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00)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00화(100/241)
* * *
“뭐가 그리도 당당해서 여기 있는 건지.”
클로라가 피식 웃으며 턱을 까딱였다.
“지금 뭐라고-”
“데미안.”
조용히 속삭이자 데미안이 입을 다물었다.
누가 시비를 걸어도 무시해 달라는 내 말을 떠올린 것이다.
“……괜찮아?”
분한 듯 클로라를 노려보던 데미안이 한결 누그러진 얼굴로 날쌜 폈다.
“응. 나는 괜찮아.”
웃으며 다시 자세를 바로 한 나는 클로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깨의 힘을 좀 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뭐, 뭐라고요?”
“힘이 너무 들어가니, 파트너분께서도 힘들어하시잖아요.”
클로라와 춤을 추던 영식의 얼굴이 새빨갰다.
클로라의 옷에 주렁주렁 달린 다이아몬드가 상할까 봐, 잔뜩 긴장한 채 몸을 움직이는 게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사교댄스의 기본은 배려라고 들었는데.”
나는 빙그레 웃었다.
“좀 더 분발하셔야겠어요.”
그 말을 남긴 채 데미안과 다시 춤을 이어 나갔다.
클로라는 분한 얼굴로 있는 힘껏 나를 노려봤다.
그 따끔한 시선을 느끼며, 나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춤을 추다 다른 사람과 부딪히는 일은 흔했다.
어떻게 대처하고 넘어가느냐가 관건이었다.
‘표정도 제대로 못 숨기다니.’
내색하진 않지만, 높으신 분들께선 클로라의 악에 받친 표정을 보았을 터다.
‘좋아. 일단 자극은 끝났어.’
그 순간, 음악이 멈췄다.
끝마무리까지 완벽하게 마치자 박수 갈채가 쏟아졌다.
“데미안, 사람들이 다 너만 보고 있어.”
인사를 나누며, 나는 데미안에게 작게 속삭였다.
내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빛은 데미안만을 비추기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다.
‘우리 애가 좀 천사 같긴 하지.’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나보다는…….”
“응?”
데미안이 우물거리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사이, 악단이 악보를 정리했다.
데뷔탕트를 치르는 자제들의 춤이 끝나면, 그 이후로는 모두가 자유롭게 춤을 출 수 있었다.
대신 사교계에선 첫 춤을 췄던 상대와 바로 연달아 춤을 추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그래서 나는 얌전히 한쪽 구석에 몸을 숨겼다.
더 춤을 췄다간 온몸에 경련이 날지도 몰랐다.
공작은 잠시 다른 귀족들과의 대화를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다시 성문을 개방한다는 말이 사실인가 봐.’
그래서 이렇게 어른들이 없구나.
클라이더를 가진 채, 10년 넘게 닫혀 있던 슈에츠의 성문이 다시 열렸다.
귀족들은 어떻게든 슈에츠와 연을 이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을 터였다.
“데미안, 넌 가서 춤춰도 돼.”
나는 옆에 선 데미안에게 넌지시 말했다.
두 번째 춤부터는 파트너가 아닌 다른 사람과 춤을 춰도 되었다.
이런 사교계를 많이 즐겨두는 것도 미래를 위한 공부였다.
내 말에 연신 우리 쪽을 힐끔거리던 영애들이 눈을 빛냈다.
“난 괜찮아.”
그러나 데미안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공작님이 지키고 있으랬어.”
“응? 뭘 지켜?”
나한테는 그런 말 안 했는데? 내 얼굴에 물음표가 동동 떠올랐다.
“……소중한 거.”
데미안은 의미 모를 말만 남기고선, 경계 가득한 시선으로 주위를 바라보았다.
“엘리 님!”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델란!”
“여기 계셨군요!”
아델란이 볼을 빨갛게 물들인 채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멀리서부터 빛이 난다 했는데, 역시 아델란이었구나.’
오늘 아델란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살굿 빛 드레스는 옅은 주황빛 머리카락과 갈색 눈을 가진 그녀와 너무나 잘 어울렸다.
“자, 잘 어울리나요……?”
“그럼요!”
“저, 저는 너무 어색해요. 항상 어두운 계열만 입어서…… 이런 밝은 건 좀…….”
아델란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렸다. 하지만 상기된 표정만큼은 감추지 못했다.
“너무 예뻐요.”
“에, 엘리 님도요……. 아까 춤추실 때 너무 아름다우셔서…… 가슴이 막 두근두근 뛰었어요.”
아델란이 수줍게 말했다.
그녀의 순수한 표현력에 저절로 흐뭇한 웃음이 지어졌다.
그때, 한 타임이 끝난 듯, 악단이 음악을 멈췄다.
“저, 저어…… 엘리 님.”
아델란이 우물거렸다.
“혹,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랑…… 같이 춤…… 춰주시지 않겠어요?”
“저랑요?”
나는 조금 놀랐다.
데뷔탕트는 사교계의 모임인 만큼 성별의 제한이 없었다. 어린 영애들끼리 함께 춤을 추는 경우도 있었지만…….
‘아직 아델란이 첫 춤을 추는 모습은 못 봤는데.’
그러자 아델란이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저는…… 엘리 님과 첫 춤을 추고 싶어요…….”
사랑을 고백하는 수줍은 소녀 같았다.
그러니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클로라가 이쪽을 바라보며 씩씩거리는 것이 보였으니, 이 순간만큼 좋은 타이밍은 없을 터였다.
