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81
§ 80화
방과 후, 나는 블랙마켓 1층 한세울의 연금상에 들렸다.
요 몇 주간 바빠서 들르지 않았는데, 그 사이 연금상의 규모가 상당히 커져 있었다.
[한울]멋들어진 궁서체의 간판이 내걸린 외관은 리모델링이 한창이었고, 낡고 먼지 날리던 내부도 싹 다 뜯어고쳤는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급스러워졌다.
“리모델링 한다곤 들었는데 어마어마하네.”
공간도 훨씬 넓어진 게 옆 가게를 인수하고 벽을 허물어 합쳐버린 듯했다.
다운 타운에 어울리지 않게 오가는 사람도 제법 많았다. 척 보아도 모두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들. 한세울의 포션이야 애초에 품질이 좋았으니, 아멜리아의 마케팅이 보기 좋게 성공한 모양이었다.
“차라리 층을 옮기는 게 나은데.”
1층은 블랙마켓으로 치면 가난한 동네다. 고가의 포션을 팔기에는 위치가 좋지 못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다운타운에서 살아온 한세울은 거점을 옮길 생각이 없어보였다.
하기야, 게임에서도 한세울이 거주하는 구역은 1층이었으니.
바뀐 실내를 둘러보며 나는 카운터의 줄 뒤에 섰다. 조용히 볼 일만 마치고 나갈 생각이었다.
한창 바빠 보이는데, 내 작은 용무 하나 때문에 한세울을 불러내는 것도 실례였으니까.
“어서 오세요, 손님. 오늘은 어떤 포션을 구입하러 오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내 차례가 다가오자 처음 보는 귀여운 여성이 밝게 웃으며 물어왔다.
“열에 잘 듣는 포션을 구매하러 왔는데요.”
“열병 말씀이군요. 예. 잠시만······”
내가 포션을 구매하는 이유는 한세연의 병문안을 위한 선물이었다.
병원이나 약국에서도 열에 듣는 약이 팔긴 했으나 연금상의 포션이야 말로 효과가 즉빵이었으니까.
그렇게 카운터에서 접수를 마치고, 돌아서려던 차였다.
“어? 해솔님 아니세요?”
나를 알아본 직원이 다가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카운터에 줄을 서 계세요?”
“잠깐 들른 거예요.”
“그래도 이러고 계시면 저희가 혼나요. 잠시만 안에 들어가서 기다려주시겠어요? 바로 사장님 모셔올게요! 혜진아, 너는 이분 안으로 모셔.”
“······예? 예!”
직원이 공방으로 뛰어 들어가고, 놀란 카운터의 여성은 곧장 나를 안으로 안내했다.
‘많이도 바뀌었네.’
이전에 사무실이었던 허름한 공간은 특별한 고객을 상대하기 위한 VIP룸으로 꾸며져 있었다.
“못 알아봐서 죄송합니다. 해솔님.”
“아니요, 처음보면 모를 수도 있죠. 뭘.”
내가 무슨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지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던 여직원은 내 괜찮다는 한마디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못 알아보면 화를 내시는 분들이 가끔 계시거든요.”
“진상이네요.”
하기야, 연금상의 VIP정도 되면 돈 좀 만지는 인물들일 테니 콧대가 장난 아니게 높을 만도 했다.
나야, 이해가 안 가는 부류였지만.
“이것 좀 드시면서 기다려주세요.”
“고맙습니다.”
간단한 커피와 초코케이크를 받은 내가 그것들을 야금야금 먹고 있자니 방문이 열리며 한세울이 들어왔다.
“오, 해솔님. 언제 오시나 계속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요즘 일이 좀 바빠 가지고요.”
한세울의 모습을 본 내가 픽 웃었다.
건물과 고객층은 바뀌었지만 그는 여전히 떡 진 머리에 다크서클이 진하게 낀 인상 그대로였다. 작업을 하다 왔는지 오래된 작업복은 포션으로 덕지덕지 얼룩이 져 있었다.
‘아니, 레벨은 달라졌네.’
Lv.1에 불과하던 한세울의 레벨은 어느덧 Lv.3까지 올라가 있었다.
저 정도라면 이제 새로운 단약의 제작에 돌입하는 것도 가능했다.
‘붉은 단약은 아직 하급만으로 충분하고.’
한세울의 레벨로 중급 단약의 열화버전 제작이 가능하긴 하지만, 그 시간 대비 효율이 극악이었다.
