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77
§ 76화
하얀 붕대로 멀어버린 두 눈을 가린 건장한 체구의 남자.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것은 마력이 아닌, ‘마기’였다.
“마, 마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은가예가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눈이 먼 남자는 그게 보이기라도 하는지, 은가예를 힐끗 일별하더니 의자에 앉으며 내게 물었다.
“함께 온 듯한데 알려주지 않은 건가?”
“기밀이니까요.”
내가 마인과 만나는 것은 철저한 비밀이었다. 초인사회에서 반드시 없애야만 하는 존재가 마인인데, 그런 마인과 만난다는 걸 미리 알려서 좋을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은가예를 데리고 온 것은 이 남자를 설득시키기 위함이었다.
“가예야, 앉아.”
“야, 그래도 마인은······”
“괜찮아. 다 알고 온 거야.”
혼란한 눈으로 나와 마인을 번갈아 보던 은가예는 내 담담한 눈빛에 인상을 찡그리더니, 검 손잡이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아, 뭐가 뭔지 모르겠네.”
고개를 내저은 은가예가 내 옆으로 자리를 바꿔 앉았다. 그러곤 경계하듯이 남자를 노려본다. 그 날이 선 고양이 같은 모습에 작게 웃고 있자니, 남자가 입을 열었다.
“대체 연락 방법을 어떻게 안 거지?”
사실, 남자는 현재 무척이나 어이가 없는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게 남자가 소속되어있는 단체는 소속원이 아닌 이상 세상의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스러운 집단이었다.
하물며, 그 집단의 구성원조차도 수뇌부가 아니면 서로가 서로의 얼굴조차 모르는 경우가 파다했다.
그런데 눈앞의 이 청년은 그 비밀스러운 집단의 수뇌부에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취해온 것이다. 남자로서는 너무도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음 말을 통해 남자는 어떻게 된 건지 유추할 수 있었다.
“노턴을 통해 알았습니다.”
“······.”
남자는 잠시 침묵했다.
노턴은 한때 그들과 행보를 함께 한 인물이었지만, 결코 정보를 발설할 만한 자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눈앞에 발설의 증거가 있는 이상 부정하기는 어려웠다.
고개를 저은 남자가 이내 어이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노턴이 우리 단체 소속이었다는 것을 알고도 접촉을 한 것이란 말인가?”
“예.”
나는 은가예의 어깨를 가볍게 잡고 항마력을 일으켰다.
끓어올랐던 은가예의 마력이 비에 젖는 불길처럼 내려앉았다.
“야, 왜······”
은가예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도 그럴 게 노턴은 게오르그와 손을 잡고 은가를 침공한 악인이었다.
그런 노턴이 소속되었던 단체와 내가 만나는 이 상황이 그녀로서는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은가예를 보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저들은 상관없어. 은가를 공격한 건 노턴이 홀로 저지른 일이니까.”
“그건 맞다. 은가의 건에 관해서 우리는 아는 바가 없다. 노턴과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되었으니.”
“후. 알았어.”
은가예가 진정하자, 나는 아까부터 차분하기만 한 맹인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반마인 단체, 언데몬(Undemon)과 조우했습니다.] [보상으로 500SP가 지급됩니다.]‘언데몬.’
남자가 소속된 단체인 언데몬은 특이하게도 사람을 적대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마인이 된 이들이 아니었으니까.
하물며 마족과 계약을 한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마인이 되었다.
마인을 만드는 마인.
데몬메이커(Demonmaker), 오거스트에 의해.
오거스트에 의해 강제로 마인이 된 이들은 ‘데몬스폰’이라 불리며 오거스트의 수족이 된다.
언데몬은 그런 오거스트의 손에서 벗어난 데몬스폰들이 만든 단체였다.
그리고 그 데몬스폰 중에는 게오르그에게 강한 원한을 품은 이들이 많았다.
그러니 믿을 수 있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도 있으니까.
‘실력으로 치면 못해도 상격 초인.’
눈앞의 남자는 상당한 강자였다.
기척에 예민한 은가예가 눈치도 못 채고 뒤를 잡혔을 정도니까.
거기다 ‘언데몬’의 도움까지 받는다면 게오르그를 잡기에 충분한 전력이었다.
“게오르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게 사실인가?”
“예, 알고 있습니다.”
게오르그는 심장이 뚫려도, 목이 잘려도 죽지 않는다.
녀석은 어떠한 ‘조건’으로 마족에게서 ‘불사’를 부여받았으니까.
