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03)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03화(103/241)
황제는 물론, 황후까지 딱딱하게 굳었다.
어린아이, 그것도 도둑의 딸인 내가 새로운 신성석을 발견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듯했다.
뒤편에서 비웃고 있던 마테오의 얼굴이 일그러지니, 더욱 고소한 기분이 되었다.
‘하지만 이제부터 시작이야.’
“제일 귀한 건, 폐하께 먼저 바치는 거라고 배웠어요…….”
어깨를 축 늘어뜨린 난, 혼나는 강아지처럼 눈치 보듯 힐끔거렸다.
“하지만 제가 발견했다고 하면, 믿지 않으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신전에 드렸는데…….”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데미안이 때맞춰 내 손을 꼭 잡았다.
데미안은 날 위로해 주려고 한 행동이었겠지만, 어른들의 눈엔 우리의 모습이 퍽 짠하게 보일터였다.
“신전에선 제가 불경한 아이라고 믿어주지 않았어요. 저는 죄 많은 아이니까…….”
“그러나 영애가 발견한 사실을 숨긴 건 사실이지.”
황후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숨긴 건 신전입니다, 폐하.”
내가 말할 때는 계속 침묵을 지켰던 공작이 여상한 얼굴로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동부의 신관들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서신도 함께 보냈을 텐데…….”
공작이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
“그러니 이토록 어린아이를 힐난하시는 거겠지요.”
황후가 대답하지 못하고 이를 악 물었다.
‘반박하지 못하겠지.’
신전은 내 결혼 문제와 신성석 발견을 숨겼다.
신전과 황실의 관계는 조금씩 어긋나고 있을 터였다.
‘역시 마테오에게 보여주길 잘했어.’
나는 신성석 배달부가 되어준 마테오에게 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황제와 황후는 싸늘하게 입매를 굳혔다. 떨리는 시선이 혼란스러운 감정을 말해줬다.
‘당연하지.’
나는 제국 모두가 아는 ‘불경한 자’의 딸이다.
신성석을 얻으려면 발견자인 나를 모두가 보는 앞에서 면죄(免罪)해 주어야 했다.
‘헤론 님의 수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거야.’
“제국에 귀한 공헌을 했다고 판단된 경우, 상대가 누구든 간에 죄를 용서해 준다고 제국 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이라 그때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물론. 역사상 없었던 일을 해내야겠지만요.”
헤론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뒤늦게나마 이해한 덕분에 이 상황까지 몰고 올 수 있었다.
물론 나를 용서해 주느니, 신성석을 받지 않겠다 말할 수도 있겠지만…….
신성석을 보급하던 신전과 사이가 틀어졌다.
공급이 완전히 끊긴다면 황가라고 해도 힘을 잃는다.
‘게다가…….’
나는 슬쩍 주위를 훑었다.
내가 엄마의 딸인 게 밝혀졌을 땐, 다이아몬드를 훔쳤을지도 모른다며 수군거렸던 사람들이.
“어머나…….”
이제는 나를 짠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척이나 무서울 법도 한데, 폐하께 먼저 드리려고 했다니. 어쩜 마음이 저렇게 고울까요.”
“애가 무슨 죄겠어요. 아직 저렇게나 어리잖아요.”
사람들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슈에츠 공작님이시잖아요. 괜한 아이를 데려왔을 리 없어요.”
“영민하신 걸 알아본 거죠.”
손가락질할 때는 언제고, 슈에츠 공작이 곁에 있으니 여론이 바뀌었다.
“게다가 새로운 신성석도 발견했고…….”
물론 그 짧은 대화 속에서도, 이익을 얻기 위해 번뜩이는 마음은 숨기지 못했지만.
‘우선 당장은 내 편이야.’
이제 황제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나를 면죄해 주지 않으면, 신성석을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사람들의 질타도 피할 수 없겠지.
하지만 신성석을 얻기 위해선 황제가 직접 도둑의 딸이라는 꼬리표를 제거해줘야 한다.
황제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얼마간의 정적 후, 황제의 입이 벌어졌다.
“……하하.”
공기를 내뱉듯, 작은 숨을 내뱉다가.
“하하하!”
이내 즐거운 이야기라도 들은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내 정말 특별한 일을 겪는군.”
황제가 웃음을 머금으며 나를 향해 몸을 낮췄다.
“세상에!”
좌중이 경악스러운 숨을 내뱉었다.
황제는 결코 남에게 몸을 숙이지 않는다. 그런 그가, 내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영애처럼 영민한 아이는 처음이군. 부모의 그늘 아래 숨어 있기는 아까워.”
햇빛을 닮은 금안이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꿰뚫어 보기 위한 탐색 같기도 했고,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참 맑은 눈을 가졌군, 영애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놓쳤던 것을 눈앞에 둔 사람처럼.
“공작이 왜 아이를 그토록 품에 싸고 도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아.”
언제 그랬냐는 듯 황제가 장난스레 웃었다. 공작이 미약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 이야기는 공표 후에 해도 괜찮으실 듯합니다.”
“하하! 그렇지. 맞는 말이야.”
불경한 공작의 태도에도 황제는 호탕하게 웃었다.
“……모든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지.”
뜻 모를 말을 중얼거린 황제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영애.”