보아하니, 중급 1알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만 따져도 최소 120시간이었으니······
‘다른 하급 단약이나 만들어보는 게 낫겠는데.’
이터니티의 단약 종류는 무궁무진했다. 그렇게 내가 무슨 단약이 경제적이려나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였다.
“하하, 그렇지 않아도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영웅이 되셨더군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한세울의 말에 나는 멋쩍게 볼을 긁적였다. 아닌 게 아니라, 해남은가에서 아나스타샤의 폭주를 막은 일로 인해 나는 일약 초인업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아카데미에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아서 실감이 안 갈 뿐이지, 나를 원하는 길드는 발에 채일 정도로 많다고 하니까.
“그래서 오늘은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별 건 아니고, 동기 한 명이 열이 나서 포션 좀 구매하러 왔습니다.”
“아, 병문안이군요.”
“예, 빈손으로 가긴 좀 뭐해서요.”
“효과가 강한 건 오히려 몸의 회복을 방해하니, 간단히 원기를 북돋아 주는 걸로 드리겠습니다.”
포션이 진열된 찬장으로 걸어가며 한세울이 물었다.
“그런데 여자입니까? 남자입니까?”
“그런 건 알아서 뭐 하시게요?”
“포션도 성별에 따라 잘 듣는 게 있습니다.”
그런 것도 있었나?
성별에 따라 포션이 나뉜다는 것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였으나 이쪽은 한세울이 전문이었기에 나는 별 생각없이 말했다.
“여자입니다.”
“호오, 그렇군요. 아멜리아양입니까?”
고개를 주억인 한세울이 찬장의 포션을 고르며 물었다.
“아니요.”
“오, 또 다른 여자입니까? 해솔님은 참 능력도······”
“이상한 소리 그만하고 포션이나 주시죠.”
“옙, 알겠습니다.”
이전까지 포션을 고르던 건 시늉이었다는 듯, 잽싸게 골라 케이스에 담아주는 한세울.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나는 케이스를 받아 연금상을 나왔다.
***
오후 5시. 포션을 얻은 나는 곧장 여자 기숙사로 향했다.
“이렇게 와보기는 처음이네.”
1학년 기숙사는 남녀가 한 건물을 사용했으나, 남자가 1층부터 2층. 여자가 3층, 4층을 사용했기에 직접 올라와 보기는 기척 테스트 이후로 처음이었다.
“얘가 몇호실이었더라.”
복도에서 마주친 여자애들이 힐끗거리는 걸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생활기록부에 표기되어 있던 한세연의 호실로 향했다.
[304호]똑똑─
이내 한세연의 호실을 찾아 문을 두드리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나갔나?”
여러 차례 두드려도 별 반응이 없기에 돌아가려던 찰나 문을 열어보았다. 그러자 문이 그냥 열렸다.
“문 좀 잠그지.”
혀를 차면서도 무심코 안을 들여다보았다.
탁자와 침대만이 다인 내 방과 달리 한세연의 방은 무언가 굉장히 빼곡했다.
벽면에는 그동안 그녀가 모아온 총기가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수업 책이나 노트 등이 가지런히 정리된 선반이 보였다.
책상에는 몇 년을 썼는지 모를 구식 스탠드, 창설제에서 날렸던 학종이가 가득 담긴 유리상자, 잘 관리된 작은 화분이 보인다. 그 바로 옆 작은 선반에는 어린아이들이나 가지고 놀법한 낡은 인형이나 소꿉놀이세트, 리코더, 졸업앨범, 가족과 함께 찍은 사진 등 추억 속의 물품이 먼지 하나 없이 소중히 관리되어 있었다.
깔끔하게 잘 정리된 방이었다.
특이한 점은 방안의 모든 것들이 전부 ‘낡았다’는 것이다.
비교적 최근 것으로 보이는 것조차 총기이거나, 누군가에게 선물 받은 것이 다였다.
“많이도 왔다 갔네.”
방의 한편에는 뜯지 않은 쥬스 상자나, 과일바구니 등 병문안 선물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다들 낮에 왔다 간듯했다.
한세연은 그 선물꾸러미 옆의 침대에 곤히 잠들어 있었다.
“휴우.”
나는 일단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세연의 영혼은 말끔한 상태였다. 모르도의 폭주 가능성은 보이지 않았다.
‘정신은 멀쩡하다는 건가.’
