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have any magic power, but I'm good at it at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93
§ 92화
삐이이─ 삐이이─
[20]울음을 토하며, 진동하는 팔찌.
그건, 시험의 종료를 의미하는 신호였다.
─아아, 들리십니까?
김주혁의 목소리가 팔찌에서 울렸다.
─현재 시각을 기점으로 생존 시험이 종료되었습니다. 생도들은 모두 현관 앞으로 모여주십시오. 다시 한번 말씀······
검을 멈춘 천우진의 눈에 놀람이 담겨 있었다.
“설마 이걸 노린 거야?”
“어, 조금 아슬아슬하긴 했는데, 성공했네.”
아슬아슬을 넘어서 심장이 쫄려 죽는 줄 알았다.
‘설마 기력이 이리 간단히 뚫릴 줄이야.’
나는 천우진의 돌진 경로에 기력의 벽을 만들어놓았었다. 탄성으로 인해 어지간한 마인들도 뚫지 못하는 벽을.
그런데, 천우진은 그 기력의 벽을 문자 그대로 그냥 찢어버린 것이다.
물론 아나스타샤가 있기야 했으나, 천우진은 내 예상보다 훨씬 터프한 놈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내가 이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슨 생각으로 맨몸으로 마력탄하고 마법을 받아내면서 돌격을 해? 미쳤냐?”
천우진이 제 몸을 신경 쓰지 않고 무식하게 돌격을 감행한 것이다. 내가 무슨 원수도 아니고······
“그래야 이길 수 있다 생각했거든. 해솔이 네가 몸을 아껴가면서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아니잖아?”
“······.”
“아끼지 않고도 졌지만 말이야.”
아하하. 민망하게 웃으며 천우진이 이마에 주륵 흘러내린 ‘핏물’을 닦았다.
내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아닌 게 아니라, 천우진의 몸은 현재 만신창이였다. 교복은 아예 걸레조각이 되어버렸고, 살갗은 뇌전에 그을린데다, 마력탄에 얻어맞은 전신에는 시퍼런 멍이 곳곳에 들어 있었다.
“···너, 병원 가봐야 되는 거 아니냐?”
“괜찮아. 이 정도는 금방 낫거든.”
말을 하며 천우진이 몸을 휘청였다.
“······.”
“하하, 정말 괜찮아. 노아선생님하고 수련할 때는 이보다 더 했어.”
그 정도면 수련이 아니라 범죄 아닌가?
대체 어떤 수련을 했길래······
“그럼 난 먼저 가볼게.”
“···그래, 조심하고.”
부축해준다는 걸 한사코 거부한 천우진이 등을 돌렸다. 멀어지면서 휘청이는 게, 타격이 상당한 듯했다.
그렇게 천우진을 보낸 나는 흘낏 옆을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아멜리아는 혼자 풀이 죽어있었다.
자신의 탐지가 파해 당했다는 것에 무척이나 분해하고 있는 것이다.
자존심이 강한 아멜리아는 본인이 자신하는 분야에서 지는 것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는 타입이었으니까.
하물며 팀에 피해가 갈 뻔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천우진이 이상한 거지, 네가 잘못한 거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내 말은 아멜리아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평소에 마력을 저런 식으로 죽이고 다니는 괴짜는 이터니티아카데미 전체를 통틀어서도 천우진이 유일했으니까.
사람의 몸으로 치자면 평소에 온몸에 힘을 바짝 주고 다니는 거다.
가능하냐 안 하냐를 떠나서, 그 짓거리를 24시간 내내 하고 다니는 변태가 어디 있다고······?
이건 누가 봐도 아멜리아가 피해자였다.
하여간 얘는 실력은 좋은데 항상 상대가 나빴다. 이러니 본인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클 수밖에 없었고···
하지만 이런 내 위로가 아멜리아의 귀에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나야말로 정말 감지되지 않는 놈이었으니까. 내 경우는 감지될 껀덕지가 없는 거였지만.
아무튼, 내 말이 기만으로 들렸을까 싶어 아차한 내가 말을 정정하려던 때였다.
아멜리아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뇌신의 분노가 막힐 줄은···”
“······.”
음.
뇌신의 분노라니, 저런 작명을 태연히 입에 담을 수도 있구나······
“뇌신, 뭐?”
새삼 감탄하며 되묻자 흠칫 놀란 아멜리아의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느낌표가 최소 4개쯤 떠오른 듯했다. 그리고 겨우 떠듬거리며 한다는 변명이.
“라, 라이트닝 스피어라고요.”