그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게오르그는 더 이상 부활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조건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녀석이 사방에 자신과 적대하는 ‘복수귀’들을 끊임없이 양산하는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다.
“그 방법이 뭐지?”
“그건 알려줄 수 없습니다. 대신 확실히 죽일 수 있다는 것은 장담해 드리죠.”
“······.”
남자에게선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그가 두 눈이 없으나 나를 확인하듯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해솔. 그걸 알려주지 않으면 우리는 너를 도울 생각이 없다.”
남자의 말에 내가 픽 웃었다.
“협박이라는 겁니까?”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지.”
“지랄하네.”
“···뭐?”
내가 욕을 할 줄은 몰랐는지 남자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고르는 건 당신이 아닌 나야.”
여기저기 사서 원한을 만들고 다니는 게오르그다.
녀석에게 복수를 한다고 하면 좋다고 몰려들 이들이 널려있었다. 언데몬에 목을 맬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언데몬은 게오르그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그 비밀스럽다는 단체가 확실한 방법도 아니고, 그저 ‘죽일 수 있다’고만 했을 뿐인데 사람을 보내왔을 정도니까.
“왔으면 엿듣지 말고 직접 나와서 이야기하지?”
내 말에 은가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접 나오라니? 여기 누구 더 있어?”
그들이 있는 곳은 테이블 4개가 전부인 작은 카페였다. 사람이라곤 카운터의 알바생과 자신들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눈앞의 ‘맹인’은 언데몬의 수뇌 중 한 놈이 데리고 다니는 호위에 불과했으니까.
그리고, 그 수뇌 놈은 속이 아주 검은 녀석이다.
놈은 자신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하는 자와는 일절 대화를 나누지 않으니까.
녀석은 지금 나를 시험하고 있을 터였다. 내가 자신의 존재를 눈치 챌지 못 챌지를.
아니나 다를까.
짝짝짝!
“이야~ 대단한걸. 설마 내가 있다는 걸 알아볼 줄이야.”
“언제······”
은가예가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맹인 남성의 옆자리에는 어느새 빵모자를 눌러 쓴 금발의 청년이 앉아 있었다.
나 또한 속으로 무척이나 놀랐지만 담담한 척을 해 보였다.
“한스, 그만 나가 있어.”
“예. 아렌님.”
손을 휘저어 남자를 물린 청년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신기하다는 듯 물었다.
“겉으로 봐선 진짜 모르겠는데 말이야··· 어떻게 나를 알아차린 거지?”
“그걸 말해줄 이유는 없는데.”
알아차렸어야, 뭔 말도 하지.
“뭐, 그거야 아무래도 상관없고.”
청년이 키득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아렌이야.”
“이해솔.”
나는 내심 항마력을 일으킬 준비를 하며 녀석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아렌이라는 청년은 그저 말갛게 웃으며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보였다.
“네 말이 맞아. 이해솔. 우리가 아니더라도 쓸 수 있는 패는 많겠지. 하지만 그건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녀석의 표정이 차게 식었다.
“게오르그는 내 손으로 죽이고 싶거든.”
“그러니까 방법을 말해 달라?”
“아니. 그건 안 알려줘도 돼.”
언제 표정이 식었냐는 듯 녀석이 말갛게 웃어 보였다.
“죽일 수만 있으면 돼.”
“······.”
막타를 넘겨줄 생각은 절대 없었지만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렌이 은가예의 초코케이크를 포크로 태연히 갈라먹으며 물었다.
“그놈을 어떻게 잡을지 계획은 세워뒀겠지?”
“아스.”
나는 대답 대신 아나스타샤의 애칭을 불렀다. 그러자 내 가슴의 문양에서 아스가 고개를 내밀었다.
“호오, 빛의 정령이라.”
머리만 쏙 내민 아스를 보며 아렌이 눈을 빛냈다.
“확실히 이건 먹히겠어.”
게오르그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녀석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움직이기를 죽어도 싫어하며, 낮에는 더더욱 나가기를 꺼린다.
그도 그럴 게 녀석은 햇빛 아래에서 힘을 일부밖에 사용할 수 없다는 제약이 걸려있었으니까.
그래서 녀석은 움직이더라도 오로지 ‘밤’에만 움직였다.
하지만 햇빛이 없어도 녀석의 힘을 약하게 만드는 건 어느 정도 가능했다.
바로, 빛의 정령을 이용하는 것.