소환수 중 악질적인 놈들은 계약자가 약해지면, 그 틈을 타 몸을 빼앗으려 드는 것들이 종종 있다. 하물며 그게 마수의 정점인 모르도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게임에서의 한세연은 모르도에게 몸을 빼앗겨 이벤트보스로 전락하기까지 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한세연의 상태가 좋지 않아 보임에도 불구하고 그럴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는 한세연의 정신이 온전하다는 증거였다.
몸이 좋지 못해도 정신만 온전하다면 소환수에게 몸을 빼앗길 염려는 하지 않아도 좋았으니까.
잠결에 뒤척였는지 이불이 반쯤 흘러내린 것을 보곤 덮어주는데 한세연과 눈이 마주쳤다.
흐아암. 귀엽게 하품을 한 한세연이 졸린 눈을 깜빡였다.
“···해솔이?”
“깼냐.”
“병문안 온 거야?”
“아니.”
병문안이라기보단, 화를 내러 왔다는 표현이 맞았다.
무리하지 말라고 창설제 때부터 그렇게 신신당부를 해놨건만, 또 기절을 하고 있었으니 화가 날 수밖에.
얘는 도대체가 모르도가 폭주할 수도 있다는 자각을 가지고 있긴 한 건지 모르겠다.
“짜증 좀 내러왔다.”
그렇게 말하며 책상 의자를 끌어다 앉던 나는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생글생글 웃는 한세연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뭘 웃어?”
“기뻐서.”
맑게 웃는 눈이 왠지 모르게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하며 포션 케이스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열 내리는 포션이야. 공복에 마시면 될 거다.”
“응, 고마워. 잘 마실게.”
여전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내가 미간을 좁혔다.
“야, 내가 무리하지 말라 했지? 모르도 폭주한다고.”
“미안. 걱정 끼쳤네.”
한세연이 작게 미소 지으며 사과했다.
하아. 결국 한숨을 내쉰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을 때였다.
“그래도 해솔이가 병문안 와주는 거면 무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네.”
“야, 그걸 말이라고-”
짜증을 내려던 나는 문득 말을 멈췄다.
한세연이 말을 잘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무심코 만진 팔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머리도 식은땀에 축 젖어있었다.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응, 열이 올라서 그래. 조금 쉬면 나아질 거야.”
“후, 그럼 좀 더 자라. 내일 병원 꼭 들리고. 그러면 난 간다.”
괜히 자는 걸 깨운 듯해서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일어나려는 내 무릎에 한세연이 고개를 기대고 누워버렸다.
“아, 좋다.”
“······뭐하냐.”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내가 당황하자 무릎에 누운 한세연이 날 올려다보았다.
“무릎베개.”
“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천연덕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해솔이가 있어야 회복이 더 빨라질 거 같아서.”
“내려와.”
“우음-”
들은 척도 않고 아예 다리 사이에 파고들어 버리는 막무가내에 내 인상이 찡그려졌다.
“아프다는 걸 때릴 수도 없고······”
“이럴 때 어리광 부려야겠네.”
내가 노려보자 에헤헤 웃어 보이는 한세연의 모습에 나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얘랑 대화를 하면 어째 내 페이스가 항상 말려버리는 느낌이다. 고개를 내저은 나는 방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책상의 스탠드를 보곤 혀를 찼다.
“스탠드좀 바꿔라. 저거 몇 년 된 거야?”
“10년?”
“······.”
살짝 입을 벌린 내가 침대 옆 추억선반에서 오래된 ‘처키인형’을 들어 보였다.
“이건?”
“아, 이건 3살 때······”
낡은 인형을 매만지며 아이같이 좋아하는 한세연의 모습에 나는 문득 오래전 게임에서 보았던 그녀의 특징이 떠올랐다.
소유욕이 유별나게 강해서 한 번 소유한 것은 절대 버리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다 낡은 거였나.’
여기만 해서 이 정도지, 한세연의 본가에 가면 이것의 배가 되는 물건이 잠자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스탠드는 좀 바꿔라.”
“······.”
돌아오는 대답이 없어 내려다보니 인형을 가슴에 끌어안은 한세연이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내 표정에 난감함이 스쳤다.
“···곤란한데.”
무릎에 실린 무게감이, 너무 곤란했다.
그때, 문득 창가로 들어온 노을이 잠에 빠져든 한세연의 모습을 붉게 물들였다.
무릎을 베고 잠이 든 녀석의 모습은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