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8
§ 7화
······아직 겨울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2월의 셋째 주 월요일. 드디어 이터니티의 신학기가 시작되었다.
“교복, 정말 오랜만에 입어보네.”
나는 지급 받은 하얀 교복 마이를 신기한 듯 매만졌다. 그도 그럴 게 현실에서의 내 나이는 24살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는 벌써 5년이 지났다. 그런데 다시 고등학교라니······
나는 생소하면서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기숙사를 나와 교실로 향했다.
“괜히 긴장되네.”
[1-1]이라는 명패가 걸린 교실 문 앞에 선 나는 심호흡을 하곤 교실 문을 열었다.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먼저 와있던 녀석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다.
그 안에 필요 이상의 관심이 담겨있다고 느끼는 것은 내 기분 탓이 아니다.
─수석이다.
─이해솔이야.
교실이 웅성거리고 있었으니까.
하긴, 무려 세계의 유망주들을 모두 제친 학년 수석의 등장이었으니 조용하면 그게 오히려 이상했다.
그 학년 수석이 순 거품 덩어리라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이었지만.
나는 빈자리를 찾아 교실을 두리번거렸다. 명당자리는 당연하게도 먼저 온 놈들이 전부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두 번째 창가 자리가 비어있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냉큼 가 앉았다.
“흐아함~”
시각은 아침 7시 50분. 쏟아지는 잠결에 하품을 하자니 내 앞으로 불쑥 무언가가 내밀어졌다. 고운 손에 쥐어진 것은 레모나였다.
“피곤하지? 먹어둬.”
“땡큐.”
내가 레모나를 받아들자 옆자리의 여자아이가 방긋 웃었다.
“한세연이야.”
“이해솔.”
나는 레모나를 입에 털어 넣으며 한세연에 대해 떠올렸다.
한세연. 준수한 성적에 붙임성 좋고 나긋한 성격으로 매년 학급 반장을 도맡아 하는 아이.
심지어 외모마저 특출나서 인기도 많은 소위 말하는 ‘엄친딸’이다.
벌써부터 교실의 남학생들은 아닌 척 한세연을 흘낏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바늘 가는 데 실 따라온다고 한세연의 옆자리에는 은가예가 퍼질러 누워있었다.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지만 둘은 소꿉친구였으니까.
참고로 우리 반의 인원으로 말하자면 천우진, 은가예, 한세연, 니콜라이, 아멜리아 등 학년 에이스란 에이스는 죄다 모아놓은 특급반이다.
대체 반 배정을 어떻게 짜면 이따위 막장 밸런스가 나오나 의문이지만 게임스토리부터가 막장이라 그다지 놀랍지도 않았다.
“첫날부터 여유롭군.”
레모나를 쩝쩝거리고 있자니 들려온 말에 고개를 드니 금발의 서양인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니콜라이였다.
나는 녀석이 노려보는 ‘레모나’와 한세연에 대강 상황을 파악하곤 피식 웃었다.
“왜, 부럽냐?”
“······뭐?”
무슨 소리냐는 듯 눈살을 찌푸리는 니콜라이. 그래 봤자 얼굴에 대놓고 부럽다고 써 있다, 임마.
한세연과 중등부를 함께 다닌 니콜라이는 한세연을 짝사랑한다.
생긴 건 순 바람둥이처럼 생겼지만 의외로 한 여자만 바라보는 순정파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어디서 굴러 온 지도 모르는 놈한테 수석을 뺏긴 것도 모자라서 그놈이 한세연에게 레모나까지 받고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배알이 꼴릴 수밖에.
물론 니콜라이는 그것을 겉으로 드러낼 만큼 속 좁은 녀석이 아니었다.
내게 말을 건 목적은 아마 수석 자리를 가져가겠다, 뭐. 그런 당찬 포부를 밝히려는 거겠지.
“니콜라이다.”
“이해솔.”
손을 내밀길래 마주 잡아주려 했더니 니콜라이가 갑자기 손을 쑥 뺐다.
······뭐야? 뭐 하자는 건데?
멀어진 손을 어이없게 쳐다보던 나는 이내 이유를 깨달았다.
‘아, 맞다. 이 새끼 결벽증이었지.’
화장실 수건의 각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다시 접다가 지각까지 할 정도로 니콜라이는 ‘깔끔’과 ‘각’에 집착을 떠는 골 때리는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니 교복 마이까지 각 잡혀 있네.
등교 전까지 내내 각만 잡고 있었을 니콜라이를 떠올리자니 실소가 나왔다.
그때, 니콜라이가 예고도 없이 훅 치고 들어왔다.
“말해두겠지만 입학식 성적이 좋았다고 까불지 말아라. 잠깐 맡겨두는 것뿐이니까.”
“······.”
자신의 ‘한국식 대사’가 먹혔다고 느꼈는지 니콜라이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실제로도 나는 조금 압도당했다. 저게 러시아산 17살의 패기인가?
‘지리겠네.’
니콜라이는 할 말을 다 했다는 듯 등을 돌리려다 한세연이 웃으며 건네주는 레모나를 마지못한 척 받아들곤 당당하게 교탁의 앞자리로 걸어가 착석했다.
