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Don’t Want To Be Duke’s Adopted Daughter-in-law RAW novel - Chapter (108)
입양된 며느리는 파양을 준비합니다-108화(108/241)
그 미소 속에 어떻게든 포르겔을 죽일 거라는 의지가 보였다.
‘신성한 황실 재판에서 저리도 오만한 태도라니!’
카르티아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입도 벙긋할 수 없었다.
그는 정말 물러나지 않을 테니.
여차하면, 다른 방법까지 쓸 것이다. 그게 무엇이든 간에.
‘하지만 포르겔의 유일한 딸은 이미 죽었다.’
저기 있는 리칼 포르겔마저 죽는다면 황실은 유일한 흑마법사를 잃게 된다.
카르티아가 붉게 물든 입술을 깨물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를 때였다.
“공작님께서 아이를 무척이나 신경 쓰시는군요.”
상냥한 목소리가 그 흐름을 깨뜨렸다.
“데뷔탕트 때 있었던 소동은 전해 들었습니다. 클로라 웰시 영애께서 며느님께 큰 해를 끼치셨다지요.”
대신관 라미트라가 선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작님께서 이렇게 신경 써주시다니. 참으로 귀애하시는 분들인가 보군요.”
그 말에 카르티아의 입술이 작은 호선을 그렸다.
황실 재판은 ‘흑마법으로 인한 가짜 다이아몬드 광산’을 처벌하기 위해, 무려 15년이라는 공백을 깨뜨렸다.
그런 상황에서 대신관 라미트라가 클로라와 엘리의 일이라는, 재판 주제와 살짝 어긋난 이야기를 꺼냈다.
이는 공작을 아이들끼리 일어난 싸움에 간섭하는 어른처럼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그의 발언은 공작을 공격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었으나……..
“오랫동안 찾아 헤매셨던 클라이더 공작님의 아들이라고 들었습니다. 찾으셨다니, 참으로 다행입니다.”
라미트라는 마음씨가 따뜻한 사람이었다.
출신을 알 수 없는 거지나 온갖 더러운 일을 일삼았던 범죄자에게도 다정히 손 내밀었다.
말 그대로 신의 대리인이었으니,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가 나날이 높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쉬이 트집 잡지 못할 테지. 그랬다간 귀족들의 반감을 살 테니.’
라미트라를 바라보는 귀족들의 경의를 담은 눈빛만 봐도 알 만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신의 축복은 뒤로 미루지. 그것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으니.”
에르하르트의 싸늘한 일갈에 풀어질 뻔했던 분위기가 다시 경직됐다.
“굳이 저러실 필요까지는……”.”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크흠.”
“차기 교황님께 잘 보여서 나쁠 건 없을 텐데 말이죠.”
귀족들의 속닥거림이 머리 위를 돌아다니는 하찮은 먼지처럼 떠다녔다.
카르티아가 조소했다.
라미트라는 신을 모시는 신관이었다. 공작의 발언은 모욕적인 언사였으니, 이를 물고 늘어진다면 황실 재판의 흐름이 바뀔지도 몰랐다.
‘잘하면 리칼의 판결을 미룰 수도 있을 터.’
그런 희망을 가진 채 라미트라를 바라보았다.
“이런, 죄송합니다, 공작님. 실례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카르티아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었다.
“이곳이 어떤 자리인지를 잊었군요. 하면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지요.”
라미트라가 무릎 꿇린 리칼 포르겔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리칼 포르겔이…….”
라미트라의 금안에 포르겔이 담겼다.
“……유죄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찰나, 그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었다. 리칼이 순간 몸을 움찔 떨었다.
“흑마법은 금지된 마법입니다. 제국의 안위를 어지럽혔으니, 벌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선량하게 웃는 낯에, 리칼의 턱이 덜덜 떨렸다.
“으읍, 으으읍!”
간신히 외치는 리칼의 목소리를 뒤로한 채.
카르티아는 조급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멍청한 대신관 같으니!’
에르하르트 슈에츠는 자신이 보호하는 아이들을 끔찍하게 아꼈다.
그러니 클로라 웰시와 엘리 슈에츠의 일로 꼬투리를 잡았더라면 슈에츠 공작과 대신 관인 라미트라의 갈등으로 흐름이 바뀌었을 터.
‘포르겔의 일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카르티아가 이를 아드득 갈았다.
핏발 선 눈으로 라미트라를 노려봤지만, 그는 무슨 문제 있냐는 듯 선량하게 웃을 뿐이었다.
“폐하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는…….”
그녀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제 옆에 앉은 벤터스를 바라보았지만,
“그래. 황후의 의견을 묻고 싶군.”
태연자약한 낯으로 제 의견을 물어볼 뿐이었다.
포르겔이 단독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벤터스도 알고 있을 터였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이어졌던 신전과의 유착 관계는 새로운 다이아몬드와 슈에츠 영지에서 발견된 신성석 때문에 완전히 끊어졌다.
황후는 끈 떨어진 연처럼 혼자 남겨질 테고, 황제는 이를 기회삼아 신전과 다른 방식으로 손잡을 수도 있겠지.
‘게다가 클라이더의 일도 있으니,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군.’
신전과의 관계와 클라이더의 일을 생각한다면 포르겔을 잃는 건 그에게 큰 손해가 아니었다.
‘벤터스, 당신이 어떻게 내게……!’
그녀가 파르르 입매를 떨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천천히 입술을 달싹였다.
“……저 또한 유죄라고 생각합니다.”
