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07)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07화(107/241)
* * *
티타임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아델란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슈에츠 공작의 며느리 곁에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질 않았다.
“엘리 님도 그 소설 좋아하시는군요!”
저렇게 즐겁게 웃는 얼굴을 본 것이 언제였더라.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의 딸은 늘 우울한 얼굴이었으니까.
리번스 자작, 그러니까 루버나일은 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티타임이 끝난 후 엘리는 다시 공작저로 돌아갔다.
배웅을 마친 아델란이 울적한 얼굴로 저택으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아델란.”
루버나일의 부름에 그녀가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세요?”
그가 드물게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할 말이 있다. 네가 꼭 들어줬으면 좋겠구나.”
“무슨……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아델란이 경계하며 뒤로 물러났다.
“엘리 님과 더 이상 만나지 말라고 하는 거라면…….”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다.”
루버나 일이 단언하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패전 후 왕으로서 어떤 결정을 했는지, 그리고…….”
망설이듯 머뭇거리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한 아버지였는지를 말하려는 거다.”
그 목소리는, 그가 왕으로 불렸던 시절의 기억과 닮아 있었다.
“어떻게 그런…….”
아델란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말도 안 돼요. 그럼 왕국인들이 제국인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마법서를 바쳤기 때문이지.”
충격적인 말에 아델란이 헉, 하고 입을 틀어막았다.
“어째서…….”
“…….”
“어째서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그럼 알 수 있었을 텐데. 모두가 아버지를 손가락질하지 않았을 텐데……!”
나라가 망하고 제국으로 왔을 때, 모두가 그녀를 무시했다.
어쩌다 사교 모임에 초대되어도 그녀에겐 항상 비아냥이 항상 따라붙었다.
목숨을 구걸한 대가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허망한 듯 털썩, 주저앉은 그녀가 결국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루버나일은 죄인 같은 낯으로 딸을 바라보다,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라를 지키지 못했으니, 마땅한 결과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치 않았어. 하지만…….”
상체를 낮춘 그가 조심스럽게 딸의 어깨를 감쌌다.
굳은살 가득한 손에 아델란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가 눈물 가득한 딸의 뺨을 닦아주며 말했다.
“네게 그 짐을 안긴 것 같아 미안하구나.”
“아버지…….”
“아직 어렸을 너에게, 내가 많은 상처를 줬어. ……미안하다.”
루버나일의 주름진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딸은 어느새 늙어버린 자신의 아버지를 흐느끼며 끌어안았다.
* * *
한편, 황궁의 재판소.
전쟁이 빈번하던 시절, 황실의 명예를 더럽혔거나 제국의 안전을 위협한 자들의 죗값을 묻기 위해 마련된 장소였다.
그만큼 죄질이 나쁜 자들만 그곳에 설 수 있었다.
황제와 교황이 판결을 내리고, 그 결과를 중앙 귀족이 지켜보는 게 황궁 재판의 절차였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엔 교황이 아닌, 그라페스 대신전의 신관이 대신했다.
교황이 15년 전 신탁을 받은 이후, 큰 신병을 앓아 병상에 누운 상태였기 때문이다.
교황은 제국에서 신력이 가장 강한 자였다.
그런 그가 앓아누웠으니 사람들은 15년 전 전쟁이 얼마나 심각한 일이었겠냐며 회고하곤 했다.
하지만 아직도 교황이 신병을 털고 일어나지 못하는 건 의아한 일이었다.
제국에서 강한 신력을 가진 교황이 죽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신력으로도 이기지 못할 만큼 강한 재앙이 도래했거나, 하늘이 다른 이를 대리인으로 선택했거나.
동시에 두 명의 교황은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교황이 저리도 지독한 신병을 앓는 이유는, 아직 15년 전의 신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런 수군거림을 뒤로한 채.
기다란 은발을 가진 사내가 벤터스에게 인사를 올렸다.
“신의 축복을 뵙습니다.”
그라페스 대신전의 대신관이자 교황의 대리인인 라미트라였다.
그들 또한 신의 축복을 받은 자들답게, 황족처럼 금안을 가지고 있었다.
“발걸음 해 줘서 고맙소.”
“폐하의 부름인데 어찌 오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라미트라가 가당치도 않다는 듯 부드럽게 웃었다.
천사의 헌신이라 일컬을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속도 좋군.’
벤터스가 속으로 이죽거렸다.
그는 신전과 황실의 관계가 어그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바보같이 손 놓고 있는 멍청이였다.
‘저런 사람이 대신관이라니. 신전의 수준도 알 만하군.’
애초에 황실 재판이 열린 게 누구 때문인데.
슈에츠 공작이 발견한 신성석만 미리 알려주었어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터였다.
못마땅한 눈으로 라미트라를 바라보던 벤터스가 앞의 단상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양손과 발을 신성 구속구로 제압당한 리칼 포르겔이었다.
