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89
§ 88화
기말고사의 1차 시험, 마흔 찾기가 시작된 지 15분.
나는 파랑이와 아나스타샤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돗자리에 누워 파란 하늘만 올려다보았다.
“음······”
산에 너무 누워있어서 그런가? 왠지 모를 서늘함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다.
“귀신이라도 있나.”
팔을 긁적인 나는 할 일도 없었기에 상태창이나 뒤적거렸다.
[보유 SP : 16400]“더럽게 안 모이네.”
이전에 비하면 앞자리 수가 바뀌었을 만큼 많은 SP였으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이보다 많은 SP가 필요했다.
▶플레이어 이해솔 [영혼의 선각자] [보유 기프트 : 이상의 투영자, 어느 필멸자의 고민. 신체 가속]
*새로운 기프트의 습득을 위해서는 기존의 기프트를 버리거나 한계를 돌파해야 합니다.] [한계 돌파 비용 : 50000SP]
플레이어가 지닐 수 있는 기프트의 개수는 총 3개다.
그 이상 기프트를 익히기 위해서는 SP를 이용해 ‘한계 돌파’. 즉, 슬롯 창을 늘려야 했다.
다만, 5만 SP는 이 세계에서 모으기에 너무나 큰 액수였다.
그렇기에 내가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은 기존의 기프트, ‘이상의 투영자’의 강화였다.
이상의 투영자는 이터니티의 게임 아이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인 기프트였지만, 단순히 거기서 그치는 능력이 아니었다.
SP를 대가로 지불하면, 기존에 지니고 있던 능력을 일시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이 가능했다.
기력이나 그람, 그리고 각종 패시브 특성까지 일시적으로 강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상의 투영자는 내가 원하는 ‘이상’을 구현해주는 능력이었으니까.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이상의 투영자를 강화 시킬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 강화에 필요한 비용은 2만 SP였다.
‘앞으로 3600SP만 모으면 되겠네.’
‘중급 초인자격시험’을 치르기 전까지 이상의 투영자를 강화시키는 게 현재 내 목표였다.
그전에 우선 기말고사부터 통과해야겠지만.
그나저나 얘네는 언제 오는 거야.
읏차. 기지개를 피며 파랑이가 사라진 하늘 저편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푸르구나.”
“응, 푸르네.”
“······.”
향긋한 냄새가 풍겼다.
얼굴이 딱딱히 굳은 내가 느릿하게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언제 왔는지 한세연이 쪼그려 앉아 턱을 괸 채 방긋 웃고 있었다.
상체를 일으킨 내가 당황해 물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팔찌에 내장된 지도에 생도 위치도 표시됐던가? 아닌데···
“니콜이 알려줬어.”
“니콜라이?”
“응.”
산자락을 오가던 도중 만난 니콜라이가 내 위치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하긴, 그놈은 한세연 말이라면 껌뻑 죽는 녀석이었으니 알려주는 건 당연했다.
입으로는 오만하게 포장하면서도 무료가이드 마냥 친절하게 길 안내까지 해줬겠지.
나한테서 딱 보이지 않는 지점까지 바래다줬을 모습이 머리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리고 이런 내 짐작은 반은 맞은 것이었다.
천리안에 ‘지정’당한 내 위치를 한세연은 언제 어느 때나 특정 지을 수 있었고, 그렇게 오던 도중 마주친 니콜라이에게 편하게 길 안내까지 받은 것이다.
“해솔이는 여기 왜 누워있던 거야?”
원래 자기 자리 마냥 돗자리의 내 옆에 올라앉은 한세연이 무릎을 끌어안곤 물어왔다.
당연하다는 듯이 어깨를 기대옴에 나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부분의 자유는 이미 반쯤 포기한 상황이었다.
“파랑이 기다려.”
나는 내 계획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딱히 감출 이야기도 아니었으며, 한세연은 파랑이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두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까. 나머지 한 사람은 ‘노아 맥도웰’이다.
“아하하, 그랬구나.”
자존심 강한 신수의 등에 정령을 태우는 내 발상이 엽기적이었는지 한세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나는 마침 잘됐다 싶었다. 한세연의 등장은 갑작스러웠으나,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그도 그럴 게 지금 이 근방의 산맥은 완전히 서바이벌 상태가 되어 있었다.
마흔을 찾으라고 했건만 곳곳에서 눈만 마주치면 교전이 일어나고 있던 것이다.
파랑이의 시야가 보이는 건 아니었으나, 정신적으로 연결되어있는 나였기에 지금의 산맥이 위험하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가능한 한 순위권 생도들을 미리 떨어트려 놓으려는 거겠지.’
