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0화(10/241)
* * *
‘손, 바닥에 굴러서 더러울 텐데.’
엘리에게 끌려가는 내내, 데미안은 멍하니 그런 생각을 했다.
사실 아직도 이 상황이 꿈만 같았다.
‘화내는 모습은 처음 봐.’
왜 화가 났을까.
역시 내가 약해서, 귀찮게 굴어서일까? 아니면, 이것도 꿈인가.
그때, 엘리가 우뚝 멈춰 섰다.
데미안도 따라 발걸음을 멈췄다.
“데미안.”
저를 돌아보는 엘리의 표정이 무시무시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울음을 참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왜 가만히 있어?”
“…….”
“왜 저항하지 않는 거야?”
참아왔던 물음을 뱉는 엘리의 목소리엔 슬픔이 가득했다.
그게 꼭 눈물을 참는 것만 같았다.
데미안은 손을 뻗으려다 멈칫했다. 더러운 제 손으로 엘리의 얼굴을 더럽힐 순 없었다.
“너는…….”
물어봐도 될까. 망설이는 듯 입술을 한번 달싹인 데미안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불쌍해?”
입 밖으로 꺼낸 물음은, 엘리의 질문에 맞는 대답이 아니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었지만 말이 제멋대로 튀어나왔다.
“엘리는 내가 불쌍해서 챙겨주는 거야?”
“…….”
“그런 거라면 그냥,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데미안은 고개를 푹 숙였다. 울컥, 제멋대로 나올 것만 같은 울음을 몇 번이고 삼켜야만 했다.
“난 이런 거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
“데미안.”
엘리가 데미안의 말을 잘랐다.
“내가 널 불쌍하게 여긴다고 생각했어?”
데미안은 말없이 입만 꾹 다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서늘한 바람 소리와 천천히 내리는 눈이 그들의 간격을 메웠다. 데미안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였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어서 미안해.”
생각지도 않은 말이 돌아왔다.
데미안은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엘리를 올려다보았다.
엘리는 억눌린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데미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약해 보인다고 말해서 미안해. 그때 바로 사과했어야 했는데.”
“…….”
“내 생각이 틀렸어. 정말 미안해, 데미안.”
담백한 사과였다. 하지만 겉치레로 느껴지지 않았다.
엘리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엘리는 진심으로, 데미안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고난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아이였다. 데미안은 그 누구보다도 강했다.
“난, 나는, 사과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라, 그저…….”
데미안이 대답을 찾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이상했다. 엘리의 말은 저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뚝. 데미안의 하얀 볼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
데미안은 조금 놀란 얼굴로 제 뺨을 더듬었다.
주인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이었다.
데미안이 당황하며 뺨을 닦아냈다. 그러나 한번 흘러내린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질 않았다.
데미안이 뺨을 벅벅 문지르자 조금 서늘한 손이 데미안을 이끌었다.
“그렇게 닦으면 쓰려서 아파.”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엘리가 손을 맞잡았다.
또다.
뜨거운 물을 한가득 마시고, 따뜻한 이불을 덮는 느낌.
그게 무척 생경해서, 데미안은 다시금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입이 또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나는, 엘리가, 날 귀찮아한다고, 생각했어.”
“내가 너를? 왜?”
“그냥…….”
울컥한 마음에 그동안 참아 왔던 서러움이 폭발했다. 한 번도 누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은 없었는데도.
“데미안, 그만 울어. 상처가 쓰릴 거야.”
“엘리는, 내가 싫어?”
이어진 물음에 엘리가 멈칫했다.
푸른 눈망울에 눈물을 한가득 매단 데미안이 울먹이며 엘리를 올려다보았다.
잡힌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이의 악력으로는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힘.
엘리는 잠시 입을 벙긋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내가 널 왜 싫어해. 싫어하지 않아.”
“……정말?”
“응. 정말.”
“그럼, 왜, 왜 내 눈 피했어?”
“응……?”
의중을 알 수 없는 물음에 엘리가 눈을 깜빡였다. 데미안이 눈물이 가득한 얼굴로 훌쩍였다.