데미안의 요청으로, 바이올렛 다이아몬드의 진상 규명이 시작됐다.
어린아이의 요청이니 무시해도 될 일이었지만, 그 아이가 슈에츠 공작가에 입양된 클라이더의 아들이란 점에서 귀족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결국 황후 카르티아는 바이올렛 다이아몬드가 흑마법으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고, 그 죄로 포르겔이 잡혀온 것이었다.
“하면 대신관. 다이아몬드 광산은 가보았소?”
“예. 황후 폐하의 말대로 흑마법으로 만든 가짜더군요. 신성력으로 모두 정화해 놓은 상태입니다.”
라미트라가 그렇게 말하며 카르티아를 바라보았다.
“황후 폐하께서 발견하신 서류가 없었더라면 찾지 못했을 겁니다.”
라미트라가 들고 있는 서류엔 흑마법으로 만든 광산의 위치, 동조한 웰시 남작과의 수익 분배 조항까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카르티아가 충격을 받은 듯 침잠한 얼굴로 말했다.
“그리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건만.”
“으응읍!”
“하마터면 모두가 속을 뻔했군요.”
재갈을 문 포르겔이 어찌 이럴 수 있냐며 황후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황후는 차분한 눈빛으로 그 발악을 지켜볼 뿐이었다.
배신이라고 느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흑마법사이자 황가의 개인 포르겔이 주인의 죄까지 함께 가지고 죽는 거다.
이 일을 덮으려면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그 계집만 아니었어도!’
그녀의 눈동자에 핏발이 섰다.
포르겔은 황가에 중요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 교활한 계집 때문에 저 좋은 개를 제 손으로 죽이게 될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그가 죽고 나면 앞으로 더러운 피를 직접 손에 묻혀야 할지도 몰랐다.
‘황실 재판만 아니었어도 풀어줄 수 있었을 텐데……!’
황실 재판이 갖는 무게감과 죄질의 경중을 따졌을 때, 포르겔의 시체를 보여줘야만 재판을 종료할 수 있을 터.
그녀가 입술을 짓씹을 때였다.
“재판이 늦어지는군요.”
낮은 저음이 뇌까렸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쏠렸다.
느슨한 자세로 의자에 기대앉은, 무표정한 얼굴의 남자.
에르하르트 슈에츠.
핏빛을 닮은 그의 눈동자가 황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귀족들은 헉, 하고 숨을 삼켰다.
‘슈에츠 공작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다른 곳도 아니고 황실 재판인데……!’
황실 재판은 황실에 반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든 이곳에 앉혀, 바닥으로 추락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무대였다.
때문에 귀족들은 황실 재판에 참여하는 것조차 무척 꺼렸다.
하지만 시장의 흐름을 바꿀 뻔했던 바이올렛 다이아몬드다.
게다가 그것을 만든 게 ‘황실의 개’인 포르겔이라니.
황실이 어떤 판결을 내릴지 궁금해진 귀족들은 재판소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황실 재판이 주는 위압감은 여전히 생생했기에, 숨죽여 대화의 흐름에 귀 기울이는 게 전부였다.
그런데 슈에츠 공작이 그 팽팽한 긴장감을 순식간에 깨뜨린 것이다.
주변의 경악스러운 시선이 뒤따랐지만, 정작 에르하르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흑마법으로 제국의 안위를 어지럽힐 뻔했는데…….”
에르하르트가 짐승처럼 꿇어앉은 포르겔을 무심한 얼굴로 흘겼다.
“판결이 늦어지는 것이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그렇기에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슈에츠 공께서 모를 리 없을 텐데요.”
카르티아가 날 선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에르하르트가 아, 하고 뒤늦게 설명을 붙였다.
“공작령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하나같이 질 나쁜 것들뿐이라, 처벌은 빠르게 이뤄지는 편입니다.”
“…….”
“성 밖에 그들의 목을 매달고, 까마귀들에게 밥을 주지요.”
그가 여상한 목소리로 끔찍한 이야기들을 내뱉었다.
“게다가 이런 일이 일어날 정도면…….”
에르하르트가 느릿하게 시선을 들어 올렸다. 붉은 눈동자에 카르티아의 얼굴이 담겼다.
“이미 제 이성은 통제를 벗어납니다.”
“…….”
“지금도 그 상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카르티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슈에츠 공작이 이성을 잃는다는 건, 광증의 표출을 뜻했다.
이건 협박이었다.
허튼 수작질로 시간을 끌지 말고 어서 포르겔을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그 스스로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가장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협박.
“무엇보다, 포르겔은 제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린 자가 아닙니까.”
“…….”
“그러니 그 끝은 봐야겠지요.”
그게 무엇이든 간에.
에르하르트가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