머릿수로 밀어붙이면 암만 순위가 높다고 한들 소용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 산맥에서 누구보다 가장 위험한 건 바로 나였다.
학년 수석인 나는 모든 생도에게 공공의 적이었다.
물론 기척 차단을 사용하면 된다곤 하지만, 마흔에 다가가면 기척 차단을 사용하고 싶어도 사용할 수가 없게 된다.
마기에 견디거나 항마력을 사용하는 와중에 기척 차단이 알아서 풀려 버릴 테니까.
그래도 마흔의 근처까지는 기척 차단을 사용하는 편이 나았기에 니콜라이의 제안을 거절한 것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얘는 마흔 찾으라고 보내놨더니만, 위에서 뭘 하고 있는 거야?’
흥분한 파랑이의 정신 상태를 확인한 내가 혀를 찼다.
***
······한편, ‘서바이벌’이 벌어지고 있는 곳은 태백산맥의 지상뿐이 아니었다.
태백산맥의 상공.
상당수의 바람의 정령과, 마법사가 사역한 맹금류들이 상공을 누비고 있었다.
시야를 확보해 마흔을 찾겠다는 생각을 한 생도는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모인 사역마와 소환수들 사이에 대규모 교전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드물지는 않으나, 탐지를 위해 보내놓은 사역마끼리 충돌하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현재, 그 종종 있는 일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전개가 사역마들 사이에 펼쳐지고 있었다.
“끼르르르르르─!”
하급 바람의 정령과, 맹금류들이 뒤엉켜 날아다니는 상공의 중앙을 가르며 파랑이가 위엄 넘치는 울음을 터트렸다.
생물의 원초적 공포를 자극하는 피어(fear)에 노출된 사역마들이 혼란에 빠졌다.
애초에 탐색을 목적으로 보낸 하급의 사역마들은 파랑이의 상대가 아니었다.
혼란에 빠진 사역마들을 귀엽다는 듯 내려다보며 파랑이가 제 세상 만난 물고기처럼 하늘을 누볐다.
“끼르르!”
일부러 사역마들이 뭉친 곳만을 위주로 날아다니며 강제로 집합을 해산시키는 파랑이.
양 떼 사이를 누비는 맹수가 된 기분에 맛이 들려 버린 파랑이가 집요하게 녀석들을 못살게 굴며 날아다녔다.
주인은 ‘마흔’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렸으나, 마흔을 찾기 위해서는 당면한 적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나름의 명분까지 세워놓은 파랑이였다.(제거는 하지 않고, 겁만 주고 있다.)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위대한 신수인 자신의 등에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지역구 정령’인 아나스타샤가 주제도 모르고 타올라 있다는 것이었다.
정말 마음에 안 드는 일이었으나, 주인이 내린 명령이었기에 점잖게 참아주고 있는 와중이었다.
물론, 비행 와중에 실수로 떨어트리는 어쩔 수 없는 사고도 발생할 수 있었기에 그 점을 고려해 거꾸로도 날아보고, 위에서 뚝 떨어지는 등, 온갖 곡예비행을 다 시도해보았으나, 생물이 아닌, 정령 녀석은 찰거머리처럼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끼르르르르르!”
파랑이는 그 화풀이로 사역마들을 산맥의 밖으로 내쫓았다.
“까악!”
문득, 자신의 머리 깃털을 아나스타샤가 그러쥐자 파랑이가 버럭 소리쳤다.
아나스타샤는 그에 아랑곳없이 파랑이의 머리 깃털을 잡아 녀석의 고개를 틀었다.
왜곡을 꿰뚫어 보는 아나스타샤의 눈이 정상적이지 않은 공간을 찾아낸 것이다.
아나스타샤는 자꾸만 거만하게 치켜 올라가려는 파랑이의 머리 깃을 잡아 억지로 고개를 고정했다.
그제야 그곳이 마흔이 있는 방향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파랑이가 그곳을 향해 쏜살같이 내리꽂혔다.
***
“왔네.”
마흔의 위치를 찾고 온 파랑이와 아나스타샤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응.”
한세연의 손을 잡곤 기척 차단을 사용했다. 우리 둘의 존재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렇게 파랑이를 따라 30분가량 이동하는 동안, 교전 중인 수많은 생도를 마주쳤으나, 우리가 자신들 옆을 지나친다는 것을 알아차린 생도는 아무도 없었다.
“여긴가 보네.”
거대한 폭포수가 떨어져 내리는 절벽.
파랑이가 먼저 몸을 날렸다. 그리고 놀랍게도 파랑이의 몸은 절벽에 부딪히지 않고, 폭포 속으로 사라졌다.