하는 짓은 중2병 말기 같아 보여도 니콜라이는 필기까지 겸비한 모범생이었으니까.
그 부조화가 웃겼는지 한세연이 키득거렸다.
“니콜이 표현이 서툴러서 그러니까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
“서툴기는. 대놓고 선전포고하고 있는데.”
누워있던 은가예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완전 공감이 갔지만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어쩌다가 얻어걸린 ‘가짜 수석’이었으니까.
굳이 니콜라이가 견제하지 않더라도 내버려 두면 알아서 성적이 쭉쭉 떨어질 것이기에 퇴교나 걱정해야 할 팔자다.
‘진짜 수석은 저 녀석이지.’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천우진을 바라보았다. 녀석은 벌써부터 생도들과 웃고 떠들고 있었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런 분위기라니. 하여간 친화력 하나는 끝내준다.
그 긍정적인 에너지에 서먹하던 생도들도 조금씩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츰 교실이 소란스러워질 무렵 교실 앞문이 열리며 차가운 인상의 남성이 들어왔다. 남성의 등장에 생도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오른쪽 이마부터 뺨까지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흉터가 새겨져 있던 것이다. 용병이라 해도 믿을 법한 무서운 외양이었다.
“반갑다. 1년간 1반의 담임을 맡게 된 하진우라고 한다.”
간략하게 자기소개를 마친 용병선생, 하진우가 좌중을 둘러보았다.
“다들 표정이 상기되어있군. 하긴, 세계적인 경쟁률을 뚫고 본교에 입학했으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겠지.”
생도들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펴자 하진우가 피식 웃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빨리 버리는 게 좋을 거다. 이터니티는 입학을 했다고 끝나는 어설픈 곳이 아니야. 이제부터가 시작이지.”
담담하면서 냉정한 말이 이어진다.
“초인이 상대해야 하는 것은 마인과 마수다. 실수하면 바로 죽는다. 운 좋게 살아남아도 평생 후유증을 떠안아야 하지.”
하진우가 자신의 뺨에 새겨진 흉터를 가리키자 생도들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이터니티는 그런 놈들과 싸우는 법을 알려주는 곳이다. 따라서 교육은 실전과 동일하게 진행된다. 성적이 저조하거나 정신이 안일한 놈은 즉시 퇴학이다. 실전에서 죽느니 퇴학당하는 게 최소한 목숨은 건질 수 있으니 미리 나가는 게 현명할 수도 있을 거다.”
아침 메뉴를 읽듯 평이한 어조로 생도들의 기를 죽여놓은 하진우가 웃으며 말했다.
“겁주는 건 여기까지 하지, 오늘은 너희들의 수준부터 알아보도록 하겠다. 다들 체험장으로 집합해라. ‘마수사냥’이다.”
***
10분 뒤 생도들은 본관 뒤편의 ‘체험장’으로 이동했다.
좌석이 나열된 대기실 유리벽 너머에 ‘체험장’이 존재했다.
생도들은 친해진 이들끼리 무리 지어 앉았다. 나는 대충 구석에 앉았는데, 문득 옆자리가 눈이 부셨다.
시선을 돌리니 아멜리아가 나긋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같은 반이 되었네요. 잘 부탁드려요.”
“어, 나도 잘 부탁해.”
그렇게 우리 둘이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하진우가 나타났다.
“말했다시피 오늘은 너희들의 수준을 알아볼 거다. 체험장에서는 가상의 마물과 상황이 주어질 거다. 그에 따른 대처와 역량을 재주껏 뽐내면 된다. 점수에는 안 들어가지만 그렇다고 대충 할 생각은 하지 말도록. 가장 대처를 잘한 생도에게는 보상이 있을 거다.”
대강의 설명을 끝낸 하진우가 체험장의 문을 가리켰다.
“자, 그럼 좌측 앞쪽부터 한 명씩 체험장으로 들어가라. 나머지 생도들은 동기의 활약을 지켜보도록.”
첫 번째 생도가 체험장으로 들어가자 풀숲이 구현되며 ‘늑대무리’가 나타났다.
등급은 낮지만 무리를 짓기에 사냥하기 까다로운 2급 늑대 마수, ‘다이어울프’였다.
참고로 마수의 등급은 최하급인 1급부터 단계가 올라갈수록 강해진다.
“······와, 디테일 봐. 인질까지 있네.”
“그러게, 미쳤다. 돈을 발랐네.”
늑대무리의 뒤편에 여자아이와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를 본 생도들이 감탄을 터트렸다.
‘인질이라, 글쎄.’
나는 인질이라 지칭된 이들을 보곤 피식 웃었지만, 별말 없이 생도들의 활약을 감상했다.
첫 번째 생도는 힘겹게 늑대를 해치우고 인질들을 구출했다. 다른 생도들의 양상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이 나이대에서 다이어울프가 상대하기 어려운 축에 속하는 것을 감안하자면 과연 이터니티의 생도라 할만한 활약이긴 했으나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지루함의 연속이 깨진 건 내 옆자리에서 아멜리아가 일어나고부터였다.