그것도 정령계가 아닌, 자연계의 빛이라면 녀석의 힘을 더욱더 줄일 수 있다.
애초에 노턴이 아스를 소환한 것 또한 해신의 진주를 빼앗긴 게오르그의 본체가 움직일 것을 고려한 대비책이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지금 내가 이용하고 있었지만.
“녀석의 ‘혈술’을 막을 방법도 있어?”
게오르그의 장기 중 하나가 바로 혈술이었다.
피를 묻혀 상대를 약화시키는 저주.
혈술에 관한 대비책이 없다면 게오르그 토벌은 까다로웠다.
물론 나도 당연히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얘가 막을 거야.”
내가 옆에 앉아있는 은가예를 가리켰다.
“······?”
나와 아렌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은가예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에? 나?”
“설명을 좀 해주겠어?”
아렌이 모르겠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게오르그는 태양 아래서 움직이기 위해 자신의 ‘힘’을 분리해 놓았어.”
이를 핵이라 부른다. 그리고 게오르그의 핵은 게오르그를 없애지 않는 이상 부수거나 손상을 입히는 게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게오르그는 자신의 핵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다만, 녀석이 혈술을 사용할 때 그 힘의 근원이 되는 핵이 공중으로 떠오른다.
혈술의 기본 조건은 피를 ‘공중으로 띄우는 것’이니까.
핵 또한 혈술에 따라 공중으로 떠오른다.
이는 물리력으로도, 마법으로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기프트]를 이용해야지만 방해하는 것이 가능했다.
다만, 게오르그의 핵을 저지할만한 기프트는 찾아보기 어려웠고, 설령 있다 치더라도 그 방해 받는 정도는 적었다.
오로지, 본체인 게오르그를 없애야지만 핵 또한 없앨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은가예가 지닌 기프트, [중력]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중력의 기프트는 그게 무엇이 되었건 찍어 누르는 사기적인 기프트였으니까.
게임에서 은가예가 게오르그 토벌전의 핵심이 되는 이유 또한 이 중력의 기프트 때문이었다.
‘혈술만 막는다면 녀석의 힘을 반은 봉인한 거나 다름없지.’
물론, 은가예의 기프트는 무한한 게 아니다.
기프트의 사용에 정신력이 소모되기에, 은가예가 언제까지 견뎌줄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예컨대 시간 싸움이었다.
“녀석에게 들키지 않고 놈의 측근을 정리하는 것도 문제지.”
게오르그는 혼자가 아니다.
녀석의 휘하에는 수백에 달하는 마인들이 존재한다.
다만, 게오르그는 겁쟁이였기에 마인들을 자신의 곁에 두지 않았다.
그들을 불러 모을 수단인 4명의 친위대만이 놈의 주위에 존재했다.
마인들이 모이지 않게 하려면, 그 친위대를 정리해야 했다.
“그건 나한테 맡겨둬.”
아렌이 걱정 말라는 듯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그렇게 아렌에게 측근들을 맡기니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았다.
‘문제는 놈을 어떻게 밖으로 끌어 내느냐인데······’
방구석에 처박혀서 분신만 조종해 대는 게오르그를 바깥에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떡밥이 필요하다.
‘떡밥이라······’
당장 떠오르는 건 바로 ‘어리고 이쁜 여자’다.
녀석은 오직 아름다운 인간에게서만 마력을 빼앗아 가는 지랄맞은 기벽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눈 또한 더럽게 높아서 마력의 질이 낮다면 또 더럽다고 안 뺏는다.
그걸 찾아서 보고해야 하는 측근들이 불쌍할 정도로.
‘하여간 까다로운 새끼.’
다행히 내 주변에는 녀석의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고도 남는 인물이 존재했다.
어리고, 아름다우며 심지어는 ‘순수마력’까지 지닌 만능 동기생이.
위이잉─
마침 그 동기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 아멜리아.”
─정령석 낙찰됐어요, 3억원 입금되었으니까 확인해 보세요.
스마트폰 통장을 확인하자 잔고가 떴다.
[4억3천400만원]─첫 거래니까 수수료는 떼지 않았어요.
“역시 아멜리아야. 능력 하나는 끝내주네.”
─후후, 이 정도야 당연한 거죠.
당연하다면서 웃음이 만개한 아멜리아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래서 말인데, 하나 더 도와줄 수 있어?”
─뭔데요, 말해보세요.
“좀 위험하긴 한데, 어려운 일은 아니야.”
내 입에서 ‘미끼’에 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보수야 후하게 쳐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