마흔을 감추기 위해 펼쳐진 ‘환영마법’이었다. 우리도 파랑이를 뒤따라 폭포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진짜 감쪽같네.’
피부를 때리는 폭포의 차가운 감촉에 새삼 마법의 신비를 느끼며 절벽을 넘어서자, 새로운 광경이 나타났다.
젖은 줄만 알았던 우리의 옷은 말끔하게 말라 있는 채였다.
“드디어 오셨네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뻥 뚫린 숲길. 먼저 와 있던 아멜리아가 마치 시험관처럼 우리를 맞이했다.
“너 혼자냐?”
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묻자 아멜리아가 흐흥 입꼬리를 올렸다.
“예, 30분 전에 도착했답니다.”
굳이 묻지도 않은 시간까지 말하며 칭찬해달라는 듯 아멜리아가 눈을 반짝였다.
“이야. 대단하네.”
솔직히 먼저 도착해 있을 줄 알고 있었다.
인간탐지기인 아멜리아는 마기에 관해서도 여타 생도들보다는 뛰어난 탐지력을 자랑했으니까.
“그래서, 혼자는 못가니까 다른 사람이 오길 기다리고 있던 거야?”
“예, 잘 아시네요. 이 앞 길목에 스톤 나이트들이 있어요. 저 혼자서는 지나가기 어려워요.”
과연, 앞을 내다보니 길목의 좌우로 돌로 빚어진 기사 동상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리끼리는 벅차겠는데.’
저런 스톤 계열의 마수는 단숨에 쓰러트리기가 어렵다. 그런 녀석들이 이 앞에는 무려 15개체나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원거리 공격을 하는 직업인 사수, 비도술사, 마법사만 있었으니, 스톤나이트를 잡으려면 꽤나 애를 먹어야 할듯 싶었다.
그렇게 앞 라인이 없는 상황에 내가 다른 생도들을 기다려봐야 되나 싶을 때였다.
“역시 해솔이야. 먼저 와있었구나.”
“?”
뒤를 돌아보자 천우진과 은가예가 다가왔다. 은가예는 천우진을 따라온 듯했다.
그나저나 역시 해솔이라니······
얘는 내가 자신보다 먼저 마기를 거슬러 온 줄 알고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냥 정령 하나 잘 만나서 누워있다 왔는데 저리 띄워주니까 부담스러웠다.
이런 내 사실을 아는 한세연이 키득거렸다.
아무튼, 기다리던 검사 둘이나 왔으니 더 이상 지체할 건 없었다.
아멜리아도 그리 판단했는지, 나무에 기대놓았던 하얀 완드를 잡아들었다.
“이 앞에 스톤나이트들이 있어요.”
“나랑 천우진이 앞장서면 되겠네.”
“예, 부탁드릴게요.”
은가예의 말에 아멜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즉석에서 팀을 꾸린 우리는 마흔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조심해요. 이제 움직일 거예요.”
기사의 동상에서 열 발자국 가량 떨어진 거리에서 아멜리아가 경고했다.
“그럼 먼저 가면 되겠네.”
파앗! 땅을 박찬 은가예가 좌측의 스톤나이트를 향해 쏘아졌다. 뒤이어 천우진이 우측의 녀석을 노리고 내달렸다.
그러자 눈에 붉은빛을 내비치며 움직이기 시작하는 스톤나이트들.
콰앙! 쾅!
두 사람이 스톤 나이트와 검을 나누며 연신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역시나 천우진은 스톤 나이트 하나를 순식간에 두동강 내버렸다.
퍼버버벙!
한세연의 베레타가 불을 뿜고, 내 비도가 스톤나이트 하나를 요격한다.
뒤이어 조합마법을 완성한 아멜리아가 불덩이를 날렸다.
삽시간에 무너져내리는 스톤 나이트들. 은가예가 스톤 나이트 둘을 여유롭게 밀어붙였다.
그때, 돌연 스톤 나이트 넷이 방향을 틀어 은가예에게 달려들었다
손이 바빠진 은가예가 허둥지둥거리며 버럭 소리쳤다.
“으악, 야! 한세연! 너 지금 일부러··· 우, 우엇!”
“미안해, 조금 잘못 쐈나 봐.”
한세연이 사과했다. 하지만 말과는 달리 은가예가 허둥대는 것을 지켜보는 한세연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즐거워 보였다.
그녀가 스톤나이트들을 자극해 은가예가 견딜 수 있을 수준으로 몰이를 한 것이다.
‘은근 즐기네.’