“아니아니, ‘라’하고 ‘뇌’는 발음기호부터가 너무···”
“아니라니까요.”
바로 말을 끊어버리는 아멜리아.
아예 내가 입만 열면 즉각적인 선제조치를 가하려는지 나만 뚫어지게 주시한다.
“그만해요.”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지금 웃었잖아요.”
“내가?”
“예, 입꼬리 엄청 씰룩였어요.”
“그랬구나.”
나도 모르게······
“아무튼 아니에요.”
“알았어.”
‘진짜였네.’
마법이란 연상의 학문이다.
번개마법을 쓰려면 번개를 떠올리고, 화염 마법을 쓰려면 화염을 떠올리듯, 마법사들은 자신의 연상을 강화시킬 수 있는 자신만의 고유단어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 경우는 속으로만 읊조리는 거고, 학계공식 명칭은 따로 있다. 방금 아멜리아가 변명하듯 소리친 라이트닝 스피어처럼.
참고로 아멜리아같은 경우는 고작 2서클 마법에도 풍왕의 질주라던가, 여신의 징벌 등, 굉장히 거창한 연상단어를 써서 스스로의 심상을 강화시킨다······라고 게임에 나와 있는 걸 얼핏 본 적이 있다.
작명 센스가 들어주기 조금, 많이 민망했기에 입밖에 내뱉으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단어들이었다. 저걸 마법을 쓸 때마다 항상 속으로 되뇌었다는 건가. 얘도 참 대단······
그때, 아멜리아와 시선이 마주쳤다.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입만 오물거리던 아멜리아가 쪼르르 도망치듯 앞장서 갔다.
나는 옆에서 키득거리고 있는 한세연을 돌아보며 물었다.
“내가 뭐 했어?”
“응, 새삼 감탄하듯이 쳐다보던데?”
“그래?”
그랬나?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한세연이 내 허리춤을 잡았다. 왜 그런가 싶어 쳐다보니 그람을 걸어 놓았던 가죽홀더가 풀어져 덜렁이고 있었다.
홀더를 다시 제대로 고정시킨 한세연이 헐렁해진 부분을 손수건으로 묶어주었다.
그 과정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부동자세로 가만히 서 있어야만 했다.
“고맙다.”
“당연한 일인 걸.”
멋쩍게 볼을 긁적이자 한세연이 방긋 웃어 보였다. 때마침 두 명의 생도를 잡았던 비도들이 날아와 홀더에 안착했다.
그리고 나는 한세연의 대답이 어딘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왜 당연한 일이지?
***
산맥의 숙소로 돌아온 나를 가장 먼저 반긴 건 은가예였다.
먼저 탈락했는지, 한달음에 달려온 은가예가 소리쳤다.
“야, 살았냐?”
“어.”
내가 팔찌를 들어 보였다.
[50]“헐, 미친······”
팔찌의 점수를 확인한 은가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천우진이 가지고 있던 27점에, 내가 매점으로 벌어들인 점수까지 합한 것치곤 낮은 점수였으나, 그만큼 여기저기 뿌린 게 많았다.
아멜리아와 은가예한테 8점, 10점, 그밖에 몇몇 생도들에게도 각각 3점씩을 뿌리고 이 정도나 남은 거였으니까.
참고로 은가예는 나와 함께 다니지는 않았으나, 내가 따로 포인트를 주고, 일을 맡겨놓았었다.
천우진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면서 유인 좀 해달라고.
내가 아는 생도 중에 가장 몸이 날랜 생도가 바로 은가예였으니까.
물론, 원래라면 포인트 10점을 준다고 해서 은가예가 내 말을 들어줄 리는 없었다.
그럼에도 은가예가 내 말을 들어준 이유는 첫째 날에 덤벙대며 일을 제대로 못 했음에도 불구하고, 침낭에 텐트, 식량까지 넉넉히 챙겨준 내 은덕이 빛을 발한 것이다.
물론 호의라기보단 큰그림을 그리기 위한 사전조치였다. 그렇게 은가예가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천우진이 나를 찾는 시간이 많이 늦춰졌으니, 제대로 된 투자라고 할 수 있었다.
뭐, 은가예는 이리저리 치이다가 광탈을 해버린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사망시에 지니고 있던 포인트로 등수가 계산되니까, 은가예로서도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은가예 외의 생도들에게도 포인트를 주고 비슷한 일을 시켰다.
자원이 넘쳐났으니 팍팍 쓰고도 남아돌았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한세연한테는 포인트를 안 줬네.’