“잠깐 다녀올게, 데미안. 이쪽에서 기다리고 있어.”
데미안은 입을 벙긋거리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델란과 함께 손을 잡고 연회장 가운데로 나섰다.
* * *
데미안이 홀로 남겨지자 어린 영애들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그러나 누구 하나 쉽게 다가가지 못했는데, 그를 둘러싼 범접할 수 없는 기운 때문이었다.
온순한 기색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차가운 표정만이 내려앉았다.
“부인과 함께 있을 땐 잘 웃던데…….”
“자리가 조금 불편하신가 봐요.”
영애들은 어색하게 웃으며 데미안의 심기를 유추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데미안을 힐끔거렸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데미안의 시선은 한 곳에 고정되어있었다.
영애와 함께 춤을 추는 엘리는 눈이 부시게 빛났다.
세상의 모든 빛이 엘리에게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춤을 추는 게 즐거운 듯, 엘리가 활짝 웃었다. 덩달아 미소 짓던 데미안이 문득 표정을 굳혔다.
저 웃음이 제게만 고정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왜 이러지?’
요즘 들어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나쁜 생각이라며 엘리에게 혼날 텐데…….
하지만 마음을 꾹꾹 옥죄는 알 수 없는 감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데미안이 얼떨떨한 얼굴로 가슴께에 손을 올릴 때였다.
“꺄아악!”
악단의 선율 사이로,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 * *
“내 다이아몬드!”
클로라가 비명을 지르며 허둥거렸다.
바닥에는 옷에 달려 있던 바이올렛 다이아몬드가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좌중이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두 번째로 나타난 다이아몬드 광산이었다.
날이 갈수록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중인데, 저 귀한 것이 바닥에 떨어지다니.
“어, 어떻게 이런 짓을…….”
클로라의 눈동자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너무하셔요, 엘리 님.”
이윽고, 클로라가 노골적으로 이름을 언급하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엘리에게 쏟아졌다.
엘리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부딪힐 타이밍을 보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노골적일 줄이야.
부딪히는 시늉이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채 눈물을 뚝뚝 흘리는 소녀의 모습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아프게 할 정도였다.
“엘리!”
황급히 다가온 데미안이 엘리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응. 난 괜찮아.”
그때였다.
“이게 무슨 일이오!”
웰시 남작이 노성을 터뜨리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아버지……!”
“클로라!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웰시 남작이 바닥에 널브러진 바이올렛 다이아몬드를 확인하곤 얼굴을 굳혔다.
“영, 영애께서, 저를…….”
클로라의 말에 웰시 남작이 도끼눈을 뜨며 엘리를 바라보았다.
데미안이 보호하듯 엘리 앞에 섰다.
“감히 내 귀한 딸을 건드리다니……! 가만두지 않을-”
“그건 내가 할 말 같은데.”
그때, 낮은 저음이 좌중 위로 내려앉았다.
어느새 다가온 슈에츠 공작이 싸늘한 얼굴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멋모르고 입을 나불대는 것도 정도 껏 해야지.”
“어찌 그런 말씀을……!”
웰시 남작이 파르르 떨었으나, 공작의 기세에 눌려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공작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세를 낮춰 엘리를 살폈다.
“다친 곳은.”
“……없어요.”
“발은, 걸리지 않았고?”
“네.”
괜찮다는 말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공작은 연신 엘리를 살폈다.
“공작님! 지금 제 말을 무시하시는 겁니까?”
웰시 남작이 다시금 분노를 터뜨렸다.
“많이 놀란 것 같은데. 정말 괜찮은 것이냐.”
하지만 공작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 듯 엘리를 바라볼 뿐이었다.
완벽히 무시당한 웰시 남작이 이를 아득 갈았다.
“……공작님. 그렇게 싸고 도니 이 사달이 난 겁니다. 먼저 부딪혀놓고 사과도 않는 이 무례를 그냥 보고만 계시다니요!”
엘리와 데미안을 살피던 공작이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슈에츠 공작은 웬만한 기사보다도 큰 체격을 가졌다.
그가 내려다보자 위압감에 숨이 막힐 정도였다.
“그대는 눈이 장식인가 보군.”
“무, 무슨 말씀을…….”
“보석이 떨어질 정도로 내 아이와 부딪혔다면 파트너도 함께 넘어졌어야 하는 것을.”
그의 적안이 한 곳에 닿자, 이끌리기라도 한 듯, 모두가 그쪽을 바라보았다.
“왜 저 영식은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거지?”
공작의 말에 클로라와 춤을 췄던 영식이 몸을 움찔 떨었다.
“어, 억지 부리지 마십시오! 같이 넘어지지 않았다는 말은 허무맹랑한 핑계일 뿐입니다!”
“그럼 정정하지. 영애의 파트너는 함께 넘어지고 싶지 않아, 재빨리 손을 놓은 거라고.”
웰시 남작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공작의 말 한마디에 클로라는 파트너에게 버려진 꼴이 되었다.
웰시 남작이 이를 악물었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그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연회장에 들어오기 전, 황후께서 제게 은밀히 말씀해 주신 내용이었다.
황후께서는 비밀에 부치라고 하셨지만, 제가 모욕을 당했으니 황후께서도 나서 주실 터.
‘그러니 이 일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 있다.’
생각을 마친 웰시 남작이 조소하며 내뱉었다.
“천한 계집을 데려와 며느리로 삼은 것도 모두 이 때문입니까? 교양도 잊고 제멋대로 날뛰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