내뱉는 숨소리가 고해성사하는 죄인처럼 떨렸다.
“포르겔은 제국을 더럽힌 죄인입니다. 황족으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군요.”
찰나의 분노는 속으로 감춰낸 카르티아가 아직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 듯, 가슴께에 제 손을 올렸다.
‘역시 독한 여자야.’
이런 상황에서도 심약한 황후 흉내를 내다니.
벤터스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럼 정해졌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을 향해 선언했다.
“제국을 어지럽힌 리칼 포르겔의 죄를 물어, 즉결 처형한다. 처형은 황실 집행인인…….”
“폐하.”
그때였다.
“리칼 포르겔의 집행을 저희에게 맡겨주심이 어떠십니까.”
에르하르트의 말에 벤터스가 미간을 좁혔다.
판결이 난 후, 모든 집행은 황실의 판단하에 이뤄지는 것이 원칙이었다. 슈에츠 공작의 발언은 명백한 월권이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군. 슈에츠 공, 리칼 포르겔의 처형을 그대에게 맡길 이유는 없네.”
“제 친우이자 데미안의 친부인 에드윈 클라이더.”
“……!”
“그 공작 부부의 죽음과 리칼 포르겔의 연관성을 찾았습니다.”
벤터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걸 그대가 어떻게…….”
“포르겔의 딸인 리비아 포르겔이 공작성에 숨어든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에게 자백을 받아냈습니다.”
“……!”
“원하신다면 영상구에 담아 놓은 자백을 이 자리에서 보여드릴 수도 있습니다.”
벤터스는 조용히 침음을 삼켰다.
영상구에 담겼다는 말은 거짓말일 터였다.
사실이었다면 공작은 그 즉시 군대를 이끌고 제도를 습격했을 테니까.
‘하지만 정말 사실이라면?’
그 영상구를, 그가 포르겔에게 내린 지시를 이 자리의 귀족들이 마주하게 된다.
벤터스는 어느새 거칠어진 숨을 몰아 쉬었다.
더 이상 선택지는 없었다.
죽은 에드윈 클라이더, 친우의 아들을 찾아 10년 넘게 찾아 헤맨 사람이다. 그의 세월이 처형의 이유를 증명했다.
“……하면 그대에게 맡기도록 하지.”
“폐하!”
카르티아의 외침을 무시한 채 벤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칼 포르겔의 혀는 잡히자마자 잘랐으니, 정보가 새어 나갈 일도 없을 터였다.
슈에츠 또한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형의 집행을 바라는 건.
‘알려주려는 것이다.’
리칼 포르겔은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벤터스의 얼굴에 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무사히 황후는 견제했으나 더 큰 산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빨리 해치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15년 전 신탁이 이뤄지리라.’
천사의 축복이라 불리던 그의 눈동자가 탁하게 번뜩였다.
* * *
카르티아는 씨근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고, 라미트라도 인사와 함께 재판장을 나섰다.
귀족들도 더 이상 자리를 지킬 필요는 없었다.
아니,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더 이상 자리를 지켰다간…….
벌써부터 오러를 내뿜기 시작한 슈에츠의 광증을 목도하게 될지도 몰랐으니까.
마지막 귀족까지 모두 빠져나가자, 에르하르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으읍! 으읍!”
살기를 느낀 리칼이 버둥거리며 물러났으나, 족쇄는 풀리지 않았다.
“이제야 아들을 볼 낯이 있겠군.”
에르하르트가 음산히 중얼거렸다.
리칼이 바닥에 연신 이마를 들이박으며 싹싹 빌었다.
“완전히 죽이진 않겠다.”
“으읍…….”
리칼의 얼굴에 찰나의 희망이 스쳤다.
“네 목숨을 끊는 건 데미안의 몫이니까.”
“……!”
리칼이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쥐어짜 낸 신음은 그의 검은 오러와 함께 꺾인 나뭇가지처럼 뚝 끊겼다.
* * *
공작성 밖으로 나온 나는 주위를 서성거렸다.
발끝을 꼿꼿이 세우고 목을 쭉 빼고 열심히 눈을 굴렸으나 슈에츠의 문장이 새겨진 마차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휘황찬란한 마차들이 한가득이었다.
‘또 왔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부터 공작성 앞은 이런 마차들로 득시글대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공작이 새로운 신성석을 발견한 것이 나라는 사실을 밝히고 나서부터였다.
‘처음엔 날 투명인간 취급했으면서.’
무도회에 참석한 귀족들은 많았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은 아델란과 제리트밖에 없었다.
‘클라이더의 아들을 찾은 것으로도 모자라 허락도 없이 결혼을 올렸으니까.’
제 아무리 슈에츠 공작이라고 해도 황실의 견제를 피하지 못하리라 생각한 것이겠지.
괜한 불똥이 튀기 싫어, 근처에는 얼씬도 않은 것일 테고.
‘하지만 알고 보니 불똥이 아니라 금덩어리였던 거지.’
데뷔탕트 이후, 내 앞으로 온 서신이 산처럼 쌓였다.
구구절절 자신이 누구인지, 가문의 역사가 얼마나 깊은지를 읊어댔지만 요지는 하나였다.
‘그 신성석, 나도 주라.’
내가 아델란에게 신성석을 줬다는 걸 기어코 알아낸 모양이었다.
아이가 들었다면 혹했을 말들도 간혹 적혀 있기는 했지만.
헹, 하고 코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답이 없자 초조해진 귀족들은 결국 마물이 득실거리는 북부까지 친히 행차하셨다.
그리고 그게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