“잘하고 와. 파이팅.”
내 응원에 웃음으로 화답한 아멜리아가 또각또각 체험장으로 들어섰다.
앞서처럼 늑대들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자 아멜리아가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눈에 보일 정도의 푸른 마력이 일어나 늑대들을 휘어 감았다.
그리고 일어난 결과에 생도들 사이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오, 미쳤다.”
“마력을 얼마나 정교하게 다루는 거야?”
“역시 별의 성좌인가.”
아멜리아는 늑대들을 단 한 마리도 죽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늑대들은 으르렁대기만 할 뿐, 아멜리아에게 달려들지 못했다.
풀, 넝쿨, 가지 따위가 자라나 늑대들의 발을 묶어버린 탓이었다.
느긋하게 늑대무리를 지나쳐 인질들을 구출한 아멜리아가 미소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생도들 사이에서 환호가 일어났음은 물론이다. 마법에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자연물을 다루는 아멜리아의 마법은 과연 화려했다.
다른 생도들은 불덩어리 하나도 어렵사리 소환했으니 그 수준 차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수석은 요원하다는 게 조금 안타깝기는 했다.
다른 때였다면 가볍게 수석을 했을 테지만 이번 학년에는 아멜리아 못지않은 괴물들이 우글댔으니까.
다음 차례로 나선 니콜라이처럼.
“와, 아예 그냥 찢어발기네.”
“다이어울프가 찢기는 거였어?”
니콜라이는 체험장에 들어서기 무섭게 늑대들을 단숨에 도륙내 버렸다.
녀석이 사용한 무기는 긴 자루 끝에 초승달의 날이 달린 러시아의 전통 무기 ‘버디슈’였다.
강력한 마력이 담긴 초승달의 쇄도에 늑대는 물론 지형지물조차 남아나질 않았다.
그 압도감에 일순 대기실에 정적이 일었을 정도다.
늑대들을 정리한 니콜라이가 버디슈를 돌리며 중2병다운 제스쳐를 취했지만 이번에는 나도 딴지를 걸지 못했다.
“······확실히 대단하긴 하네.”
정말 인정하긴 싫었지만 제법 멋있었다.
그 뒤에도 생도들의 무대가 이어졌지만 앞선 두 사람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기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흐아함~”
지루함에 하품을 하니 아멜리아가 피식 웃으며 말을 걸어왔다.
“지루한가 보네요. 하긴, 수석인 그쪽 눈에 차지는 않겠죠.”
“아니, 그런 건 아닌데······”
무슨 대단한 착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차고 안 차고를 떠나서 나는 다이어울프 무리를 이길 자신도 없었다.
당장 한두 마리나 잡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으니까.
뭐,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이지 방법은 있어 보였지만.
“이해솔, 네 차례다. 체험장으로 들어가라.”
“예.”
호명을 받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체험장으로 들어갔다.
***
‘올해 신입생들은 확실히 수준이 높군.’
하진우는 체험장을 오가는 생도들을 지켜보며 눈을 빛냈다.
다이어울프를 처음 상대하기 때문인지 애를 먹는 생도도 종종 보이긴 했지만 저만하면 나름 잘 대처하는 거였다.
첫 실습에서는 해마다 실패하는 생도가 네다섯쯤은 나오는데 올해에는 모두 통과하고 있었으니까.
특히, 그중 몇몇 생도는 하진우 또한 눈여겨 볼만한 실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니콜라이, 거칠지만 뛰어난 부술(斧術)이다. 고르고프가 자식교육을 제대로 했군.’
아멜리아의 마력을 다루는 역량도 특출난 것이었다.
이 둘만 해도 올해는 제대로 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아직 나오지 않은 인재들까지 있었다.
지금 체험장에 들어선 녀석 또한 그런 인재 중 하나였다.
‘이해솔.’
여유롭게 체험장으로 들어서는 이해솔을 보며 하진우가 눈을 빛냈다.
그 또한 인터넷에 퍼진 녀석의 실기시험 영상을 보았다.
제 실력을 감춘 채 실기시험을 통과한 괴물.
하지만 녀석도 이번만큼은 실력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이어울프는 어설픈 연기 따위로 잡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마수가 아니었으니까.
과연 이해솔도 이번만큼은 무언가를 보여주려는지, 바닥에서 돌멩이, 자갈 따위를 주워들었다.
‘던지려는 건가? 나쁘지 않아.’
단순한 돌멩이라도 거기에 마력이 담기면 그건 치명적인 살상 무기가 된다.
기본적인 마력의 응용이지만, 던지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결과가 천차만별이기에 실력을 가늠하기에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투척 자세를 취하는 이해솔의 동작은 무척이나 안정적이었다.
‘좋군.’
녀석은 어떻게 하면 돌멩이의 위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예상대로 이해솔이 던진 돌멩이는 늑대들을 향해 잔상을 남기며 빛살처럼 쏘아졌다.
역시 수석인가.
하진우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이 빗나간 것은 그다음 순간이었다.
휘이이익!
돌멩이는 늑대들을 지나쳐 계속해서 나아갔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건······
퍼억!
놀란 하진우의 눈이 크게 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