“심장에 해롭다고…… 분명 엘리가…….”
“야, 그건…….”
네 얼굴이 너무 예뻐서 그런 거잖아. 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어서 답답할 정도였다.
으으. 이젠 엘리의 얼굴도 조금씩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싫, 싫어서 피한 거 아니야. 그냥, 좀 그래서…….”
엘리의 말에 데미안이 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눈 안 피할게. 약, 약속!”
“저, 정말?”
“응. 봐, 새끼손가락 걸었다.”
엘리가 맞잡은 새끼손가락을 흔들었다.
그러니까 그만 뚝. 엘리의 말에 데미안이 코를 훌쩍였다.
그러나 아직 감정이 주체되지 않는 듯, 끅끅대는 건 여전했다.
“앞으로, 손 계속 잡을 거야.”
“응, 손잡자.”
“……밥 먹을 때도, 옆자리에서 먹을래.”
“그래, 알았어.”
그렇게 엘리는 몇 차례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야 데미안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이게 뭐야. 예쁜 얼굴이 엉망이 됐잖아.”
발갛게 달아오른 눈가와 상처로 범벅된 얼굴을 보며 엘리가 밉지 않게 타박했다.
“앞으론 맞고만 있지 마. 너도 반격해.”
“응.”
“누구도 널 함부로 대할 수 없어. 알았지?”
“응.”
“신경 쓰이는 게 있으면 바로바로 물어봐.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응.”
마지막 대답은 한 박자 느렸다.
엘리는 못 말린다는 듯 피식 웃으며 데미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데미안은 훌쩍이면서도 얌전히 엘리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이제 들어가자. 상처 치료도 해야지.”
데미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를 졸졸 따라갔다.
문득, 전처럼 가슴께가 따뜻했다.
“데미안. 널 도와줄 사람은 있어, 분명히.”
“그 사람은 믿어도 돼.”
“행복해질 거야.”
엘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 감각은 행복이었다.
이렇게 눈물이 나는데도 기분이 좋을 리 없으니까.
쏟아지는 눈처럼, 데미안이 마음의 벽을 무너뜨린 순간이었다.
* * *
“자, 다 됐다.”
한바탕 뒹군 탓에 데미안의 몸은 상처로 가득했다.
치료를 끝마친 나는 아직도 붉은 기가 가득한 눈가를 살살 쓸어주었다.
어느새 밤은 깊어져, 아이들은 이미 색색거리며 자는 중이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카르센 무리들은 들어오지 않았다.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만.’
“자, 이제 자자.”
그렇게 말하며 연고를 정리하는데, 옷자락이 쭈욱 늘어났다.
뒤를 돌자 데미안이 입술을 오물거리고 있었다.
“왜 그래?”
“……엘리랑 같이 자도 돼?”
“나랑?”
눈을 깜빡이자 데미안이 볼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자꾸 악몽을 꿔서 무서워…….”
“하지만 침대가 좁아서 불편할 텐데.”
망설이며 말끝을 늘이자 데미안이 울상을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
“안 돼……?”
저 얼굴을 보고 어찌 안 된다는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려운 일도 아니고.’
내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데미안이 언제 울었냐는 듯 환하게 웃었다.
침대 속으로 들어가자 데미안이 냉큼 내 옆에 누웠다.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에는 전과 같은 쓸쓸함은 보이지 않았다.
보잘것없는 원생 1인 내가, 이 아이의 슬픔을 조금이나마 덜어준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뿌듯했다.
나는 헝클어진 데미안의 머리를 정리해 주며 원장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되새겼다.
‘원장이 분명 슈에츠 공작 이야기를 꺼냈어.’
공작은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이 곳에 올 것이다.
그 말인즉, 데미안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 아쉬워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새 정이 든 모양이었다.
“엘리, 무슨 생각 해?”
눈치 빠른 데미안이 빼꼼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그냥, 이렇게 있으니까 꼭 누나, 동생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자 갑자기 데미안이 입을 꾹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