한세연은 은가예가 허둥대는 모습을 즐기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공부를 이유로 도서관에 끌고 가는 것에도 그 부분이 어느 정도는 포함되어 있었다. 허둥대는 모습이 귀엽다나 뭐라나.
그렇게 은가예가 홀로 무려 스톤나이트를 7개체씩이나 잡는 대활약(?)을 펼치는 것으로 우리는 다음 관문으로 넘어갔다.
다음 관문은 지면에서 마법이 걸린 돌들이 일정 지역에 걸쳐 튀어오르는 함정.
저것들에 부딪히지 않고 지나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였는데, 이미 게임에서 1학기 기말고사를 겪은 나는 그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머리로는 절대 못 풀고, 몸으로 부딪혀 깨져봐야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건 체내의 ‘마력’을 가라앉히면 돌들이 알아서 늦게 올라와 빗겨간다는 것.
“아, 그런 거구나.”
내게서 정답을 들은 은가예는 스톤나이트 때와 달리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2관문을 먼저 지나갔다.
“으음······”
아멜리아는 튀어오르는 돌들에서 규칙성을 찾으려는 지 고운 미간을 좁히며 앓는 소리를 냈다.
“알려줄까?”
“괜찮아요. 저 혼자 풀어볼게요.”
이런 데서 묘한 자존심을 부리는 아멜리아는 이번에도 혼자 맞추려는 지 튀어 오르는 돌들을 유의 깊게 살펴보며 그 명석한 두뇌를 열심히 혹사시켰다.
“······.”
보고 보고 또 보았다. 계속 보기만 했다.
그녀가 아는 온갖 법칙을 다 대입해보았지만, 도무지 규칙성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당연했다.
멋대로 튀어 오르는 돌에 규칙은 무슨.
반면 천우진과 한세연은 마력을 가라앉혀야 한다는 정답을 깡그리 무시한 채, 오로지 ‘동체시력’만으로 함정을 모두 피해 지나갔다.
그 모습에 입술을 앙 문 아멜리아가 반쯤 포기했을 때였다.
먼저 넘어갔던 내가 돌아왔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내 모습을 본 아멜리아가 미안하면서도 감동을 한 듯 웃어 보였다.
“고마워요.”
“뭘?”
아멜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때문에 돌아오신 거 아니예요?”
“내가 왜?”
“······.”
멍해진 아멜리아를 뒤로하고 그녀 옆에 내려놓았던 짐 가방을 들곤 다시 넘어갔다.
결국 끙끙 앓던 아멜리아가 자존심을 접고 제 입으로 알려 달라고 소리친 뒤에야 우리는 다음 관문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렇게 뒤이어 나온 3개의 관문을 더 지나치자, 드디어 우리는 마흔의 영역에 들어섰다.
진득한 마기가 흘러나오는 영역. 그곳에 들어서 얼마 가지 못해 나는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이거, 생각보다 너무 먼데.’
내 이카루스의 반지는 아무리 적은 출력으로 사용해도 최대 가동 시간이 5분을 넘기지 못한다.
마기를 걷어내느라 계속해서 항마력을 내뿜은 이카루스의 반지는 가동 시간을 넘겼는지,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마흔이 나타나려면 제법 거리가 남아있었다.
파랑이의 불길로 마기를 태워버리면 되기야 했으나, 그건 가급적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였다. 돌연 내게 밀려오던 마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내가 옆을 돌아보며 조용히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
내 작은 감사에 한세연이 말없이 웃어 보였다. 곁에서 걷던 그녀가 마기의 방향을 자신 쪽으로 틀어버린 것이다.
모르도의 계약자인 그녀에게 마기의 방향을 트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 덕에 내게로 향하던 마기는 남김없이 사라졌다.
물론, 마기 외에도 정신적인 압박도 가해져 왔으나, 그 부분은 내 부동의 각인 덕에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10분 가량을 편하게 이동하자, 숲길 너머의 바위 언덕으로 거미줄처럼 균열이 간 거대한 검은 바위가 나타났다.
“저게······”
내가 중얼거릴 때다.
상태창 알림이 떠올랐다.
[마흔을 발견했습니다. 보상으로 500SP가 지급됩니다.]검은 바위는 영멸의 마인이 남긴 흔적, ‘마흔’이 새겨진 바위였다.
띠링!
[시련을 견디고 마흔에 다가가십시오. 그러면 추가 SP가 주어집니다.]“시련?”
내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였다. 문득, 일행의 걸음이 멈춰있었다.
“······.”
마치 혼이 달아난 듯 멍한 표정.
그들의 영혼이 빛을 잃고 투명해졌다.
시스템이 말하는 ‘시련’에 빠져든 것이었다.
그리고, 난···
멀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