 조용히 입을 다물어버리던 이해솔.
“···좀 세게 때리긴 했어.”
한세연이 아려오는 배를 문지르며 입을 삐죽였다.
이윽고, 1반의 생도들이 무대 위로 오르며 광장에 박수가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