“……예, 폐하.”
“오늘 부로 영애의 그림자가 길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약속하지.”
황제의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들이켰다.
“폐하! 어찌 그런……! 말도 안 됩니다!”
황후가 반박하듯 강하게 소리쳤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국에서 ‘그림자가 길어진다’는 건 죄의 질이 그만큼 나빠진다는 걸 의미했다.
그림자가 제일 짧아지려면 태양이 바로 머리 위를 비춰, 발밑에 고여 있을 때가 유일했다.
즉, 황제의 저 말은 내 모든 죄를 없애줌과 동시에…….
‘나를 지켜본다는 뜻도 돼.’
나는 치맛단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황제가 쉽게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했었다.
‘그래도 이렇게 노골적일 줄은 몰랐어.’
나는 입술을 잠시 깨물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폐하.”
“허허. 그래그래. 참으로 귀엽고 영명하군.”
웃으며 나를 바라보던 황제가 곁에 있던 데미안에게 시선을 두었다.
“……그대가 클라이더 공작의 아들인가.”
“……데미안입니다.”
데미안이 정중히 인사하자 황제가 느릿한 숨을 내뱉었다. 숨소리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내 그동안 클라이더에게도 너무 무심했지. 이렇게 만날 수 있다니 다행이군.”
그가 데미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결혼을 했다 들었는데 내 제대로 된 축하를 못해주었군.”
데미안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늦게라도 부탁이 있으면 말해보게. 단, 범위는 연회장 내에서만 가능해.”
“…….”
“내 오늘은 일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손주에게 장난치듯 장난스럽게 웃었지만, 그의 말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다.
연회장에서 어린 소년이 황제에게 부탁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데미안을 무시하는 거야.’
범위는 연회장으로 한정되어 있다.
어떤 청을 말하든, 황제에게 그런 부탁밖에 하지 못하냐며 비웃음을 살 것이 뻔했다.
“하면.”
그때 데미안이 입술을 달싹였다.
“저 다이아몬드의 진상 조사를 해주십시오.”
여린 미성에 황제가 미간을 좁혔다.
깜짝 놀란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이아몬드? 그게 무슨 말이지?”
“제 부인은 다이아몬드가 가짜라고 말했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
“하여 폐하께서 제 부인의 말을 믿어주신다면, 저 다이아몬드가 가짜인지 아닌지 밝힐 수 있을 겁니다.”
데미안의 말에 황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힐끔 시선을 돌리자 웰시 남작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게 보였다.
하지만 황제가 직접 내뱉은 말이다. 거부한다면 스스로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꼴이었다.
“흐음.”
황제가 지그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데미안은 고아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리하지.”
황제가 한참 만에 긍정을 내뱉었다.
“황후. 이 일은 그대에게 맡기려고 하는데. 어떻소?”
“폐하, 그건…….”
“웰시 남작과 잘 알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알겠습니다, 폐하.”
바들바들 떨던 황후가 간신히 대답했다.
“자, 그럼 오늘 일은 후에 논의하는 것으로 할 테니 소란은 여기까지 겠군.”
언제 그랬냐는 듯, 황제가 너그럽게 웃었다.
그러자 입구를 지키던 기사들이 웰시 남작에게 다가갔다.
“안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나, 나는…… 그러니까…….”
그가 도움을 요청하는 얼굴로 황후를 바라보았으나, 돌아오는 동아줄은 없었다.
웰시 남작은 지옥에 끌려가는 사람처럼 몸을 움직였다.
“아버지, 안 돼요! 다 거짓말이야! 저 계집의 말은 다 거짓말이라고요!”
뒤늦게 정신을 차린 클로라가 기사의 팔을 붙들곤 발악하듯 외치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이제 남은 건, 바이올렛 다이아몬드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뿐이었다.
나와 데미안을 노려보는 황후의 시선에 살기가 가득했다.
그러나 다시 시작된 악단의 연주에, 그녀의 노기도 점차 묻혀갔다.
악에 받친 얼굴로 우릴 노려보던 그녀가 홱 몸을 돌려 연회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제야 참고 있던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다이아몬드의 진상을 규명할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다이아몬드보단, 그걸 빌미로 면죄를 받는 것이 목표였다.
‘데미안이 없었더라면 진상을 밝히지 못했을 거야.’
데미안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낯도 많이 가리는 데다가,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이목을 받아본 적이 없을 테니까.
데미안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돌린 순간이었다.
나보다 더 빨리 다가온 데미안이 손을 뻗어 내 얼굴을 감쌌다.
“……데미안?”
아이의 작은 손이 내 눈가를 쓸었다. 그 움직임에 맞춰,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황후에게 추궁당할 때, 내가 정말 우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나 걱정했어?”
나는 웃으며 데미안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쳤다.
“난 괜찮아. 이런 건 하나도-”
“나는.”
“…….”
“나는 그게 싫어, 엘리.”
“……데미안.”
“다른 사람들이 널 함부로 말하고, 너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는 게, 나는…….”
데미안은 꼭 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때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아.”
맑고 푸른 눈동자 속에 내가 담겨 있었다.
그 깊이가 가늠 되질 않는, 오롯이 나만을 바라보는 눈.
나는 멍하니 눈만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