워낙 붙어 다니다 보니, 줘야된다는 자각까지 잊고 있었다. 애초에 먼저 달라는 말을 해오지도 않았고. 뭐, 그래도 크게 문제는 없었다.
생도들을 잡는 건 전부 한세연한테 몰아줬으니까. 포인트도 제법 많이 벌지 않았을까?
“몇 점 벌었냐.”
문득 궁금해진 내가 옆을 돌아보며 묻자, 팔찌를 확인해 본 한세연이 답했다.
“42점이네.”
“······.”
음, 안 주길 잘했다.
***
시험팔찌를 반납한 생도들은 교체해 들어온 교관인 김주혁으로부터 고생했다는 격려의 말을 듣곤 바로 각자 샤워를 하러 올라갔다.
지난 3일간 밖에서 지내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했던 생도들은 온수샤워를 무척 반기는 분위기였다.
그렇게 깔끔하게 몸을 씻고, 한동안 각자의 방에서 쉬고 있자니, 낮 12시가 되어 취사장으로 이동했다.
아멜리아는 그때까지도 나와 말을 한마디도 나누려 하지 않았다.
뇌신의 분노가 가져다준 충격이 상당히 컸던 모양이다. 후유증이 가시려면 적어도 며칠 이상의 요양기간이 필요할 듯싶었다.
괜찮다고, 뇌신이건 천신이건 다 이해한다고 해줬음에도 오히려 더 말을 하지 않으니 뭐가 문제인지······
참 취미생활이란 공유하기 어려운 건가 보다. 그나저나.
“대박이네.”
마흔이 존재하는 태백산에서는 한 가지 진귀한 재료가 재배된다.
만드라화.
한국에서는 오직, 재배되는 곳이 이곳에서밖에 없는데다 수량이 엄격히 관리되어 외부로 반출되지 않는 산삼 비슷한 녀석이다.
보통의 초인에게는 마력을 미약하게 증진시켜주는 영약이지만 ‘보통의 초인’ 이하인 내게 만드라화는 영약 그 이상이었다.
많이 먹으면 내성이 생기지만, 두 개까지 섭취해주면 무려 체력이 1씩이나 성장하는 보물인 것이다.
그런데 기말고사에 고생했다는 의미로 점심식사에 그 만드라화가 나왔다.
아그작.
===
[태백산의 영기를 먹고 자란 만드라화를 섭취했습니다. 하루에 걸쳐 체력이 영구적으로 0.5증가합니다.] [만드라화로 인한 체력증가는 2회 가능합니다.] [만드라화 (1/2)]===
씁쓸한 뿌리를 한 입 깨물자 떠오르는 상태창.
‘대박이네.’
문제는 만드라화가 1인당 1개, 정량배식이라는 거다.
심지어 아주 미량이라지만 마력증가라는 메리트도 있기에 이를 먹지 않는 생도가 있을 리가······
있었다.
나는 내 바로 옆에 아예 손도 대지 않은 만드라화를 발견했다.
살짝 양심에 찔렸지만 물어보는 건 자유였기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거 안 먹으면 나 먹어도 돼?”
“응.”
눈을 깜빡이다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는 건 바로 한세연이었다.
나는 사양 없이 바로 만드라화를 씹어 삼켰다.
“씁쓸하지? 여기 잡채도 있어.”
내가 식사하는 걸 즐겁게 바라보며 한세연이 자기 음식도 넘겨주었다.
마치 내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는 양, 턱을 괴고 지그시 미소를 짓는다.
익숙한 광경이었기에, 나는 개의치 않고 열심히 만드라화를 씹어 삼켰다.
[만드라화를 2회 섭취했습니다. 하루에 걸쳐 체력이 영구적으로 1.0증가합니다.]“오.”
태백산맥에 온 보람이 아주 제대로 충족되는 순간이었다.
***
2차시험인 생존서바이벌이 끝났기에, 1학년 생도들은 식사를 마치자 마자 바로 태백산맥을 떠났다. 복귀는 올때와 마찬가지로 워프존을 통해서였다. 그리고 사흘이란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막 실기시험이 끝난 와중이었지만, 생도들은 쉴 틈이 없었다. 실기 뒤에는 필기시험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생도들이 필기시험 준비에 열중이던 어느 날이었다.
1학년 로비 게시판에 한 가지 글이 게재되었다.
===
[1학년 1반 생도, 이해솔 실종.] [마인에 의한 납치.]===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아카데미가 술렁였다.
생도들이 태백산맥에 다녀온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